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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85화 (8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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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필드를 도시 전체에 펼치자 곳곳에 많은 사람들이 느껴졌다. 그 중 유독 독특한 느낌을 주는 한 사람에게 정신을 연결했다.

[전투는 마무리됐어?]

잠시 기다리자 마를레나의 답이 들려왔다.

[네. 다 됐어요. 도주 중인 사람들을 다독여서 데려가는 중이에요. 스레인 님과 알리 님은 좀 멀리 가셨어요.]

[그렇구나. 배고프지?]

[네. 아주……!]

[식사 준비 다 됐으니까. 사람들은 대충 안내하고 들어와. 본가에서 인솔할 사람들이 나갔으니까.]

[네. 세 분 다 데려갈게요.]

[응.]

“온대.”

“그래. 얼른 가자.”

식당엔 어느 귀족가 식당과 같이 기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었는데, 정중앙 맨 윗자리를 내게 내주었다. 본래 가주가 앉는 자리였지만, 하마디아는 황제 폐하라고 장난치며 내게 자리를 내주었다.

내 오른편으로는 하마디아, 나베니아가 앉았고, 왼쪽으로는 태자와 히네가 앉았다.

확실히 호화롭군.

식탁이 그 자체로 예술품 같았다. 아킬라 대륙의 특산품 중 하나인 ‘백광석’으로 만든 식탁으로, 곳곳에 빼곡히 조각이 들어간,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식탁이었다. 내가 특별히 주문해서 선물한 것이니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러고 보니 이거 이 집에서 내가 신경 쓰지 않은 구석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인데……?

구두쇠 같은 하마디아가 집 짓는다고 하길래, 그 그림이 영 마음에 들지 않을 것 같아 내가 직접 설계자를 부른 적도 있었다.

“급하게 차린 거라 변변찮지만 많이 드세요~”

나베니아가 나와 히네, 태자를 둘러보며 얘기했다.

언제 봐도 참 아내는 잘 얻었어. 하마디아 녀석.

“황궁인 줄 알았는데요?”

내 말에 나베니아는 씨익 웃어 보였다.

“폐하께서는 살아 계시겠지요?”

어린 태자의 말에 장내 분위기가 싸해졌다.

“아저씨가 네 아버지를 찾는데 힘내 보마.”

여섯 살은 되었을까 싶은 어린 태자. 그 녀석의 눈망울을 보면서 차마 확답을 주는 것은 할 수 없었다. 그런 분위기를 깨고 하마디아가 불쑥 끼어들었다.

“아저씨가 뭐야?”

“친구 아들이잖아.”

“대제 폐하께서 아저씨라니.”

“됐어. 밥이나 먹자.”

그렇게 식사가 시작되었고, 한술 뜨자마자 본가로 들어오는 마를레나와 칼란 일행들이 느껴졌다.

“왔군.”

그들은 내 말이 끝나고 한참 후에야 식당으로 들어섰다.

“고생했어. 너희들도 고생 많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라벤가 가주 하마디아라고 합니다.”

“칼란 대륙 보르마가 가주 스레인입니다.”

“칼란의 늙은이요.”

“칼란 대륙 청색 마탑주 알리. 쿤. 하이어입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마를레나가 내 눈치를 한번 보더니 자기소개를 마쳤다.

“저는… 아킬라 대륙의 마를레나예요.”

“아……! 아킬라 대륙분이시군요. 실례지만 지역이 어딘지요?”

“저…….”

곤란해하는 마를레나를 위해 내가 나섰다.

“내 친구야.”

“어?”

“대륙 중부 쪽에 있었어.”

“아~! 중부! 하하. 제국민은 아니신가요?”

“네.”

“반갑습니다. 시우의 친구라면 저와도 친구죠.”

하마디아는 마를레나와 포옹까지 하며 친분을 다졌다. 그러고 나서는 식사가 시작됐다. 여러 가지 대화가 오갔고, 이김에 칼란 대륙과 아킬라 대륙 간의 정보 교류가 이루어졌다.

