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500)

14화

나는 시하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열은 없었다.

마치 마법처럼 신기하게도 한순간에 열이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열이 내렸네요.”

“그렇게 단시간에 내릴 리가…….”

송예나가 체온기를 시하의 귀에 갔다 댔다.

삐빅. 37도.

아이의 체온이 원래 높으니 정상으로 봐야 했다.

송예나가 신기하다는 듯이 시하를 보았다.

나는 시하를 차갑게 하는 것들을 떼어냈다.

“고마워. 우리 시하 고마워.”

“아아. 형아.”

시하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다였다.

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평소보다 더 조심스러워졌다.

“형아.”

“그래. 그래. 어디 아픈 데는 없지?”

“아아.”

“뭐 먹고 싶은 거는 없어? 형이 죽 사줄게.”

“아아.”

나는 송예나를 보았다.

“선생님. 저희 가도 되죠?”

“음.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끝났으니까요. 혹시 모르니 약도 타 가세요. 처방은 해 드릴 테니까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까먹은 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어…….”

“네?”

“지금 제가 돈이 없어서…. 급하게 나오느라.”

“아…….”

송예나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나는 왠지 얼굴이 빨개졌다.

정신없는 상황에서 지갑도 폰도 챙기지 못했다.

“제가 낼게요. 갚으시는 건 시하를 검사할 때 갚으시고요.”

“감사합니다.”

“이왕 말 나온 김에 언제 볼까요?”

“저희야 시간은 언제든지 나는데 선생님이 편한 데로 해주세요.”

“그럼 오늘 보죠.”

나는 놀란 눈으로 송예나를 보았다.

“퇴근 안 하세요?”

“글쎄요. 퇴근이 뭔지 모르겠네요. 그런 단어가 있었나?”

정말 힘들게 사는구나.

그런 감상이 들었다.

***

나는 시하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 지갑과 폰을 챙겼다.

시하를 보니 언제 아팠냐는 듯이 쌩쌩했다.

뭔가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느낌이었다.

“응? 근데 왜 상자 뚜껑이 조금 열려 있지?”

나는 뚜껑을 닫았다.

“시하야. 이제 가자.”

“아아.”

이번에는 신발을 신고 시하와 길을 나섰다.

들어간 곳은 죽집이었다.

이제 아픈 곳이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비싸네.”

무슨 죽이 이렇게 비싼지.

역시 메이커값을 한다고 할까?

“뭐 먹고 싶어?”

“아아.”

시하가 신중하게 메뉴를 골랐다.

소고기죽.

역시 비싼 소고기를 먹어야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를 주문했다.

“자아. 뜨거우니까 식혀 먹어야 해.”

내가 후후 불어서 시하의 입에 넣어주었다.

“뜨거.”

“아, 미안. 응?”

나는 놀란 눈으로 시하를 바라보았다.

지금 ‘뜨거’라고 한 거야?

“시하야. 지금 뭐라고 했어?”

“뜨거.”

껌뻑껌뻑.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어느새 말하는 단어가 늘어나 있었다.

“형아.”

“응? 아. 응. 굉장하네. 마치 만화 주인공 같아. 위기를 넘어서 강해진다. 이런 거.”

“아?”

“아니야. 자. 아~”

“아~”

시하가 죽을 먹었다.

툭 튀어나온 볼살이 너무 귀여웠다.

뭐 건강하니 상관없나?

이제 말이 별로 늘지 않는다는 것에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냥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딱 이런 마음이랄까?

“형아.”

“응. 그런데 시하야. 조금 있다 다시 병원에 갈 거야.”

“아?”

“아까 본 예쁜 의사 선생님 있지? 그분 만나러 한 번 더 가야 해.”

도리도리.

“왜? 싫어?”

시하가 검지를 들더니 자기 팔에 콕 찔렀다.

“아, 주사가 무서워?”

“아아.”

“주사는 안 놓을 거야. 그냥 검사만 한다고 했으니까. 아마도?”

시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숟가락을 달라고 했다.

이제 좀 식었으니 줘도 될 것 같았다.

나도 좀 먹어야겠다.

시하 혼자 다 먹기에는 양이 많았다.

오물오물.

볼이 빵빵할 정도로 입에 죽을 넣는 것을 보며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뭐야. 너무 귀여워.”

