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500)

23화

-3일 전. KI 미디어.

이시혁의 놀라운 번역 실력으로 인해 새로운 대책이 마련되었다.

중국 진출.

사장은 이 부분에 대해 검토했다.

“힘들겠는데. 우리 출판사는 미국 출판사와 거래를 몇 번 했지만, 중국 쪽에는 기반이 없어.”

“이번에 거래해 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홍진수 과장은 파이팅이 넘쳤다.

뭐든지 도전하려는 의지가 보였다.

사장이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기반을 잡은 지 좀 되긴 했지.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이미 중국 웹소설 시장은 우리와 크기가 다르니까. 우리나라 연기대상처럼 시상식도 있는 모양이야.”

“택수 선생님 작품이면 통합니다. 서왕모나 대라신선 같은 신선들도 다수 나오니까요. 아시지 않습니까. 중국에서 선협물이 먹히는걸요. 아직도 쓰이고 있고.”

“그렇긴 하지. 문제는 세일즈 포인트가 아니야. 출판사 간에 이득 문제지. 거기서 하나 받아주면 우리도 하나 받아줘야 해.”

“그건 그렇죠.”

사장은 머리를 긁적였다.

“조심히 접근할 필요가 있어. 들어보니까 괜히 물먹은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야.”

“흠. 그러면 일단 영어판으로 먼저 출판해 보시죠. 둘 다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둘 다 해 보자?”

“네. 세계에 책이 팔리면 선생님도 좋고 저희도 좋으니까요.”

“흐음. 일단 영어권이란 말이지?”

“번역한 책도 많지 않습니까. 하나 정도는 그쪽 출판사에서 받아줄 겁니다. 아니면…….”

여러 플랫폼과 대응 방안을 논의하자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일단 그렇게 하는 방향으로 하고. 그럼 번역은 시혁 씨가 맡아줄 건가?”

“그게…….”

홍진수 과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택수 선생님에게 말은 했는데 데리고 와 보라고 하더라고요.”

“응? 애를 데리고 와서 뭐 하게?”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자기 책을 번역하는 것도 있고 애를 키운다는 소식도 들어서…….”

번역을 계약할 때는 원작자의 사인과 번역자의 사인이 들어가야 한다.

그걸 알기에 조금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기도 했다.

사장이 말했다.

“억지로 끌고 오라는 건 아니지?”

“그건 아니죠. 그냥 얼굴 한번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 그럼 일단 시혁 씨에게 의견 물어봐.”

“알겠습니다. 그리고 번역과 윤문료는 권당으로 하고 싶은데요.”

“얼마로 하게?”

“매절로 따지면 대략 한 권에 650매니까. 단가 3,500원이라고 쳐도 2,275,000원이죠.”

“흠. 그래서 얼마로 잡고 싶은데?”

“딱 250만 원?”

“하긴 딱 떨어지게 글자 수를 적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하면 될 것 같기도 하네. 한 권에 두 달이라고 잡아도…….”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모로 이시혁을 좋게 봐서 가능한 결정이었다.

아직 번역 경력이 한 작품인 이시혁에 매절당 3,500원의 기준을 잡은 것도 엄청난 일인 것이다.

***

-현재.

나는 홍진수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시혁 씨. 오랜만입니다.」

“그렇네요.”

「잠시 통화할 시간 되십니까?」

“네. 충분해요. 무슨 일이시죠?”

「이번에 부탁한 무협 말입니다.」

“택수 선생님 무협이요?”

「택수 선생님이 시혁 씨랑 시하를 보고 싶어 하더라고요. 시간 되면 딸기 따러 오라면서. 지금 3월이라 딱 딸기 체험하기 좋거든요. 애들도 많이 오고요.」

농사한다고 들었지만, 거기에 딸기 농사도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오늘 토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결국, 자식의 교육을 위해 좋은 환경을 제공해 줘야 하는 것이 부모였다.

맹모삼천지교도 이런 의미에서 나온 말일까?

시하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비록 어릴 때 기억이 희미해지더라도 좋은 심성은 결국 얼굴에 드러나는 법이니까.

“알겠습니다. 아! 혹시 택수 선생님이 허락한다면 다른 어린이도 데려가도 될까요? 어린이집 친구들이랑 가면 좋을 것 같은데요.”

「오! 그건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저도 어린이집에 한번 물어볼게요. 제가 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라서요.”

