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수요일 아침.
배에 묵직한 게 느껴져 눈을 떠 보니 시하가 내 위에 올라와 있다.
‘무거워.’
나는 몸을 일으킬까 생각하다가 그냥 두기로 했다.
괜히 깨우고 싶지 않았다.
내 배의 안위보다는 시하의 잠이 소중하니까.
그냥 놔두자.
그렇게 머리맡에 있는 폰을 보고 있는데 굉장히 압박이 심해진다.
아무래도 한계가 왔다.
사랑하는 동생이지만 목숨의 위협을 하는 한 나의 자비를 바라면 안 된다.
나는 좋은 형은 못 되나 보다.
살며시 들어서 옆에 눕혔다.
대체 왜 내 위에 올라가서 잔 거지?
그런 의문이 들 때쯤 폰이 웅웅 울렸다.
[문도환 형]
그러고 보니 장례식장에서 위로받고 아무 연락 없었네.
이렇게 무심한 나인데 이 사람은 나를 챙겨주기 위해 연락을 한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근로 장학생으로 일할 때도 취업센터에서 나를 많이 배려해준 교직원 형이다.
띡.
전화를 받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잘 지냈어?」
“네. 형. 죄송해요. 제가 먼저 연락했어야 했는데.”
「무슨 소리야. 지금 네가 바쁜 거 다 아는데.」
“어떻게 아는데요?”
「내가 네 상황 몰라? 지금 심정 엄청 복잡하고, 이사 갈 집 준비하고, 일거리도 알아보겠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지.
점집이라도 차려야 하는 것 아닐까?
“일단 어디로 이사를 할지부터 정해야 일을 하겠죠.”
「그러지 말고 내가 할 말이 있으니까 학교로 와. 아니다. 아직 점심 전이지? 점심때 보자. 내가 시하가 기가 막히게 좋아하는 거 사줄게.」
“형. 아직 시하 세 살이에요.”
「알아. 내가 아는 이모가 있는데 거기 미역국이 맛있대. 애들도 좋아하고.」
너무 자극적이지만 않으면 먹어도 될 것 같다.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많다는 것도 알려줘야지.
“무슨 집인데요?”
「그냥 밥집이야. 이모네 밥집.」
아는 이모가 그 이모인가?
이름은 외우기 쉬워서 좋은 것 같았다.
“알겠어요. 시하 데리고 갈게요. 마침 밖에 데리고 나가려고 했는데 잘됐네요.”
「그래. 그럼 점심에 보자.」
통화가 끝나자 곧바로 주소가 날아왔다.
하여간 이런 건 빠르다.
나는 자는 시하를 깨우기 위해 돌아왔다.
“아아.”
“시하 벌써 일어났어? 아. 형아 통화 소리가 컸어?”
시하가 멍하니 앞을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각 티슈를 질질 끌고 오더니 아침의 할 일부터 하기 시작했다.
‘역시 규칙적인 사나이야.’
나는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머리를 감고 수건을 집는데 시하가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시하도 씻게?”
“아아.”
“그래. 씻자.”
대충 머리를 털고 시하를 위한 앙증맞은 슬리퍼를 놓았다.
토끼 모양의 슬리퍼를 신은 시하가 자신의 팔을 내밀었다.
팔을 걷어 달라는 거겠지.
이렇게 시하는 스스로 씻으려고 하는 장한 아이다.
표정만 풍부하면 완벽할 텐데.
“그럼 씻을까?”
시하 전용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내밀었다.
시하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물장구를 튀긴다.
어푸어푸.
얼굴에 물 칠 두 번 하더니 끝났다고 수건을 달라고 한다.
‘옷에 다 묻었네.’
나는 피식 웃으며 수건을 주었다.
바닥에 끌지 않게 접어서 주자 얼굴을 푹 한 번 찍더니 끝났다고 나에게 넘겨 주었다.
상남자 중의 상남자가 아닐 수 없다.
“시하야. 형이 한 번 더 씻겨줄게.”
나는 시하를 잡고 머리도 감기고 세수도 시켰다.
일이 두 번이나 됐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
***
강인대학교 근처 이모네 밥집.
오랜만에 보는 문도환은 손을 흔들고 있다.
순해 보이는 인상이 사람 좋다는 걸 나타내는 것 같다.
“여기야. 여기. 시하도 안녕.”
“아아.”
“무표정해서 그런지 ‘그래, 안녕하구나.’ 이러는 것 같아.”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왜 사극 톤이에요?”
“그러게? 일단 들어가자. 여기 맛있어. 시하 너도 기대되지?”
“엄청 기대하고 있는 표정이에요.”
“저게 구분돼?”
“저기 콧구멍이 살짝 벌렁대는 걸 봤어요.”
문도환이 말도 안 된다는 얼굴을 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같이 살면 이 정도는 보이는 법이다.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자리를 잡았다.
