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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의 주 구성원인 마족은 크게 세 단계 계층으로 분류된다. 분류는 피부색을 기준으로, 백색이 상위, 회색이 중위, 적색이 하위로 나뉜다.
그런 그들 중에서도 혈통에 따라 특수한 힘을 가진 자들이 최상위에 군림하는데, 베라크리토가 썼던 방어 기술이 바로 그에 해당한다.
간테의 혈통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을 가졌다. 그냥 말만 들어도 정말 쓸데없는 기술이라 생각되는데, 실제로 정말 그렇다.
그것도 혈통의 능력이라고, 일정 경지를 넘어가면 다른 혈통들의 능력처럼 한 단계 강화된, 통상 ‘초월기’라고 하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데, 그것을 보통 ‘각성’이라고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인 간테의 능력은, 각성하게 되면 실체가 없는 것을 잡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마치 고위 마법사들이 실체가 없는 영적인 것을 잡아내는 것과 같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뭔가 대단한 것 같지만, 그마저도 별로 쓸 데가 없다. 사용하려면 굉장히 높은 집중력이 필요하고, 필요 이상으로 에너지 소모가 심하기 때문에, 간테는 단 한 번도 그것을 어떤 대상에게 사용해 본 적이 없다.
그런 그가 지금 그 능력을 사용하게 될 상황에 놓였다.
‘난생처음으로 이것의 도움을 받게 되는군.’
그의 전신에서 뿜어진 검푸른 빛무리 같은 것이, 쭉 뻗어 나가 실체가 없는 환영 같은 것들을 감쌌다. 그리고 허공에 거대한 형상이 나타났다.
[호오… 아주 재미있는 능력을 가진 놈이 나타났구나.]
그의 정신 허공에 나타난 거대한 것은 눈알이었다. 그것도 핏줄까지 살아 있는 거대한 눈알.
떠 있는 높이도 가늠이 되지 않고, 그 크기 또한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눈알은 누가 봐도 압도당할 만큼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이미 시각적인 위협을 초월한 간테에게 큰 영향력을 줄 순 없었다.
그렇지만 그 눈알 너머에서 간테의 정신에 접촉해 온 존재는, 그에게 상당한 근심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서쪽에서 기다리마. 흐흐흐흐.]
징그럽도록 소름 끼치는 웃음을 흘리며 정신 접촉은 해제되었고, 상공에 나타난 눈알도, 검은 것들도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원래 없었다는 듯.
간테는 커진 동공으로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을 느꼈다.
‘대체… 그 빌어먹을 놈은 뭘 하는 놈이란 말이냐……!’
화가 나기도 하고, 그의 기분은 뒤죽박죽이었다. 이내 혼란스러운 정신을 바로 잡은 그는, 파괴된 마법 이동소를 빠져나갔다.
* * *
대륙 간 마법 통신 기기 같은 거대하고 값비싼 통신 기기는 대륙 전체에 몇 개 없지만. 국가 간의 통신을 위한 마법 통신 기기는 꽤 흔하다.
당연히 공작령인 셰일 지방에도 국가 간 마법 통신 기기가 있었는데, 공작가 본가가 있는 고렝데가 아닌 영주성이 있는 ‘차멘’에 있었다.
“성이… 완전히 없어졌네요.”
“흠-”
알리의 말에 나는 뜨거운 콧김을 뿜었다. 파괴된 도시들을 볼 때마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쳤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었다. 드러내 봤자 해결되는 것도 없으니까.
언젠가는 이 분노가 네놈을 죽이겠지.
다른 차원에 있는 바르를 향해 마음속으로 얘기했다.
“보통 성안에 있을 텐데, 없어 보이는군요.”
스레인이 얘기했다.
“그렇겠지.”
뭐로 부순 건지, 성이 완전 박살이 나 터만 남았으니 그럴 만했다. 하여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다.
“다음 장소로 가 보자.”
만일 차멘에서 못 찾을 경우 두 번째 목표로 정한 곳은, 셰일 지방의 옆에 있는 ‘코하니타’ 지방의 영주성.
연속 공간 이동으로 빠르게 가면 20분 안쪽으로 도착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으나, 우리는 일부러 둘러둘러 남은 검은 군대가 있는지,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하며 움직였다.
다행히도 셰일 지방의 변두리 쪽에 아직 공격당하지 않은 작은 마을을 발견할 수 있었고, 미리 연결시켜 둔 마법 수정구로 하마디아 쪽에 연락을 줬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검은 군대가 있어 퇴치했고, 우리는 계속 북쪽으로 나아갔다. 백작령인 코하니타 지방 초입에서도 마을 몇 개를 발견하여 하마디아 측에 연결시켜 주었고, 코하니타 지방을 활보하던 소규모 검은 군대를 소탕했다.
