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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12/500)

12화

평화로운 아침.

일어나 보니 여전히 시하는 내 배 위에 있다.

어떤 자명종보다 기상에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눈 뜨지 않으면 죽을 것 같거든.

묵직한 느낌을 덜어내고 나는 일어났다.

코오.

시하는 여전히 잘 자고 있다.

‘피곤해.’

어젯밤.

열심히 번역하느라 잠이 부족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운다면 부지런해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

시하가 일어나기 전에 씻고 아침을 준비해야 했다.

‘오늘은 프라이를 해 볼까?’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달걀을 깼다.

치이이익.

익는 소리가 귀에 들리지만, 정신은 여전히 멍했다.

그러다 생각난 것은.

‘그러고 보니 시하 건강검진 결과표를 찾아봐야 하는데…….’

알아보니까 건강검진을 하는 시기가 딱딱 나와 있었다.

말을 잘하지 못하는 걸 새어머니도 아셨을 테니 어딘가 출력된 결과표가 있을 것이다.

‘아. 거기 있나?’

생각해 보니 떠오르는 곳이 있긴 했다.

액정 태블릿을 놓인 상자.

거기에 시하의 육아일기와 여러 가지 서류철이 되어 있는 파일을 넣은 기억이 있다.

어머니 물품들을 고스란히 넣었으니 거길 찾아보면 될 것 같았다.

나는 얼른 프라이 두 개를 만들고 밥을 먹었다.

곧 시하가 일어날 시간.

전투적으로 밥을 흡입하고 챙겨줘야 했다.

“형아.”

“어. 일어났어?”

“아아.”

시하가 졸린 눈을 비비며 방에서 나왔다.

나에게 달려오더니 내 다리에 찰싹 붙어서 얼굴을 비볐다.

나는 그런 시하를 들어 올려서 안았다.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게 기분이 좋았다.

“시하야. 밥 먹어야지.”

“아아.”

나는 시하 전용 의자에 앉혔다.

탁자와 함께 붙어 있어서 밥을 놓기 편했다.

“자. 아.”

아침에는 멍하니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렇게 먹여줘야 한다.

내 밥이 아직 반 정도 남았지만 시하가 먹는 게 우선이다.

오물오물.

멍…….

시하의 턱관절이 멈췄다.

나는 그게 귀여웠다.

말랑말랑한 볼을 만지자 시하가 정신 차렸는지 다시 음식을 씹기 시작했다.

“맛있어?”

“아아.”

“달걀밥은 아마 앞으로 커서도 자주 먹게 될걸? 달걀은 언제나 옳거든.”

“아아.”

몇 번을 떠먹이자 시하가 정신 차렸는지 숟가락을 달라고 한다.

“형아.”

“응? 혼자 먹을 수 있다고?”

“아아.”

숟가락을 쥐고 밥을 푸기 시작했다.

“형아.”

“어?”

시하가 나에게 밥을 내밀었다.

나는 그 모습에 감동했다.

“형아 밥 챙겨 주는 거야?”

“아아.”

“정말 고마워.”

“아아.”

역시 시하는 천사다.

이런 아이가 세상에 존재할 리가 없다.

아침 밥상이 너무 행복하다.

시하와 나는 그렇게 서로 숟가락을 들며 밥을 먹었다.

식사를 끝내고 나는 태블릿이 있는 상자를 내렸다.

아무래도 파일이 여기 있을 것 같았다.

“찾았다.”

새어머니가 깔끔한 성격이라서 다행이었다.

건강검진 결과표를 보자 꽤나 최근에 검사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단 모두 양호라고 적혀 있었다.

의사 소견에는 조금 걸리는 점이 있었다.

[언어발달이 느려서 지켜봐야 함.]

나는 고민에 빠졌다.

의사가 이런 소견을 내렸으면 다시 가봤자 할 말이 똑같을 거 아닌가?

‘이제 말문이 트였으니 좀 더 지켜보자.’

이렇게 말할 게 뻔했다.

나 역시도 지금 같은 생각을 하고 있고.

어디서 아이를 기다려주는 것도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계속 말을 붙이고 있고, 여러 사물의 명칭을 인지시켜 주기도 했다.

‘으음.’

여러모로 고민이 됐다.

이걸 누구한테 상담하면 좋을까?

‘아!’

나는 상담할 사람이 떠올랐다.

바로 강인어린이집 원장 선생님.

그분이라면 좋은 대답을 들려줄 것이다.

나는 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형아.”

“응. 잠시만. 우리 시하 이거 가지고 놀고 있자.”

내가 각티슈를 주자 시하가 그걸 들고 펭귄 가방이 있는 쪽으로 간다.

