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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대제에 제대로 즉위도 하지 못한 내가 마신계 입성 권유를 받다니. 웃긴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가고 싶지도 않았고, 갈 수도 없었다.
아킬라 대륙의 재건을 도와야 하고, 마를레나와 시간을 보내야 하니까. 마신계로 갈 시간 따위는 없었다.
악신과 신들의 전투가 일어난 곳은 드넓은 대지가 모두 용암지대로 바뀌어 내가 따로 손을 봐야 했다.
들판의 끝에 붙은 산들도 무너지거나 불타 버리는 등 피해가 많았다. 나는 그 모두를 복구한 뒤에야 고렝데로 복귀할 수 있었다.
고렝데는 아직도 벌벌 떨고 있었다. 칼란의 전사들이 얼어붙어 있는 검은 병사들을 처리하고 있었고, 히네와 마를레나는 부상자를 치료하고,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이들을 치유 중이었다.
“오……! 무사히 돌아왔구나!”
부상자의 치료를 돕던 하마디아가 제일 먼저 뛰어왔다. 그에게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줬다.
“끝났어. 악신 바르는 소멸했다.”
부상자 치료에 바쁜 마를레나는 멀찍이 떨어진 채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에 나도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베니아도 멀리 보였는데, 그녀 또한 바쁜 탓에 같은 방식으로 인사를 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하마디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하고, 끄덕이기도 하며 안도의 표현을 했다.
“너도 좀 도와줘. 중상자가 많다.”
“나 지금 전쟁터에서 막 왔는데?”
“아오! 지금 네가 젤 싱싱해.”
피식 웃은 나는 그를 따라나섰다. 그리고 중상자들을 슥 둘러보고는, 기적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나는 12개 고리를 공명시켰다. 그리고 강력한 성력을 만들어 내 하나하나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치료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기적. 그야말로 신의 기적 그 자체였다.
어째 성력이 더 충만해진 기분인데?
지금 내 손에 있는 성력이 이전에 사용했던 성력보다 더 충만한 느낌이었다. 문득 빛의 신 곤데아의 말이 떠올랐다. 신들이 도울 거라는 얘기.
내 성력은 믿음에서 나오는 성력이 아님에도, 그것의 영향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곧 부질없는 생각은 접어두고 기적을 행하는 데에 집중했다.
사람들은 내가 행한 기적에 감명을 받았고, 찬양을 시작했다. 마치 내가 기적을 행하는 대신관이 된 것 같아 기분이 묘해졌다.
숫자가 1만에 가까워지던 고렝데의 인구는 절반 이하로 줄어 있었다. 그 잠시 동안 그렇게 많이 죽었다.
그러고 있는 사이. 멀리 다른 마을에서 온 이주 인구가 도착했고, 도시는 다시 활력을 되찾아갔다.
이제는 더 이상 타 차원의 침공으로 인한 걱정 없이 순조로운 제국의 재건이 시작됐다. 남부 혈맹에서도 살아남은 이들이 소수 있어 모여 마을을 만들었고, 캉구르 연합 쪽에서 재건에 도움을 주기로 했다.
전쟁을 하든, 속국을 만들든 그것은 먼 훗날의 얘기. 지금은 과거의 감정은 접어 두고, 서로 도와야 할 때였다. 대륙 자체가 멸망할 뻔한 역사적인 큰 사건이었으니까.
캉구르 연합의 속내가 어떤지 몰라도, 내가 도우라고 했기에 그들은 고분고분 말을 들었다. 그들에게는 내가 구세주이기도 했고, 또 칠대제를 상회하는 무력을 가진 존재이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한 달, 두 달. 시간이 흘렀다. 날씨가 쌀쌀해졌다. 대륙의 북서쪽에 위치한 데다 내륙인 고렝데의 온도는 급격하게 내려갔고, 규모가 작은 도시라 더욱 추위가 피부에 와닿았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도시는 완전히 새로 설계되고 지어지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제국 전체를 뒤져 수많은 지식들을 복구해 냈고, 추위가 오기 전에 기초는 다져 놓을 심산으로 열심히 일했다.
