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김호섭 교수님은 알아서 팀을 짜라며 강의를 일찍 끝냈다.
팀 짜는 모습도 지켜보고 싶어서 주위를 돌아다니셨다.
나는 여기서 조금 고민을 했다.
‘흠. 어떻게 하지?’
발표 많은 강의 vs 토론해야 하는 강의.
최대의 난제에 시간 계산을 해봐야 한다.
봉 교수님은 발표를 자주 시키는데 학생들의 자료조사가 어마어마하다.
문제는 거기서 ‘중간고사’의 문제를 낸다는 점.
그렇다. 중간고사!
그 많은 자료를 공부하는 시간을 봤을 때 차라리 김호섭 교수의 강의가 시간이 덜 들어갈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팀플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대학생들이라면 조별과제나 팀플에서 느꼈을 깊은 빡침을 이해하리라 본다.
하다 보면 결국 혼자 하는 상황이 될 수 있으니까.
결론을 내리면 김호섭 강의를 듣는 게 시간 소모가 적을 것 같다.
팀은…….
“수현아.”
“네. 오빠.”
“정말 나랑 팀 해도 괜찮아? 다른 애들이 불편해하지 않겠어?”
“별로 안 불편할걸요? 오빠가 뭐가 모자라서요.”
“음. 나랑 안 친해서?”
“이제부터 친해지면 되죠.”
“그렇게 긍정적이게 생각해 주는구나? 그런데 친한 사람들끼리 팀을 짤 거야?”
“그러면요?”
대충 서수현과 붙어 다니는 두 사람.
나까지 합치면 4명.
여기까지는 그래, 괜찮다.
하지만 나머지 세 명이나 네 명은 신중히 골라야 하지 않을까?
“팀을 만드는 것을 보면 팀끼리 배틀을 붙일 것 같은데 말이야. 먼저 여기서 필요한 인재가 있어.”
“어떤 인재요?”
서수현 옆에 있는 두 사람도 궁금한지 귀를 쫑긋 세웠다.
이런 팀 토론은 굉장히 힘든 사항이 있는데, 함께하는 멤버가 이상한 주장을 펼치면 그걸 취소하기 힘들어진다.
취소한다는 것은 자신의 주장이 빈약했다는 것밖에 안 되니까.
그러니 그거까지 안고 나가야 한다.
혼자 토론을 벌이면 상관없겠지만…….
“적어도 주도적으로 하는 사람을 정해야지. 그리고 도와주는 조력 역할도 정해야 하고. 자료조사나 방향성에 대해 회의도 해야 해.”
그 말에 다들 고민에 빠진 모습이었다.
“다들 어떤 성향인지 모르니까 일단 필요한 인재를 말할게. 먼저 임기응변에 강한 사람이 필요해. 재빨리 머리 회전이 되어서 빨리 앞서 말하는 거지.”
“왜요?”
“얘는 보조 역할인 거야. 주도하려는 팀장이 생각하고 정리할 시간을 벌어주는 거지.”
“아! 와! 전략적이네요.”
다들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이 난다.
이 애들을 딱 보니 그냥 친한 애들끼리 다 모을 생각이었던 것 같다.
“여기에 꼼꼼한 애도 필요해. 자료 조사하기에 적합하거든. 그리고 상황을 다각도로 볼 수 있는 사람도 필요하고.”
“다각도로 볼 사람은 어떻게 알아보는데요?”
“경험이지. 사회 경험이 많은 사람. 알바나 봉사 활동도 좋아. 다양한 경험을 할수록 이론이 관념으로 남지 않게 할 수 있어. 다양한 공부를 한 사람도 좋고.”
서수현이 손뼉을 쳤다.
“그 모든 걸 합친 사람이 있잖아요. 과탑이고, 봉사 경험도 많고, 학점도 빨리 채우기 위해 교양으로 다양한 시각도 얻고.”
“누구?”
서수현이 나를 가리켰다.
아, 그러네.
내가 다 포함되네.
“설마 나보고 다하라는 거 아니지?”
“에이. 저희가 그렇게 양심 없는 애들 아니네요. 오빠가 팀장 해주실 거죠?”
“아니. 나 바빠.”
“이거 성적도 반영되잖아요. 무려 30퍼나.”
“그건 그렇지.”
“생각해 보세요. 오빠가 다양한 생각으로 전체를 조율하고 멋지게 승리하는 그림. 어때요? 시청률 꽤 나올 거 같지 않아요?”
“방송하니? 근데 너 말 잘한다. 기지가 뛰어나. 보조인 임기응변 역할로 딱이야. 내가 생각할 시간 좀 벌어줘.”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너하면 팀장 한다는 말이지. 다들 박수.”