“우?”

나는 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다시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

강인대학병원. 유전자 분석실.

송예나는 현재 유전 인자 정밀분석을 하고 있었다.

개인 연구에 모든 열과 성을 쌓고 있는데 굉장히 흥미로운 점이 많았다.

연구 진척이 더딜지라도 곧 유의미한 연구 결과가 나올 거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논문을 보고 있을 때 송예나는 오늘 만난 시혁과 시하를 떠올렸다.

‘특이했어.’

어린이집 원장님에게 들었을 때 시하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시하와 시혁의 대화를 통해 어느 정도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언어발달이 느리다?

시하가 ‘차거.’라고 하는 순간부터 어느 의심이 들었다.

말을 할 줄 아는데 안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충분히 생각할 여지가 있었다.

확신을 준 것은 시혁의 행동이었다.

‘뭔 아아로 대화가 다 통해?’

눈으로 직접 봤지만, 어처구니가 없는 의사소통이었다.

수화를 한 것도 아닌데 눈치껏 다 알아듣는 신기한 기술.

오히려 시혁의 저 센스가 어디 유전 인자에 포함되어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대충 해줄 말은 정해져 있네.’

송예나는 시간을 보았다.

곧 미팅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애초에 당직을 서서 쉬러 가도 되지만 오늘은 원장 선생님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으로 마무리될 하루였다.

그녀는 원장 선생님에게 빚이 있으니까.

그리고 두 사람이 흥미롭기도 하고.

“그럼…….”

삐빅. 염기서열분석이 끝났다는 기계의 신호를 보면서 송예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보자.”

노트북을 덮고 의학유전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휴게실로 가보니 시혁과 시하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시하야. 코코아 맛있어?”

“아아.”

“커피에는 카페인이 들어가 있거든. 직장인에게는 커피를 빼놓을 수 없다고 할까? 몸에 좋은 건 아니니까 시하는 커서도 코코아를 마시자.”

“아아. 형아.”

“응? 형아도 먹으라고?”

“아아.”

“잘 마실게. 후르륵. 와 맛있어.”

“형아.”

“응. 손에 튀었네. 닦아줄게. 잠시만.”

“아아.”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송예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똑똑.

벽을 두드리자 두 사람이 똑같이 고개를 돌렸다.

“풋.”

그게 너무나 닮아 있어서 웃음이 나왔다.

누가 형제 아니라 할까 봐.

“죄송해요. 둘 다 너무 귀여운 것 같아서.”

“아니에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가면 되나요?”

“네. 일단 제 연구실로 자리를 옮기죠.”

연구실에 들어오고 시혁과 시하는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이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가 저 예쁜 누나의 연구실이야.”

“아아.”

“연구실. 연구실. 자 따라 해봐. 연구실.”

“아아아.”

“역시 아직 연구실은 발음이 어려운가?”

송예나가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시하 몸은 좀 괜찮나요?”

“아무 문제 없었어요. 밥도 엄청 잘 먹는 거 있죠? 그리고 오늘 ‘뜨거.’라는 말도 했다니까요.”

“그래요? 제가 알아보니까 시하가 여기 소아과에서 검사를 받았더라고요.”

“아, 그래요?”

“네. 그래서 지금 한 가지 의심 중인 게 있는데 혹시 시하가 일부러 말하지 않은 거 아닌가 싶어요.”

“일부러요?”

“네. 아마도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말할 필요가 없다…….”

“뭔가 찔리시지 않아요?”

“아니요. 전혀요.”

시혁이 뭐가 문제냐는 듯이 나왔다.

송예나는 그런 시혁을 흘겨봤다.

“형이 다 알아들으니까 말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건지도 모르죠. 음. 혹시 뇌에 대해서 잘 아시나요? 손쉽게 말해서 뇌는 쉬운 쪽으로 가려고 해요.”

그때 시혁이 뭔가의 번뜩임을 보였다.

기이한 푸른 빛무리가 눈에 일렁거렸다. 사라졌지만 송예나는 그 빛을 볼 수 없었다.

오로지 시하만이 시혁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뇌의 ‘가변성’을 말하는 건가요?”

송예나가 놀랍다는 듯이 시혁을 보았다.

