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500)

32화

이건 너무 귀여워서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었다.

찰칵. 찰칵.

손잡이는 바닥에 붙어 있었다.

화살이 향하는 방향은 약 30도로 기울어져 있었고, 방아쇠를 당기는 모습이 신중했다.

시하가 집중하고 쏘자 화살이 휙 하고 날아갔다.

뽁.

그대로 과녁에 맞았다.

“시하야. 형아가 장전해 줄게. 가만히 있어.”

나는 화살 하나를 다시 꼽아주었다.

시하가 자세를 잡았다.

“그래. 숨을 멈추고 쏘는 거야. 그래야 활이 안 흔들려.”

“아아.”

사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맞추기만 하는 거라면 그렇게 할 필요는 없었다.

심지어 실제 총도 아니라서 반동도 없었다.

옆에 있던 아이가 시하를 보더니 앞에 있는 과녁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어.”

뽁.

과녁에 그대로 맞았다.

이것으로 1 대 1 상황이었다.

시하도 그걸 알고 있는지 신중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정확. 퍽펙트.

하나같이 과녁에 맞히는 솜씨가 장난 아니었다.

이거 체육고에 보내야 하는 거 아니야?

사격부 에이스로 등극해 메달리스트가 되는 시하의 미래를 머릿속으로 그렸다가 고개를 털었다.

‘또 너무 많이 갔다.’

이게 다 재능이 넘치는 시하 때문이다.

천재 시하가 다시 화살을 장전하고 그대로 쏘았다.

뽁. 뽁. 뽁. 팅. 뽁. 팅. 뽁. 팅. 뽁.

10발 중의 7발을 맞췄다.

원래라면 3발 맞추면 도장을 주기 때문에 나머지는 보너스였다.

옆에 있는 아이는 10발 중의 6발을 맞췄다.

종이 한 장 차이였지만.

바둑에서처럼 반집 차이는 어마어마한 실력 차를 나타내기에 나는 가슴을 펴고 뿌듯해했다.

옆에 있는 하나와 승준이도 만세를 불렀다.

“시하가 이겼다!”

“시하야~ 이겨떠~”

마치 백팀이 이긴 모양새로 두 명이 시하에게 찰싹 붙었다.

양쪽에서 얼굴을 들이밀어서 시하의 귀여운 볼살이 조금 눌러졌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옆에 있던 아이는 분한지 씩씩거렸다.

“야. 너 좀 하네?”

“아아.”

“근데 다음 게임에서는 안 질 거야. 이름이 시하라고?”

“아아. 시하.”

“난 종로의 종호요.”

그때 뒤에서 종호 엄마가 등을 찰싹 때렸다.

“호호. 애들 아빠가 요즘 옛날 드라마를 봐서 주책이네요.”

“그러시군요.”

종호는 등을 벅벅 긁으며 시하를 보았다.

그러더니 뒤에 있는 하나를 보고 말했다.

“너 진짜 예쁘다. 나 태어나서 이렇게 예쁜 애 처음 봐.”

“흥.”

“나중에 내 멋진 모습을 보여줄게.”

시하는 종호의 머리띠를 보았다.

“처치.”

그 말에 종호가 다시 시하를 경계했다.

나는 웃으며 다음 부스로 이끌었다.

이상하게 넷이서 다니게 됐지만 뭐 상관없겠지.

시하는 자신이 받은 도장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첫 부스에서 찍어준 도장은 강아지 캐릭터였다.

“멍멍.”

“그래. 멍멍이네. 멍멍.”

두 번째 부스는 강인어린이집이었다.

상자 안에 열 개의 공 중에 3개를 넣으면 되는 룰.

그러면 도장을 비롯해 스티커 선물을 준다.

시하가 자신의 그림을 알아보았는지 내 바지를 당겼다.

“형아.”

“응. 시하 그림이야. 스티커로 만들었어.”

“아아.”

시하가 반짝이는 눈으로 스티커 상품을 바라보았다.

주변에 있던 아이들도 다들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역시 펭귄몬스터!

그것이 애들의 수집욕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럼 여기 다들 서서 이 볼풀공을 던지는 거예요. 알았죠?”

이번에는 승준이 자신 있는 종목이었다.

“시하야. 우리가 한 거야.”

“아아.”

시하도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서 이런 놀이를 많이 해 본 것 같았다.

이러면 성적을 조금 기대해 봐도 되나?

“시하야. 파이팅.”

네 명이서 공을 던졌다.

도구를 쓰는 것과 다르게 시하의 제구는 엉망이었다.

팅!

공이 구멍에 들어가지 않고 튕겨 나갔다.

그런데 옆에 있는 박스에 그대로 골인되었다.

나는 그대로 시하를 들었다.

“시하야! 멋진 계산이었어!”

“아?”

시하가 ‘읭?’ 하는 모습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튼, 들어가면 되지 않나?

“이거 인정이지?”

나는 스텝인 2학년 과대를 보았다.

“아. 선배님. 이걸 인정하는 건 조큼.”

“아, 왜. 이게 더 어려운 거야.”

“원칙적으로는 안 되죠.”

“이렇게 멋진 슬라이드를 던졌는데도?”

