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500)

8화

리틀 카페로 가는 길.

시하가 펭귄 가방을 메고 엉덩이를 흔들며 길을 걷고 있다.

뒤에서 보니 펭귄이 뒤뚱뒤뚱 걷는 것 같아서 귀엽다.

“형아.”

“그래. 갈게.”

나는 시하와 보폭을 맞췄다.

짧은 다리로 열심히 걷는 것을 보니 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같이 와줘서 고마워요. 형.”

나는 옆에 있는 문도환을 돌아보았다.

“말했잖아. 부탁할 일 있으면 언제든지 부탁하라고.”

“시하가 좀만 더 컸으면 혼자 입장할 수 있었을 건데. 36개월 미만이면 부모 동반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네요.”

리틀 카페는 키즈 카페이다.

근처에 있는 걸 고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비용이 비싸다고 중얼거리기는 했지만 시하가 재밌게 놀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는 생각이었다.

“약속 시각보다 일찍 도착하는 거긴 한데 그때까지 놀아줘야죠.”

대략 1시간 30분이면 시하도 가자고 할 것이다.

거기에 맞춰서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거다.

저 1시간 30분으로 시하의 낮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으니 이득이었다.

문도환이 말했다.

“그런데 네 번역이 마음에 들었나 봐? 이렇게 계약도 하고.”

나는 잠시 묘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그 부분을 자세히 듣고 싶었는데 오늘 못 온다네요.”

“왜?”

“갑자기 출장이 잡혀서 미안하다고 하네요. 원한다면 다른 시간에 잡자고요. 아니면 다른 분을 보낼 테니 계약을 하자고도 하고요.”

“아. 그래서 다른 사람이 오기로 한 거네?”

“네. 그렇죠. 저도 일일이 시간 내기도 그렇고 해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빨리빨리 치우자는 생각도 들어서요.”

“페이는 좋게 준대?”

문도환이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면서 물었다.

“단가의 반 정도만 준대요.”

“단가의 반이면 얼마야?”

“한 매에 1500원이요. 아니면 2천 원일 수도 있고요.”

“그거밖에 안 돼?”

“어쩔 수 없어요. 원래 신인에게는 야박하니까요.”

“하긴 아직 경력도 없는 생초짜라 어쩔 수 없나? 인턴이라고 생각해.”

“하하.”

나는 그저 웃었다.

나는 시하를 보았다.

펭귄 가방이 열심히 흔들리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무언가 보고 있었다.

“시하야. 뭐 봐?”

“형아.”

시하가 손가락으로 나무막대를 가리켰다.

우리는 시하 근처에서 쭈그리고 앉았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저 셋이서 뭐 하는 걸지 의문이 들 것이다.

“개미네?”

“아아.”

“이건 개미야. 개미.”

“아아.”

나무막대가 무엇을 담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개미들이 바글거렸다.

시하가 손을 가져가려고 하자 나는 탁 잡았다.

“아?”

“지지야. 지지. 이거 봐. 개미들이 엄청 놀라할 걸? 우리 개미들을 괴롭히면 안 돼요. 시하는 착한 애니까 안 그럴 거지?”

“아아.”

시하가 고개를 내리더니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럴 줄 알았다.

그래서 약속 시각 1시간 전에 빨리 나온 거기도 하다.

우리 시하는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니까.

셋이서 이렇게 쪼그리고 앉아 있으니 사진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형. 우리 사진 찍어요.”

“오. 좋은 생각인데?”

나는 폰을 꺼내서 카메라 기능을 켰다.

화면에 셋이 나오자.

“자. 김치~”

문도환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고, 나는 눈웃음을 쳤으며, 시하는 고개를 숙인 채 손을 들어 어설픈 브이 자를 만들었다.

찰칵.

“푸하하. 대박. 시하 너무 웃긴 거 아니야?”

문도환은 그런 시하의 시크한 모습이 웃긴지 배를 잡았다.

나는 그저 귀여워 보였다.

사진도 찍고 싶고 개미도 보고 싶고.

그런 생각이 눈에 들어와서.

“형은 왜 이렇게 개구쟁이같이 찍어요? 사진에 장난기가 가득하네.”

“야. 사진은 원래 이렇게 찍는 거거든? 어차피 멋있지도 않는 얼굴. 웃기게라도 나와야지.”

뭔가 말에서 슬픔이 느껴진다.

더 파고들지 말자.

슬퍼질 것 같으니까.

그래도 나름의 위로를 건네 본다.

“형은 착해서 괜찮아요.”