병원에서 느꼈지만, 의학 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 보였다.

“맞아요. 뇌의 가변성. 예를 들면 시각이 안 보이는 사람이 있다고 치면.”

“그 시각을 관장하는 뇌 부분이 청각을 관장하는 부분으로 바뀌는 경우요? 뇌가 판단하기에 시각보다 청각을 활용하는 게 더 쉬우니까요. 감금증후군 환자가 의식을 점점 찾기 힘들어지는 것도 이런 이유죠.”

감금증후군 혹은 락트-인 증후군이라 불리는 증상은 의식은 있지만, 전신이 마비된 상태를 말한다.

침대에 누워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해서 숨을 쉬게 되는 안타까운 병.

설마 이런 것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혹시 강인의대 다니세요? 제 후배?”

“아니요. 국문과인데요.”

요즘 국문과도 의학 지식을 가르치나?

생각지도 못한 과 이름에 송예나는 말문이 막혔다.

시혁도 자신의 상태가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실제로 의학 논문들을 번역한 지식이 부상한 거였지만 송예나가 거기까지 알 수 없었다.

“그냥. 관심 있어서 찾아봤어요.”

“그래요. 그럴 수 있죠.”

송예나는 어느 정도 납득을 하며 시하에게 시선을 두었다.

“형아 얼굴만 빤히 바라보네요.”

“하하. 가끔 이래요.”

“심심한가 보네요.”

“혹시 A4 용지랑 볼펜이 있을까요?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좀 덜 심심해할 거 같은데…….”

“여기 있어요. 어쨌든 말하자면 시하는 좌뇌와 우뇌 모두 잘 활성화되어 있고 정상으로 나왔다는 거예요. 물론 그때 시혁 씨가 시하를 데리고 오지 않았지만. 박 선생님 말씀으로는 그래요. 그래서 의사 소견에 지켜보자고 적은 거고.”

“그럼 제가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해야겠네요.”

“음.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지금 시혁이 시하에게 한 행동을 보니 영 믿음이 가지 않았다.

시하에게 한없이 너그러울 것 같은 남자였다.

뭐든지 다 받아줄 거 같은 사람.

“제 생각에는 어린이집 다니면서 말문이 잘 트일 거 같네요. 형아가 없으니까.”

“저도 가끔 갈 생각이긴 한데요?”

“……”

그 말에 송예나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정말 ‘가끔’만 가세요. 시하가 세 살이라서 이해는 해요. 그 부모님이. 음.”

송예나가 말을 멈췄다.

“그. 보호자가 아직 많이 곁에 있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혁의 사연을 대충 들었기에 시하가 아직 모르는 보호자라는 단어를 썼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무튼, 따로 검사는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정 안 되겠다 싶으면 한 달 뒤에 다시 이야기 나눠보죠.”

“알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시하가 검사했던 소아과 선생님을 찾아가 봐도 되었네요. 괜히 시간을 뺏은 것은 아닌지…….”

“아니요. 오랜만에 꽤 재밌었어요. 맨발로 동생을 들고 뛰는 모습도 그렇고. 이상하게 의학 지식이 높은 것도 그렇고.”

“하하…. 그냥 책에 나와 있는 걸 말했을 뿐이에요.”

“간호사에게 들었는데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요?”

“그건 그때 정신이 없어서.”

시혁이 순박하게 웃었다.

송예나는 그런 시혁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이야기가 끝났다.

마무리하려고 시하를 봤을 때 송예나의 눈이 커졌다.

“어?”

지금까지 내렸던 결론이 단번에 뒤집히며 머릿속이 상당히 복잡해졌다.

“시혁 씨.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네? 뭐가요?”

송예나가 가리킨 손끝을 따라가자 시혁의 눈도 놀라움으로 물들였다.

“어? 이게 대체…….”

시혁도 몰랐던 모양.

송예나는 떨리는 눈으로 시하의 그림을 보았다.

그림만 봤을 때는 아주 단순한 캐릭터 그림이었다.

펭귄이 그려져 있고, 한 가지 색으로 색칠도 되어 있었다.

하지만 3살이 그렸다고 말하면 다들 믿을 수 있을까?

송예나는 그림에 대해 아주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하나는 알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천재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라는 걸.

“아스퍼거 증후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