그에 식사가 상당히 길어졌으나 서로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았으므로, 아깝진 않은 시간이었다.

하마디아가 독특한 부분도 많지만, 친화력 또한 좋아 칼란의 귀족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마를레나에 대해서 알아가려 했을 때 그녀에게 내가 의사를 물었다.

[다 알려 줘도 괜찮아?]

[응.]

마를레나의 수줍은 웃음에 가슴이 설렜다.

“마를레나는 마나의 축복을 받은 자야.”

“응?”

하마디아의 눈썹이 올라갔고, 알리는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딱히 마력 단련과 마나 수련을 하지 않아도 그녀의 의지에 마나가 반응하여 움직이는 존재라고.”

“어…….”

하마디아는 뭔가 제대로 생각이 나지 않는 듯한 얼굴이었고, 당연히 나베니아도 잘 몰랐다. 그러나 마나를 다루는 히네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아는 눈치였다.

“마나의 축복을 받은 자들은 의지만으로 마나의 변환을 가능하게 하고, 마법을 초월한 존재로서, 마계에서는 축출 대상이 되어 왔지.”

“아…….”

그제야 하마디아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한 얼굴이 되었다. 그것은 스레인과 로아이스, 나베니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런고로, 마를레나는 대륙 중앙의 깊고 깊은 산맥에서 지내 왔어. 나와 만나게 된 계기는, 내가 영약의 재료를 찾기 위해서 산맥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다가 만나게 됐지.”

마를레나와 눈을 마주치자 그녀가 배시시 웃음을 보냈다.

“좀 더 확실한 마를레나의 현 위치를 얘기하자면, 마를레나는 내 약혼자나 다름없다.”

“뭐?”

하마디아도 화들짝 놀랐고, 나베니아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마를레나의 행각을 보아왔던 칼란인들만이 무덤덤했다.

“하~ 야! 시우 너 드디어……!”

그는 감격스러운 부담스런 눈으로 날 쳐다봤다. 하마디아도 결혼 문제로 나를 닦달했던 녀석 중 하나였기에, 그의 앞에서 말하는 것이 왠지 긴장되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사실상 결혼 발표나 다름없는 것이었으니까.

나도 웃었고, 모두들 웃었다.

다들 묘한 기분일 것이다. 제국은 멸망했고, 가족, 친지들은 모두 다 실종됐거나 죽음을 맞았다. 멸망하는 세상을 끝에서 간신히 붙잡아 올린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게다가 히네와 태자는 얼마 전까지도 목숨이 경각에 달하는 상황 속에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이상한 기분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뭔가를 축하하는 분위기가 생겨난다는 것이.

나는 일단 흥분하는 하마디아를 진정시켰다.

“하마디아 잠깐 진정하고…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서 얘기할 거니까. 집중하자.”

“후우… 그래. 앞으로 그런 깜짝 발표는 좀 미리 언질이라도 줘라. 깜짝 놀랐잖아.”

모두가 내게 집중했다.

“먼저 크로하 제국에 관한 것부터 정리하겠다. 현재 크로하 제국의 생존자는 얼마나 될지 불분명하다. 아덴 님에게 들은 것을 토대로 보면, 동북부 항구 도시들도 당한 것 같고, 내가 보고 온 곳들만 봐도 중부에서 제국 쪽으로 밀고 들어오는 모든 도시와 마을들이 파괴되었다. 현재 그나마 제구실을 하는 집단은 라벤 가문뿐. 제국의 새 수도를 이곳 고렝데로 하고, 서부의 캉구르 연합과 교류하여, 제국의 기틀을 다진다.”

“캉구르 연합? 그놈들이 도와주기나 할까?”

“내 이름을 대면 돼. 내가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하면 될 거야. 내가 거기 떨어지려는 목숨 살려 주고 왔으니까.”

그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아… 참. 그렇지.”

“아직 흥분이 안 가셨구나.”

본래 하마디아는 사람의 말을 이렇게 듣자마자 물어보는 타입이 아닌데, 아직 마를레나와 관련된 얘기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녀석은 피식 웃었고, 나는 얘기를 계속했다.

