소설리스트

37화 (37/500)

37화

시하는 오랜만에 한 인물을 만나고 있었다.

금색으로 물들인 머리를 한 패션디자인과 학생 알리사였다.

“Hi~ 시하~”

“아아. 리사.”

“여전히 귀엽네?”

알리사가 시하의 말랑한 볼을 만졌다.

말랑말랑.

촉감이 좋은 이 말랑함에 알리사의 얼굴이 풀어졌다.

“흐흥~”

“아아.”

그때 승준이 알리사의 손을 탁 하고 쳤다.

“시하 만지지 마!”

“뭐? 왜? 왜 만지면 안 돼?”

승준이 시하의 손을 잡고 등 뒤로 옮겼다.

“마녀야. 마녀.”

하나가 승준의 옆으로 와서 찰싹 붙었다.

“마녀야. 마녀.”

“누가 마녀라는 거야.”

알리사가 어이없어했다.

하지만 승준과 하나는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그 이유는 최근에 엄마가 보여준 영화에 나온 마녀가 딱 알리사처럼 생겼기 때문이었다.

영화라기보다는 뮤지컬에 가까운 영상이었는데 그때의 마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노란색이고 예쁘면 마녀랬어!”

“마자. 마자. 왕자님을 유혹한대.”

그 말을 듣고 나니 알리사는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런 미인 마녀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애들의 장단을 맞춰 주기로 했다.

“그래. 맞아. 사실 난 마녀야.”

승준이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시하는 데려갈 수 없어!”

“하나도 시하 지켜.”

“아아? 알리사.”

시하는 알리사를 알고 있어서 딱히 그런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재밌어 보여서 애들과 함께 알리사를 마녀로 보기로 했다.

알리사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시하는 내가 데려가야겠어. 마법을 걸 거거든.”

승준과 하나가 눈을 크게 떴다.

“아, 안 돼.”

“안 돼. 안 돼.”

“미안하지만 이 가루를 마시면 너희들은 잠이 들 거야.”

알리사가 원만한 해결을 위해 후~ 하고 바람을 불었다.

승준이 배를 쭈욱 내밀었다.

“난 그런 거 소용없어!”

“하나도. 하나도.”

알리사는 쉽지 않은 애들을 만났다.

설마 여기서 소용없다고 할 줄이야.

그렇다면 힘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물리 마법이야.”

알리사가 시하를 쏙 빼서 들었다.

“아아.”

시하가 발을 버둥거렸다.

승준과 하나가 잡으려고 했지만 알리사는 재빨리 원장 선생님 방으로 들고 들어갔다.

“아앗! 잡아라!”

“마녀 잡아라.”

승준과 하나가 쫓아갔지만 이미 문은 굳게 닫혀 버렸다.

“오빠. 어떠케?”

“괜차나. 안에는 대장이 있어.”

어린이집 최고의 힘을 자랑하는 원장 선생님.

승준은 원장 선생님을 믿기로 했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어어?!”

“시하야?!”

“시하가…….”

“시하가…….”

시하가 오버핏으로 입은 옷을 입고 왔다.

머리에는 멍뭉미를 보장하는 강아지 머리띠.

“강아지?”

“되어써?”

승준은 원장 선생님이 마녀를 막지 못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아아. 멍멍이~”

시하는 옷이 마음에 드는지 주먹을 말아 쥐었다.

“멍멍.”

멍멍이를 흉내를 내며 몸을 흔들었다.

상의에는 작은 꼬리도 달려 있어서 살랑살랑 흔들거렸다.

뒤에 있던 알리사가 만족스러운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흐흥~”

하나가 시하를 물끄러미 보더니 알리사의 다리를 잡았다.

“하나도. 하나도. 마법 걸어져.”

“어어?”

알리사가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하나도. 하나도.”

“으음. 미안하지만 안 돼. 하루에 한 번밖에 마법을 걸 수 없어.”

“히잉.”

알리사는 울먹이는 하나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헤맸다.

문제는 울먹이는 모습도 너무 귀여워서 뭔가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이었다.

“대신에 나중에 언니가 공주님으로 만들어 준다고 약속할게.”

“진짜?”

“응. 언니가 약속할게.”

“신난다!”

하나가 팔을 번쩍 들었다.

그 모습을 보던 승준이 알리사의 바지를 잡아당겼다.

“나도 마법 걸려줄 수 있는데?”

사실 승준이도 끼고 싶었다.

알리사는 그 말에 웃음을 보였다.

“아하하. 알았어. 알았어. 나중에 마법 걸어줄게.”

그때 시혁이 도착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

정리를 해 보자.

어린이집으로 왔는데 알리사가 있고 시하는 본 적 없는 옷을 입고 있다.

너무 귀엽다.

저게 바로 멍뭉미인가?

아니, 이게 아니지.

갑자기 알리사 손에 있는 종이봉투가 너무 신경 쓰인다.

흰색. 그래. 흰색이 보인다.

부피도 좀 되는 것 같다. 누가 봐도 남자 옷이 아니겠어?

