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나는 어린이집에서 시하를 데리고 왔다.
“형아.”
“응? 이건 뭐야?”
“아아. 콩.”
“콩?”
화분을 보니 강낭콩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무래도 식목일인 오늘 강낭콩을 심었나 보다.
“이야. 엄청 멋지네?”
“아아.”
“여기서 콩이 자라서 콩을 먹으면 되겠다.”
“아아.”
나는 시하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화분은 시하가 잘 볼 수 있는 베란다에 놔두었다.
강낭콩이라면 이틀 뒤쯤에 발아해서 싹이 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시하가 신기해하지 않을까 싶다.
시하가 좋아하며 키울 모습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아아. 형아.”
시하가 화분을 계속 봤다.
“마음에 들어?”
“아아.”
“여기서 햇빛도 받고 그래야 해. 쑥쑥 크면 우리 콩도 먹자. 형아가 맛있게 요리해 줄게.”
“아아.”
“그럼 오늘 저녁 먹어야지? 시하야. 잠시만 놀고 있어 봐.”
“아아.”
나는 부엌으로 가서 요리했다.
시하는 계속 화분의 주위를 반원으로 돌면서 관찰하고 있었다.
저렇게 좋을까?
괜히 열심히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하면서 강낭콩에 대해서 검색을 해 봤다.
‘뭐야? 왜 이렇게 빨리 커?’
잭과 콩나무처럼 하루 만에 쑥쑥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중에 철사와 실 같은 거로 길게 고정해서 키워야 할 정도였다.
사진을 보니 천장에 있는 커튼 봉까지 올라가는 게 보였다.
“워…. 아니지. 여기 물건 위에 올려뒀네. 그래도 긴데?”
시하 키는 당연히 넘어갔다.
위로 쭉 뻗는 줄기가 한 달 만에 자라는 것을 보니 새삼 신기하기도 했다.
‘시하가 엄청 좋아하겠네.’
하루가 다르게 결과가 빨리빨리 나오니 애들이 좋아할 만했다.
어린이집을 다녀서 그런지 이런 교육적인 측면에서 배울 게 많았다.
‘다른 것도 좀 더 키워봐?’
그런 생각을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일단 강낭콩이나 잘 키우자.
요리가 끝나고 나는 시하를 불렀다.
“시하야. 밥 먹자.”
“아아.”
나는 걸어오는 시하를 안고 그대로 의자에 앉혔다.
오늘의 주요리는 바로 오므라이스!
볶음밥에 황금색 오믈렛을 덮은 완벽한 요리.
위에 케첩을 뿌리는 게 좋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무도 정복하지 않은 황금색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하가 눈을 크게 뜨며 오므라이스를 보고 팔을 흔들었다.
“아아! 형아! 형아!”
“이게 바로 오므라이스야! 오므라이스.”
“오므.”
“라이스.”
“나이스.”
“그래. 아주 나이스!”
“나이스!”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다 보니 이상한 말이 되었지만 뭐 상관없겠지.
나는 여기에 마법을 부릴 차례다.
“자. 시하야. 여기 케첩이 있어서 이 위에 하트를 그릴 거야.”
나는 케첩을 쭈욱 짜서 하트를 그렸다.
시하도 하고 싶은지 손을 뻗었다.
“형아. 시하도.”
“응? 그래. 이거 하고 싶어?”
“아아.”
나는 시하에게 케첩을 주었다.
시하가 신중하게 케첩을 짜며 하트 옆에 날개를 그렸다.
“형아보다 잘 그리네?”
“아아.”
시하가 다시 한번 케첩을 쭈욱 짜더니 화살이 그려졌다.
이런 건 또 어디서 본 건지…….
그런데 화살촉이 좀 이상했다.
동그란 모양.
‘이거 체육대회 때 흡착판 있는 화살이네.’
역시 본 거는 잘 따라 그리나 보다.
“이제 그만하고 먹자.”
“아아.”
우리는 함께 식사를 즐겼다.
그런 뒤 시하는 열심히 태블릿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다.
나는 그런 시하를 보다가 아버지의 노트북을 켰다.
위잉.
여전히 깔끔하게 정리된 폴더들이 보였다.
그중에 아버지가 작업했던 번역 문서들을 찾아 들어갔다.
[소설], [의료], [의전], [장르]…….
여러 개의 파일이 보였다.
나는 그중 의료 부분을 클릭했다.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세요.]
폴더 하나하나에 비밀번호가 걸려 있었다.
키보드에 손을 갖다 대면 자연스럽게 써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전혀 써지지 않았다.
‘으음.’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열어보고 싶지 않았다.
이미 머릿속에 있는 자료들이 있을 텐데 열어봐서 뭐 할까?
나는 다른 폴더를 뒤져보았다.
[의료 전문 번역 업체 설립]
‘찾았다.’