그렇게 무려 1시간 반 만에 코하니타 지방의 요새 도시 ‘볼레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허…….”
볼레느는 산의 움푹 들어간 곳에 지어진 요새 도시로, 성벽이 굉장히 높기로 유명한 도시였다. 나도 실제로 이 도시에 들르기도 했기에 그 위용을 잘 알고 있었다.
지구의 만리장성과 대조되는 느낌을 받을 만큼 높고 견고한 성벽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흔적만 남아 있었다.
지구로 따지면 문화유산을 작살 내 놓은 상황이었다.
“‘발로락스’ 같군.”
스레인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에 알리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발로락스가 뭔데?”
“칼란 대륙에서 굉장히 유명한 요새 도시인데, 도시 규모가 이곳보다 두 배 정도 되는 규모입니다. 그래도 이곳보다 높은 성벽을 가지진 않았을 겁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렀지.”
로아이스가 회상을 하듯 얘기했다.
“뭐, 다 쓸데없는 기억이네. 들어가지.”
로아이스가 앞장서서 들어갔고, 나는 한 번 더 도시 전경을 눈에 담았다. 성벽 때문에 성벽 밖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산에 지어진 탓에 경사가 꽤 되어 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는데, 산자락부터 중턱까지 올라가며 지어져 있어 요새치고 규모가 꽤 있었다.
“잘하면 살아 있을 수도 있겠네요.”
성벽은 모조리 무너졌지만 안쪽의 내성은 반파만 되어 있었다.
“가자.”
내 옆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알리를 데리고 로아이스와 스레인을 따라 도시로 진입했다. 한달음에 성으로 가지 않고,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성으로 향했다. 혹시나 생존자가 있나 마나 필드를 펼쳐 보았지만, 도시는 물론이고 그 위의 산에서도 생존자의 흔적은 없었다.
“오… 찾았습니다!”
반파된 내성 안으로 들어가 수색하던 도중 스레인이 어떤 방에서 마법 통신 기기를 찾았고, 알리가 작동을 시켜 내게 건넸다.
조금 기다리자 캉구르 연합 쪽과 연결이 되었다.
“전 육황 신시우다. 지원 요청이 필요해서 연락했다.”
“전… 육황 말씀입니까?”
그때 옆에서 누군가 뭐라 하는 것이 들려왔다.
“아……! 죄송합니다! 무례를 범했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지원은 어떤 지원을…….”
“제국에 살아남은 도시가 있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캉구르 연합과 교류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선 마법 이동소가 필요하지. 캉구르 연합까지 공간이동 마법이 가능한 마법사들의 지원을 바란다.”
“아… 네. 제가 그 부분은 지금 당장 결정해서 말씀드리기가… 예? 아… 예. 일단 알겠습니다. 좌표는…….”
옆에서 또 누군가가 뭐라고 하니 녀석이 내 요구를 바로 수락했다.
“제국의 수도 어떠십니까?”
“셰일 지방에는 좌표가 없나?”
“아… 잠시만요. …아, 네. 있습니다. 차멘이라는 도시가 있네요.”
“그래. 그곳으로 보내면 된다. 곧 그리 갈 거니까.”
“예. 알겠습니다. 준비는… 아마… 좀… 아, 예. 바로 꾸려서 2시간 내로 보내겠습니다.”
이번에도 옆 사람이 뭐라고 하자 바로 말을 바꿨다.
누군지 몰라도 현명한 친구군.
“그래. 고맙다.”
“아닙니다! 이렇게 대화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그래. 또 연락하마.”
“예!”
통신이 끝나고 알리를 돌아봤다.
“이 통신기기. 고렝데로 옮기자. 할 수 있겠어?”
“하하. 당연히 할 수 있습니다. 마법 통신 기기를 한번 분해해서 연구한 적이 있어서 빠삭하거든요.”
미기적거리는 것 없이 알리는 바로 준비를 시작했고, 도움이 되지 않는 로아이스, 스레인과 나는 챙길 것이 있는지 한차례 성을 둘러봤다.
여긴 ‘쿨라’ 백작이 다스리던 곳이었지.
자연스레 이 성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쿨라 백작에 대한 기억, 그의 아들과 딸에 대한 기억. 그리고 비범하게 보였던 이곳의 가신들 중 하나에 대한 기억까지.
떠오른 여러 기억들이 가슴속에 불을 지피는 장작이 되었다. 그 불을 다스리며 천천히 방을 둘러봤다.