그럼 저기 시하가 낀 머리띠도 신경 쓰인다.

너무 귀엽다.

정신 차리자. 저걸 나도 해야 한다고?

알리사. 차라리 죽여, 이놈아!

이렇게 외치고 싶지만 시하가 나에게 달려오는 바람에 그 마음은 가슴속에 묻어두었다.

“형아~ 멍멍.”

“시하야~”

나는 시하를 폭 안았다.

멍멍이라고 말하니 너무 귀엽다.

사진으로 간직하고 싶다.

“너무 귀엽다. 시하야. 옷은 안 불편해?”

“멍멍.”

시하가 내게 볼을 비볐다.

나 역시도 시하의 말랑한 볼의 감촉을 느끼며 알리사를 쳐다보았다.

“설마 내 거 아니죠?”

“맞는데요.”

“아니라고 해 줘요.”

“맞아요. 이제 저희도 대회 시작하거든요. 중간고사도 끝나는 이 시기에…….”

“어디 보자. 아직 중간고사 치는 기간이…….”

“금요일에 강의 없다면서요?”

“제가 그런 말도 했어요?”

왜 다들 내가 금요일에 강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거지?

내가 말했나?

하여간 앞으로 입조심을 해야 할 것 같다.

알리사가 말했다.

“자, 그럼 이제 마법을 걸어볼까요?”

그 말에 하나가 반응했다.

“하나도. 하나도.”

알리사가 아차 싶었는지 말을 바꿨다.

“하루에 아이 한 명, 어른 한 명에게 마법을 걸 수 있어. 아까 시하에게 걸었으니까 하나에게는 나중에 걸어줄게.”

“힝. 알아써.”

“나도 걸려줄 수 있는데~”

승준이를 보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대체 이 아이는 뭐 하고 싸우는 걸까?

“형아~”

“응?”

“가치. 멍멍.”

“으윽.”

그래. 이왕 하기로 한 거 눈 딱 감고 입어 보자.

어차피 알리사도 옷이 잘 맞는지 평가를 들으러 온 것 같으니까.

“줘 봐요. 갈아입고 올 테니까.”

나는 알리사에게 종이봉투를 받고 자리를 옮겼다.

잠시 후.

내가 옷을 입고 나오자 알리사가 눈을 반짝였다.

“시혁. 정말 멋져요!”

“안 멋진데요…….”

사실 디자인은 괜찮았다.

아니, 역시 디자인과라서 그런지 멋있기는 했다.

이제 따뜻해져서 좀 더운 감이 있지만.

상의와 하의가 참 잘 어울렸다.

머리띠만 빼면 어디 나가서 입고 돌아다녀도 될 거 같았다.

“하아…….”

“형아.”

“응. 시하야.”

“기여어~”

“그, 그래?”

“시하랑 가타.”

“응. 시하랑 똑같네.”

시하는 그게 마음에 드는지 내 다리에 콩콩 머리를 박았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 일단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난 이렇게 많이 안 찍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알리사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하하. 둘이 있는 사진이 너무 귀여워서요.”

“일단 제 톡에 보내고 지우시죠.”

“흐흥.”

“모른 척하지 마시고요.”

“아~ 왜요~ 자료로 참고해야 한단 말이에요~”

“어디서 애교 섞인 목소리예요. 어서 보내고 지워요. 제가 가지는 건 괜찮지만 남이 가지는 건 안 됩니다.”

그때 하나가 내게 달려왔다.

“시혀기 오빠~”

“응?”

“머시써! 너무 머시써. 귀여버.”

멋짐과 귀여움이 동시에 가질 수 있었나?

“응. 고마워.”

“조아~”

“하하. 이 옷이 좋지?”

알리사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하나에게 말했다.

“저게 바로 멍뭉미야. 하나야.”

“머무미?”

“멍뭉미.”

“멍뭉미!”

알리사가 이렇게 한국어에 능통했었나?

솔직히 말해. 영어보다 한국어가 더 편하지?

내가 그런 의심을 할 때 부모님들이 애들을 찾으러 오는 게 보였다.

이대로 옷을 입고 있는 건 조금 부끄러우니까 얼른 갈아입어야겠다.

“하나야~ 승준아~”

하나와 승준을 부르는 목소리.

승준이 외쳤다.

“아빠다!”

아빠면 교수님이나 교직원이실 텐데?

“아빠~”

승준이 어린이집 입구로 뛰어갔다.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어이쿠. 우리 아들. 아빠가 좋아요?”

“응응.”

“우리 하나는 어디 있어?”

“저기~”

“그래? 하나야~”

승준과 하나의 아버지가 등장했다.

전자공학과 반도체 전문 오상환 교수.

전에 서수현과 이야기하면서 나왔던 그 교수님이었다.

‘그러고 보니 승준이와 하나가 오 씨였지?’

오승준, 오하나.

왜 눈치 못 챘는지 모르겠다.

하긴 교수님과 닮지 않고 어머니 쪽을 닮았다.

‘뭐, 교수님은 내 얼굴 모르니까.’

