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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82화 (8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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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제국을 세우신… 초대 황제시라는 말씀입니까?”

황실 수석 마법사 히네는 연신 눈으로 내 얼굴을 훑었다.

“맞는 것 같기도…….”

“황실에 수석 마법사로 들어온 지 얼마나 됐지?”

“이제 1년이요.”

그럼 모를 만도 하군.

“그전에는?”

“아카데미에 있었어요.”

고개를 끄덕였다.

“모를 만해. 황제를 때려친 지가 벌써 20년이 넘었으니까.”

“아…….”

그녀는 입을 벌렸다.

“후…….”

가슴속에 불타오른 화를 애써 계속 삭였다. 히네에게 들은 제국의 붕괴 과정이 너무 처참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국의 붕괴라기보다 수도 시민들과 수도를 방어했던 병력들이 몰살된 과정이 처참했다.

놈들은 굉장히 계획적이고, 지능적으로 그들을 사냥했는데, 피난을 가던 이들에게 추격대를 붙여 놓고, 다른 이들은 우회해서 피난 행렬의 앞쪽을 막아섰다고 했다. 그러니까 포위망을 좁히면서 사냥을 하는 방식이었다.

이전 칼란 때와 같이 그냥 무작정 달려드는 짐승 같은 놈들이 아니었다. 생김새도 다르고, 무기를 쓰는 것을 볼 때, 이전의 것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피난민들과 그들을 호위하던 수도의 군대는 전방위로 좁혀오는 놈들과 맞붙었고, 결과는 당연히 처참했다. 황족들을 호위하는 기사들과 마법사들의 희생으로 몇몇만이 살아서 도주할 수 있었는데, 그들 또한 추격대를 따돌리지 못하고 모두 죽었다고 했다.

그중 단 한 명. 황태자를 업고 있던 그녀만이 끈질기게 도주와 잠복을 병행하며, 온갖 방법으로 동북 쪽에 위치한 항구까지 가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하게 되고, 추격대에게 따라잡히게 되었다고 했다.

보랏빛 화염이 검은 군대를 덮치는 것 같은 기억이 마지막 기억이고, 그녀는 너무 오랜 도주에 지쳐 혼절을 해 버렸다고.

그저 짐승처럼 닥치는 대로 잡아먹고, 찢어발기는 칼란의 검은 군대와는 달랐다. 지능적이고 계획적인 놈들이었다.

체계가 확실한 놈들이다.

칼란의 것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많이 났다.

“갈수록 태산이군.”

체계가 갖춰진 놈들이 설친다면, 전 마계적으로 피해가 늘어날 것이다. 지금의 이 넓은 아킬라 대륙이 초토화된 것처럼.

과연 바라멜리아는 잘 전달했을까? 아니지. 뭐, 그 녀석이 전달을 제대로 안 했더라도, 아덴이 갔으니…….

내 가슴속에 아덴의 여운이 굉장히 강하게 남았다. 나 또한 격을 뛰어넘은 존재지만, 그는 그 이상의 격에 도달한 존재로 느껴졌다.

뭔가 강한 것을 느낀 것은 아니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신비하고도 알 수 없는 그 느낌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히네.”

“네.”

“혹시 하마디아는 어디 있는지 알고 있나?”

“아……! 하마디아 공작님이라면, 아마 제국 북부 쪽에 계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도 그쪽은 잘 몰라서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여긴 안 왔단 말이지?”

“네.”

제국 북부 ‘셰일’ 공작령. 제국이 세워지고 난 뒤, 하마디아가 내게 하사받은 곳이었다. 그러나 그는 공작령을 가지고는 있지만, 내무 대신이었기에 주로 수도에 잘 머물렀었다. 하여 내가 수도로 달려온 것이었다.

“오늘은 하마디아가 쉬는 날인가?”

“예?”

“업무가 많아 주로 수도에 기거했었는데, 본가에 있다고 하니 이상하군.”

“아… 그분은 은퇴하셨습니다.”

“뭐?”

