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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92화 (9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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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四角) 염소를 타고 온 마를레나의 위용은 굉장했다. 사각 염소는, 네 개의 뿔을 가진 영물로, 세간에는 거의 전설에 가까운 존재다.

워낙에 개체 수가 없어 발견되지 않는 데다가, 사각 염소를 발견하는 이가 있더라도 그곳에서 살아나올 수 없었으니까.

영물들은 자신의 영역에 침입자가 설치는 꼴을 못 본다. 특히나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하다 판단되면 그 존재는 살아나가기 힘들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모두가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마를레나!”

히네는 마치 오랜 친구를 반가워하듯 그녀를 반겼다. 하루 새에 함께 부상자들을 치료하며 정이 든 탓이었다.

마를레나는 대답 대신 환한 웃음으로 답했다.

“그… 친구라고 말했던 게…….”

하마디아가 말끝을 흐리자 마를레나가 말했다.

“네. 제 친구들이에요. 도시를 다시 재건하는 데에 아마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아… 그렇군요. 소통이 될까요?”

하마디아는 여전히 당황스러운 얼굴이었다.

“말은 알아들을 거예요. 시켜만 주세요.”

하마디아는 그제야 자신의 표정 관리를 하면서 웃어 보였다.

“하하. 도시 재건이 빨라지겠군요. 고마워요.”

“아니에요.”

그렇게 도시 성벽 쌓는 일이나 여러 가지 물자 조달 혹은 건설 현장에 마를레나가 데려온 여러 동물들과 영물들이 동원되었다.

처음에는 서로 의사소통에 힘든 점도 있었으나,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빠르게 적응되었고, 동물들과 마족들이 힘을 합쳐 도시 재건에 박차를 가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가고, 부서졌던 집들이 점차 제 형상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캉구르 연합 쪽에서도 물적, 인적 지원이 들어와 도시 고렝데는 활기가 불어넣어졌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시우 씨 성격에 아마 오래 걸릴 거예요. 워낙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는 분이니까요. ”

나베니아가 먼 하늘을 바라보는 마를레나의 곁에 와서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넸다.

“네. 알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 괜찮아요.”

마를레나는 상큼한 미소로 나베니아의 위로에 화답했다. 그에 나베니아도 씨익 웃어 보였다.

“좀 이따가 점심 식사하러 오세요-”

“네-”

마를레나는 다시 하늘을 쳐다봤다.

‘아침 하늘이 좋지 않아요. 조심하세요.’

마를레나는 항상 아침 하늘을 보며 하루의 길흉을 점치는 것을 좋아한다. 신시우가 가끔 아침의 하늘을 보며 그날의 분위기를 점치는 것도 그녀가 알려 준 것이었다.

그녀는 신시우에게 알려 줬던 것과 마찬가지로, 마나의 흐름과 구름의 흐름, 하늘의 전체적인 기운. 여러 가지를 느끼는데, 오늘 아침의 기운은 그녀가 여태 느껴 왔던 것 중에서 가장 좋지 않은 느낌이었다.

딱히 먹구름이 끼지도, 폭풍이 분 것도 아니었지만, 마나의 흐름과 공기의 흐름이 너무나 불길했다.

좋지 않은 기분을 다스리기 위해서였을까? 마를레나는 신시우와의 첫 만남을 떠올려봤다.

그날은 그녀의 기분이 아주 좋지 않은 날이었다. 가지고 있던 우울증이 도져, 삶의 의욕을 잃고, 슬픔에 잠겼던 날. 그날 그가 찾아왔다.

처음부터 바깥의 삶을 모르고, 산속에서 컸더라면 이런 슬픔은 없었겠지만, 그녀는 바깥에서 깊은 산속으로 도망쳐 왔었다. 그녀를 죽이려는 마족을 피해서.

도주하는 와중에 상처도 많이 입었고, 마족을 죽이기도 하며, 정신적으로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았다.

겨우 산속에 들어온 그녀는 숲의 보호를 받으며 안쪽으로 들어갔고, 산속의 영물들이 모두 그녀를 비호했다. 그 탓에 그녀를 죽이려고 쫓아온 마족들은 모두 몰살당하거나 도망쳤고, 그녀는 그대로 숲속에 살게 된다.