추억 외에 딱히 건질 것은 없었다. 급하게 짐을 싼 듯한 흔적들도 보였고, 이곳저곳에 시체와 전투의 흔적들이 보여 기분만 상하게 했다.
“거의 다 됐습니다.”
다시 마법 통신 기기가 있는 방으로 가자 알리가 얘기했다.
“천천히 해. 고장 안 나게.”
“물론이죠. 뭐, 건지신 것은 있습니까?”
“아니, 하나도 없었어.”
“그렇군요.”
“아직 좀 더 걸리지?”
“예? 아, 예. 한 20분 정도는 걸릴 것 같습니다.”
“잠시 밖에 나갔다 올 테니까. 다 돼도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예.”
공간 이동 마법으로 성 바깥으로 이동한 나는, 곧바로 높은 상공으로 솟구쳐 올라갔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봤다. 혹시나 검은 회오리는 있는지와 같은 정보들을 습득하기 위해.
멀리, 셀 수 없이 많은 산봉우리들을 넘어 검은 회오리가 포착됐다.
[알리. 스레인과 로아이스와 함께 여기서 대기하도록 해. 검은 회오리가 발견됐다. 처리하고 가마.]
알리의 정신과 접촉한 나는 일방적인 통보를 하고는 검은 회오리를 없애기 위해 이동했다.
* * *
덩치가 커다란 중년의 남자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그래도 다행이군. 이 시국에 살아남은 도시가 있다니.”
캉구르 연합의 여러 수뇌부들 중 하나이자 왕국 ‘게마도르’의 국왕인 ‘보아란’의 말에, 앞에 서서 보고하던 외무대신 ‘반켄’은 속으로 놀랐다.
제국이라면 치를 떨던 것이 캉구르 연합이었고, 그 수뇌부들이었다.
거대한 아킬라 대륙을 제국과 캉구르 연합, 남부 혈맹이 삼등분하고 있다곤 하지만, 사실상 대륙의 패권은 제국이 쥐고 있는 게 맞았다.
무역을 하건 어떤 문제를 놓고 토론을 하건 어떤 사건 때문에 협상을 하건. 뭐든지 제국이 우위에 있었고, 육황도 제국에서 나왔고, 그 육황이 대제행을 한다고 했을 땐 다들 기도 못 펴고 쭈그려져 있었다.
왜? 차기 칠대제 후보가 제국 출신이니까. 현 육황이 제국 출신이니까. 강한 것이 존중받는 마계니까. 그리고 강한 존재를 가지는 것이 곧 국력이니까.
남부 혈맹이고 캉구르 연합이고 허울 좋은 껍데기일 뿐. 다들 힘을 못 썼다. 거기에 불평불만이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었다. 뭘 하건 제국에 숙이고 들어가야 했으니까.
그런데 그 콧대 높은 제국이 무너지고, 과학 기술과 강한 무인들로 이루어진 남부 혈맹 또한 멸망 직전이라는 소식은 캉구르 연합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줬다.
그리고 곧 적들이 캉구르 연합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군대를 모아 연합군을 만들었고, 첫 번째 방어선을 강하게 구축했다.
후방에 있던 수뇌부들은 전투 이후의 이야기는 모든 것이 끝난 후에 들은 것이지만, 연합군은 처참하게 박살났고, 뒤에 버티고 있던 도시 또한 처참하게 멸망했다고. 그리고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던 중 마지막 사투를 벌이던 중 신시우와 그가 데려온 칼란의 귀족들이 나타났고, 그들은 적들을 소멸시키고 그들을 구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는 제국에 반감을 사던 많은 이들의 좋지 않은 감정을 완화시켰고, 수뇌부들도 일부 제국에 호의를 가지는 이들이 나왔다.
지금 미소를 띠고 있는 보이란처럼 말이다.
그러나 반켄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제국에 좋지 않은 감정으로 똘똘 뭉쳐 있었고, 그랬기에 보고도 없이 2시간 만에 보내준다고 했던 왕궁 마법 통신 부장을 매몰차게 혼냈었다.
그러나 국왕의 생각은 그와 달랐다.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바로 인원 꾸려서 보내주게. 이 나라를, 아니 우리 연합을 구한 영웅이야. 소홀히 해선 안 되네. 선물이라도 좀 쥐어서 보내게.”
“예. 알겠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다르다고 국왕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마계의 국왕답게 보이란도 강함으로 국왕이 된 사내였다. 그는 신망이 두터운 국왕이었고, 외무대신 반켄은 그의 뜻에 반기를 들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