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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13/500)

13화

시하는 시혁의 품에 내려와 다시 승준과 놀았다.

어린이집 안에서 승준과 많은 대화를 했다.

“있잖아. 나는 동생도 있다!”

승준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아.”

시하는 시혁을 가리키고 다시 자신을 가리켰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형아. 아아.”

시하는 자신이 형아의 동생이라는 것을 어필했지만 승준은 다른 식으로 알아들었다.

“난 형아가 아니야. 오빠야. 오빠! 나랑 같이 태어났대.”

“아아.”

“근데 내가 먼저 나와서 내가 오빠.”

“아아.”

“지금 아빠랑 같이 놀고 있을 거야. 구런데 나는 사커가 좋은데 내 동생은 별로 안 조아해.”

뭔가 시하와 대화가 미묘하게 어긋나고 있지만 두 아이는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아아. 형아. 아아.”

“너 형아 정말 좋아한다?”

시하가 입으로 뭔가를 말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주먹을 쥐고 손으로 빨리 때리더니 원을 크게 그렸다.

“아아!”

시혁이 KI 미디어에서 얼마나 멋진 모습을 보여줬는지 설명하고 있었다.

그날 시하의 눈에는 다른 사람들이 시혁을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을 알고 있었다.

승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하의 말을 이해했다.

“우와. 너희 형 싸움을 그렇게 잘해?”

“아?”

“대단해!”

“아아.”

도리도리.

시하가 고개를 젓자 승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싸움 못해?”

그 말에 시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애초에 시혁이 얼마나 싸움을 잘하는지 모를뿐더러, 싸움이라는 단어도 잘 몰랐다.

승준이 설명을 위해 주먹이 허공을 때리고 쓰러지자.

그제야 시하가 싸움이 뭔지 알았다.

그때 떠오른 것은 시혁이 무협이라는 것을 설명하며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었다.

“아아! 형아!”

시하가 두 손을 모아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였다.

“와. 형아가 검도 써? 엄청 세다!”

“아아!”

“나도 집에 아끼는 검이 있는데 불빛도 나온다?”

승준이 일어서더니 손과 팔로 표현할 수 있는 온갖 화려한 묘사를 했다.

“엄청 머싰서. 불도 막.”

“아아!”

시하도 그 말에 엄청 흥분했다.

“엄청나지? 나중에 시하에게도 보여줄게!”

“아아.”

어긋나면서도 어긋나지 않은 두 사람의 대화였다.

시하는 형아 자랑을.

승준은 자기가 가진 걸 자랑을.

자랑의 한판 대결이었다.

***

어린이집에서 실컷 논 시하와 시혁은 집으로 돌아왔다.

신발을 벗자마자 시하는 도도도 각티슈를 잡았다.

슉슉.

티슈가 흩날리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그 모습을 본 시혁은.

“오늘 맛있는 저녁 먹자.”

“아아.”

시하는 형아에게 대답을 하고 티슈를 계속 흩날렸다.

나풀나풀거리는 게 퍽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 저 멀리 날아가는 티슈를 봤는데 수성 사인펜이 보였다.

시하는 그걸 집었다.

두근두근.

갑자기 심장이 뛰었다.

시하는 어린이집에서 원장 선생님이 주신 종이에 그림을 그렸던 것이 생각났다.

폭.

뚜껑을 뽑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하얀 도화지 같은 물건을 발견했다.

시하는 냉장고 옆면에 가까이 가서 그림을 그렸다.

동글동글.

얼굴을 그렸다.

‘형아.’

그 옆에 다른 동그라미를 그렸다.

‘시하.’

눈도 그리고 코도 그리고 입도 그렸다.

그림이 점점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공.’

갑자기 오늘 떠올린 축구공을 그렸다.

오각형과 육각형이 모여있는 모습.

시하는 자신의 그림에 만족했다.

두 사람과 공 하나가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시하야. 뭐 해? 어?!”

“형아!”

시하가 그림을 가리켰다.

시혁은 난감하다는 듯이 그림을 보았다.

‘형아?’

시하는 시혁이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몰랐다.

“시하야. 여기에 그림을 그리면 안 돼요. 오늘은 시하가 몰라서 봐주지만, 다음에 혼나요.”

“아아.”

시무룩.

시하는 칭찬해 주지 않는 형아 때문에 우울했다.

그걸 본 시혁이.

“그래도 그림은 정말 잘 그렸네? 이거 형아랑 시하지? 축구공도 있네? 딱 보니 알겠다.”