“이모. 여기 애기 먹을 미역국 하나랑 고등어 밥상 주세요.”
이모라는 분이 말했다.
“어후. 너는 먹을 데가 여기밖에 없어? 어떻게 된 게 맨날 와?”
“덕분에 가게 매상 오르고 좋잖아요. 여기는 맛있는데 이상하게 장사가 안 되더라.”
“너 없어도 손님 많아.”
“에이. 많은 건 아니죠. 솔직히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 맛이면 줄이 저기 약국까지 서야 한다니까요.”
“말이라도 못 하면.”
이모가 실없는 농담이라도 들었다는 듯 피식 웃었다.
나는 그런 문도환을 보았다.
“엄청 친한가 봐요?”
“벌써 만난 지 4년째야. 그 정도면 친한 게 당연하지.”
“단골 중의 단골이네요. 그런데 애기들 앉는 의자 없어요?”
“왜 없겠어. 저기 있지.”
문도환이 정말 단골임을 자랑하듯이 의자를 가지고 왔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시하를 앉혔다.
“아아.”
시하가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숟가락 달라고? 알았어.”
나는 가방에서 시하 전용 숟가락을 꺼냈다.
손수건도 꺼내서 시하의 턱받침을 해 주었다.
“신기하단 말이야. 어떻게 다 알아듣는 거야?”
“산 지 2년이 넘으면 이렇게 돼요.”
“하하. 이모와 나 같은 관계구만.”
“그건 아니고요.”
그때 이모가 반찬을 들고 나왔다.
“무슨 소름 돋는 소리를 하는 거야. 조용히 밥이나 먹어.”
“와. 이모. 시하 있다고 입이 안 거치네? 원래라면 처먹…….”
“쓰읍.”
“흠흠. 시하도 있었지.”
정말 친해 보이는 두 사람이었다.
“미역국부터 나올 거야. 식혀 주면서 먹여야 하니까.”
“감사합니다.”
배려가 뛰어나신 분이다.
“아아.”
“어머. 고맙다고 하는 거야?”
“아아.”
시하가 숟가락을 척 하고 들었다.
이모는 시하가 귀여운지 볼을 한 번 만지고 돌아섰다.
우리 시하가 한 귀여움 하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런데 할 말이 뭐예요?”
“아, 그거.”
반찬인 콩자반을 집어 먹던 문도환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너 그냥 대학 다녀라.”
“형.”
“쓰읍. 형 말 듣고 판단해봐. 강인대학교는 SKY는 아니더라도 나름 인서울 명문대야. 이거 나중에라도 취업할 때 학연이 도움이 돼.”
“그건 모르겠던데요.”
“그야 모르지. 아니지. 말을 잘못했다. 취업할 때는 모르겠는데 확실히 취업하고 나서 선배들이 있으면 엄청 도움 돼.”
“그래요?”
“그래. 끼리끼리 밀고 당겨주고 하는 게 있단 말이야. 괜히 여기 서울에 사는 엄마들이 애들 명문대 보내려고 하겠어?”
“사람 취급 안 해서?”
“아니. 끼리끼리 놀게 되어 있는 걸 알기 때문이야. 막말로 남편 잘 만나 사는데 남편이 회사에서 어떤 학벌의 선배를 만나 밀고 당기는 걸 모를 거 같아?”
“음.”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아버지의 직장만 봐도 친한 선후배들이 같은 학교 출신이었으니까.
“그래도 직장은 못 다녀요.”
“알아. 알아. 그런데 나중에 맘이 변할 수도 있잖아. 혹시 좋은 여자가 생길 수도 있는 거고.”
“형.”
“아까워서 그런다. 아까워서. 네 맘 내가 다 이해하지. 하지만 인생이 어디로 튈 줄 어떻게 알아? 자택근무 좋지. 자택근무 뭐 할 건데? 자택근무 하는 회사가 있어야 거기 들어갈 수도 있는 거고.”
“그건 그렇죠.”
문도환이 입맛을 다셨다.
“내가 네 성적을 몰라?”
“과탑이긴 하죠. 평균학점 4.4.”
“그러니까. 내가 네 취업 상담도 해 줬잖아. 비록 국문과라 취업이 힘들긴 하지만 너 정도 스펙이면 뭐.”
현재 내 스펙은 이렇다.
학교를 들어올 때는 과 수석은 아니었지만, 현재 쭉 과탑을 유지하고 있다.
성적 장학금으로 대학교 1, 2학년을 공짜로 다녔다.
방학 때마다 강의 하나씩 억지로 더 들어서 채운 학점은 총 105학점.
졸업학점은 130학점인 것을 볼 때 조기 졸업도 가능한 수준이다.
문제가 있다면 전공 수업을 다 들어야 한다는 것.
토익이야 수능 치고 나서 방학 때 끌어올리며 800이 넘었고, 지금은 900이 넘는다.
졸업 인증제에 외국어 영역은 이미 채운 거나 마찬가지였다.