오늘도 자기 할 일 시작이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저 시하 형. 시혁입니다.”

「아. 시혁 씨. 네. 왜 서류 안 가져오세요.」

“하하. 이것저것 하다 보니까요. 금방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바쁘시면 팩스로 보내셔도 돼요.」

“아니에요. 어차피 한 번 더 들려서 시하를 익숙하게 해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이제 개원이 얼마 안 남았잖아요.”

「그렇죠. 다시 시작이죠.」

“저 그런데. 아, 아니다. 오늘 직접 뵙고 말씀드릴게요. 평일인데 출근하셨어요?”

「네. 조금씩 준비해야 하니까요.」

“그럼. 어린이집에서 뵐게요.”

「네에~」

전화를 끊고 난 뒤 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원장 선생님은 왜 맨날 어린이집에 계셨던 거지?

아마 내가 모르는 업무 처리라도 있었나 보다.

***

오후 2시. 강인어린이집.

그사이에 하도 많은 일이 생겨서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다.

“시하야. 오늘은 여기서 조금 놀다 가자.”

“아아.”

끄덕끄덕.

시하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신발장에는 원장 선생님 말고도 다른 신발이 있었다.

아기 신발도 보였다.

‘나 말고 누가 왔나?’

나는 시하의 신발을 벗기고 슬리퍼를 신었다.

시하는 이미 여기서 놀 생각이 가득한지 안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우뚝.

그런데 시하가 들어가지 않고 멈췄다.

“응?”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방 안을 봤는데.

“아, 안녕하세요.”

“안뇽.”

어색하게 웃는 어머니와 남자아이가 있었다.

“형아.”

“응? 아, 그래. 아무래도 시하 친구가 될 애인가 봐?”

“아아?”

“친구. 친구. 같이 놀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잠자는 친구.”

“형아.”

시하가 손가락으로 날 가리켰다.

그래. 내가 같이 놀고, 밥 먹고, 자기도 하지.

설명이 너무 어렵다.

이건 그냥 자연스럽게 알아가도록 하자.

“안녕하세요. 저는 이시혁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이시하예요.”

“어머. 시하 아버님. 너무 젊으시네요.”

“아. 아빠는 아니고 형이에요.”

“어머어머. 늦둥이예요? 나이 차이가 15살은 되겠네요. 고등학교 다녀요?”

“아하하. 아니요. 대학생입니다.”

“아, 너무 어려 보여서. 제가 이렇게 구분을 잘 못해요. 여기는 제 말썽꾸러기 아들 오승준이에요. 전 승준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호호.”

“아. 네. 승준 어머님.”

“엄마! 나 쟤랑 놀래!”

승준이 시하를 가리켰다.

나는 시하를 보았다.

내 다리에 찰싹 붙어 있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형아.”

“시하야. 승준이가 너랑 놀고 싶어 하는데?”

“아아.”

도리도리.

아직 어색한가 보다.

낯을 가리는 건가?

승준 엄마가 말했다.

“제 아들이 심심하다고 해서 어린이집에 온 거거든요. 여기 친구들도 만나고 싶다고 해서. 그런데 아직 어린이집 개학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다른 엄마들도 하필 오늘 일 있어서 못 만난다고 하고. 어쩔 수 없이 원장 선생님도 볼 겸 왔거든요.”

“아. 네.”

“승준아. 시하가 낯을 가리나 보다.”

“괜차나. 내가 할 수 이떠.”

“그래?”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그런 의문이 드는데 승준이가 시하에게 다가왔다.

“자. 놀자! 내가 아끼는 사커공이야.”

“아?”

“이렇게! 차는 고야.”

툭.

축구공이 데굴데굴 굴러간다.

시하도 흥미가 생기는지 공을 바라보았다.

내 다리에서 손을 뗐다.

그때 승준이가 잽싸게 시하의 손을 잡았다.

“가자. 내가 사커 알려줄게.”

“아아.”

시하도 마음을 놓았는지 둘이서 뛰어다녔다.

그런데 이 방에서 공을 차고 놀아도 되나?

물론 엄청 세게 차지는 않겠지만 여기서 차는 건 좀 아니다 싶다.

“오승준! 공은 밖에서 차야지.”

“응. 나가자. 시하야.”

“아아.”

“근데 아아밖에 못해?”

“아아.”

승준이 시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어어…….”

“애들이 참 해맑죠? 여기 원장 선생님 보러 오신 거 같은데 제가 돌보고 있을게요.”

“아, 감사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형아!”

나는 그 부름에 신발을 신겨 주었다.

