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백동환이 방에 들어가더니, 손에 휴대용 선풍기를 들고 왔다.
“시하야. 슈퍼 황제펭귄으로 변하고 싶지 않아?”
“아?”
“오늘 옷도 펭귄 옷이고 딱이네.”
“아아.”
“이렇게 페에에에에에. 하면 돼.”
시하가 그 말에 발을 어깨너비로 벌렸다.
왠지 모르지만, 엉덩이에 힘을 주고 입을 벌려 기합을 넣기 시작했다.
“페페에에에-”
백동환이 호들갑을 떨었고, 다른 이웃은 폰을 들고 시하를 찍고 있었다.
진짜 변신 가능한 거지?
“좀 더 힘을 내. 시하야.”
“페에에에-”
그때 백동환이 선풍기를 작동시키며 시하의 머리를 날리게 했다.
“오오. 반응이 오고 있어!”
시하도 머리카락이 위로 뜨는 것을 느꼈는지 더욱 힘을 내고 있었다.
“페에에에!”
두둥!
시하가 허리를 쭈욱 펴며 변신을 마쳤다.
백동환이 선풍기를 강풍으로 틀었다.
시하의 머리가 휙휙 날린다.
왠지 고마웠다.
이번 이웃 환영회에 이렇게까지 준비해줄 줄 몰랐다.
그냥 웃고 떠들고 그럴 줄 알았는데 이 사람들은 시하도 생각해서 준비했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다.
“형아. 페페.”
시하가 다 변신했는지 내 다리에 철썩 붙었다.
슈퍼 시하 쓰리가 되어도 내게는 그저 귀여운 동생일 뿐이다.
“하하. 어때 강해진 것 같지?”
“아아.”
시하가 내 앞으로 나오더니.
“형아. 디켜.”
“응? 아직도 나를 악당으로 보는 거야?”
“아아.”
백동환이 친절하게 여기에 맞춰준다.
“그걸로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오?!”
나는 감탄을 내뱉었다.
아까 펭귄몬스터에 나오는 상대 적의 목소리랑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진짜 성우를 준비하기는 하는구나?’
시하도 그 목소리에 놀랐는지 백동환을 빤히 바라보다가 앞으로 걸어 나갔다.
콩.
시하의 주먹이 다리에 닿았다.
백동환이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크으. 강하구나…….”
“형아!”
“그래. 형아 지켜줘서 고마워. 저렇게 큰 사람도 쓰러뜨리고. 대단하네!”
“형아!”
“응응. 우리 시하. 엄청 세졌어. 슈퍼 시하 쓰리야.”
“아아.”
그때 이웃의 소리가 들렸다.
“다 됐다! 편집 끝났어요.”
“편집이요?”
백동환이 씨익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즘 앱이 잘 나오거든요.”
나는 시하랑 같이 이웃이 보내준 영상을 봤다.
시하의 몸에 번개가 파직파직 튀어나온다.
그러더니 머리가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가발 같은 금발이 나타났다.
시하가 그 모습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아! 페페.”
“그래. 시하도 슈퍼 황제펭귄 쓰리가 되었네.”
앙증맞은 펭귄 옷과 영상이 너무 절묘해서 웃음이 나왔다.
나는 두 사람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오늘 진짜 고마워요. 이런 것까지 시하를 위해 준비해 주시고.”
세 사람이 쑥스러워했다.
“저희도 아이 좋아해서 그런 거죠.”
“그냥 친하게 인사하며 지내요. 하하.”
“저희도 은근히 즐겨서 재밌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이웃들과 인연을 맺었다.
***
월요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하를 어린이집으로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다.
따스한 햇볕이 비치고, 대학생들의 생기 넘치는 인파를 느끼며 강의실로 들어갔다.
바글거리는 모습이 오늘의 싸움을 준비하라는 병사들 같았다.
첫 교시, 첫 토론.
굉장히 준비를 많이 하지는 않았겠지만, 성적이 걸린 만큼 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다음 학기에 추천 장학생에 든다고 가정한다면 일정 성적 유지는 꼭 들어가 있는 항목이니까.
‘그러면 곤란하지.’
비싼 등록금이 걸려있는 만큼 지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설사 지더라도 잘 싸우는 정도로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오빠. 긴장했어요?”
서수현이 내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전혀. 준비는 끝났고, 이제 서로 얼마나 설득을 할 수 있느냐의 싸움이지.”