“그래. 소개팅에 소개해 줄 때 늘 표현해 주는 멘트 고오맙다.”

“하하. 이제 갈까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일어났다.

“시하야. 가자.”

“아아.”

시하도 실컷 봤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심스럽게 발을 떼면서 개미를 안 밟을 수 있도록 반원을 그리며 걸었다.

“형아.”

“그래. 잘했어. 개미 안 밟았네?”

“아아.”

나는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옆에 있는 문도환이 말했다.

“여자들은 머리 만지는 걸 싫어해.”

“아, 형. 그만 트라우마에서 나오세요.”

그렇게 문도환의 트라우마를 뒤로하고, 우리는 리틀 카페에 도착했다.

시하는 새로운 세상에 충격을 받았는지 그대로 굳어 있었다.

“시하야. 오늘은 저기서 놀 거야.”

시하의 눈이 1mm 커졌다.

도도도.

달려가서 들어가는 입구에 털썩 앉았다.

발을 동동 구르며 시하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형아.”

“그래. 그래. 신발 벗고 들어가자. 형. 들어가 있어 주세요. 제가 요금 내고 올게요.”

“알았어.”

입장료는 총 12,000원이 들었다.

다행히 커피 20% 할인권만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여기서 커피 값은 KI 미디어에서 오기로 한 한태성 주임이 낼 것이다.

“형아.”

이미 볼풀장에 들어간 시하가 나를 불렀다.

윗머리만 빼꼼 보여서 나는 풋 하고 웃어 버렸다.

“금방 갈게.”

내가 볼풀장에 들어가자 시하가 공을 휙 하고 던졌다.

얼마 못 가 아래로 떨어졌다.

이럴 때는 칭찬을 해 줘야지.

“와! 시하 대단해! 벌써 포크볼을 쓸 줄 아는 거야?! 이러다 우리 시하 메이저리거 되는 거 아니야?”

옆에 있는 문도환이 중얼거렸다.

“저게 어떻게 포크볼이야.”

나는 그런 문도환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그냥 칭찬해 줘요. 이렇게 놀아주는 거예요. 형은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 나 애 키워 본 적 없다. 네가 좀 가르쳐줘.”

“일단 무조건 잘했다. 오구오구 하면 되는 거예요.”

문도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그래도 돼? 그건 너무 그렇지 않아?”

“뭐가요? 실제로 우리 시하 엄청 잘하거든요?”

“그래. 그렇다고 하자.”

“형아.”

“어. 어.”

나는 시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아래로 내려서 공을 튕겨 올렸다.

시하가 공의 비를 툭툭 맞았다.

“아아.”

“형. 봤어요? 완전 흥분한 표정이에요.”

“저게?”

“왜 이래요. 이번에 표정 변화가 풍부하구만.”

“저게? 잠깐만. 나 시하랑 의사소통할 자신이 없어졌어.”

“무슨 영어 울렁증도 아니고. 외국어 배울 때 의사소통을 무서워하면 하나도 안 늘어요.”

“너 지금 시하와의 의사소통이 외국어랑 동급인 거 인정하는 거지?”

“무슨 말이에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렇게 시하랑 놀면서 문도환에게 의사소통을 30분간 알려 주었다.

물론 둔재라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나는 이걸 주입식 교육의 폐해라고 생각했다.

***

한태성은 리틀 카페 앞에 도착했다.

드디어 그 잘난 얼굴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네.’

카페 문을 열고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한태성입니다. 지금 도착했습니다. 어디 계신지?”

「아! 볼풀장에 있습니다.」

한태성이 고개를 돌리자 전화를 받는 한 남자가 보였다.

선한 인상.

어떻게 보면 고등학생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동안이었다.

23살. 괜히 더 어려 보여서 더 만만하게 보였다.

사람을 만나봐서 아는데 굉장히 호구같이 보였다.

‘그럼. 그렇지.’

아직 사회생활에 때도 안 묻었을 것 같아 보여 진하게 웃음이 나왔다.

한태성이 고개를 숙이며 전화를 끊었다.

“안녕하세요. KI 미디어의 한태성 주임이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이시혁입니다.”

“그럼 계약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혹시 음료는 어떤 걸 좋아하세요?”

“아. 저는 그냥 아메리카노요. 그리고…. 잠시만요. 제 일행이 있는데 혹시 뭐 마실지 물어볼게요. 괜찮죠?”

“네. 미리 누가 나올지 들었으니까요.”

이시혁이 한 아이에게 가더니 뭘 먹고 싶냐고 물어보고 있었다.

“아아.”

“아이스 아메리카노?”

