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500)

10화

“정말 안 돼요?”

“안 됩니다. 뭐. 시하가 원한다면 또 모르죠. 시하야. 이 누나랑 사진 찍을래?”

“아아.”

끄덕끄덕.

나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대신에 어디 올리거나 공유한다거나 하시지 말아 주세요.”

“네. 알겠어요. 너무 귀여워서 같이 찍고 싶어서요. 혹시 개인 인스타라도 있나요?”

“음. 없는데요.”

“아. 진짜 아쉽네요. 혹시라도 만들어지면 영어로 꼭 ‘Siha’라고 해주세요.”

“아, 네.”

“이름도 시하라서 예쁘네요.”

그녀가 무릎을 쭈그리고 앉아서 브이 자를 그렸다.

시하 역시도 손을 척 하고 들었다.

나는 양손으로 내 폰과 여성의 폰을 함께 들었다.

“찍습니다. 김치.”

“김치!”

“아아.”

찰칵. 찰칵. 찰칵.

그녀가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대체 몇 번이나 찍으시나요?”

“아, 저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시하의 사진을 찍다 보면 꾸욱 누르는 게 습관이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폰을 넘겨 주었다.

“혹시 저희도 하나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나는 시하를 안았다.

시하가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어설픈 브이를 했다.

“꺄악. 너무 귀여워!”

찰칵찰칵찰칵찰칵.

저기요? 그쪽도 만만치 않게 찍고 있거든요?

아예 각도까지 바꿔서 찍는다.

옆에 있는 친구들이 부끄러운지 그녀의 등을 찰싹찰싹 때린다.

“그만해. 기집애야.”

“억! 아파. 아파.”

그렇게 폰을 받고 나서 그녀들과 헤어졌다.

정말 정신없었다.

“시하야. 웃긴 누나들이다. 그치? 누나. 누나.”

“아아.”

“누나.”

“아아.”

시하가 내려 달라며 발버둥 쳤다.

땅으로 발이 닿은 시하가 엉덩이를 씰룩대며 걸었다.

아무래도 사진 찍어서 기분이 좋나 보다.

어쩌면 누나들에게 둘러싸여서 기분 좋은 건가?

“형아!”

아니면 나랑 오랜만에 사진 찍어서 좋은 건가?

그건 시하만이 알겠지.

“그래. 간다.”

시하의 보폭을 맞추며 나는 천천히 걸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KI 미디어 사무실이었다.

안을 보니 굉장히 깔끔해 보였다.

“어떻게 오셨어요?”

먼저 나를 본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홍진수 과장님을 찾아왔는데요. 오늘 만나기로 해서요. 이시혁이라고 하시면 알 거예요.”

“아. 시혁 씨…. 지금 대표실에 계셔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렇게 말한 뒤에 여성분이 떠나갔다.

그런데…….

‘왜 다들 나를 보고 있지?’

호기심, 은근한 원망 있는 시선.

다양한 감정들이 보이는 것 같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다들 얼굴이 왜 이렇게 초췌해?’

그때 시하가 나를 불렀다.

“형아.”

“응?”

팔을 들어 올리더니 안아 달라고 한다.

나는 그대로 시하를 안았다.

그러더니 나를 보는 시선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역시 시하의 귀여움은 이 사막 같은 얼굴에 오아시스를 주나 보다.

“오! 미안해요. 많이 기다렸죠? 아니. 다들 이렇게 세워두면 어떡해. 회의실에라도 자리에 앉혀야 할 거 아니야.”

“괜찮아요.”

“그래요. 저 방으로 들어가요.”

나는 시하와 함께 회의실에 들어갔다.

셋이 보기에는 꽤 넓은 방이었다.

“다들 예민해서 그래요. 한태성 주임이 갑자기 퇴사해서 일이 세 배가 되었거든요. 곧 사람이 구해질 거니까 분위기가 좋아질 겁니다.”

“아, 그래서…….”

“아아.”

얼굴이 초췌해질 만했다.

그들이 아마 사정도 알았겠지만 나에게 은근한 원망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라도 아주 조금은 원망했을 것 같다.

“그럼 계약서를 써볼까요?”

“그럼요.”

역시 저 때 본 계약서였다.

출판권설정과 저작재산권 양도.

각 두 부로 되어 있었다.

하나는 내가 갖고 하나는 출판사가 갖는다.

단가는 2,500원에 원고를 넘기고 한 달 뒤에 지급.

계약금은 일단 50만 원 선지급이었다.

나는 꼼꼼하게 확인한 뒤에 사인을 했다.

“계약금은 바로 통장에 쏴줄게요.”

“감사합니다.”

홍진수가 계약서의 계좌번호를 확인하더니 곧바로 돈을 넣어주었다.