“음… 이건 제가 지나가다 들은 소문일 뿐이지만, ‘쿤도 ’가문의 세력에 밀려 나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저도 잘 모릅니다.”

히네는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끝에 꼭 잘 모른다는 이야기를 붙이며.

“쿤도……”

쿤도 가문도 개국공신 가문 중 하나다. 내가 신뢰하는 이는 아니었지만, 국무대신으로 굉장히 뛰어난 정치 전략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자식을 낳지 않아, 황제 자리를 ‘브라마흐’에게 물려줄 때도 반발했었던, 꽤 욕심이 많던 인물이었다.

역시 그놈이 다 장악했나.

본래 하마디아에게 황제 자리를 넘겨주려 했으나 그는 한사코 거부했고, 결국 내가 신뢰하는 인물 중 하나였던 외무대신 브라마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갔다.

그때 개국공신 중 하나인 쿤도 후작을 중심으로 한 세력들이 거세게 반발했으나, 내가 워낙 국민 지지도가 높은데다, 육황의 자격 증명까지 한 상태였기에, 반기를 들진 못했다.

좀 우려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떠날 때만 하더라도 하마디아와 브라마흐가 우호 관계였고, 그들에게 줄을 댄 귀족들이 많아, 감히 쿤도 후작 세력이 넘볼 수 없는 세력이었다.

약해졌구나 하마디아.

“북부로 가자. 넌 황자를 챙겨서 잘 따라오고.”

“네.”

히네는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그리고 넷은 별말 없이 나를 따라 다시 북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마를레나를 제외한 셋은, 대화가 거의 없었다. 가는 곳마다 박살이 나 있고, 처참한 광경들뿐이었으니. 게다가 아킬라 대륙은 내 제2의 고향. 내가 일군 나라도 있었고, 내가 육황으로 있던 곳이기에 다들 분위기가 더욱 무거워 입을 잘 열지 않았다.

“너무들 무겁게 생각하지들 말아.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 같은 거니까.”

“생각해 줘서 고맙네. 얼른 가지.”

로아이스의 말에 본격적인 이동이 시작됐다. 이전처럼 땅을 그대로 들어 올려 비행을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가야 했기에 결계를 펼쳐 거센 바람에 대비했다.

“근데 이 난리 통에 그 친구는 살아 있을 수 있겠나?”

로아이스가 연륜에 묻힌 얼굴로 물어왔다.

“살아 있을 거야.”

“뭔가 확신이 있나 보군?”

“내 선물을 제대로 갖고 있기만 하다면, 아마 그뿐만이 아니라 그 가문 정도는 지킬 수 있을 거야. 꽤 강한 방패를 쥐어 줬거든.”

내 말에 로아이스의 얼굴에 웃음이 폈다.

“꼭 살아 있길 바라겠네.”

“고맙다.”

“내가 더 고맙지. 이 늙은이를 세상 밖으로 꺼내 줘서 이제야 좀 살맛이 나는 것 같네.”

그의 말에 굳어 있던 내 얼굴이 풀어지며,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리고 나머지 둘을 불렀다.

“이제 곧 내 일차적 목적은 끝이 난다. 나머지 일은 칠대제로서의 일이 될 거야. 너희들은 어떻게 할래? 칼란으로 돌아가야지. 넌 딸내미도 있고.”

스레인을 지목하며 강조했다.

“전, 대제께서 하시는 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알리가 먼저 입을 열었는데, 이 녀석은 고향에서 부와 권력을 모두 쥐고 있으면서, 굳이 내 시종 노릇을 하겠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 녀석이다.

“저는 갔다가 다시 오겠습니다.”

스레인은 갔다가 다시 오겠단다.

“뭘 다시 와. 가서 그냥 있어. 이웃 대륙 도와줄 곳 있으면 가서 도와주던지.”

“칠대제라 함은, 한 시대에서 가장 강한 자입니다. 저 또한 무에 뜻을 둔 사람으로서, 세계의 위기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웃 대륙이나 도와주라고 했잖아.”

“아뇨. 칼란 대륙에서부터 버마 대륙, 아킬라 대륙까지 대제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것이 제 운명이고, 길이라 생각합니다.”