캉구르 연합에서 지원 온 자들과 여러 곳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모여 인구는 어느덧 만 오천이 넘어갔고, 각양각색의 종족들이 모여 새로운 국가의 기반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겨울이 왔고, 유난히 추운 겨울. 내 결계 마법으로 도시는 거센 북풍에서부터 지켜졌다. 칼란의 전사들은 아예 눌러앉아 사람들과 어울려 귀족이라는 신분을 망각한 채 지내고 있었다.
마계에선 정말 보기 힘든 장면. 그러나 한번 멸망의 문턱에 발을 들여놓아서인지, 나를 따라다닌 덕인지, 상위 귀족의 냄새가 진하게 묻어 있던 그들은 마치, 지구의 어느 시민처럼 모든 이들과 허물없이 지냈다.
도시 재건에 힘을 보태며, 마를레나와 함께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나는, 추위가 찾아와 도시 건설이 멈추고, 식량을 쌓아 놓고 움츠러든 이때가 움직이기 적기라 생각했다.
아킬라 대륙의 정화 작업도 거의 끝이 났고, 남부, 캉구르, 고렝데. 이 셋의 연계도 더 이상 손댈 것이 없을 정도로 좋았다.
이제는 마계 전체를 손봐야 할 때라고 생각한 나는, 다른 대륙을 향해 움직이기로 했다. 마를레나와 칼란의 전사들과 함께 마계 전체 대륙 배치도를 손에 들고, 대륙 간 통신이 가능한 대륙으로 향했다.
기나긴 여정이 될 터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마를레나는 아직 식을 올린 것은 아니지만, 내 옆에 붙어 내조를 했고, 스레인과 알리는 마치 칠대제를 보좌하는 이들처럼 나를 따랐다. 로아이스만이 고렝데에 남았다.
늙어서 힘이 든다고 했었나? 아무튼 그렇게 넷이 떠나게 되었고, 우리는 가장 가까운 대륙으로 향했다.
가장 가까운 대륙 ‘루데모드’는 피해를 입지 않은 대륙 중 하나였는데, 자기들 일이 아니라고 뻗댈 줄 알았으나, 생각보다 협조적으로 내 요구에 응해 줬다.
그렇게 하나하나 대륙과 대륙을 연결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서로서로 이전보다 더 긴밀한 관계로 발전시켰고, 힘든 곳은 지원을 아낌없이 하도록 지시했다.
멸망할 뻔했던 마계는 바야흐로 대통합의 시대가 되었다. 모든 육황들이 내 뜻에 따라 줬고, 살아남은 칠대제 둘 또한 큰 반발 없이 내 뜻에 따랐다.
그렇게 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아주 멸망한 대륙에 새 정착민들이 이주하여 성공적인 정착을 이뤄 냈고, 많은 대륙들에서 원조가 이뤄졌다.
멸망에 발을 걸치고 있는 대륙들 또한 원조를 받아 일어섰고, 아킬라 대륙 또한 남부 쪽에 여러 도시국가가 생겨났고, 경쟁이 시작되었다.
고렝데를 수도로 하는 크로하 왕국이 다시 일어났고, 새롭게 마탑이 세워졌으며, 다시금 발전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진행되었고, 더 이상 손댈 것이 없어지자 나는 아킬라 대륙을 떠나기로 했다.
“아쉽다. 더 같이 있고 싶은데.”
떨어지려니 그렇게 보이는 걸까? 요 몇 년 새 하마디아가 더욱 나이를 먹은 듯 보였다.
“영영 가는 것도 아니고 뭘 그래.”
그는 씨익 웃어 보였다.
“얼굴이 좋다.”
“금방 다시 돌아올 거야.”
“그리울 거예요.”
나베니아였다.
“저도 그리울 겁니다.”
“빈말도 잘하시네요.”
나베니아가 환하게 웃었다. 그에 고개를 살짝 틀며 못 당하겠다는 얼굴을 해 보였다.
“참. 영감은 여기 남겠다고?”
내 물음에는 알리가 대답했다.
“예. 좀 더 머무르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람 가는데 나와 보지도 않고 말이야.”
그에 스레인이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원래 그런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고개를 끄덕였다.
“마를레나. 보고 싶을 겁니다.”
“금방 다시 돌아올 거예요.”
마를레나와 하마디아 가족의 인사도 이어졌다. 칼란의 귀족들과의 인사들도 마무리가 되고 나서, 우리는 칼란 대륙으로 가는 대륙 간 마법 이동소를 향해 이동했다.