「네. 알겠습니다. 시간은 택수 선생님이 언제든지 와도 된다고 하시네요. 밤만 아니면요.」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통화를 끝내자 주변에 있던 팀원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서수현이 말했다.

“오빠. 딸기 농장 체험 가세요?”

“안 돼.”

“아직 아무 말도 안 했거든요?”

“따라올 생각이면 접는 게 좋지 않을까?”

“너무해. 알았어요. 그럼 승리 기념 회식해요. 회식.”

다들 거기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점심 먹으러 가자. 저녁은 시하랑 있어야 하니까 안 돼.”

“오빠가 있으니까 참 건전한 회식이 되네요.”

“싫으면 나 빠질까?”

“에이. 안 그래도 왕따에 관해서 토론했는데 저희가 그럴 수 없죠.”

“대신 오늘은 내가 쏠게. 점심 정도야. 뭐.”

서수현이 귀신같이 태도를 바꿨다.

“제가 오빠 1학년 때부터 존경한 거 알죠?”

“너는 비용 따로 내라.”

“못됐어!”

이상하게 서수현이 편해서 그런지 놀리게 된다.

하긴 여기서 친한 사람이 서수현밖에 없어서 그런 거겠지만.

그건 좀 슬프다.

아니, 내게는 시하가 있다.

시하 보고 싶다.

빨리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

한편 그런 형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하는 두 아이와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승준이 심각한 표정으로 하나와 시하를 번갈아 보았다.

“우리 이모가 자주 와.”

“아아.”

“마자. 오빠.”

승준이 하나와 시선을 맞췄다.

아주 심각한 분위기를 잡으며 손가락으로 하나를 가리켰다.

“너는 두 번째 이름이 있어!”

그 소리에 선생님도 다른 아이를 보면서 귀를 기울였다.

두 번째 이름이라니.

대체 어떤 이름을 말하는 걸까?

앞뒤의 말을 들어볼 때 이모가 지어준 이름인 걸까?

그런 의문에 사로잡힌 선생님이었다.

하나가 말했다.

“먼데?”

아주 순수하고 깜찍한 목소리였다.

“지지배! 지지배야. 지지배.”

“우와! 마자! 이모가 내가 흘릴 때 자주 말해!”

“아아.”

선생님의 귓가에는 하나 이모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음료를 흘리는 하나.

그걸 본 이모의 외침.

-야이 지지배야!

승준이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도 두 번째 이름이 있어.”

“먼데?”

“아아?”

선생님도 이번에는 하나의 이모님이 어떤 말을 했을지 궁금했다.

“문디자슥!”

“맞다! 오빠가 잘모해슬 때 나오는 이름!”

“아아.”

“풋!”

선생님은 그 말에 웃음이 튀어나왔다.

이모님이 아무래도 경상도 사람인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저렇게 심각하게 이야기할 줄 몰라서 자꾸만 웃음이 피식피식 흘러나왔다.

승준이 말했다.

“그럼 이제 시하도 두 번째 이름이 있어야 해.”

“마자. 마자.”

“아아?”

승준과 하나가 시하의 두 번째 이름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시하는 그저 눈을 깜빡이며 황제펭귄을 떠올렸다.

자신의 손을 가슴에 얹고.

“페페.”

두둥.

승준과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페페? 페페가 모야?”

“페페페?”

시하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페페에에에에-”

자신이 변신할 수 있을 거라는 굳은 믿음.

그 믿음이 기적을 불러일으켜야 하지만 시하의 몸에는 변화가 없었다.

“페에에에!! 페페!”

승준과 하나가 깨달았다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펭귄몬스터!”

“자 이제 시작이야~”

남매가 얼싸안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다가 모두를 주목시켰다.

“자! 그럼 오늘은 펭귄몬스터 노래를 불러볼까요?”

선생님이 피아노 앞에 앉더니 멋지게 펭귄몬스터 OST를 쳤다.

아이들은 병아리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시하 역시도 노래를 따라 불렀다.

“페페!”

여전히 의미를 알 수 없는 페페만 찾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누군가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시하는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보았다.

“형아!”

“시하야~”

시혁이 시하를 안았다.

승준과 하나가 시혁을 보자 달려들었다.

“시혀기 형아. 나도!”

“하나도. 하나도.”

“어? 다 못 안는데?”