“걱정 마요. 우리 토론에서 빨리 이겨버리고 맘 편히 딴 공부에 신경 쓰죠.”
“긍정적이네. 방심하지 마. 상대는 네가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제가 방심한다기보다는 오빠에게 시선이 뜨거운데요?”
“그러게. 곤란하네.”
그때 김호섭 교수가 들어왔다.
살며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미소를 띄웠다.
“다들 이번 토론이 기대되는 표정이네요. 저도 많이 기대됩니다.”
서로 마주 보는 자리가 세팅되었다.
앞으로 나간 사람은 서수현과 나.
상대 팀에서는 내 동기와 친하지 않은 후배가 있었다.
먼저 김호섭 교수가 명확하게 주제를 말했다.
“왕따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부터 20분 토론 시작합시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상대팀이었다.
“현재 왕따의 이유는 별거 없습니다. 못생겨서, 그냥 맘에 안 들어서,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거나 너무 앞으로 나서거나 등등 말이죠.”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런 게 왕따의 이유가 된다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원인이 아닐까.
하지만 때로는 이런 이유가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저희는 이런 해결을 위해 실제로 학교폭력 예방센터에 연락해 봤습니다. 국번 없이 117에 말이죠.”
앞에 있는 동기가 아주 자신감 있게 얘기했다.
“아주 친절한 상담원이 말하길 조폭과 연관만 없다면 100% 해결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학교와는 별개로 경찰 신고기 때문에 법적으로 해결 가능합니다. 저희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미리 교육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모인 자신을 믿고 신고를 하자고요.”
그때 앞에 있는 서수현이 반론을 펼쳤다.
“경찰이 온다고 해서 아이들이 겁을 먹을까요?”
“경찰이 오면 당연히 피부로 실감해서 막을 수 있습니다. 가해자 부모가 뻔뻔하게 나오는 경우도 많은데 경찰이 오면 상황이 훨씬 달라지죠.”
“그렇다면 아이가 진술서도 감내해야 하는 데 그걸 견디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러기 위해 부모가 있습니다. 따뜻하게 보듬어주면서 나아가야 하는 거죠.”
반론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서수현이 나를 보았다.
나는 손을 들었다.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117. 확실히 방법 중에 하납니다. 하지만 의문이 드는군요. 전 그 100%라는 수치가 과연 믿을 만한지 반론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기록이 있습니다.”
“네. 있겠죠. 당연하죠. 그러면 우리 현실을 들어가 볼까요?”
여기서부터 현실로 맞을 차례다.
“저희도 117을 조사했습니다. 실제로 신고를 한 아이도 있었고요. 그 아이를 보호해야 할 경찰이 큰 잘못을 저질렀더라고요.”
“뭐가 잘못이라는 거죠?”
“학교 측에 연락했다는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모르십니까? 경찰 규정에는 신고받으면 학교 측으로 연락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피해자 입장이 되어보세요. 학교에서 알기 바라겠습니까. 연락을 미뤄 달라고 하거나 하지 말아 달라고 하는데 경찰이 연락했답니다. 그럼 어떻게 될지 예상이 가시죠?”
하나, 학교 측에서는 바로 피해자 학생을 불러 진술서를 작성하게 한 점.
둘, 담임도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아 배신감을 느끼게 해 도와줄 마음이 사라지게 한 점.
셋, 규정이라는 이유로 경찰의 안일한 행동에 부모와 학생의 심적 부담감을 크게 한 것.
“과연 이것이 100%에 잘 대처했다고 볼 수 있습니까?”
오히려 상황은 나빠지고 시선은 더 악화됐다.
다른 반으로 옮기는 것으로 일단락 난 사건이지만 과연 이게 해결책인지 모르겠다.
동기는 내 말에 말문이 턱하고 막혔는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보조하고 있던 애가 말했다.
“저희는 다른 방법도 준비했습니다. 학교폭력 전담 변호사를 고용하는 겁니다. 형사, 민사 소송을 통해 징역과 벌금으로 처벌 가능합니다.”
불리해질 것 같으니 다른 방향으로 해결책을 돌렸다.
서수현이 말했다.
“변호사 비용은 어떻게 감당하실 겁니까?”
“승소 시 모두 가해자에게 청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손을 들었다.
“그 재판하는 와중에 기간은요? 가해자는 학교에서 계속 다닌답니까? 그 모습을 보는 피해자의 심정은 생각해 보셨나요?”
