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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20/500)

20화

애기가 말해서 그런지 동기는 별말 안 하고 떠났다.

서수현이 옆에서 입을 가리고 어깨를 들썩였다.

“풋. 아, 오빠 동생 진짜 최고예요.”

서수현이 시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네가 시하지? 안녕?”

“아아.”

“나는 수현이 누나야. 여기 있는 시하의 형아 후배지. 자 따라 해봐. 누나. 누나.”

“아아.”

“아, 진짜 귀여워. 어떡해.”

나는 시하를 꼬옥 안았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들어가야지.”

“네에~ 시하야. 도와줘서 고마워. 어떻게 시혁이 오빠보다 더 든든하지?”

“그렇게 말해봤자 시하는 줄 수 없어. 나이 차이가 몇인데…….”

“헐? 오빠. 나도 양심이 있어. 설마 그런 생각을 하겠어요?”

“가능성이 제로가 아닌 이상 경계하는 건 당연하지.”

“웃겨.”

서수현이 코웃음을 쳤다.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손을 뻗자 나는 빙그르르 돌아서 그 손을 피했다.

“정말 이러기에요?”

“안 돼. 손 씻고 와서 만져.”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네요. 가드 정말 단단하네.”

“당연하지. 우리 시하가 그렇게 쉬운 남자가 아니야. 그치 시하야?”

“아아.”

시하가 손을 척 하고 들었다.

응. 못 알아들은 것 같다.

귀여우니까 됐지. 뭐.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해결됐으면 들어가자.”

“그냥 귀찮게 하는 선배였을 뿐이에요. 아, 오빠랑 같은 학번이죠?”

“어. 그런데 이름을 모르겠네.”

“네? 저 선배는 오빠 이름을 알걸요?”

“왜지?”

“오빠가 과탑이었잖아요. 기억 못 하는 게 이상하죠.”

“음. 됐어. 관심도 안 가.”

우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스터디룸으로 들어갔다.

팀원들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우리를 반겼다.

정확히는 시하를 반겼다.

“와, 너무 귀여워!”

“볼 한번 만져보고 싶다.”

“안녕~”

“아아.”

시하가 손을 척 하고 들자 다들 자지러지게 좋아했다.

역시 다들 시하의 매력을 한눈에 알아보는구나.

앞으로 친하게 지내기로 했다.

“그럼, 시하야. 그림 열심히 그리고 있어. 형아는 저기 형아, 누나들이랑 열심히 공부 좀 할게.”

“아아.”

나는 시하의 신발을 벗기고 책상 위로 올렸다.

태블릿 거치대를 설치해 주고 시하의 손에 펜을 쥐여줬다.

“자, 그럼 회의 시작할까?”

“저기 시혁 선배. 시하가 너무 귀여워서 집중이 안 돼요.”

“괜찮아. 막상 시작하면 집중할 테니까.”

회의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받은 주제는 왕따 문제의 해결이었다.

다른 팀이 어떻게 준비할지는 모르겠지만 먼저 여기서 명확하게 준비해야 하는 건 방향성이었다.

“알다시피 왕따라는 문제는 굉장히 광범위해. 은따라는 말도 있고 말이지. 굉장히 지능적이게 발전하는 것도 사실이야. 지성인이 다닌다는 대학이란 곳에서도 존재하니까.”

그때 서수현이 말했다.

“오빠는 만약 시하가 왕따 당하거나 폭행당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시하가?”

나는 상상이 되어서 곧바로 뇌를 거치지 않고 답이 튀어나왔다.

“당연히 주동자를 패 죽…. 크흠.”

옆에 시하가 있다는 것을 의식해 뒷말은 하지 않았다.

다들 그 말에 놀란 모양이다.

“오빠 은근히 과격한 모습이 있네요. 시하랑 관련되면 표정도 다양해지는 것 같고.”

“크흠. 어쨌든, 상대 팀에서 어떤 해결책을 가지고 나올지 모르지만 대충 어떤 자료를 들고 올지 예상할 수 있어.”

“네? 그건 어떻게 알아요?”

“당장 다음 주에 하는 대결인 거잖아. 첫 순서니까. 그러면 자료조사는 기껏 해봤자 왕따에 대한 비율 정도겠지. 아니면 법리적 해석을 들고 올 수도 있고.”

“법이 바뀌어야 한다?”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꼭 그런 건 아니야.”

“그럼 저희의 해결책은요?”

“가장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쪽으로. 그리고 반박할 자료들을 모으는 거로. 마지막으로 이성적인 논리로 나왔을 때 감성적으로 대응하는 거지.”

회의는 굉장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치려고 하면 다른 쪽으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내 역할이었다.

의견을 내지 않고, 종합하게 만들며 잘 유도하는 역할.