못 말리는 남매의 재촉에 시혁은 하는 수 없이 세 아이를 품에 안고 들었다.

“으샷!”

승준이 기분 좋게 날뛰었다.

“으하하하!”

“하나도 재미써!”

시하만이 가운데 껴서 조그만 소리로 중얼거렸다.

“형아. 내꼬…….”

시무룩.

시하는 두 아이에게 질투했다.

***

나는 원장 선생님께 딸기 농장 체험을 갈 수 있는지 물어봤다.

여기 오는 길에 택수 선생님의 허락을 구한 참이었다.

원장 선생님과 학부모님들만 허락하신다면 아마 가게 될 것이다.

“오늘 아이들 가정통신문을 넣어야겠네요. 서류 작업도 해야 하고요.”

“아…. 혹시 제가 괜한 일거리를 가져온 건가요?”

“아니요. 이건 애들에게도 좋은 교육이 돼요. 공짜로 체험할 수 있는 딸기 농장이라니. 애들이 정말 좋아할 거예요.”

“그렇죠?”

“네. 아무래도 여기서 배우고 뛰어노는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해야 하니까요.”

역시 원장 선생님은 좋으신 분이다.

어쩌면 굉장히 귀찮은 일이 될 수 있었다.

아니, 힘든 일이지.

비록 애들이 7명이라고 해도 밖에 나가는 건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일단 저도 따라가긴 할 텐데요. 혹시 사람이 더 필요하시면 봉사로 대학생들 데리고 갈 수 있어요.”

“그래 주면 저희야 고맙죠. 보는 눈이 많아지니까 더 편하기도 할 테고.”

“봉사 시간은 보장해 주나요?”

“네. 당연하죠.”

“그래요?”

나는 서수현과 애들을 떠올렸다.

어차피 봉사해야 하는데 잘됐다 싶었다.

“가도 금요일에 갈 생각인데 시혁 씨는 시간이 되시나요? 그… 택수 선생님이라는 분은 시혁 씨를 찾는 것 같은데…….”

“아, 저요? 당연히 되죠. 다른 친구들은 모르겠는데 아마 될 겁니다.”

보통 3학년쯤 되면 다들 금요일 수업을 제외하고 듣는 법이다.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금, 토, 일.

이 3일에 학교를 안 올 수만 있다면 다들 그렇게 시간표를 짜지 않을까?

참고로 전공 필수는 금요일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거로 하죠. 아마 다른 부모님들도 좋아할 거예요. 작년에 고구마 캐러 갔는데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요?”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다.

안 되면 시하랑만 가는 거지. 뭐.

그저 나는 시하가 좋은 추억을 만들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안녕히 가세요.”

나를 기다리고 있는 시하를 불렀다.

“시하야~”

“아아. 형아.”

도도도 달려와 내 다리에 철썩 붙었다.

“가자.”

“아아.”

나는 시하를 다리에 태우고 걸었다.

무거웠지만 시하가 즐거워한다면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시하야. 손 씻어야지.”

“아아.”

시하의 손도 깨끗이 씻자 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오늘은 또 뭘 하려고 그러는 건지 궁금했다.

“오늘도 그림 그리게?”

“아아.”

시하가 태블릿의 펜을 쥐고 슥삭스삭 색칠하기 시작했다.

액정에 그려진 그림은 전에 봤던 황제펭귄이었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시하의 그림 느낌이 나게 동글동글한 모양새였다.

뭐라고 할까?

안 그래도 귀여운 황제펭귄이 더 통통하고 귀여워졌다고 할까?

“오늘은 색칠하는 거야?”

“아아.”

시하가 열심히 그리는 것을 쳐다보았다.

‘이걸 팬아트라고 했나?’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팬아트나 그림을 올리는 SNS도 있었는데. 이름이 뭐더라? 아! 픽시브.’

나는 시하의 그림을 보았다.

시하 영상을 올리는 건 거부감이 있었지만 그림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시하야. 완성되면 팬아트로 올려보지 않을래? 인터넷에.”

“아아.”

“알아듣는 거야? 막 그림이 엄청 많은 데에 올리는 거야.”

“페페?”

“아마 황제펭귄도 많이 있을걸?”

인기 있는 캐릭터라면 많이 있겠지.

“아아.”

“하트 많이 받을지도 모르겠네?”

나는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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