“시하야. 형아. 금방 원장 선생님 보고 올 테니까 놀고 있어.”

“아아.”

“금방 갔다 올게. 모르는 사람이 사탕 준다고 해도 따라가지 말고.”

“아아.”

뒤를 돌아보자 승준 엄마가 쓴웃음을 짓고 있다.

“제가 잘 보고 있는다니까요.”

“하하. 그랬죠.”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시하를 뒤로 하고 원장실로 향했다.

“원장 선생님.”

“네. 어서 와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시하는요?”

“벌써 친구와 놀아요.”

“아. 승준이요?”

“네.”

“잘됐네요. 나중에 헤어질 때 애가 울지는 않겠어요. 그게 아니어도 울지 않을 것 같지만.”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시하가 생각보다 상남자 스타일을 보이기도 하니.

“아, 맞다. 여기 서류들이요.”

“네. 어디 보자.”

역시 제일 먼저 보시는 건 건강검진 결과표였다.

특히 건강 상태라던가 혹시 모를 알레르기가 있나 꼼꼼하게 점검했다.

우리 시하는 건강해서 그런 거 없다.

“으음.”

“사실 이게 시하가 말문이 트이기 전에 받은 거거든요. 지금은 형아라고 잘하고. 그래서 그냥 지켜봐야 할지. 아니면 한 번 더 병원을 가봐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원장이 고민하더니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사실 제가 봐도 시하가 참 어렵거든요. 하필 이때 말문도 트였고. 의사의 의견도 비슷할 거 같은데. 그러면 제 지인에게 한번 검사를 받아 보실래요?”

“지인이요?”

“네. 그 사람이 의사거든요. 솔직히 잘난 척을 좀 많이 하는데 그만큼 실력은 있어요. 연구원 타입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 연애를 못 하지. 흠흠. 뒷말은 잊어 주세요.”

“아, 네…….”

누군지 몰라도 상당히 궁금증을 자극하는 인물이었다.

“이름은 송예나예요. 닥터 송이라고 저장하면 될 거예요.”

“아, 송예나 선생님…….”

“제가 미리 연락은 할 테니까 시하랑 날짜 잡으시면 돼요.”

“이렇게까지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강인대학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분인데요. 뭘.”

“아하. 그래서…….”

“제가 이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건데 유명하더라고요. 대학병원 3대 미녀라던가?”

“엄청 예쁘신가 보네요.”

“예쁘면 뭐 해요. 연구에 미쳐 있는데.”

“보통 그러면 능력 있거나 따뜻한 선배 의사가 나타나서 반하게 되고 그러지 않아요?”

“시혁 씨. 드라마를 너무 보셨네.”

“아, 그런가요? 하하.”

드라마 같은 경우도 가끔 꿈꿀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원장과 좀 더 이야기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시하는 승준이랑 아주 친해졌는지 열심히 다리를 놀리며 공을 차고 있었다.

툭. 데구르르.

시하가 차자 승준이가 구르는 공을 손으로 잡았다.

탓.

“나도 간다!”

“아아.”

툭. 데구르르.

그렇게 서로 주고받는 모습을 승준 엄마가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나도 왠지 저 광경에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축구공 크기가 시하와 승준이가 차기에는 컸다.

그 모습이 웃긴 것이다.

“시하야. 이게 유에뿌 슛이야.”

툭. 데구르르.

UFO가 휘어지는 곡선을 그리는 것과 다르게 정확히 대각선이었다.

“아아!”

시하가 놀란 듯이 옆으로 움직여 공을 잡았다.

“아아. 형아.”

응? 나를 봤나?

“아하하. 시하의 형아 슛은 나한테 안 통한다고!”

아…. 슛에 내 이름을 붙였구나?

“형아!”

시하가 몸을 풀며 공으로부터 발걸음을 뒤로했다.

‘오! 저건 어디서 보고 배웠대?’

나는 마치 승부차기를 보듯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이게 뭐라고. 손에 힘이 꽈악 들어갔다.

‘시하야. 파이팅.’

시하의 눈이 1mm 가늘게 떠졌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나는 시하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을 알았다.

시하가 짧은 다리를 놀리며 뛰어갔다.

툭. 두둥실.

공이 띄워지며 그대로 시하의 이마에 툭 하고 부딪쳤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소리쳤다.

“헤딩슛!!!”

나는 시하에게 달려가 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어. 그 어려운 기술을 쓰다니.”

시하는 실패하지 않았다.

아주 잘한 거다.

뒤에서 두 사람과 한 아이의 시선이 신경 쓰였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미래의 스트라이커야.”

원래 칭찬은 뻔뻔해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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