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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회오리바람에 가까이 가기 위해 협곡의 초입으로 이동한 우리는 더 이상 다가갈 수가 없었다. 끔찍할 정도로 짙어진 죽음의 기운 때문도 있지만, 주된 이유는 점점 넓어지는 알 수 없는 ‘영역’ 때문이었다.
마치 산 땅과 죽은 땅의 경계선처럼, 협곡 초입에 경계가 뚜렷하게 있었다. 우리가 딛고 있는 쪽은 보통의 땅이었고, 숲이 시작되는 지점부터는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나무도, 땅도 모두 죽은 색이 되어 있었다.
마력 고리 열 개를 공명시켰다. 그러자 이전까지는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이 느껴졌는데, 썩은 내가 진하게 풍겨 왔다.
죽음의 냄새다.
알리는 인상을 와락 구기며 참아 내고 있었고, 스레인은 이빨을 꽉 물고 있었다. 로아이스만이 티를 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더러운 기운이 이렇게 짙은데 컨디션이 좋으면 이상한 거지.
끔찍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좋지 않았다.
“너희들은 밖으로 물러나 있어. 혼자 다녀올 테니까.”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스레인이 미간을 찌푸린 채로 걱정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 같으면 돌아올 거야. 걱정하지 말고 물러나 있어.”
그렇게 셋과 떨어져 나 혼자 경계선으로 향했다. 경계선 앞에 서자, 인상을 쓰지 않고는 버텨 낼 수 없을 정도로 고약한 악취가 났다.
이것은 후각으로 전해지는 그런 악취가 아니다. 마나를 통해 전해지는 악취. 악한 존재의 기운이었다.
바르 놈의 기운이겠지.
이런 더러운 기운으로 대륙을 잠식하고 있다니, 한시바삐 이것을 없애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정화를 해야 하나?
이런 죽음의 기운을 어떻게 해야 몰아낼 수 있는지 아는 바가 없어서 뭐든지 실험을 해 봐야 했다. 하여 고리를 두 개 더 공명시킨 후 마나를 모아 성력으로 변환시켰다. 그리고 그것을 대지에 내리꽂았다.
대지와 충돌한 성력이 파동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는데,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완전히 걷어내진 못했지만, 꽤 넓은 범위를 한 꺼풀 걷어 낼 수 있었다.
엄청 시간이 걸리겠는데…….
고리 열두 개 정도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나는, 바로 열세 개를 공명시키고는 탈태를 시작했다.
이제는 익숙한 고양감이 온몸을 가득 채웠다. 칠대제가 되었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자신감이 나를 거만하게 만들었다.
그런 상태로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산맥 전체에 거대한 기류가 생겨나며, 마나가 협곡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모인 마나들이 전부 성력으로 변환되었고, 성력의 환한 빛이 안개를 뚫고, 온 세상을 환하게 만들었다.
고리 열두 개 때보다 훨씬 강력해진 성력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 찬란한 빛을 머금은 성력 덩어리들을 그대로 협곡에 투하했다.
거대하게 뭉쳐진 성력들이 충돌하면서 강력한 파동에 숲의 일부가 휩쓸렸다.
“오, 좋아.”
효과가 굉장했다. 협곡 전체. 아니, 눈으로 보이는 산맥은 전부 뒤덮고 있던 죽음의 기운이 꽤 많이 걷혀 나갔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니 산맥의 대부분을 회복시켰고, 검은 회오리의 바로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무시무시한 기운이군.
검은 회오리는 구름 위쪽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피부가 저릿할 정도로 강력한 죽음의 기운이 계속해서 내려오고 있었다.
아마도 바르가 있는 곳과 연결되어 있는 듯했다.
이걸 어떻게 없애지?
검은 회오리는 다른 여타 회오리바람과 다르게 그렇게 요란하지 않았다. 공기보다 무거운 것이 회오리치면서 내려오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희한하게도 그것이 강한 기류를 만들어 내진 않았다.
먼저 회오리가 어떤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 마나를 이용해 주변의 바위를 하나 들어 올려 회오리 안으로 넣어 봤다.
큰 저항 없이 회오리 안으로 들어간 바위는, 묵직해지는 느낌과 함께 금세 변색되었다. 강한 충돌했을 때와 같이 파괴되거나 흑마법사들의 어떤 마법과 같이 삭아 없어진다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봤다. 이 죽음의 기운이 내려오고 있는 그 원천지를 공략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거대한 성력 덩어리 두 개를 만들어 가지고 빠르게 하늘로 쏘아져 올라갔다.
구름 위로 올라온 나는 커다란 검은 구멍과 마주할 수 있었다. 역시나 가장 강력한 죽음의 기운이 내 몸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은 느낌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대체 저런 곳에서 사는 바르라는 놈은…….
도대체 이해가 되질 않는 존재를 금세 털어 버린 나는 그대로 성력 덩어리를 검은 구멍 쪽으로 던졌다.
검은 빛을 흘리는 힘과 흰빛을 내뿜는 힘이 한차례 뒤엉키더니 그대로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 이후 일시적인 것인지 더 이상 검은 구멍으로부터 죽음의 힘이 내려오지 않았다.
일차적으로 내려오는 죽음의 기운을 멈춘 나는, 바로 마나를 모아 성질 변환을 시작했다. 그리고 십수 개의 성력 뭉치들을 만들어 낸 나는, 다시 죽음의 힘이 내려올라, 잽싸게 검은 구멍 안으로 성력들을 넣었다.