“형. 시하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을 리가 없잖아요. 딸기 쉐이크면 되겠다. 시하도 좋지?”

“아아.”

“형은 뭐 드실 거…….”

그런 대화가 오간 후에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먼저 이게 계약서입니다. 표준으로 작성했습니다. 한번 보시죠.”

이시혁이 도장이 찍힌 계약서를 넘기기 시작했다.

사라락. 사라락.

한태성은 그걸 보면서 ‘네가 보면 뭘 알겠어.’라는 생각을 했다.

꼼꼼히 읽어본 시혁이 계약서를 식탁 위에 올렸다.

“이게 표준 계약서라고요?”

“그렇죠. 단가 2000원에 252쪽. 원고지 1516매. 3백 3만 2천 원. 그것만 확인하면 되는 거죠. 솔직히 2천 원도 많이 쳐준 겁니다. 시혁 씨 아니더라도 더 싼 가격에 할 사람은 많으니까요.”

“그건 그렇긴 하죠.”

한태성이 피식 웃었다.

이제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끝나는 일이다.

아주 쉽다.

그런데…….

‘쟤 표정이 왜 저러지?’

사람의 인상이 한순간에 바뀔 수 있을까?

마치 연약한 동물을 잡아먹으려는 사자 같았다.

“혹시 양아치세요?”

“뭐?”

한태성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누가 자신의 면전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던가?

“너 임마. 방금 뭐라고 했어?”

“저는 한태성 씨와 다르니까 정중하게 얘기드리죠. 여기 이 부분.”

이시혁이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출간 후 1개월 이내 지급]

“인세 계약도 아니고 매절 계약인데 책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이유가 뭐죠? 이건 책이 안 나오면 원고료를 주지 않겠다고 봐도 되나요?”

한태성이 허를 찔린 듯이 대답하지 못했다.

“쯧쯧. 제가 업계 사정을 하나도 모른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한태성은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렇게 계약금을 주지 않거나 원고료를 차일피일 미루는 것이 흔했으니까.

“이건 출판사 재정 사정을 조금 고려해 줬으면 합니다. 책이 인쇄되고 팔리면서 우리도 돈이 들어오니까요.”

“아하. 그러시다? 그러면 계약서에 빼먹은 내용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건 완전 빼박인 거 같은데?”

“또 뭡니까?”

“번역가의 이름을 책에 넣어준다는 부분이 빠졌잖아요.”

그 말에 한태성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아.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당해 보기는 처음이네요.”

시혁이 한숨을 한 번 쉬고 말을 이었다.

“저기요. 작년 신간 발생 종수가 대략 4만 8천 권이에요. 그중 문학 서적은 1만 5백 권. 전체의 21.8%. 그중 번역서는 2천 3백에 가장 많이 출간되는 영어 번역은 800권뿐이에요. 소설 번역가가 1년에 5권을 한다고 했을 때 160명이라는 결과가 나오죠.”

시혁이 계약서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그 좁은 자리를 통과해야 번역가가 되는 거죠. 경력을 쌓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시급도 안 되는 일을 하는 신인이 많은데 이렇게 등쳐먹어도 되는 겁니까? KI 미디어는 일을 이렇게 하나 보죠?”

한태성이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이렇게 정확히 업계의 사정까지 파악했을 줄이야.

작년 통계는 또 어디서 봤단 말인가.

이런 걸 요즘 대학생이 관심이 있어 하나?

다들 공무원에만 관심이 있지.

“아무튼, 저는 이 계약서대로 못 하겠습니다.”

시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맞다. 혹시 이 사실 홍 과장님도 알고 있습니까?”

여러 대를 쉴 새 없이 맞은 한태성은 말문이 막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 모르시는구나?”

“자, 잠깐만요.”

“이 계약서는 제가 증거로 들고 갈게요. 그리고 따라오지 마세요. 나 참 더러워서. 어딜 시하 장난감 못 사주게 사기를 쳐.”

한태성은 바보같이 앉은 채로 굳어버렸다.

머릿속이 상당히 복잡해졌다.

시혁은 일행들에게 뭐라 뭐라 말하더니 놀이방에서 빠져나왔다.

시하가 한태성을 보았다.

그러자 시혁이.

“시하야. 지지야. 지지. 보지 마.”

그러자 시하가 귀여운 팽귄 가방에서 티슈 한 조각을 꺼내더니 한태성에게 도도도 달려와 던져 주었다.

“아아.”

하나의 티슈가 한태성의 무릎에 닿았다.

팔랑거리는 티슈가 그의 정신 상태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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