이것으로 계약은 끝이다.

이제 이야기 나눠봐야 하는 건 이 책의 번역 방향성이다.

“혹시 원하시는 번역이 방향이 있나요? 원작을 살려서 번역한다든지. 아니면 좀 더 한국식으로 맞게 한다든지.”

홍진수 과장이 눈을 빛냈다.

“진짜 처음 일하는 것 맞습니까?”

“뭐, 이런 부분은 미리미리 말해야 안 부딪치고 시간 손해를 적게 보죠.”

“맞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한국 사람들이 쉽게 읽히는 겁니다. 그것만 된다면 충분히 원작자의 느낌도 살릴 수 있다고 봅니다.”

“어려운 요구네요.”

“하하. 그 부분은 중간 점검으로 맞춰 가보죠.”

“알겠습니다. ‘금색 시곗바늘.’이라는 제목이 좋네요. 의사인 주인공. 골든아워를 빗대서 만든 제목인가요?”

“거기까지 유추 가능하십니까?”

“그냥 직관적으로 생각이 들어서요.”

“제가 스캔본을 파일로 전송해 드리겠습니다. 아마 작업하기 편하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홍진수와 방향성과 분위기에 대해서 조금 더 대화를 나눈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하는 혼자서 펭귄 가방을 가지고 잘 놀고 있었다.

“아아. 아아아? 아아.”

무슨 대화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가만히 듣고 있으면 모스부호 같기도 했다.

홍진수가 말했다.

“그럼 편집부가 어떤 일을 하는지 조금 보시겠습니까? 정말 별거 없습니다만.”

“하하. 괜히 더 미움받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뭐 악의는 없을 겁니다.”

“시하야. 아저씨들이 뭘 하며 일하는지 보자.”

“아아.”

우리는 회의실에서 나왔다.

힐끔힐끔.

다들 일하면서 우리를 굉장히 신경 쓰는 것 같았다.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모니터로 고개를 돌린다.

‘재밌네.’

홍진수가 여러 곳을 소개해 줬다.

나는 아까 원망이 섞인 사람의 컴퓨터를 힐끗 보았다.

대충 눈치를 보니 여기 대리인 모양.

특히 20여 개의 신간 책들을 보고 있었다.

아마도 이게 한국에 맞는지 검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걸 다 검토하려면 업무란 업무는 아예 못한다고 봐야 했다.

평소의 업무까지 하며 하루에 한 권을 본다고 해도 20일이나 걸릴 것이다.

‘조금 원망을 덜어봐?’

나는 그 대리에게 가까이 갔다.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지금 보고 계시는 건 한국에 안 맞을 것 같은데요.”

“으응?”

대리가 나를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보았다.

“소설을 보시는 것 같은데 그냥 평타 치는 것 같은 경우만 분류하려면 말글이 되는 것을 보면 돼요.”

물론 영어 원서로 말글이 되는 걸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미묘한 뉘앙스와 어조, 분위기 등.

그것은 ‘상상’의 영역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아주 잘 보인다.

그 기준으로 어떻게 선별을 해야 할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어의 지식이 물밀 듯이 올라오며 화합작용을 했다.

“잠시만 실례해도 될까요?”

“어, 그래요. 해 봐요.”

글을 찾아 검토하는 건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대리는 손쉽게 허락했다.

나는 스캔본들을 빠르게 약 20쪽 정도만 훑어보았다.

그 정도만 보아도 충분하다.

순식간에 20여 개의 책이 띄워지고 닫혔다.

그중 현대면서 한국이 공감 갈 수 있는 이야기들을 선별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인기 없었던 책이 한국에서 성공하는 사례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대략 5개 정도가 필력이 편안하고 괜찮네요. 대작을 찾는 것만 아니라면 이것만 검토해도 될걸요?”

내가 손을 떼자 대리가 화들짝 놀라며 5개의 책 중의 하나를 골라서 읽기 시작했다.

“허…….”

나는 피식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

“일이 좀 줄어들었죠?”

“이걸 어떤 기준으로 분류를 했는지 좀…….”

“아. 죄송해요. 제가 다른 분들은 어떤 업무를 하는지 궁금해서.”

“잠, 잠깐만.”

굉장히 오래 걸리는 작업을 단시간에 끝낸 나를 대리가 뒤따라왔다.

다들 이런 소동에 관심이 있는지 손과 눈을 움직이면서 귀를 쫑긋 세웠다.

나는 그 모습이 마냥 웃겼다.

“아아.”

도리도리.

시하가 대리에게 손바닥을 척 보이면서 고개를 저었다.

대리와 시하의 대치 상황.

대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저기. 아가야. 잠시 좀 지나갈게.”

“아아.”

