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어린이집으로 가는 길.
나는 시하의 손을 꼬옥 잡으며 재잘재잘 말을 했다.
이렇게 계속 말하는 이유는 시하의 말문이 트였기 때문이었다.
아직 ‘형아, 아빠, 엄마’밖에 못했지만 앞으로 더 자주 말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있는 건 자동차야. 자동차.”
“아아.”
“저기 휙 하고 가는 건 자전거. 자전거.”
“아아아.”
역시 ‘아아’만 하는 건가?
언어발달 속도가 느려서 조금 고민이 든다.
또래를 봐도 많이 느린 편일 것이다.
그렇게 걸어가고 있는데 앞에 외국인들이 있었다.
시하는 신기한지 그 외국인들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저기 외국인들이 신기해? 말하는 거 들리지? 영어야. 영어. 그런데 따갈로그어 발음이 섞여 있네? 필리핀 사람인가 보다. 필리핀.”
“아아.”
그렇게 말하던 나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
내가 따갈로그어 발음이라는 것을 어떻게 구별하는 거지?
사실 나는 스피킹에는 별로 자신이 없었다.
한국은 독해와 듣기 위주의 입시 공부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토익을 졸업 인증으로 넣을 정도로 한국에서는 높게 친다.
실제로 대화를 할 때 과연 토익이 도움이 될까?
토익은 일본에서 무역 업무를 담당할 인재들의 영어 실력을 검증하기 위해 미국 EST라는 사설 기관에 의뢰하여 만든 영어 시험이다.
‘이건 또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어디서 들었나?’
이상한 지식이 끼어 있는 기분.
“형아?”
“어? 응. 가자.”
나는 시하와 함께 걸으면서 머리를 굴렸다.
주변에 외국인들이 많다.
특히 필리핀 사람들.
외국인 노동자로 아침 출근을 하는 건지 대화가 활발하다.
신기하게도 그들이 말하는 억양과 강세가 각자 다르다는 것이 느껴진다.
“저기 저 사람도 필리핀 사람인데 좀 더 미국 베이스에 맞게 네이티브한 발음이네. 강사를 하는가 봐. 아, 말이 어려웠지? 영어. 영어. 영어. 이것만 기억해도 무척 똑똑한 거예요.”
발음만 들어도 국적이 구별되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확실한 것은 나에게 원래 이런 능력은 없었다는 것이다.
의심해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면.
‘아버지의 노트북을 만졌을 때였나?’
찌릿하고 정전기가 통했을 때 신비하게 잠이 들어버린 경험.
어쩌면 그 노트북에 무언가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닐까?
갑자기 새로 생긴 능력에 어안이 벙벙했다.
이건 마치 초능력을 획득한 기분이었다.
기분이 무척 들떴다.
“시하야. 형이 돈 많이 벌어서 맛있는 거 많이 사주고 과자도 엄청 사줄게.”
시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그것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아.”
시하가 오른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퉁퉁 쳤다.
“응?”
“형아.”
손을 꼼지락거리면서 무언가 쥐는 시늉을 하더니 나에게 주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가슴을 다시 한번 친다.
“설마 시하도 형아에게 많이 준다고?”
“아아.”
나는 감동 먹었다.
세상에서 이렇게 착한 애가 어디 있을까.
보디랭귀지를 보니 천재인 게 틀림없다.
모든 의사소통을 이렇게 하다니.
잠깐만. 설마 이런 비언어적인 표현이 발달해서 언어발달이 느린 건가?
그런 생각을 할 때 시하가 손을 잡아당겼다.
“형아.”
“응?”
시하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노트북을 맡길 수리점이었다.
“벌써 도착했네? 일단 노트북만 맡기고 금방 어린이집으로 가자.”
“아아.”
나는 노트북을 들고 수리점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네. 어서 오세요.”
“이걸 맡기려고 하는데요. 전원이 켜지는데 화면이 안 나와서요.”
“아, 그래요? 어디 보자.”
점원이 전원을 켰다.
위이잉.
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며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응? 켜지는데요?”
“어? 왜 켜지지?”
“흐음. 이런 일도 있나? 메인보드가 고장 난 경우인 거 같은데. 다시 켜지니 고장이 아닌가?”
“그럼 메인보드를 바꿔야 해요?”
“다시 불이 들어오는 걸 보니 이건 배터리 문제일 수도 있겠네요.”
“아. 그런가요?”
“네. 메인보드가 고장 났다면 이렇게 다시 불이 들어오지 않았을 거 같거든요.”
“알겠습니다. 으음.”
“일단 이물질 때문일 수도 있으니까 청소도 좀 하고 배터리도 교체해 두겠습니다. 메인보드가 문제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죠.”
“네. 나중에 찾으러 갈게요.”
저장해둔 것을 안 날려도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물론 백업을 해둔 게 있지만, 만능은 아니니까.