그냥 취업센터의 대학원생을 통해서 얼굴을 알게 된 것뿐이다.

“하나야. 아빠 왔다.”

“응.”

하나는 그냥 대답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반짝반짝.

아무래도 내 옷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하나야. 아빠 품에 안겨야지.”

“하나는 시혀기 오빠한테 안기고 시퍼!”

“뭐?!”

하나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안아주었다.

“부드러.”

“형아. 시하도.”

“응. 그래.”

나는 양쪽으로 시하와 하나를 안게 되었다.

앞에 있는 교수님은 충격받은 표정이 됐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호칭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생각했다가 입을 열었다.

“하나 아버님?”

“아버님이라고?! 커험!”

교수님이 아주 불편한 기침을 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얼굴도 몰라서 교수님이라고 하는 건 아닌 거 같아서 아버님이라고 말했는데? 교수님이라고 해야 했나?’

그때 하나가 말했다.

“시혀기 오빠. 이거 조아. 머시써.”

“응. 고마워.”

“커허험!”

교수님의 표정이 많이 안 좋아서 어디 아픈 건 아닌지 모르겠다.

***

집으로 가면서 알리사에게 질문을 받았다.

“옷은 불편한 거 없었어요?”

“음. 딱 입어봤을 때는 불편한 거 없었어요.”

“막 몸에 거슬리거나 피부가 민감해서 벌게진 부분은요?”

“없어요. 시하 몸도 봤는데 깨끗하더라고요.”

“다행이다.”

나는 알리사를 보았다.

패션디자인학과 학생이라 그럴까?

상당히 옷을 잘 입는 것 같았다.

아마 연구를 많이 했겠지.

패션 역시 창작의 영역이었다.

문제는 그 디자인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어그러지거나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오히려 이런 걸 물어보고 싶었다.

“실제로 머릿속에 있는 걸 만드는 거잖아요. 다르기도 하고 마음에 안 들기도 하죠?”

“그런 적이 많죠. 내 머릿속에는 이런 색이 아니었는데. 이런 거요. 색이 마음에 들면 옷감이 별로고. 입을 때 거칠거칠하면 불편하잖아요. 그렇다고 옷 위에 붙이는 것도 계절에 맞지 않는 것 같고.”

다양한 고민이 있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재밌기도 했다.

아마 나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학생이라서 더 흥미가 가기도 했다.

나도 이런 쪽으로 진로를 가보면 어떨까?

예를 들면 패션칼럼니스트 같은 거 말이다.

“패션칼럼니스트는 어때요? 제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알리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왜요?”

“본 게 적으니까.”

“지금부터 많이 보면 되죠.”

“달라요. 많이 달라요. 이건 커가면서 보고 듣고 자란 영향을 많이 받아요. 느낌. 느낌이라는 거 있죠?”

“느낌?”

“네. 느낌. 왜 사람들이 유학하는 줄 알아요?”

“제 생각에는 유학은 사람의 시야를 넓게 만들어주죠. 이게 크다고 생각하는데…. 보통은 그냥 스펙으로 생각하려나요?”

“다른 건 모르겠지만. 이런 디자인이나 예술 쪽은 그래요. 부자가 되라는 소리는 아니지만, 여유가 있으면 여러 작품을 감상하죠. 색감, 디자인 이런 영감을 어릴 때부터 많이 받아요. 인풋이 많은 거죠.”

“으음.”

“옷 역시도 비싼 걸 자주 보고 입고 그러잖아요. 유명 디자이너의 옷이라든지.”

“그렇죠?”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느낌과 감각이 이미 ‘자연스럽게’ 날카롭게 되어 있죠. 직감. 이런 거 말이에요.”

“신기하네요.”

“사실 패션칼럼니스트라고 해도 그 직관을 알기 쉽게 표현하는 거니까 다른 영역일지도 모르겠네요.”

알리사가 그저 웃었다.

“그렇네요. 감각이 없으면 패션디자인을 하는 건 힘들겠네요?”

“10년간 올바르게 노력하면 문제없어요. 문제는 올바르게 하는 노력이 뭔지 모른다는 거죠.”

“올바른 노력이라…….”

생각해 보니 내가 시하에게 했던 고민과 마찬가지였다.

감각. 이 감각을 어떻게 발전시키게 하는가.

나는 그것을 해줄 수 있나?

그런 고민.

‘으음.’

알리사가 웃었다.

“혹시 시하 때문이라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뭐든 10년간 미친 듯이 하면 일정 경지에 오르니까요. 먹고 사는 데 문제없잖아요?”

“그건 그렇죠.”

알리사가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

“하지만 전 정상에 서고 싶어요. 감각을 갈고 나가고 싶어요. 그래서 그냥 감각으로 안 돼요.”

알리사가 저 멀리 산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자기가 갈 곳이 정해져 있다는 듯이.

“멋지네요. 정상이라.”

“제 꿈이니까요. 시혁은 꿈이 뭐예요?”

“저요?”

내 꿈은 별거 없다.

“거름이요.”

“네?”

나는 살며시 웃으며 시하의 머리를 만졌다.

시하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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