“굳이 따지자면 직구였습니다만?”

나는 어쩔 수 없이 뒤로 한발 물러나야 했다.

옆에 있던 종호는 얄밉게 시하를 향해 웃음을 보였다.

톡. 톡. 톡.

하지만 백팀의 에이스가 있었으니.

바로 승준이었다.

그냥 던지기만 하면 그대로 공이 들어간다.

10개 중의 9개를 넣은 승준이 종호에게 손을 까딱였다.

“해 봐. 해 봐.”

아주 멋진 도발이었다.

종호가 다시 한번 공을 던졌다.

역시 운동신경이 제법 되는지 10개 중의 8개가 들어갔다.

진 게 억울한지 울상을 지었다.

“다음!”

아쉽게도 시하는 5개뿐이었다.

그래도 잘했다.

***

다섯 개의 부스를 다 돈 애들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예쁜 도장 5개가 찍혀 있었으니까.

종호와의 승부는 3 대 2로 승리했다.

하나는 여전히 종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 애의 마음을 외면했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종호 정도면 꽤 잘생기지 않았나?

“시하야. 저기서 이제 선물을 받으면 되겠다.”

다섯 개의 도장을 모은 우리는 선물을 받으러 갔다.

아주 작은 화분을 받았는데 이걸 어디에 써먹으면 좋을지 모르겠다.

시하는 마음에 드는지 열심히 품에 안고 있었다.

식물을 키워보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점심시간입니다. 점심이 끝나고 줄다리기를 하겠습니다.”

기다리던 점심시간.

다섯 개의 부스를 돌아다녔더니 배가 너무 고팠다.

오늘 싸 온 도시락은 김밥이었다.

이걸 새벽에 일어나서 싼다고 너무 졸렸다.

김밥을 사도 되었지만 나는 찰기가 있는 쫀득쫀득한 밥을 좋아해서 이렇게 싸 왔다.

“시혁 씨. 이제 애들이랑 같이 밥 먹어요. 저는 유부초밥을 싸 왔거든요.”

“아, 그러세요? 저는 김밥을 싸 왔어요.”

“같이 나눠 먹으면 되겠네요.”

우리는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꺼냈다.

그때 저 멀리서 후다닥 달려오는 사람이 보였다.

문도환이었다.

“헉헉. 안 늦었지?”

“오. 형. 이제 왔어? 형 주려고 도시락도 싸 왔어.”

“고맙다.”

점심시간에 딱 맞춰왔다.

늦어도 이때는 시간 내줄 수 있을 거 같았고, 점심때는 부모님과 행복하게 보내는 애들도 많았다.

나는 다 같이 둘러싸서 시하가 애들과 재밌는 추억만 가득하길 바랐다.

괜히 쓸쓸한 감정이 중간에 들지 않았으면 했다.

문도환이 김밥 하나를 집더니 그대로 입에 넣었다.

“오! 맛있는데?”

“그치? 시하야. 너도 먹어봐.”

“아아.”

시하가 김밥을 오물오물 먹었다.

“마시써!”

“천천히 먹어. 여기 요구르트도 있다.”

“아아.”

승준과 하나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나도 요구르트.”

“하나도.”

“그럴 줄 알고 미리 많이 가져왔지.”

내가 요구르트를 주자 둘 다 좋아했다.

문도환이 내 옆에 와서 속삭였다.

“시하는 어때?”

“응? 기분 좋은 거 같아.”

“그래?”

“응. 형 덕분이야.”

“난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지금부터 하면 되지. 어서 먹어. 형. 이제 전쟁이야.”

“무슨 소리야.”

“애들이 밥 다 먹으면 뭐 할 거 같아?”

“뭘 하는데?”

“당연히 돌아다니면서 놀지. 지금 같이 먹을 때 전투적으로 먹어야 한다고.”

“어? 그래?”

우리는 점심을 먹었다.

애들은 이미 밥으로 힘을 충전했는지 지치지도 않았다.

셋이서 자리에서 일어나 벌써부터 작당 모의를 하고 있었다.

“줄다리기가 먼지 알아.”

“하나도. 하나도.”

“아아.”

승준이 몸을 뒤로하면서 줄을 잡는 시늉을 했다.

“몸을 이케 이케 하는 거야.”

“하나도 할래.”

“아아. 시하도.”

승준의 등 뒤로 셋이 찰싹 붙었다.

일단 줄다리기하는 모습은 절대 아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애들을 불렀다.

“다들 여기 와봐.”

셋이 조르르 나에게 왔다.

“줄다리기를 시작하면 다들 드러눕는 거야. 이게 승리하는 법이거든.”

승준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백팀. 꼭 이기자. 파이팅!”

“파이팅!”

“파팅!”

“아아. 파티.”

시하야. 파티가 아니라 파이팅이야.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스텝이 나와서 호루라기를 불었다.

삐익-

“시작!”

성준, 하나, 시하가 시작하자마자 드러누웠다.

백팀의 애들도 그걸 보더니 줄을 잡고 드러누웠다.

청팀 역시도 따라서 앞사람이 먼저 누웠고 뒤에도 줄줄 드러누웠다.