그런데 대체 왜 노트북이 되는 거지?
***
강인어린이집.
애들이 뛰어놀 수 있는 마당도 있고 놀이터도 있었다.
바닥은 애들이 다치지 않게 푹신한 매트(?) 같은 것으로 깔아둔 것도 보인다.
놀이터의 꽃은 개인적으로 그네라고 생각하는데 위험성 때문인지 없앤 것 같았다.
작은 미끄럼들과 한 칸으로 되어 있는 정글짐이 많았다.
‘여기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어린이집이라는 거지?’
대학교 내에서 복지를 위해 운영하는 곳.
그래서 애들 인원수도 많지 않다고 했다.
다른 어린이집에 듣기로는 10명을 한 반으로 운영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시하야. 이제 3월부터 다닐 어린이집이야. 어때? 마음에 들어?”
“아아.”
시하가 눈을 빛내며 미끄럼틀을 보았다.
무게 중심을 앞으로 하며 몸이 기울였다.
팔에 대롱대롱 매달린 시하는 저쪽에서 놀고 싶다는 의사 표현을 온몸으로 하는 중이었다.
“어? 일단 어린이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시무룩.
시하의 눈꼬리가 1mm 정도 내려왔다.
저건 실망하는 표정이었다.
“대신 상담 끝나면 형이랑 같이 미끄럼틀 타자. 약속.”
내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시하가 한 손으로 잡았다.
아직 새끼손가락 내기는 힘든가?
“꼭꼭. 약속입니다.”
“아아.”
“호호호. 사이좋네요.”
그때 어린이집 앞에서 여성분이 나오셨다.
“안녕하세요.”
“아아.”
“네. 안녕하세요. 연락은 받았어요. 시혁 씨죠? 여기는 시하고.”
“네. 맞아요. 오늘 상담하러 왔어요.”
“네. 일단 안으로 들어오세요.”
나는 시하와 함께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도 상당히 잘 꾸며져 있었고, 깔끔했다.
여러 블록도 있는 것 같은데 아이들 놀기에 좋아 보였다.
“여기로 오세요.”
“네.”
자리에 앉은 나에게 그녀는 시하도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주었다.
“제가 강인어린이집 원장이에요. 시하야. 그림 그리거나 스티커 붙이기 놀이 하고 있을래?”
원장 선생님은 시하에게 선택지를 넘겼다.
왼손에는 스티커, 오른손에는 뭉툭한 왕연필.
아주 신중하게 고르는 모습이 퍽 귀엽다.
스티커를 떼서 앞에 있는 스케치북에 붙이고, 왕연필을 가지고 거기에 날개를 그리기 시작했다.
“와. 애 창의성이 좋은데요?”
“하나를 선택하지 않고 둘 다 가지겠다는 저 발상이 똑똑하죠. 저희 시하가요. 얼마나 똑똑하면요.”
“아, 그 전에 상담부터 해요.”
시하의 똑똑함을 알릴 기회였는데 아쉽다.
아무래도 쉽지 않은 상대였다.
많이 다뤄봤다는 저 인자한 웃음을 봐라.
“일단 운영 안내서는 천천히 보시고. 필요한 것부터 말씀드릴게요.”
“아, 네.”
두툼한 운영 안내서를 받았다.
장수가 꽤 되어 보였다.
뭔가 많아 보여서 신뢰도가 급격하게 상승한 느낌이다.
이런 꼼꼼함이 부모님들을 안심시키는 거겠지.
“먼저 필요한 서류는 입학원서, 영유아 건강검진 결과서예요. 가족관계증명서도요. 현재 재학 중이시니까 재학증명서도 가져오시면 되겠네요. 일단 수입이 전혀 없으시니까. 이것도 낼 서류거든요.”
“의외로 서류들이 필요하네요?”
“학생을 위해 따로 제출할 서류들이 있어서 그래요. 아무래도 어린이집이 강인대학교에 포함된 재단 소속이다 보니까요.”
“그…. 돈은 무료라고 들었는데요.”
“네. 맞아요. 재단에서 전부 지원해 주거든요. 그래서 여기 교직원이 아닌 사람들이 들어오기 힘들죠.”
“들어오는 경우도 있나요?”
“학생 같은 특별한 경우죠.”
“그렇구나.”
부모님을 잃지 않는 이상 여기에 들어올 수는 없는 것 같았다.
“잘 모르시는 거 같으니까 간단히 준비해야 할 부분만 짚어 드릴게요. 시하가 자주 자는 낮잠 이불은 준비해 주셔야 해요. 그리고 여기서 한두 시간 정도 보호자가 놀아주셔야 하고요. 일종의 적응 기간이에요.”
“아. 놀아줘야 하는 거구나.”
“나중에 막상 개학했을 때 부모님 없다고 울 수도 있으니까요.”
“흐음. 울까요? 우는 모습을 본 적이 별로 없어서.”
