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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94화 (9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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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이 오고 있다는 느낌. 그것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글쎄. 세상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정말이지 묘한 느낌이니까.

그것도 거대한 무언가가 내 목숨을 노리는 느낌이 계속해서 든다면, 정말 정신을 놓아 버리고 싶을 정도로 압박이 심해진다.

“너희들은 먼저 통신소로 가서 기다려. 나는 볼일을 보고 갈 테니까.”

“무슨 볼일을…….”

“그럴 일이 있다.”

그때 로아이스가 정곡을 찌르고 들어왔다.

“그놈이 나온게지?”

“그놈… 이라면……?”

스레인과 알리의 얼굴에 심각함과 당황스러움이 섞였다.

“악신 바르. 놈이 마계에 나타났어. 그리고… 이곳으로 오고 있다.”

둘은 입이 막혔고, 로아이스는 단념한 얼굴을 했다.

“먼저 가 있겠네.”

“로아이스 님……!”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챈 알리가 노려봤고, 스레인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어차피 우리 정도가 옆에 있어 봤자 바람만 불어도 다 부스러져 버릴 존재들이다. 안 그런가 칠대제 양반.”

“정확해. 나도 감당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다. 그런데 너희들이 뭘 할 수 있겠나?”

너무 적나라한 얘기에 둘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너희들의 마음만 가져가마. 먼저 가서 기다려. 살아서 갈 테니까.”

그렇게 셋과 헤어졌고, 나는 빠르게 평원을 찾아 이동했다.

아덴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이상하게도 그 콧대 높던 내가 이렇게 목숨이 경각에 달릴 위기에 처하자 신을 찾았다. 그것도 호칭도 없이 무례하게 찾았다. 피식 웃음이 났다.

갑자기 마를레나가 보고 싶네.

평원에 도착한 그 순간. 그것이 대륙으로 진입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금새 멀리 하늘에서 검은 죽음의 기운을 펄펄 내뿜는 존재가 등장했고, 온몸의 털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그의 존재감에 대항하기 위해 고리 열세 개를 공명시켰고, 탈태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하늘 높이 날아오던 것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내 앞에 착지했다.

강력한 파동이 대지를 뒤흔들었고, 자욱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런 앞을 가리는 먼지 속에서도 나는 놈을 주시할 수 있었다. 고리 열세 개의 경지는 그만큼의 신기를 보여 준다.

[직접 보게 되어 정말 기쁘구나.]

정신을 뒤흔들 만큼 강력한 목소리에 순간 어질해 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신격체로 올라간 상태라 그의 존재감은 버텨 낼 수 있었지만, 정신 접촉은 아직까지 무리인 듯했다.

[나도 기쁘다. 어떻게 생긴 놈인지 궁금했었는데.]

전신에서 짙은 검은 기운을 마구 뿜어 대는 놈의 생김새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그 검은 기운 안에서 빛나는 붉은 눈동자와 그것이 키가 내 두 배는 넘고, 두 발로 서 있다는 것 정도.

놈의 웃음이 내 머릿속을 뒤흔들어 이를 악물고 버텼다.

[아주 배짱이 두둑한 놈이구나.]

나는 오히려 이를 악물고 웃었다.

[몸 상태가 말이 아니지?]

[내가 머리통만 남아 있어도 너 정도는 으깨 버릴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일부러 도발했는데, 별 영향은 없는 듯했다.

[네가 이곳에 와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까.]

내 넋두리에 녀석은 잠자코 듣고 있었다.

[넌 이곳에서 살아서 나갈 수 없다.]

또다시 놈의 웃음소리가 내 정신을 뒤흔들었다.

[재밌구나. 뭔가 준비를 많이 해 놓은 모양이지?]

놈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사방으로 폭사되었고, 순식간에 뭔가 내 옆을 지나간 듯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린 나는, 내 왼쪽 팔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읏……!”

너무 놀라 신음 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인지를 벗어난 움직임이 주는 공포는 생각보다 커다랬다.

“끄…….”