옆에 있는 친구들도 짝짝 손뼉을 쳤다.
서수현은 이게 아닌데 하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알았어요. 제가 잘해 볼게요.”
“너만 믿는다. 나는 무게감 있는 역할로.”
“제가 다하라는 거잖아요!”
서수현이 울상을 지었다.
“어, 맞아.”
서수현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바가지 머리.”
“다 들린다…….”
“읍!”
역시 멋지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
한편 시하는 승준에게 새로운 친구를 소개받고 있었다.
“내 동생 하나야.”
오승준의 쌍둥이 여동생 오하나가 인사를 했다.
“안녕.”
“아아.”
“아아? 아아아아!”
“!!!”
“히히. 아아 하니까 재밌다.”
“아아. 형아.”
“응? 오빠는 형아 아닌데?”
그때 승준이가 말했다.
“시하 형아가 있어. 시하랑 머리 또가타.”
“시하 머리 귀엽다.”
두 아이의 사랑을 받은 시하는 기분이 좋아졌다.
“시하야. 우리 공놀이 하자. 싸커.”
“아니야. 우리 소꿉놀이 하자.”
둘의 의견이 갈렸다.
시하는 고민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도도.
어딘가 달려가는 시하를 따라 두 아이도 달렸다.
‘세 시.’
시하는 시계를 봤다.
형아가 말했던 형태가 아니었다.
시무룩.
“시하야. 왜 그래?”
“왜애? 왜애?”
“아아. 형아.”
승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하 형아. 싸움 잘한대.”
“진짜?”
“아아.”
“검도 막 휙휙.”
“우와!”
“아아!”
그런 의미로 오늘은 자기가 하고 싶은 역할 놀이를 하기로 세 아이는 협의를 했다.
결론이 이상하지만,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나는 로보트야. 이렇게 변신변신해.”
승준이 ‘취이익’하는 효과음을 내면서 몸을 움직였다.
하나가 자신의 역할을 말했다.
“나는 엄마야. 로보트 엄마. 시하는 뭐야?”
“아아. 형아.”
“그럼 엄마 형아 해.”
다른 사람이 보기에 관계도는 상당히 이상했다.
로봇의 엄마가 인간이었고, 엄마에게 오빠가 아니라 형아가 있다는 설정.
그 모습에 선생님이 풋 하고 웃었다.
“어머. 대체 무슨 관계야.”
한 아이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던 선생님이 흐뭇하게 웃음을 보였다.
이렇게 선생이 꽤 여유로운 이유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아서다.
학교 내에 유아가 있는 교직원과 교수가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있는 아이도 겨우 일곱 정도였다.
“이건 사진 찍어야겠네.”
그래서인지 아이들의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아무래도 바쁘게 돌아가는 어린이집이랑 다른 장점이었다.
현재 요리를 하는 원장 선생님이 오면 더욱 편했다.
찰칵. 찰칵.
“다들 귀신같이 알아서 브이 자를 그리네.”
시하부터 시작해서 승준, 하나도 노는 와중에 카메라를 포착한 것이다.
아이돌 못지않게 카메라를 포착하는 게 귀신같았다.
“아아. 여기.”
시하는 인형을 가지고 와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승준이 눈을 빛내며 인형을 공격했다.
“간다! 펀치!”
하나가 그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어휴. 언데뜸 철 들른지.”
그 말에 곁눈질로 주시하고 있던 선생님의 웃음보가 터졌다.
승준, 하나 어머님의 말버릇이 고스란히 상상되었다.
시하는 그런 선생님을 한 번 보다가 무언가 발견한 듯이 눈을 1mm만큼 크게 떴다.
창에 슬그머니 비친 바가지 머리.
“형아?”
***
결국, 나는 시하가 어떻게 노는지 궁금해 어린이집에 와버렸다.
공강 시간이라 금방 돌아가야 하지만.
‘어디 보자…….’
창을 통해 본 아이들의 노는 모습이 활기찼다.
선생님의 눈은 여러 개가 달렸는지 고개가 휙휙 자주 돌아갔다.
모든 아이를 파악하는 기술인가 보다.
‘시하다.’
시하가 승준이 인형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가 돌아갔는데…….
나는 순간의 기지를 발휘해 눈을 숨겼다.
‘안 들켰겠지?’
이게 뭐라고 가슴 떨리는지 모르겠다.
‘돌아가자.’
잘 있는 것을 봤으니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중에 시하랑 놀려면 이 시간에 번역 정도는 해둬야 했으니까.