“아아!”

시하는 시혁이 알아주는 것이 기뻤다.

“다음에 형아가 스케치북 사줄게. 아니다. 아주 큰 도화지를 사줄게. 거기에 마음껏 그리자.”

“아아.”

시혁이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랑이 듬뿍 담긴 이 손길이 시하는 좋았다.

“음. 우리 이거는 이제 지우자. 일단 다행이야. 수성사인펜이라서.”

시혁이 물티슈로 슥슥 지웠다.

시하도 형아를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에 같이 슥슥 닦았다.

“역시 우리 시하 착하네.”

“아아.”

시하는 더욱 열심히 닦았다.

그렇게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시혁과 밥을 먹고, 시하는 잠이 들었다.

-새벽 5시.

번쩍.

시하는 눈을 떴다.

시혁이 어딨는지 먼저 확인했다.

‘형아다.’

옆을 확인하니 여전히 형아는 시하의 곁에 있었다.

시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짝반짝.

분홍색 빛무리가 희미하게 보이는 상자.

시혁이 상자를 아래로 내려서 안 올린 덕분에 시하는 뚜껑을 열 수 있었다.

덜컹.

“엄마.”

분홍색 빛무리가 반짝이며 시하를 감쌌다.

시하가 빛이 뿜어져 나오는 액정 태블릿에 손을 댔다.

따끔.

“아!”

정전기가 통한 시하가 놀라서 뒤로 엉덩방아를 찍었다.

어질어질.

시야가 온통 일그러지며 머리가 핑 하고 돌았다.

몸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시하는 시혁을 불렀다.

“형아…….”

***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새까만 어둠이 내려앉았다.

주변에는 차가 움직이는 소리만 들렸다.

‘안 돼…….’

여기가 어딘지 알았다.

익숙한 아버지의 차였다.

앞에는 노란색 트럭이 달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블랙박스에 찍혀 있던 트럭과 똑같았다.

‘안 돼…….’

트럭이 무언가를 밟았고 판스프링이 튀어나왔다.

시야가 암전되더니.

끼이이익! 쾅!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안 돼!!’

아버지의 사고 현장을 눈으로 보는 생생함에 나는 소리를 지르면 잠에서 깼다.

중력이 싫어질 만큼 몸을 무겁게 끌어내리는 느낌에 머리를 벅벅 문질렀다.

그때 희미한 시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아…….”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에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시하가 희미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얼굴은 열이 나는지 시뻘게져 있었다.

“뭐야. 왜 그래?!”

나는 황급히 시하 곁으로 갔다.

머리에 손을 대보니 불덩이처럼 뜨겁다.

머릿속에 여러 증상이 순식간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세균성 이질, 디프테리아, 일본 뇌염, 인플루엔자, 수족구병, 회충증]

“아아…….”

나는 더 생각할 겨를 없이 그대로 시하를 안고 집을 나섰다.

여기서 제일 가까운 강인대학병원으로 전속력으로 달렸다.

쉬지 않고 발을 놀렸다.

‘제발. 제발. 제발.’

나는 숨이 턱하고 오르면서 계속해서 달렸다.

나를 부르는 시하의 ‘형아’라는 단어만이 내 머릿속을 차지했다.

괜히 떠오르는 안 좋은 생각들이 가슴을 철렁이게 했다.

아이는 약하다.

잊어버리고 있었다.

너무 씩씩하게 있길래 간과한 건지도 모른다.

내 탓이다. 전부 내 탓이야.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나는 무엇이 미안한지 모른 채 계속 사과를 했다.

그냥 모든 게 다 미안했다.

더 더 더 관심을 가졌어야 했다.

더 더 더 챙겨줬어야 했다.

“헉. 헉.”

숨이 목 끝까지 차오르는 순간 눈앞에 병원이 보였다.

그대로 응급실에 달려가 간호사를 붙잡았다.

“헉. 헉. 애가. 열이. 너무. 나서…. 헉헉. 제발.”

“보호자분 진정하세요. 애기는 저에게 주시고요.”

“빨리. 선생님 좀.”

“진정하세요.”

“제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일단 열이 많이 나네요.”

간호사가 침착하게 재빨리 열을 쟀다.

삐빅. 40도.

“일단 열부터 낮출게요. 송 선생님 콜 해주세요.”

간호사가 재빨리 무언가 조치를 취했다.

나도 따라가려다가 한 간호사가 앞을 막았다.

“왜요?”