왼쪽 어깨를 잡은 나는, 어금니를 꽉 물고 마나를 이용해 수복을 시작했다. 완전한 치유가 아닌 응급 처치 같은 것이다. 뿜어져 나오는 피를 막아야 했으니까.

[넌 손맛도 없구나.]

놈의 실망스러운 목소리에 뒤로 거리를 벌리고 싶었으나, 거리를 벌림과 동시에 내 몸이 두 동강이 나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져 움직일 수 없었다.

그것은 본능적으로 느낀 내 미래. 놈의 강력한 의지가 내게 보여 준 환영이다.

신격화를 했음에도 이토록 무력해질 줄은 몰랐다. 그래도 놈의 공격을 피하면서 뭐라도 해 볼 생각이었건만, 놈의 격은 내가 생각하는 범주에 있지 않았다.

어쩌면… 마신계가 나와도 못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놈이 가진 능력에 0.1%도 보여 주지 않은 것 같은데 이 정도 격차라면, 마신계의 신들이 와도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정도 실력으로 나를 도발한 것인가? 아주 시시하고도 오만한 놈이군.]

놈의 짙은 살기에 강력한 소름이 등줄기를 강타했다. 그리고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아직 초입이지만, 신격체인 내가 이렇게 무력해질 수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그만큼 놈의 힘과 내 힘의 차이가 극심하다는 얘기겠지.

죽음을 직감했다. 그래도 입은 열었다.

[어디 완전하지도 않은 몸으로 그렇게 허세를 부리는 거냐?]

놈이 아무런 대답이 없자, 숨 막히는 긴장감이 내 목을 조여 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놈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우레 같은 목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네놈이 바르라는 놈이냐?]

근처에 있는 불특정 다수에게 보내는 정신 접촉. 노기가 서린 목소리는 들어본 목소리였다.

아덴……!

내가 그토록 찾았던 보랏빛의 신 아덴이었다.

[떨거지들을 줄줄이 달고 왔구나.]

바르가 나를 힐끗거리며 얘기했다.

[네놈이 바르냐고 물었다.]

아덴은 혼자가 아니었다. 바르 놈 때문에 느끼지 못했지만, 십수 명의 신들이 함께 온 듯했다.

[그래. 내가 바로 위대한 악신 바르다. 네놈들은 뭘 하는 놈들이지? 죽음으로서 내 일부가 되기 위해 온 것인가?]

바르 놈은 그의 앞에 있는 십수 명의 신격체 앞에서 잘도 지껄여 댔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아덴이 먼저 본체를 드러냈다. 그사이 나는 멀찍이 거리를 벌려 그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전신이 보랏빛 화염으로 타오르고 있는 그는, 키가 이전의 두 배는 더 커져 있었고, 전신에서 뿜어 내는 위압감은 굉장했다.

이어서 뒤에 있던 신들이 모두 본체를 드러냈는데, 성벽만큼 거대한 몸집을 가진 금빛의 신, 푸른 빛을 띠는 피부에 작은 키를 가진 신, 네 개의 팔을 가진 덩치 큰 신, 거대한 창을 가진 백색 빛을 내는 신.

십수 명의 신들이 각자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에게서 뿜어지는 위압감이 수십 배가 되어 나를 덮쳤다. 하마터면 정신줄을 놓을 뻔하여 머리를 털고 정신을 차렸다.

신들이 본 모습을 내비치자 바르 또한 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가 탈태할 낌새가 보이자마자 나는 한달음에 멀리 거리를 벌렸다.

엄청난 양의 짙은 검은 기운이 폭사되며 넓게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거대한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이리저리. 마를레나의 시선이 어지럽게 돌아갔다. 가만히 서서 이리저리 눈알만 굴리고 있는 데다, 몸은 점점 움츠러들고 있으니. 미친 사람이 따로 없었다.

“괜찮아요……?”

함께 길을 걷던 히네가 심각한 얼굴로 그녀를 살폈다.

“마나가 떨고 있어요… 공포에 질려서… 이런 것 처음 봐요…….”