남은 것은 봉사 활동과 독서 인증인데 봉사만 제외하고 독서 인증은 이미 강의로 이수했다.
이렇게 1, 2학년 때 미친 듯이 한 이유는 3, 4학년 때 설렁설렁 강의를 들으면서 취업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걸 문도환도 알기에 아깝다고 하는 것이고.
“됐어요. 취업이랑은 연이 없었나 보죠.”
“아니야. 이번 3학년 1학기는 공짜로 다닐 수 있잖아. 과탑이니까. 대학교 2년 다니면서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
“생활비가…….”
“그니까 그 생활비. 2년 동안 손쉽게 해결할 방법이 있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방법이 있다고?
이 형은 뭐 그런 것까지 알았대?
아니, 아니다.
아무리 형이라도 그런 것까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이건 순전히 나를 위해서 조사한 거다.
나는 살짝 울컥했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 형만은 나를 도와주려고 한다.
어떻게 보면 그냥 남일 뿐인데.
이 은혜를 어떻게 다 갚아야 할까?
“야. 야. 그런 표정 넣어둬. 너도 알아내려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는 정보니까.”
“전 생각도 안 했을걸요. 대학 그만둘 생각이었으니까.”
“그건 그렇지.”
그때 이모가 나타났다.
미역국과 고등어, 공깃밥을 차례대로 놓았다.
얼큰한 된장찌개 역시도 한가운데 놓았고.
공깃밥은 1인분이 아니라 고봉밥이 되어 있었다.
“많이 먹어. 그리고 힘내고. 남자가 말이야 어깨 쫙 펴고 자신 있게 다니는 거야. 그래야 남들이 흉을 안 봐요.”
“이모. 얘 과탑이야. 자신감 하나는 하늘을 뚫을 거라고.”
“누가 뭐래니?”
그렇게 이모가 가자 시하가 숟가락을 흔든다.
“아아!”
“아. 시하야. 형이 미안해. 내가 신경을 많이 못 써줬지?”
“아?”
시하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설마 내 말을 알아들은 걸까?
“우리 시하 똑똑해. 똑똑해. 우리 맘마 먹자. 맘마.”
“형아.”
“응. 그래.”
나는 밥을 호호 불어 시하의 입에 넣어 주었다.
문도환이 말했다.
“밥 먹이면서 계속 들어봐. 내가 알아봤는데 장학 전형에 장학 사정관이 있거든. 교외 장학금하고. 학과장 추천으로 너는 받을 수 있을 거야. 과탑이니까 교수님에게 이미지도 좋기도 하고. 근로하면서 또 좋게 본 교수님도 많고.”
“후후. 자, 아~ 그렇네요. 좋네요. 근데 저 시하를 돌봐야죠.”
“그래. 그거. 내가 기가 막힌 해결책을 생각했단 말이야. 시하도 돌보고 대학도 다니고. 공강일 때마다 틈틈이 돌볼 수 있는 곳.”
“그런 데가 있어요?”
“그래. 우리 강인대학교 끝에 있잖아. 강인어린이집. 원래 교수와 교직원 아이를 위해 만들어진 건데 내가 부탁했지. 혹시 대학생 아이 한 명만 맡아줄 수 있냐고.”
생각지 못한 해답에 나는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형…….”
“짜식. 이제 시야가 좀 트여? 형이 얼마나 멋진지 보이지? 얌마. 이거면 너 대학 공짜로 다니면서 생각하고. 교외 장학금 받으면서 생활비 벌고. 졸업하고. 시하를 근처에서 돌볼 수도 있어. 솔직히 막말로 2년이야. 너 틈틈이 시하에게 가서 얼굴 보여주면서 돌보면 되고.”
손이 떨렸다.
너무 고마워서.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는 형이 너무 고마워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 시하 얼굴에 그늘 안 가게 키우고 싶다고 했지? 난 말이야. 네 얼굴에 그늘 좀 없앴으면 좋겠어. 안 그래도 얼굴에 있는데 한 줄이라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왜 이렇게까지…….”
“말했잖아. 거기 그늘 하나 더 늘게 하고 싶지 않다고.”
“고마워요.”
감정이 넘쳐나는데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그저 고맙고 한없이 고마웠다.
“정말 고마워요.”
“됐어. 나중에 시하 사진이나 잔뜩 보내주는 거로 갚아. 웃는 사진이어야 한다? 레어한 걸로.”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건 저도 갖고 싶네요.”
“형아!”
“응?”
시하가 미역국을 숟가락으로 떠서 나에게 건넸다.
“형. 주는 거야?”
“아아.”
나는 그것을 받아먹었다.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될까?
둘 다 나에게 너무 고마운 사람이었다.
너무 받은 게 많다.
따뜻한 이모의 그 말도.
형이 챙겨주는 행동도.
시하의 배려도.
나는 그 고마움을 가슴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