“보호자분. 일단 진정하세요. 단순 감기일 수도 있으니까. 아니면 장이 안 좋거나요. 그리고…….”

간호사가 내 발을 보았다.

“일단 보호자분 발부터 치료합시다.”

나는 맨발이었고, 오른쪽 발엔 피가 흐르고 있었다.

***

발을 치료하면서 빨리 시하에게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까 선생님이 스쳐 지나가던데 대체 무슨 병인지 모르겠다.

“일단 여기 슬리퍼 신으시고 여기 서류 좀 작성해 주세요.”

“네.”

“진정 좀 되셨어요?”

“네에…….”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보통 이렇게 애 안고 달려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감기거나 장염이거나. 둘 중 하나예요.”

“발열 증상이 일어나는 병이 많잖아요.”

이 와중에 쓸데없이 의학 논문을 번역한 자료들이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차라리 잘 몰랐으면 걱정이 덜했겠지만 다양한 지식은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감기라도 신종플루나 그런 거일 수도 있지 않아요? 약이 굉장히 세다던데 아이한테 안 좋은 영향을 끼치면.”

“다른 사람에게 감염되지 않았다면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어디 많이 돌아다녔어요?”

“그건 아니지만.”

어제 간 곳이라고 해봤자 어린이집이 전부다.

원장 선생님은 아이들을 위해 미리 방역도 다 해놓았다고 했으니…….

“진짜 시하에게 너무 미안해요.”

“미안할 게 뭐 있어요. 보호자분 잘못 아니에요.”

나는 간호사를 보았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많이 잡고 있었죠?”

“아니에요.”

내가 서명한 서류를 넘기자 간호사가 시하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떠나갔다.

나는 어느 정도 마음을 가라앉혔다.

별거 아닐 거야. 괜찮을 거야.

단순 감기로 오는 사람들이 많다잖아.

‘가자.’

시하의 손이라도 잡고 있어 줘야겠다.

마음을 정리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열이 안 떨어지는데요?”

“일단 주사를 놓았으니까. 기다려보죠. 조금 차가운 것도 갖다 대주고…….”

나는 가슴이 철렁 앉았다.

“저기요. 선생님.”

“네?”

“우리 시하. 많이 심각해요? 병 원인이 뭐예요?”

“보호자분. 진정하세요. 애기. 그러니까 시하는 괜찮을 거예요.”

나는 충분히 진정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어떻게 진정하라는 거지?

“정말이죠?”

“네. 시하는 괜찮을 거예요. 그러니까 믿고 옆에 있어 주세요. 깨어났는데 형이 이렇게 불안하면 되겠어요?”

“그건…….”

나는 겨우 시하에게 시선을 떼고 의사를 보았다.

“그런데 제가 형인 건 어떻게…….”

“들어는 봤으니까요. 시혁과 시하. 이렇게 볼 줄 몰랐네요.”

쌍꺼풀이 있는 큼직한 눈, 백의 때문에 더 하얗게 보이는 피부.

가슴에 적힌 이름은 송예나.

나는 그제야 이 사람이 원장이 소개해준 의사라는 걸 알았다.

“그러게요. 이렇게 볼 줄 몰랐네요.”

“이상하게 열이 빨리 안 떨어지기는 하는데…. 다른 증상은 없어서 병명을 파악하기 힘들어요. 말 그대로 단순 감기일 확률이 높지만. 혹시 기침하고 그러지는 않았죠?”

그 말에 나는 오늘 시하를 떠올렸다.

“구토, 경련, 구역질, 기침. 이런 증상은 하나도 없었어요. 두통도 호소하지 않고, 발진, 기면, 경부 강직…….”

그냥 머릿속에 있는 증상들을 하나씩 다 말하자 앞에 있는 송예나가 놀랍다는 얼굴을 했다.

“그렇게 잘 알면서 그 난리를 쳤어요?”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열이 올라서 너무 당황했어요. 애가 불덩이같이 뜨거운데 무슨 정신이 들겠어요. 이런 적이 처음인데…….”

“아. 형이시니까. 그럴 수도 있죠.”

“진정되니까 발열 증상 빼고는 거기에 맞는 병이 없네요.”

“네. 인후통도 아니에요. 목이 안 부어 있었거든요.”

“콧물도 없었는데…….”

그렇게 의문 섞인 말을 할 때 시하가 나를 불렀다.

“형아.”

“어?”

고개를 돌리자 시하의 얼굴이 편안해져 있었다.

그리고…….

“차가.”

말하는 단어가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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