때로는 자문도 해 주는 팀장으로 위치를 공고히 지켰다.

대충 어떤 방향으로 조사하고 대응을 할지 정해진 뒤에 우리는 회의를 끝낼 수 있었다.

“우리 시하. 오늘도 열심히 그렸어?”

“아아.”

요즘 펭귄 캐릭터를 그리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진행은 느려도 조금씩 색을 칠하고 있는 것도 같았다.

봐도 난 잘 모르겠지만.

저 많은 레이어가 시간의 흔적이라는 것은 안다.

그림 그리는 시간보다 색을 칠하는 것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시하야. 그럼 이제 저녁 먹으러 갈까?”

“아아.”

그때 뒤에서 서수현이 시하의 그림을 바라봤다.

“와! 진짜 잘 그렸다! 이걸 시하가 그렸다고요?! 천재네~”

“그림은 아니고. 색칠 공부지.”

“아, 그림은 아니에요?”

“요즘 무료로 선화를 배포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하하.”

“선화가 뭐예요?”

“저렇게 선으로 그려진 그림.”

“딱 색칠 공부네요! 우리 때랑 다르다. 우리는 스케치북에 그려진 거 크레파스로 색칠했는데. 시하는 포토샵을 쓰네요?”

“그렇지. 똑똑해서 색도 자기가 골라서 칠해.”

“아하.”

나는 살며시 저장을 누르고 태블릿을 껐다.

“형아.”

“응. 그래. 밥 먹으러 가야지.”

다들 밥 먹는다는 말에 좋아했다.

역시 회의가 조금 힘들었나 보다.

머리를 많이 쓰기도 했고.

“시하야. 뭐 먹고 싶어?”

“아아.”

“응. 응. 그래. 우리 설렁탕 먹으러 갈까? 설렁탕.”

옆에 있던 서수현이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들어요?”

“알아듣기는 뭘 알아들어? 당연히 시하가 안 먹어본 거 먹으러 가야지.”

“아, 뭐예요.”

뭐가 이상한 거지?

당연한 건데.

***

목요일. 강인어린이집.

시하는 오늘도 열심히 형아를 배웅했다.

“형아. 갈게.”

“아아! 형아!”

“진짜 간다?”

“아아.”

“진짜. 진짜. 간다?”

“아아.”

보다 못한 선생님이 말했다.

“형아분. 어서 가세요. 10cm 가고 뒤돌아 말하지 마시고.”

“하하. 시하의 저 눈빛이 자꾸 붙잡아서…….”

선생님이 시하의 얼굴을 보았다.

빤-

시하도 선생님의 얼굴을 보았다.

빤-

서로 눈싸움을 하다가 선생님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평소랑 같으니까 가셔도 될 것 같아요. 시하는 여기서 잘 논답니다?”

“선생님이 아직 시하의 표정 변화에 대한 논문을 안 읽으셔서…….”

“네네. 나중에 읽어볼 테니까 어서 가세요. 강의 시간 다 됐잖아요.”

“네. 그럼 시하야. 오늘은 조금 늦은 4시에 올 거야. 그때까지 잘 있어야 해.”

“아아.”

시하는 네 시가 뭔지 이제는 안다.

‘4’의 모양이 뭔지 아니까.

그걸 보면서 형아를 기다리면 된다.

“형아. 바바.”

“응. 빠빠이.”

그렇게 형아를 떠나 보낸 시하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어머. 시하야. 표정이 조금 변했네?”

“아아.”

“형아가 가서 그런 거야?”

“아아.”

끄덕끄덕.

“장하네. 우리 시하. 형아. 금방 올 거야. 저기 승준이랑 놀고 있자.”

선생님이 승준을 가리키자 시하가 고개를 돌렸다.

빼꼼 얼굴을 내민 승준이 튀어나왔다.

“시하야! 오늘 내가 엄청난 거 갖고 와써!”

“아아.”

“짜잔!”

승준이 등 뒤에 꺼낸 것은 공이었다.

저번 축구공과 다른 조그마한 농구공.

마치 탱탱볼처럼 통통 잘 튕기는 공이었다.

“농구공이라는 거야.”

“아아?”

“이케. 이케 하는 거야!”

승준이 농구공을 손에서 통통 튕겼다.

“그리고 이케 슛!”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원통형 쓰레기통에 골인했다.

선생님은 이미 포기했는지 별말 하지 않았다.

이미 저 쓰레기통이 쓰레기를 넣는 곳이 아니라 농구 골대로 변한 지 오래였으니까.

“어때? 굉장하지?”

“아아!”

시하가 새로운 놀이에 눈을 빛냈다.

“자. 시하도 해봐.”

“아아.”