“으으. 나 놀아줄 상황이 아닌데. 근데 애는 너무 귀엽고.”

나는 심각하게 고민하는 대리를 뒤로하고 다른 사람들의 작업을 보았다.

한 직원이 나를 기다렸는지 어깨에 힘을 팍 주었다.

자신은 지적을 당하지 않겠다는 완고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딱 보니까 교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둥. 둥.

문자들의 향연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거슬리는 부분에서 나는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 committed 단어 해석이 틀렸어요. 전념이라고 번역한 것 같은데 원래 이 단어가 한국어로 표현하기 모호하거든요. 이왕이면 좀 더 풀어서 이렇게. 잠시 실례할게요.”

다다다닥.

내가 이렇게 수정해 주자 직원의 눈이 커졌다.

“어? 자연스럽네?”

“그쵸? 조금 딱딱한 것보다 자연스러운 게 낫지 않아요? 이게 번역가도 모르고 지나치는 거거든요.”

“와. 진짜 고마워.”

그때 편집자 한 명이 나를 불렀다.

“저기. 혹시 이것 좀 봐줄 수 있어?”

편집자 한 명이 가리킨 곳에 번역가가 밑줄을 쫙 쳐놓은 부분이었다.

전혀 이해가 안 가는 문장.

이건 원서의 말이 너무 어려워서 두루뭉술하게 넘어간 것이다.

그래 놓고 중요하다고 밑줄을 그어서 보낸 경우.

편집자로서는 여간 골치 아픈 일이었다.

“와. 심하네요. 주어와 서술어 따로 놀고. 이 옆에 있는 게 원문이죠? 어디 보자. 작가 이력 좀 볼게요.”

전자공학과를 나온 이력이 있었다.

그러면 기술적인 묘사나 번역을 했다는 것이다.

머릿속에서 무언가 스파크가 번쩍 튀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이해되지 않는 어긋한 문장들이 다시 재정립되었다.

“아마 이 작가는 이런 의미로 썼을 거예요. 반도체 공정 과정을 예로 들어서 어려웠네요.”

순식간에 하나의 문장을 만들어 주자.

“어?! 이거야!”

어느새 사람들이 내 뒤를 우르르 보고 있었다.

“와, 이게 말이 돼?”

“초보 번역자라며?”

“천상 편집자 아니야?”

“나도 번역가 중에 꽤 난감한 원고가 있었는데…….”

“잠시만요. 시혁 씨. 여기 질문 좀.”

그때 홍진수가 나와서 눈을 부라렸다.

“어허. 어디서 우리 시혁 씨에게 일을 시키려고 해. 시혁 씨가 번역가지. 편집자야? 다들 일들 하러 가. 이 정도 시간을 줄여줬으면 됐지. 일단 시혁 씨. 제가 하는 일 좀 구경하실래요? 원래 이런 건 높은 직급의 일을 해야 전체적으로 보이는 법이거든.”

그때 다른 직원들의 반발이 일었다.

“헐. 과장님. 그러면 제 일을 봐야죠. 원래 밑에서 하는 일이 또 첫 계단 아닙니까.”

“아니지. 이런 건 중간부터 봐야 아래위로 다 보이는 거라고.”

“일단 과장님. 우리 시혁 씨라뇨? 그 어깨에 손 좀 놓고 이야기하시죠.”

홍진수가 얼굴을 구겼다.

“뭐라는 거야. 나 과장이야. 과장.”

“와 언제는 가족같이 대하라더니. 이제 직급으로 찍어 누르네.”

“별수 있나. 힘없는 우리가 물러나야지.”

홍진수가 말했다.

“이것들이?!”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시하를 찾았다.

‘아 시하가 어디 있지?’

가만히 보니 아직도 시하랑 대리가 마주하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대리가 쪼그려 앉아서 시하의 눈높이를 맞춰주고 있다고나 할까?

“너희 형 덕분에 일이 얼마나 줄였는지 몰라. 무려 20권을 5권으로 줄여줬다고. 하루에 한 권만 보고 판권 확인하고 계약만 하면 끝이야.”

“아아.”

“내 명예를 걸고 이런 일감은 너희 형에게 줄게.”

“아아.”

“어때 굉장한 거래지? 그러니 이제 비켜줄 수 있어?”

도리도리.

“너 쫌 하네? 그래. 단가도 내가 과장님이나 대표님에게 잘 말해 볼게. 너 신인이 아니라 원래 번역가 단가를 받는 게 얼마나 이례적인지 모르지?”

“아아.”

“그러니까. 내가 잘 말해 보겠단 말이야.”

“아아.”

시하는 편집자에게 영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시하가 영업사원이 되는 것이 상상돼서 웃음이 나왔다.

혹시 우리 시하 영업에 재능이 있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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