나는 이곳에 들어갔다.
약간 일기 형식으로 된 문서도 있었다.
내가 궁금한 것은 이런 것이기에 읽어보았다.
[6월 21일. ‘로랭스’에 일하게 되면서.]
[기준이가 의료 번역 전문 업체를 만들고자 했다.
시작은 두 사람이었다.
나도 끌어들이려고 했지만, 통역관이 되고 싶어서 거절했다.
하지만 급전이 필요했을 때 간간이 도와주곤 했다.
정말 미약한 시작이었지만 어느새 사람도 늘었다.
그 당시 나는 원하던 통역관이 되어 있었고, 소식은 뜸하게 되었다.
다시 기준이를 만난 것은 내가 번역에 손을 댔을 때다.
통역하던 사람이 번역하는 건 힘들다고 알고 있지만, 그 당시 했던 경험이 생각나 염치없이 연락을 넣었다.
기준이는 흔쾌히 나를 받아들였다.
오랜만에 한 번역이라 그런지 공부할 게 많았다.
1년마다 새로 갱신되는 의학 자료들을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이다.
특히 심리와 정신과 계통 쪽은 매일 의사들이 봐야 할 게 업데이트되는데 그게 사람을 미치게 했다.
이 번역을 시작으로 시혁이에게 좋은 장난감을 사줘야겠다.]
짧은 글이었지만 나는 당시 아버지가 어떻게 의학 지식을 가졌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참 아버지에 대해 몰랐구나.’
이런 것을 보니 괜히 후회된다.
나는 나만 생각한 것 같아서.
빨리 독립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돈을 벌고, 취직하고, 옷을 사드리고.
이런 것만 생각했었다.
이게 효도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게 효도가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와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눴으면 좋았을걸.
아버지를 좀 더 알았으면 좋았을걸.
나는 아버지에 대해서만 알았지.
어린 시절, 청년 시절의 ‘이장혁’을 몰랐다.
남겨진 자들은 언제나 추억을 하며 후회를 하는 걸까?
‘고마워요. 아버지.’
나는 그런 마음을 가지며 다른 폴더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눈에 띈 것은.
[육아일기]
나도 모르게 그것을 클릭했다.
***
이틀 뒤.
강낭콩에서 싹이 났다.
시하는 그것을 보면서 완전 흥분 상태가 되었다.
베란다를 열 수가 없어서 투명한 창에 얼굴을 붙였다.
찰싹.
“아아!”
두 개의 잎이 보였다.
베란다가 잠겨서 열 수 없던 시하는 자고 있는 형아를 깨우기 위해 방으로 돌진했다.
도도도.
달려가는 시하가 형아의 배 위에 올라탔다.
“형아~”
시하가 형아를 부르며 몸을 뒤뚱뒤뚱 움직이기 시작했다.
왠지 위에 올라탄 놀이가 재밌어서 어느새 즐기게 되었다.
“어억!”
갑작스러운 습격에 시혁이 눈을 떴다.
“시하야~”
“형아. 콩. 콩. 콩.”
“그래. 위에서 콩콩 뛰고 있네.”
도리도리.
“콩. 콩.”
“응? 콩?”
시하는 시혁의 배 위에서 내려와 손을 잡았다.
시혁은 시하의 손에 이끌려 베란다로 갔다.
“오! 싹이 났네?!”
“아아.”
“그것도 잎이 두 개네?”
“형아~”
시하는 문을 여는 시늉을 했다.
시혁은 그런 시하를 보며 피식 웃었다.
베란다를 열자 차가운 기온이 시하를 덮쳤다.
“춥지?”
“아아.”
도리도리.
시하는 이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작은 슬리퍼를 신고 화분에 가까이 갔다.
푸른 새 생명이 나온 것이 너무 신기했다.
“콩나무.”
“응? 콩나무? 아! 잭과 콩나무?”
“아아.”
“이야. 시하가 그런 이야기도 알아?”
“아아.”
“으음. 어린이집에서 들었나 보네. 가만 보자. 이번에 돈도 들어왔으니까 시하 동화책이랑 장난감도 살까?”
시혁의 중얼거림을 못 들었는지 시하는 새싹을 바라보았다.
“형아. 예뻐.”
“응? 예쁘네. 여기 싹에게 좋은 말을 하면 더 잘 자란대. 노래도 좋고.”
“아아!”
시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 어린이집에서 배운 노래가 있었다.
“시. 시. 시를 부르고~ 고고. 무르 주어죠~”
시를 부르고 무를 준 게 되었지만, 멜로디는 완벽했다.
시혁도 옆에서 시하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아침은 모닝콜로 시작되었다.
***
나는 시하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장난감 마트에 갈 생각이었다.
많이는 사줄 수 없지만, 그림책과 장난감 하나를 사줄 생각이었다.