시하가 엉덩이를 낮췄다.

빵빵한 엉덩이가 눈에 띄어서 선생님이 흐뭇하게 보았다.

시하는 그런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온 신경을 공에 집중해 슛했다.

두둥실~

아쉽게도 중간까지밖에 가지 못했다.

“아하하하!”

승준이 뭐가 그렇게 웃긴지 배를 잡고 웃었다.

시하가 그런 승준을 보다가 다시 공을 들었다.

선생님이 그런 시하를 곁눈질하면서 작게 응원을 보냈다.

승준이 말했다.

“시하야. 좀 더 힘을 내.”

“아아.”

“슛!”

“슈!”

시하가 공을 던졌다.

안타깝게도 공이 쓰레기통 모서리에 통 하고 퉁겨졌다.

공은 그대로 날아가 하나의 머리를 맞췄다.

“아!”

하나가 머리를 문지르며 시하와 승준이 있는 곳을 보았다.

“오빠! 시하! 얌전히 놀아야지! 발 맴매 맞아.”

선생님은 승준, 하나 어머니가 혼낼 때는 발 맴매한다는 정보를 얻었다.

“으악! 난 발 맴매 시러!”

“아아?”

“시혀기 형아는 시하 발 맴매 안 해?”

시하는 형아가 혼내는 것을 생각해 봤다.

냉장고에 낙서했을 때 시혁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대요.”

손가락 하나를 들고 최대한 시하가 할 수 있는 상냥한 모습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뒷머리를 쓰담쓰담했다.

“형아.”

승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으악! 시혀기 형아는 시하 머리 때리는 거야? 꿀밤?”

“아아?”

“머리 맞으면 안 되는데…….”

도리도리.

“응? 아니야?”

“아아.”

“그러면?”

시하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승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으하하하! 간지러워!”

“아아!”

“나도 간질기!”

두 아이가 바닥에서 뒹굴었다.

이미 혼나는 주제는 두 아이에게 떠나가버렸다.

그 모습을 본 하나가 말했다.

“어휴. 언데뜸 철 들른지.”

오늘도 평화로운 어린이집이었다.

***

강인대학교. 강의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뜨거운 시선을 느꼈다.

바가지 머리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다들 짰는지 아니면 모른 척해 주는 건지 이 머리에 대해서는 일절 말을 안 한다.

아, 서수현은 빼고.

“저 수현아.”

“왜요?”

나는 옆에 있는 서수현에게 소곤거렸다.

“저기 뜨거운 시선을 보내는 동기 녀석은 대체 왜 이렇게 쳐다보는 거야?”

“오빠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렇죠.”

“내가 뭘 했는데?”

“오빠가 뭘 하기보다는 시하가 뭘 했죠.”

“아, 그래? 쟤 원래 소문이 어때?”

“어떻기는요. 여기저기 들이대는 평판이죠.”

“아. 여자들에게?”

“예쁘면 들이대죠. 저처럼.”

“뻔뻔하네.”

“예쁜 애들은 자기가 예쁜 거 알아요. 이미 현대적인 미적 기준이 있는데요. 뭐. 맨날 보면 보는 얼굴인데 설마 모를까요?”

“그것도 맞는 말이네.”

“저는 겸손보다는 자신감을 표출하는 거죠.”

서수현이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 그래. 나한테 어필 안 해도 되니까 왼쪽 눈에 눈곱이나 때라.”

“아씨.”

자기도 부끄러운 줄 아는지 나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그건 그렇고…. 저 뜨거운 시선을 어떻게 하면 좋으려나?’

전에 들었던 대로라면 토론 상대 팀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쉽게 가겠네. 가장 기본적인 실수를 할 것 같으니까.’

어쩌면 나에게 이득인 것 같기도 하다.

전쟁은 시작되기 전부터 끝나는 거니까.

이미 누가 준비되고 정보를 모으냐에 따라 판가름이 나뉜다.

나는 저 동기의 좋지 않은 감정을 알고, 그것은 곧 실수로 이어질 것이다.

‘신경 쓰지 말자.’

동기에게 신경 쓰기보다는 시하에게 조금 더 신경 쓰는 게 유용하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교수님의 수업이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빠. 어디 가요? 공부하다가 같이 저녁 드실래요?”

“나 어린이집 가야 해.”

“아, 맞다. 시하!”

“그러니까 공부와 식사는 저 뒤에 동기랑 해.”

“헐? 이건 선 넘었어.”

“그렇게 싫어?”

“네. 완전 제 스타일 아니거든요.”

“안 보이는 데서 많이 차이네.”

나는 짐을 챙겨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웅웅.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백동환]

“여보세요.”

「형님!」

“응. 왜?”

「혹시 시하 만화 좋아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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