줄을 잡은 채 단체로 드러누운 아이들.

승부가 나지 않았다.

스텝은 당황해서 어찌할 줄 몰라 했다.

나는 살며시 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난 제대로 전했어.

그런 생각을 하며 말이다.

“여러분~. 드러눕는 거 금지예요.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경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부모님들은 백팀과 청팀을 응원했다.

“백팀 이겨라!”

“청팀 이겨라!”

시하가 끙차끙차 줄을 당겼다.

승준과 하나도 힘을 내며 줄을 당겼다.

팽팽하게 싸우는 양상에 손에 땀이 났다.

이게 뭐라고 긴장되는지.

어느 순간 청팀으로 끌려가더니 그대로 애들이 줄을 놓았다.

삐빅.

“청팀이 이겼습니다.”

승준이 분한지 주먹을 꽉 쥐었고, 하나는 울먹였다.

이런. 마음이 아프다.

벌써부터 이런 경쟁에서 쓰라린 패배를 맛보다니.

나는 시하를 보았다.

“페에에에-”

시하는 슈퍼 황제펭귄 쓰리로 변신 중이었다.

시하야. 이미 끝났어…….

아무튼, 귀여웠다.

***

시하의 슈퍼 황제펭귄 쓰리는 박 터뜨리기에서 활약을 했다.

승준도 공으로 하는 것에는 자신이 있는지 비장한 표정이었다.

옆에 있던 청팀에 종호가 말했다.

“우리가 이겼나?”

나는 살며시 웃었다.

그건 하면 안 되는 말이라고.

애가 아직 뭘 모르네.

승준이 그 말에 고개를 돌리며 공을 조몰락거렸다.

스텝이 말했다.

“여기 공을 던지면 안에 사탕이 나와요. 다들 사탕을 먹고 싶으면 이걸 터뜨리세요! 그럼 시작!”

삐빅.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자 애들이 박을 향해 공을 던졌다.

툭. 툭. 툭.

박이 흔들거리며 열릴 듯 말 듯 했다.

나와 문도환은 목이 터지도록 시하를 응원했다.

“시하야. 파이팅!”

“시하야. 파이팅!”

시하는 공을 던지다 말고 박의 봉을 잡은 사람에게 갔다.

바지를 잡아당기며 말을 걸었다.

“아아.”

“응? 아기야. 공을 던지는 거야.”

“아아. 이거.”

시하가 아직 뜯지 않았던 젤리 봉지를 꺼냈다.

스텝이 그런 시하가 귀여워 그 젤리를 받았다.

그때 봉이 살짝 기울어졌고, 박이 좀 더 아래로 내려왔다.

톡. 톡. 톡. 톡. 팡!

박이 터지면서 사탕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아이들이 바닥에 있는 사탕들을 줍기 시작했다.

사탕은 언제나 옳다.

시하도 임무를 마치고 왔는지 사탕을 두 손 가득, 주머니 가득 넣어서 우리에게 왔다.

“형아. 문도.”

시하가 우리에게 사탕을 주었다.

우리까지 챙기다니.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시하야. 저 스텝 누나에게는 젤리는 왜 줬어?”

“엄마.”

“응? 엄마?”

시하가 손을 앞뒤로 뒤집으며 무언가를 표현했다.

“바자바자.”

“으음.”

무슨 말일까?

유추해 보면 반짝반짝?

“여기.”

시하가 주머니를 가리켰다.

그리고 다시 손바닥을 빨리 뒤집었다.

마치 무언가 길을 따라 그리며 스텝을 가리켰다.

“바자바자. 아아.”

“으음. 반짝반짝 젤리?”

“아아.”

아무리 해석해도 모르겠다.

반짝반짝 젤리가 무슨 말이지?

“반짝이가 젤리를 주라고 했던 것도 아니고. 뭐 됐나?”

“아아.”

끄덕끄덕.

시하의 끄덕임에 나는 그저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달리기 남았지?”

“아아.”

“시하는 출전 안 하니까 이제 다른 애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아아.”

“백팀 파이팅! 하는 거야.”

“아아.”

그날. 체육대회 결과는 백팀의 승리로 돌아갔다.

***

-승준과 하나의 집.

승준이 오늘 있었던 일을 교수인 아빠에게 조잘조잘 말했다.

“하나가 예쁘다고 말했어!”

“오. 그래?”

쌍둥이의 아빠는 머릿속에서 이미 그 아이를 혼내고 있었다.

‘감히 어딜 내 딸을!’

하나가 말했다.

“하나는 시러해써.”

“오. 그래? 하나야. 잘했어.”

아빠는 하나의 철벽 수비에 기뻤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우리 딸은 철벽을 치는구나 싶었다.

그때 하나가 폭탄을 터뜨렸다.

“하나는 시혀기 오빠가 좋아.”

아빠의 얼굴에 쩌적 금이 갔다.

“시혀기 오빠는 어떤 새…. 아니, 어떤 오빠니?”

“시하 형아.”

아빠는 아내를 불렀다.

“여보! 시혀기 오빠가 누구야!”

한편, 시혁은 귀가 간지러워 귀를 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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