“마나가… 떨고 있다구요……?”

히네도 마나를 다루는 마법사다. 그렇기에 마나의 흐름이 이상하다는 것은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나 마나 친화력이 압도적인 마를레나처럼 이렇게 자세하게 알 순 없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주세요.”

“마나를 통해 끔찍한 존재가 느껴졌어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존재가…….”

“끔찍한… 존재요?”

“네. 입에 담지 못할 정도로 끔찍한 존재가… 이 대륙에 왔어요.”

마를레나의 눈동자는 더욱 공포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심각한 분위기에 지나가던 병사 두 명이 다가왔다.

“도망쳐야 해요. 다른 대륙으로… 여긴 너무 위험…….”

마를레나가 쓰러졌고, 히네와 두 병사가 그녀를 부축했다.

“일단… 제가 본가로 옮길게요.”

히네가 이동 마법으로 급히 마를레나를 본가로 옮겼다.

“도망쳐야 한다고 했다구요?”

급히 달려온 하마디아와 나베니아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기에 당연한 반응.

“저도 좀 이상한 기류를 감지하긴 했습니다만, 분명 마를레나가 느끼는 것이 있을 거예요. 저보다도 월등히 마나 친화력이 높으니까요.”

고개를 끄덕이긴 했으나, 둘 다 쉽게 이해하진 못하는 모습이었다.

“따로 시우에게 온 연락은 없었죠?”

“네. 제가 알기로는…….”

하마디아는 갑자기 신시우가 보고 싶어졌다. 자신이 이해하기 힘든 이런 상황을 타개해 주길 바랐다. 언제나 신시우는 그에게 있어서 구원자였으니까.

“일단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 봅시다. 여보. 잘 부탁해요.”

하마디아는 나베니아에게 마를레나를 맡기고는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캉구르 연합으로 연락을 취해 보려 걸음을 옮기려 하는데, 반가운 얼굴들이 본가로 들어왔다.

“오……! 어서 오시오! 시우는……?”

아무리 찾아봐도 하마디아의 눈에 신시우는 보이지 않았다.

“홀로 무거운 짐을 지고 어디론가 갔소.”

하마디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 예상이 맞다면, 드디어 최종 국면에 돌입한 것 같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모두가 우려하던 그 악신이 이 마계에 나타났다는 얘기요.”

“아…….”

하마디아는 입을 벌린 채 닫지 못했고, 스레인과 알리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잘 해결하고 올 거요. 마신계에서도 움직일 터이니.”

그렇게 말하는 로아이스의 얼굴에서도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당연히 하마디아의 얼굴에 절망이 스치는 것은 당연했다.

“자네가 절망하면 이곳에 있는 모두가 절망하네.”

로아이스가 묵직하고도 단단한 목소리로 하마디아의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줬다.

“만에 하나 끝에 잘못되더라도 무너지지 말게.”

그 말을 끝으로 로아이스는 그를 비껴 갔고, 알리와 스레인이 그의 곁에 남았다.

“마신계에서 움직일 때까지 잘 버티면 살 수 있소. 반드시 움직일 것이니. 너무 심려치 마시오.”

“뭐, 뭣하면 정신 계열 마법이라도…….”

“아니, 됐소. 고맙소.”

하마디아는 애써 웃어 보였다.

“이만 가 볼 데가 있어서 먼저 가 보겠소. 쉬고 계시오.”

하마디아는 그길로 바로 마법 통신 기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무사해라… 신시우……!’

하마디아는 본래 그렇게 강단이 있는 자가 아니다. 신시우가 옆에 있어 줬기에 강하게 보였고, 돋보였을 뿐. 겁이 많고, 심약한 면이 있는 하마디아는 신을 찾기보다는 신시우를 찾았다.

‘세계를 구해다오.’

아무것도 모르는 하마디아는 그렇게 신시우를 응원하고, 의지했다.

“캉구르 연합과 연락을 해야겠다.”

통신소장이 나와 그를 맞았고, 바로 마법 통신 기기를 작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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