숲속에 남은 그녀는 자신이 마족이라는 것에 분노하여 뿔을 자르고, 날개를 뜯어 냈다. 같은 종족에 대한 분노였다.

홀로 남은 그녀의 감정은 들쭉날쭉이었고, 마나의 선택을 받은 탓에 마나를 타고 그녀의 감정이 퍼져 나가 산속 모든 짐승들과 영물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에 짐승들과 영물들이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며, 상처를 치유해 줬다.

그러나 아무리 치유를 한들,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오는 우울증에는 방도가 없었다. 하여, 그녀는 가끔 혼자 어딘가에 처박혀 울곤 했다.

그날도 그녀가 우울증에 빠져 있을 때였다. 그녀의 슬픔은 마나를 타고 멀리멀리 퍼져나가 온 산속의 짐승들과 영물들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그날은 영약을 찾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온 신시우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신시우 또한 범상치 않은 마법사였기에 그녀의 슬픔에 강하게 반응하여 그녀의 앞까지 찾아왔고, 그 감정에 공감하여 그녀를 위로해 줬다. 그에 처음으로 그녀는 마족도 아닌 알 수 없는 종족에게 감동을 받으며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마나를 통해 그녀의 감정을 느낀 신시우 또한 그녀에게 반했고, 둘의 사랑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뭔가에 홀린 듯 둘의 사랑은 며칠 동안이나 불타올랐고, 정신을 차린 신시우가 산을 내려가야 한다고 얘기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마를레나는 신시우에게 그가 필요한 영약들을 캐서 쥐어 주었고, 훗날 만날 날을 고대하며 그를 배웅했다.

칠대제를 목표로 정진하고 있다는 신시우는 그 이후로 20년이 넘도록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그러나 마를레나는 기다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온갖 짐승들이 그녀의 눈과 귀가 되어 대륙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아다 줬고, 신시우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를 진심으로 응원했고, 그는 육황에서 칠대제로 올라갔다. 그런데 이후 그에 대한 소식을 찾을 수 없었다.

그의 목표인 칠대제의 자리에 오르고 나면 그녀에게 돌아오겠다던 신시우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소문의 천공섬 그라가레로 올라가 모습을 감춘 것인지, 아니면 뭔가 더 할 일이 있어서 어디론가 여행을 떠난 것인지. 그녀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즉위식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이후로 그에 대한 얘기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뭔가 이상한 낌새는 챌 수 있었다.

대륙에 못 보던 존재들이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그녀가 입수했기 때문이다. 날짐승 들짐승들이 모아오는 정보는 양도 굉장했고, 질도 굉장히 높았다.

그런 그녀는 기다렸다. 신시우가 돌아올 때까지. 무탈하기를 기도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고, 몇 개의 계절이 바뀌고, 대륙이 위기에 빠졌다.

그녀는 다른 마족들이 다 죽든 말든 별 상관이 없었다. 그들에게 좋은 감정이 없었으니까. 그저, 신시우의 안녕을 기원할 뿐이었다.

그러나 대륙의 상황이 점점 심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그녀 또한 전투를 준비했다. 그녀의 친구들이 수도 없이 많이 당했고, 더 죽어 나갈 수 있음을 알았기에, 침략자가 그녀의 삶의 터전을 빼앗으려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녀는 전쟁을 준비했다.

산맥의 많은 영물들과 짐승들을 끌어모았고, 참전 의사를 존중하여 선별했다. 그리고 캉구르 전투에 참전했고,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던 그때. 정말 기적처럼 신시우가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그 순간. 그 순간을 그녀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아주 먼 길을 달려온 듯 신시우의 몰골은 지저분했고, 피로가 쌓인 얼굴이었다.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얼마나 그녀를 걱정하여 잠도 자지 않고 달려왔는지. 그래서 더욱 애틋했다. 그의 마음이 마나로 전해졌으니까. 그 애틋하고 간절한 마음이.

그래서 오늘 마를레나는 더욱 걱정이 되었다. 이 불길함이 신시우를 집어삼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애써 마음을 정리한 마를레나는 식사가 준비되고 있는 본관으로 향했다.

* * *

마신 아덴의 등장으로 정신을 차린 칠대제. 그들은 모두 자기 자신 고향이 있는 대륙으로 먼저 이동했다.