녀석의 완고함에 숨을 한번 깊게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그래라 그럼. 영감은?”

“뭘, 그런 걸 물어보고 그러나? 갈 곳도 없는 노인네일세. 당연히 따라나서야지. 수백 년 만에 나들이인데, 이렇게 끝내고 싶은 생각은 없네.”

피식 웃었다.

역시 재미있는 노인네야.

“마를레나는 어떻게… 나와 함께 다니면 위험할 거야. 재수 없으면 악신과 마주하게 될 수도 있고.”

수현이가 생각나 마를레나에게 나도 모르게 겁을 줬다.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것은 잘하면 안전하지만, 잘못하면 재앙과 마주할 수 있기에, 옆에 있다가 불똥이라도 튀기면 그대로 황천길이었다.

마를레나는 그런 내 우려를 날려버렸다.

“이젠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재앙 속에 뛰어들더라도 함께 갈 거예요.”

“정말 각오 단단히 해야 돼.”

마를레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물론이에요.”

미소로 답하고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전방으로 향했다.

“낙오자가 하나도 없네.”

예상치 못한 뿌듯함이 가슴을 채웠고, 우리는 북쪽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 * *

‘간 건가……?’

셰일 지방의 지주 하마디아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집 밖을 살폈다. 조용해진 지 꽤 지났기 때문이었다.

그의 시야가 닿는 곳에는 검은 괴수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거리엔 고요가 내려앉아 있었다.

“후우…….”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지,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수도에서 멀어져서도 이런 변을 당하다니…….’

쿤도 가문의 세력이 수도를 장악하고, 제국의 실세가 된 후 하마디아는 스스로 직위를 내려놓고 가문으로 내려갔다. 계속 수도에서 버티고 있으면 아주 좋지 않은 일을 당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물러나서 뒷일을 도모하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고, 본가로 들어간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제국을 침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금세 황제의 동원령이 떨어졌다.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의심했었다. 소문 자체도 의심했고, 간곡한 어조로 쓰인 황제의 친필 서한도 의심했다. 딱히 위조가 증명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을 죽이기 위한 모략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여, 준비를 하는 척 미기적대며 시간을 끌었다.

그렇게 미기적대는 사이, 최후의 방어선이 만들어졌다는 소식과 함께 이번에는 협박조의 서한이 왔다. 제국이 멸망하는 시국에 힘을 보태지 않는 그를 탓하는 내용이었다.

그제야 그는 그것이 사실임을 인지했고, 병력을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그의 영토인 셰일 지방이 침공을 당했고, 그는 제국에 힘을 보태기 전에 자신의 영지부터 지켜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리고 그 병력은 검은 군대에게 무참하게 박살이 났다. 순식간에 몇 개의 도시가 함락됐고, 생존자도 건질 수 없을 만큼 심각한 타격을 입으며, 그 정체불명의 검은 군대는 본가가 있는 도시, ‘고렝데’까지 진격해 왔다.

도시의 방어선은 쉽게 무너졌고, 금세 성벽을 뚫고 도시 안으로 검은 군대가 밀고 들어왔다. 시민들은 그저 아비규환인 상태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고, 병력들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죽어 나갔다.

그런 상황에 하마디아는 …침착하게 가문의 사람들을 달래며, 대피하지 않고 본가에 남았다. 그가 그렇게 침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자신의 친우가 주었던 선물 때문이었다.

대륙에서 가장 강한 자를 넘어, 칠대제의 자리에까지 오른 그 친구가 준 아티팩트. 그 친구는 그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 중 하나였기에 그는 믿었다. 그의 지위 따위를 믿는 게 아닌 그 자체를 믿었으니까.

그는 친구인 신시우가 알려 준 대로 지키고 싶은 것을 생각하며, 주문을 외웠다. 딱히 마력도 거의 없는 그였지만, 아티팩트는 빛을 발했다. 그리고 2개의 결계와 3겹의 실드가 그의 본가를 감쌌다.

그의 믿음은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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