“시하야. 오늘 하나만 고르는 거야. 알았지?”
“아아.”
나는 시하의 손을 잡고 장난감을 파는 곳으로 갔다.
과연. 시작부터 엄청 큰 로봇 장난감들이 보였다.
가격이 후덜덜 했다.
‘아니, 뭔 장난감 가격이…….’
5만 원이 넘어갔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5개의 로봇 장난감의 각각이 합체가 된다.
5개를 사면 25만 원이 넘는다.
‘양아치 아니야?’
따로 파는 것도 모자라 합체까지 된다고?!
이런 거 하나 사주면 나중에 남은 네 개도 사줘야 하는 기적 같은 팔기 전략이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이런 상술에 치를 떨어야 했다.
‘어억! 피규어 하나가 이렇게 비쌌어?!’
대범하게 하나만 사라고 했지만, 마음이 콩닥콩닥 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시하가 좋아하는 거라면 하나 사줄 수 있다.
시하는 이미 장난감을 스캔하고 있었다.
로봇은 아직 관심이 없는지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뭔가 한고비 넘긴 기분이었다.
여러 장난감을 보던 시하가 하나를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뭘 보는 거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본 것은 자동차 장난감이었다.
한 손에 쥘 수 있는 장난감이었는데 멋진 차들이 줄줄이 서 있었다.
‘역시 남자애들이 갖고 싶어 하는 3대장에 걸렸구나!’
로봇, 자동차, 공룡.
이 세 개가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인 것 같다.
“시하야. 이거 갖고 싶어?”
나는 10만 원이 넘어 보이는 차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도리도리.
“응? 갖고 싶어서 쳐다본 거 아니야?”
도리도리.
“으음.”
시하가 손가락으로 다른 곳을 가리켰다.
자동차긴 한데 그냥 평범한 자동차가 아니다.
카니멀이라고 하는 동물 모양 자동차다.
가격은 스포츠카 장난감보다 훨씬 싸다.
“페페.”
“펭귄 모양이네?”
“아아.”
나는 시하에게 펭귄 자동차 장난감을 쥐여주었다.
설마 이게 엄청 싸서 고른 건 아니겠지?
아무래도 그런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안 좋아질 때쯤 시하가 내 바지를 잡아당겼다.
“형아.”
“응. 응. 말해.”
시하가 어디를 한 번 가리키더니 손가락으로 표현했다.
오른손은 두 개. 왼손은 한 개.
나는 시하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차렸다.
[2+1]
‘가격은 몰라도 이런 건 귀신같이 아는구나! 천잰데?’
할인가 받아서 2만 원.
우리 시하는 비싼 것보다 양을 선택했다.
그날, 시하는 펭귄, 강아지, 판다를 얻었다.
계산하고 보니 깨달았던 건 하나.
‘아, 맞다. 한 개만 사준다고 했었지…….’
뭔가 속은 것 같지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시하는 나와 다르니까.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으니까.
잊어버리고 있었다.
시하는 나와는 다르다.
***
[육아일기]
번역으로 계약금이 들어와서 5살인 시혁이를 데리고 장난감 가게를 갔다.
그날은 왠지 모르게 시혁이에게 죄책감이 너무 커서 장난감이라도 사주자는 마음이었다.
언제나 자신이 못 놀아줘서 미안했는데 앞으로 자주 놀아주기로 했다.
시혁와 함께 장난감을 사러 가는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시혁아. 갖고 싶은 거 다 골라봐.”
이렇게 말했지만 시혁이는 처음 코너를 지나 제일 구석에 있는 조그마한 장난감을 만지고 있었다.
나는 시혁이에게 말했다.
저 큰 로봇 장난감 사도 된다고. 아빠가 다 사줄 수 있다고.
하지만 시혁은 그저 싸고 조그마한 장난감을 만졌다.
이거 갖고 싶다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애가 갖고 싶은 걸 사줬으면 됐다 싶었다.
추가)
8살인 시혁이가 체육대회인 것을 나에게 숨겼다.
애가 아빠를 생각해서 한 일 같은데 나는 그게 너무나 마음 아팠다.
지금 이 글을 읽어보니 알겠다.
그날 시혁은 우리 집의 가계 사정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빠가 얼마나 버는지, 빚을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그 눈치 빠른 아이가 집이 부유하지 않은 건 알아차렸을 거다.
그제야 다섯 살 시혁이가 갖고 놀던 장난감들이 하나같이 싸고 작았던 것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
그 뒤부터 시혁이에게 크고 비싼 장난감을 사줬는데 혼났다.
마음이 아픈 한 편, 나는 그렇게라도 혼이 나고 싶었다.
아빠가 잘할게. 미안해. 시혁아.
이제 돈 걱정할 필요 없이 충분히 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