“그래도 서운해하기는 하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시까지 온다고 거짓 없이 약속하는 것도 좋아요. 여기 입학원서를 써주시고.”
“네.”
나는 시하의 입학원서를 썼다.
가만히 보고 있던 원장 선생님이 말했다.
“시하가 12월생이네요?”
“네. 겨울에 태어났어요.”
“아까 보니까 언어발달이 많이 느린 것 같던데요. 병원은 가보셨어요?”
“글쎄요. 어머니가 데려가셨는지도 모르겠네요. 아무 말씀 없으셨던 거 보면 정상일지도 모르고.”
“형아라는 말문은 언제 트였는데요?”
“형아, 아빠, 엄마. 이 세 개를 말하는 데 2주 전 정도?”
“그렇구나.”
원장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시하를 봤다.
“제가 본 아이 중에서도 굉장히 느린 편이에요. 시하야.”
“아아.”
시하가 휙 고개를 들어 원장 선생님을 보았다.
“오늘 여기서 형아랑 놀 거야. 너도 좋지?”
끄덕끄덕.
원장 선생님은 시하에게 여러 말을 해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말은 굉장히 잘 알아듣는데 말을 못 하는 게 참 이상하네요. 혹시 안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로. 혹시 모르니까 병원에 상담받으러 가세요.”
“네. 알겠습니다.”
시하는 정말 안 하는 걸까?
아니면 못 하는 걸까?
말문이 트였으니 자연스럽게 말을 하게 될 거라 너무 낙관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시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네.’
사각사각.
시하가 다시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게 보였다.
날개가 아주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었다.
뿔도 있고 신발도 있고.
이런 건 대체 어디서 보고 습득한 걸까?
천사 날개에 악마의 뿔이라.
혹시 나중에 미대에 보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럼 대충 설명은 끝났고, 안내서는 지금 보시겠어요? 아니면 집에서?”
“집에서 보겠습니다. 서류는 챙겨서 가져다드릴게요.”
“메일로 보내셔도 돼요.”
“그냥 직접 가져다드릴게요. 시하랑 여기 놀 수도 있고, 적응도 해야 하니까요.”
“알겠어요.”
“아. 혹시 어린이집을 도울 수는 없나요? 공강 시간이나 그럴 때요.”
“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제가 과보호 기질이 다분하거든요. 심지어 봉사 활동도 채워야 하고. 자주는 아니더라도요.”
“아! 봉사 활동 시간을 여기서 채울 수 있죠. 유아교육학과 애들이 자주 봉사를 오긴 해요.”
“아하.”
“프로그램 같은 것들도 학생들이 도와주기도 하며 봉사 시간을 채우거든요.”
“그럼 괜찮겠네요. 부탁드립니다.”
원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시하가 독립하기에는 한참 멀어진 거 같은데요?”
“크흠.”
“뭐. 아직 세 살이니까. 그것도 좋긴 하죠.”
“감사합니다.”
“그럼 일어나서 적응 기간 좀 가져볼까요?”
“좋죠. 시하야. 가자.”
“형아!”
“응?”
시하가 기다란 그림을 그렸다.
생긴 게 꼭 미끄럼틀 같았다.
“미끄럼틀 타러 가자고?”
“아아.”
“그래. 가자. 안에 말고 밖에부터 나가도 되죠?”
“그럼요.”
나는 시하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형아.”
“그래.”
나는 시하와 함께 미끄럼틀을 올라갔다.
“형은 내려가 있을게.”
“형아.”
“응?”
나를 한 번 가리키고 자신을 한 번 가리키더니, 미끄럼틀을 가리켰다.
“같이 타자고?”
“아아.”
“미안해. 형아 엉덩이가 너무 커서 안 들어갈 거 같아.”
실제로 아동용에 맞췄는지 폭이 좁았다.
시무룩.
시하가 몸을 돌리며 미끄럼틀에 앉았다.
뒤를 휙 돌아보더니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나만 알 수 있는 시그널이었다.
‘으윽.’
저 눈빛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다.
‘안 되면 되게 해야지.’
나는 시하를 안아 들었다.
“그럼 형이 먼저 탈게. 그다음 시하가 내려오자. 어때?”
요점은 시하가 나랑 함께 즐기로 싶다는 것.
나는 차선책을 선택하기로 했다.
몸을 옆으로 누우면 미끄럼틀을 탈 수 있다.
“형 먼저 내려간다.”
슈웅.
높이도 높지 않아서 금방 발이 땅에 닿았다.
“형아!”
“어, 잠깐만!”
시하가 엎드려서 내려왔고 내 얼굴에 시하의 엉덩이가 푹 하고 닿았다.
“악!”
그때 폰에 벨 소리가 울렸다.
커쥬 얼 마이 걸~
유어 더 원 댓 아이 인비젼 인 마이 드림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