***
시하는 창에 비친 바가지 머리가 두둥실 떠나가는 것을 봤다.
‘형아다!’
시하가 고개를 돌려 시계를 휙 하고 봤다.
아직 작은 바늘이 세시를 가리키지 않았다.
전자시계에도 3이라는 모양이 있지 않았다.
‘아니야?’
시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형아를 닮은 머리를 봐서 아까보다는 안심이 되었다.
“자. 모두 밥 먹어요. 다들 손 씻으러 갑시다!”
승준이 시하의 손을 잡고 세면대로 갔다.
아이들을 위해 손을 씻을 수 있는 낮은 세면대였다.
“여기 줄 서서. 손 씻는 거야.”
“아아.”
승준이 먼저 발판을 올라가 손 씻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 모습을 본 시하는 형아랑 씻는 걸 떠올렸다.
“자. 해 봐.”
“아아.”
시하는 승준이 했던 대로 발판에 올라가 손을 씻었다.
푹. 찍.
[상남자 시하의 손 씻는 법.
물을 손에 묻힌다.
비누를 손으로 찍는다.
다시 물을 묻힌다.
옆에 있는 수건에 손을 찍는다.]
“어머. 시하야 좀 더 씻자. 그러면 덜 씻게 돼요. 지지예요. 지지.”
선생님이 시하가 다시 손을 씻을 수 있게 옆에서 시범을 보였다.
시하도 따라서 손을 씻었다.
조물딱. 조물딱.
작은 손을 열심히 움직여서 제대로 씻자 선생님이 잘했다고 시하를 칭찬했다.
“정말 잘했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씻는 거예요.”
“아아.”
시하, 승준, 하나가 식판을 들고 밥을 오물오물 먹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어린이집에서 밥을 먹고, 다시 놀고, 낮잠 시간이 돌아왔다.
“자. 각자 이불에 잠을 자요.”
시하는 양쪽에 승준과 하나를 끼고 잠이 들었다.
‘형아.’
아까 바가지를 머리를 봐서 그런지 시하는 꿈을 꾸었다.
커다란 바가지 머리를 타고 하늘을 둥둥 떠가는 꿈.
거기서도 신나게 노는 시하였다.
***
오후 2시 45분.
정확히 강의가 끝난 시간에 나는 물건을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하를 데리러 가려는데 폰에서 전화가 왔다.
[문도환형]
“여보세요.”
「어. 시혁아.」
“네. 뭔가 또 엄청난 정보를 주시려고 전화했어요?”
「아니. 그것보다 점심시간에 왜 안 왔어? 혹시 밥은 혼자 먹었어?」
“대충 컵라면 먹고 번역 작업했어요.”
「내 이럴 줄 알았어! 내가 너 그럴까 봐 나 찾아오라고 한 건데.」
“그거 빈말 아니었어요?”
「나 아직도 너 기다리다가 등가죽이 붙었어.」
“전화하시지.”
「농담이야. 아, 진짜 그렇게 못 챙겨 먹을 줄 알았으면 전화하는 건데.」
“다음에 학식 먹을게요. 누가 보면 엄만 줄 알겠어요.”
문도환도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데 맨날 같이 점심을 먹을 수 없는 법이다.
「학식이 싸고 좋지. 나도 학식 좋아해.」
“맨날 먹어서 질린다고 하시는 분은 어디 있나?”
「여기 있다. 임마. 너 시하 데리러 갈 거지? 나도 가자.」
“형은 왜요?”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시하가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되니까.」
“사실 제가 아침 강의 끝나고 공강 시간에 잠깐 봤어요. 괜찮던데요?”
「…….」
전화기 너머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 시간을 못 참고 그새 갔어?」
“흠흠. 형이 애 키워 보세요. 걱정되나 안 되나.”
「쩝. 그렇게 말하면 할 말 없지. 어쨌든 지금 많이 떨어진 상태잖아. 궁금하니까 나도 잠깐 볼래.」
“일 안 하세요?”
「휴식이다. 휴식!」
“진짜 나도 교직원 노려볼까?”
「거기 딱 기다려.」
문도환은 금세 왔고, 우리는 어린이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학교 내부에 끝에 있어서 그런지 금방 도착했다.
나는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선생님이 나를 반겨주셨다.
“아직 낮잠 시간이라 자고 있어요.”
“그래요?”
“네. 이제 다들 일어날 시간이긴 해요.”
나는 방에 있는 시하를 보았다.
살짝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그렇게 보고 있는데 시하가 무언가 중얼거렸다.
“바가. 모리.”
바가 모리?
그게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