칼란으로 가는 이유는 한 가지. 그곳에 내가 열어 놓은 차원 관문 때문이었다. 내 고향으로 가 보고 싶다는 마를레나의 말에 나는 선뜻 가 보자고 얘기했고, 이렇게 떠나게 되었다.
스레인은 2년 전 한 번 딸을 만나고 온 후 이번에는 아얘 칼란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고, 알리는 계속해서 날 따라다니겠다고 못을 박았다. 하여 차원관문은 우리 셋이 같이 넘어가기로 정해졌다.
“그동안 곁에서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부디 무탈한 여행 되십쇼.”
칼란 대륙에 도착한 후 스레인이 머리를 숙이며 작별을 고했다.
“그래. 너도 잘 지내고. 그동안 수고 많았다.”
그렇게 스레인과 헤어졌고, 우리는 현지의 길잡이를 구해 차원 관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내가 온다는 소식에 온갖 고위 귀족들이 모여들었으나, 모두 불필요한 존재들이기에 대충 손 흔들어 주고 돌려보냈다.
결국 차원 관문까지 함께 동행한 것은 대륙 간 마법 이동소가 있는 왕국의 국왕과 대신 두 명, 근위대장 정도가 끝이었다.
차원 관문까지는 마법 비행선을 이용했다. 칼란 대륙을 눈에 담고 싶어 한 마를레나의 소망을 존중한 선택이었다.
지상을 횡보하는 검은 것들이 없다는 데에서 오는 평화로움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것들이 대륙을 활보하며 학살을 일삼고 다니는 것을 떠올리면 가끔 소름이 돋기도 한다.
그렇게 빠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을 만한 높이에서 비행하는데, 마를레나는 그 창밖 풍경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넘어가면 뭐부터 소개해 줄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사실 그 부분은 며칠 전부터 생각해 왔던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만족스러운 답안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찝찝한 마음을 안은 채 비행선이 목적지에 도착했고, 우리는 마력차로 갈아타고 관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속도는 지구의 것이 낫지만, 확실히 안락함과 편안함은 마계의 마력차가 더 우위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관문. 그곳은 삼엄한 경비 체계로 돌아가고 있었다. 확실히 내가 부탁한 대로, 관문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은 것을 마나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저 관문 너머의 세계는 내 고향이 있는 곳이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 문명이 기반이지. 앞으로 서로 교역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이곳 주변을 잘 다듬어 놔.”
이왕 길을 낸 거, 좋은 용도로 사용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관문을 타고 넘어오면서부터 해 왔던 생각이었다.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내 허락 없이는 넘어오거나 하는 일 없어야 할 거고.”
“예.”
국왕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편안한 여행 되십시오.”
국왕과 대신 근위대장이 허리를 굽혔다. 강자에 대한 예의가 충만한 것이, 마계의 기강이 단단히 잡혀 있었다.
“그래. 수고해라.”
알리와 마를레나가 나를 따라 관문 앞에 섰고, 이내 나를 따라 관문으로 발을 들였다.
기이한 감각과 함께 관문을 통과했고, 어느새 이전에 설치해 놨던 발판을 딛고 서 있었다. 그리고 관문을 둘러싸고 있는 병력들과 마주했다.
“……!”
모두 공격태세를 갖추고 우리를 쳐다봤는데, 곧이어 그들은 내가 누군지 깨달았고, 누군가가 이어셋으로 내가 귀환했다는 보고를 했다.
“신… 시우님 맞으십니까?”
“어.”
“아……! 옆에 분들은… 어떤 목적으로 방문을 하신 건지…….”
남자의 두 눈이 마를레나와 알리를 훑었다.
“여행.”
“예?”
“이 세계를 여행하러 왔다는 얘기야.”
“아……! 알겠습니다. 곧 관리자님이 오실 겁니다.”
“뭔 개소리야?”
“예……?”
“내가 내 일행들과 고향을 여행하겠다는데. 누구의 허락이 필요해?”
“아… 그…….”
“알아서 처리해.”
뒤를 돌아서 알리와 마를레나를 보고 씨익 웃어 보였다.
“가자.”
그렇게 마를레나와 알리와 함께하는 지구에서의 여정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