“현재 대륙 전역에 검은 군대가 활보하고 있고, 대륙을 잠식해 가는 검은 회오리도 어디에 어떻게 숨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다들 알겠지만 아킬라 대륙은 굉장히 넓어서 찾을 만한 인력도 부족하지. 어쩔 수 없이 이 부분도 캉구르 연합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해서 우리는 일단 서부의 캉구르 연합과 접촉해야 돼.”

“그럼 그곳과 연락을 취해야 하는데…….”

히네가 걱정스레 말끝을 흐렸다.

“이곳에서 서부로 날아가긴 좀 그렇고. 캉구르 연합 측으로 연락이 가능한 마법 통신 기기를 찾아야지. 연락해서 공간이동 마법에 필요한 마법사들을 이곳으로 보내달라고 한 뒤에 교류를 진행하면 돼.”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의 표시를 했다.

“하마디아. 혹시 제국 지도 가지고 있어?”

“물론이지.”

하마디아는 대답하자마자 바로 가져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히네, 마를레나는 이곳에서 하마디아를 도와 사람들을 좀 도와줘.”

“응.”

“네.”

“칼란 친구들을 나와 함께 제국 내 활보하는 검은 군대를 없애고, 검은 회오리를 찾아 소멸시킨다.”

“옙.”

다들 군말 없이 내 의견에 따라 줬다.

“하마디아는 일단 셰일 지방을 잘 정리해 주고, 히네 마를레나는 이곳에 남아서 도와줘. 칼란 친구들은 나와 같이 셰일 지방을 정리하고, 캉구르 연합 쪽에 연락이 닿는 마법 통신기기를 찾는다.”

칼란에서부터 느낀 거지만 정말 지구의 통신 수단 도입이 시급하다.

금세 하마디아가 지도를 가져왔고, 우리는 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 * *

“허…….”

‘사이아’ 대륙의 최고 귀족이었던 ‘간테. 보헴’. 백색 피부의 마족인 그는, 입을 떡 벌리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눈에 담았다.

주변의 모든 것이 파괴되어 있었다. 심지어는 자신이 서 있는 반원형의 석판도 박살이 나 있었다.

‘전쟁이라도 난 것이냐…….’

전쟁이 났다면 분명 대륙이 뒤집어질 만한 전쟁이 일어났다고 그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가 지금 딛고 있는 그 땅은, 대륙의 패권을 잡고 있던 거대 제국의 가장 깊숙하고 안전한 곳에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이 도시에 이 정도의 피해를 입히기 위해선 제국을 멸망시킬 만큼 거대한 전쟁이 벌어져야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전쟁을 일으킨 놈이 뭐 하는 놈인지 낯짝이나 보자.’

전 마계를 침공하고 있다는 그것들이 무엇인지. 얼마나 강한 존재길래 제국이 이 모양이 된 것인지. 제대로 알아볼 참이었다.

“……!”

그렇게 걸음을 옮기려는 그때. 기척도 없이 무언가 시커먼 것들이 나타났다. 온몸을 덮는 시커먼 천을 뒤집어쓴 것같이 생긴 그것들은, 팔도 다리도 없이 공중에 떠 있는 것이 묘하게 꺼림칙한 느낌을 줬다.

‘형체는 있으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허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것들은 빠르게 그에게 다가와서는 일정 거리를 두고 빙 둘러섰다.

절대자 수준의 무력을 갖춘 간테는 당연히 그런 움직임에 동요하지 않았지만, 묘하게 꺼림칙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하는 놈들이냐.”

목소리 그 자체가 위협이 될 수 있는 경지. 그러나 그는 그것들에게서 아무런 동요나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구구구구…….

그는 마기를 피워 올리며 그것들을 힘으로 짓눌렀다. 순수한 힘 그 자체의 발현으로 상대를 옥죄는 기술. 그러나 마치 허상을 만지는 듯 그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고, 그것들 또한 그대로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당최 이것들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당최 감도 오지 않는 것들에게 그는 초월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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