그중 가장 약하다 평가받았던 간테는 십이사신 중 하나인 라밧의 손에 최후를 맞았고, 바라멜리아는 운 좋게 이겼다. 그리고 ‘라데미네’라는 칠대제는 십이사신 중 ‘조단’이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와 맞붙어 이겼다.

다행히도 나머지 셋의 대륙은 침공을 받지 않았고, 그들은 다른 대륙의 상황을 파악하며 위기에 처한 대륙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라데미네는 조단이라는 녀석을 해치우고 난 뒤, 대륙의 중앙부에 생긴 거대한 회오리를 목격하게 됐다.

“대체 이 기분 나쁜 것은 뭐란 말이냐.”

거대한 검은 회오리는 두꺼운 구름 속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 주변은 거대하고 두꺼운 구름이 퍼져 있어 햇빛마저 들지 않고 있었다.

그 회오리가 땅에 내린 것 때문인지 그 주변의 모든 산과 땅이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고, 생명체들은 모두 검게 죽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기도 싫을 만큼 끔찍한 기운으로 넘실대는 대지. 그리고 그 중앙에 있는 거대한 검은 회오리. 당최 그로서는 알 수 없는 현상이었다.

검은 회오리까지 다가가 공격을 해 보기도 했으나, 검은 회오리는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그의 공격이 닿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 검은 회오리가 연결된 먹구름 쪽으로 가 보고 싶었지만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강력한 악기는 칠대제인 그조차도 움츠러들 만큼 끔찍했다.

그래서 그는 대륙에서 살아남은 자들 중 창조신 ‘마르코’를 숭배하는 종교 ‘기탄’의 사제들을 불러와 이 현상을 타개해 보려 했다. 악을 멸하는 것은 기적을 행하는 신성력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예상대로 그들의 신성력은 검게 물든 대지를 본래대로 되돌리고, 죽은 식물들을 살려 내는 기적을 일으켰으나, 퍼져 나가는 힘을 이기지 못했다.

기적을 일으키는 것으로 유명했던 신관까지 데려왔지만,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그래서 그는 다른 대륙에 지원을 요청해 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그대로 두었다가는 큰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에, 신성력이 효과가 있으니, 수많은 사제들을 불러와 해결해 보려는 생각이었다.

연락을 할 수만 있다면, 마신계에 도움을 요청하고 싶을 심정이었으나 마땅한 연락 수단이 없었기에 그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해 보려는 것이었다.

검은 회오리 소식은 여러 대륙으로 퍼져 나갔고, 각 대륙에서도 그 해결할 수 없는 현상이 목격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소식이 퍼지고 퍼져, 마계 72개 대륙이 전부 힘을 모아서 검은 회오리를 없애려는 계획을 수립하려던 찰나. 아킬라 대륙에서 연락이 왔다.

너무 어이없는 소식에 칠대제 라데미네가 직접 통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대화의 시작은 다른 것에 대한 호통이었다.

“네놈……! 신성한 즉위식 날 사라져서는 어디서 이제 나타난 것이냐!”

그 호통에 신시우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라가레에서 날 찾아 헤맸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네놈이 날 걱정했을 리는 없으니. 너한테 호통을 들을 만한 이유가 없다. 그럴 위치도 아니고.”

“뭐……?”

분노에 가득 찬 라데미네가 눈매를 좁혔다.

“다시 얘기한다. 마신 아덴께서 다녀가셨다. 회오리를 그냥 두고 그 너머에 있는 악신 바르가 강림할 때까지 내버려 뒀다가. 강림하면 마신계에서 내려와 처리한다고 하셨다. 그 뜻에 반하려고 한다면, 해도 좋고.”

마신 아덴의 분노를 겪어 봤던 라데미네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감히 그의 뜻을 거역할 수가 있겠는가?

“그분의 뜻은 잘 전달 받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보도록.”

그 말을 끝으로 통화는 끊겼고, 라데미네는 분한 심정에 이를 꽉 물었다. 칠대제 중에서도 최강자로 거론되는 인물이고, 그보다 한참 고참이었으니 분할 만도 했다. 그러다 문득 그의 뇌리에 어떤 이름이 스쳤다.

‘악신… 바르?’

신시우라는 신참이 뭔가를 아는 눈치였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것을 물어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그는 그만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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