여자 후배가 말을 돌렸다.
“그렇다면 여러분에는 어떤 해결책이 있습니까?”
우리의 해결책을 물어보는 것으로 답했다.
나는 앞의 애가 침착하게 잘한다고 느꼈다.
“저희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해결책을 제시하겠습니다. 전학 가거나 휴학을 할 겁니다.”
동기가 잘 걸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건 실질적으로 해결책이 되지 않습니다. 도망자의 선택이 아닌가요?”
단어 선택이 영 별로네.
이럴 때는 조심하게 선택해야 하는데.
“도망치는 게 어때서요? 혹시 누군가에게 맞아보셨나요? 안 맞아보시더라도 트라우마에 대해서 잘 알 겁니다. 그 사물, 그 장소, 그 시각. 그런 것들을 보면 떠오르죠. 왕따 피해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로서 아이들 교육 환경을 생각하는 게 뭐가 이상하죠?”
나는 또 한가지 예를 들었다.
“실제로 휴학을 시키고 해외 봉사 캠프를 보낸 사람도 있습니다. 확실히 아이는 전처럼 밝아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학교도 잘 다녔다고 하더군요.”
‘법’이라는 것에 초점을 돌리면 다른 점이 보인다.
우리는 그곳을 신경 썼다.
그 아이에게 어떤 치유와 해결법이 있는지.
때로는 도망치는 것도 승리의 방법이 된다.
“전쟁에서 후퇴하는 것이 패배가 아니듯 그 아이에게 다른 넓은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더 큰 성장의 한 걸음이 아닐까 합니다. 안 그래도 힘든데 그것을 이겨내라, 이겨내라, 함께 싸우자. 이런 말이 오히려 그 아이를 정신적으로 몰아넣는 후회의 선택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상입니다.”
20분.
모든 토론이 끝이 났다.
평가는 여기 들었던 학생들의 투표.
과연 이 승부에서 누가 이겼는지가 판가름 난다.
그리고 팀 평가의 자세한 내용은 교수님이 기록해서 점수를 매긴다.
김호섭이 말했다.
“그럼 누가 이겼는지 손을 들어보겠습니다. 이시혁 팀이 이겼다고 생각하는 학생들.”
대다수가 손을 들었다.
김호섭이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가 나왔네요. 먼저 다들 준비를 잘했습니다. 박수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짝짝짝.
박수가 그치고 교수님이 이런 점은 아쉬웠고 너무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친 것 같아서 아쉬웠다는 평이 이어졌다.
좋았던 점과 자료를 응용한 점에서는 크게 칭찬하셨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오빠! 대박! 완전 대박!”
“시혁이형 . 진짜 좋았어요.”
“이거 우리가 자료 조사한 내용으로 이긴 거 맞아요?”
다들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저 웃었다.
아마 더 잘 싸우는 사람이 있었다면 나도 깨갱 했을지도 모른다.
“다 모르겠고. 시하 보고 싶다.”
서수현이 말했다.
“오빠는 시하뿐이라니까. 그런데 실제로 왕따 당하면 패 죽이는 거 말고 전학 보낼 거예요?”
“전학이야 보내야겠지. 나는 방관자도 또 다른 폭력이라고 보거든. 그 아이들이 무서워서 방관한 걸 테지만. 피해자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리고요?”
“사실 토론에서 말은 안 했는데…….”
서수현이 궁금하다는 듯이 눈을 빛냈다.
“나라면 목소리 녹음한 걸 가지고 장난치겠지. 주동자 목소리를 변조해서 방송하는 거야. 뒷담화하는 것처럼. 가해자 그룹은 오해로 점철돼서 분열되겠지. 그러면 가해자 측에서 또 다른 왕따가 생기지 않겠어? 증거도 안 남고.”
서수현이 소름 돋는다는 듯이 팔을 쓰다듬었다.
“오빠. 패 죽이는 것보다 더 무서운데요? 여론전이라니.”
“내가 생각해낸 방법은 아니야. 나도 배웠어.”
“누구에게요?”
“글쎄? 뭐 하시는 분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버지가 통역사 시절에 만난 친구라던데?”
“혹시 CIA나 그런 거 아니에요?”
“글쎄?”
그렇게 우리는 실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승리를 만끽했다.
웅웅.
“오빠. 전화 와요.”
“응?”
나는 폰을 꺼냈다.
[홍진수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