검은 구멍 너머는 그저 고요했다.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뭔가 흘러나오는 죽음의 기운의 농도가 달라졌다든가 하는 것도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서서히 검은 구멍이 닫히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랐다. 그저 내가 했던 방법들 중 어떤 것이 먹혔겠지. 라고 생각하며, 마력 고리의 공명을 풀고, 지상으로 내려갔다.
* * *
‘끔찍하군.’
로아이스는 이런 끔찍한 기운은 태어나서 처음 느껴 봤다. 사악한 흑마법사들이 부리는 여러 사술들도 본 적이 있는 그였지만, 이런 끔찍한 느낌은 받지 못했다.
‘마치 온 세상의 악이 모여서 드글대는 느낌이야.’
그것은 기본적으로 역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역한 것이 피부를 긁고, 뼛속까지 침투하는 정도라면 두려움과 공포가 생겨난다.
지금 그는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알리와 스레인을 힐끗거린 그는, 그들 또한 풍겨 오는 악한 기운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음을 보았다.
‘저 친구가 잘해 낼 수 있을까.’
그는 멀리 보이는 신시우를 바라봤다. 여태 보아 온 것이 있어서 믿고는 있지만, 지금처럼 짙은 기운은 처음이었기에 그는 불안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입을 떡 벌렸다.
‘성력……!’
마나를 다루는 마법사가 성력으로 대지를 정화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다음에 벌어지는 광경은 그를 더욱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거대한 마나 기류가 산맥을 타고 모여들어 협곡 위에 커다란 마나 구체들을 만드는 것도 장관이었지만, 그 커다란 마나 구체들이 모두 성력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거대한 성력 덩어리들이 뿜어내는 빛이 안개를 통과하며, 산 전체를 성역으로 바꿔 버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엄청나군.”
그의 입에서 절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 말과 동시에 커다란 성력 덩어리들이 협곡으로 떨어졌고, 강력한 힘의 파동이 일대를 휩쓸었다.
마음이 충만해지는 것이, 정말 성직자들이 사용하는 성력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 점에서 로아이스를 포함한 셋 모두 혀를 내둘렀다.
또다시 마나 기류가 모여들어 거대한 마나 구체들을 만들어 냈고, 그것이 커다란 성력 덩어리로 바뀌어 협곡으로 투하되는 것이 두어 번 반복되었다.
그 엄청난 광경을 셋은 넋을 놓고 보고 있었고, 허공으로 떠올랐던 신시우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일대가 모두 정화되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칠대제라는 이름도 아까울 정도군.”
로아이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격찬을 했다. 그에 알리가 경쟁하듯 얘기했다.
“칠대제라는 이름에 가두기도 아까운 분이오. 이미 격도 높아지셨고, 마신계로 가셔야지.”
“동감입니다.”
스레인이 거들었다.
“맞네. 이미 이 세계의 존재들과는 격이 달라졌어.”
로아이스도 인정했다. 그러던 그때 또다시 마나의 기류가 만들어지는 것을 느낀 그들은, 멀리 검은 회오리가 있는 쪽을 주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희게 빛나는 두 개의 커다란 덩어리를 가지고 구름 위로 올라가는 신시우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모두 숨을 죽이고 검은 회오리와 구름 위를 주시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또다시 힘의 파동이 일대를 휩쓸었고, 검은 회오리가 천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이내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그것이 사라졌음에도 악한 기운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고, 무언가가 구름 위에 있다는 것을 그들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리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천천히 그 기운이 옅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을 때. 그들의 앞에 신시우가 나타났다.
“끝났어. 이동하자.”
* * *
대체 마법사가 어떻게 성력을 사용하냐는 둥 알리가 질문 공세를 퍼붓자 나머지 둘도 옆에서 거들었다. 그에 졸지에 소풍이라도 나온 것 같은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하여 급랭시켰다.
“너무 들뜨지 마. 놀러 온 것 아니니까.”
분위기가 좀 잡히고, 우리는 속도를 높였다. 마음속에서는 어디를 먼저 가야 할지, 마를레나는 무사한지 등 여러 생각들이 얽혀들어 마음을 어지럽혔다.
놈들을 잡고 마를레나에게 간다.
마음을 애써 눌러 진정시켰다. 처음에 이곳에 오자마자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었으나,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대륙을 잠식해 가는 검은 회오리부터 제거하고, 대륙 전체가 멸망하기 전에 이곳을 휘젓고 있는 십이사신 놈을 소멸시켜야 했다.
검은 뿔을 가졌던 놈처럼, 쓸고 지나간 마을과 도시는 괴수 하나 없었다. 그리고 흔적들을 볼 때 괴수들의 종류가 좀 다른 것 같았다.
뭐랄까. 사족보행 괴수들이 적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커다란 발자국들이 많았고, 무기들도 곧잘 쓰는 것 같았다. 이전의 놈들이 이끄는 군대와 같이 야수나 짐승 같은 놈들이 아니라 정규군 같은 느낌이었다.
추격은 꽤 오래 지속됐다. 놈들이 지나간 지 꽤 시간이 흐른 까닭이었다. 꽤 시간을 소모하여 산과 강이 굽이치는 지형을 빠져나오자 멀리 전쟁 중인 도시가 보였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것은 분명한 놈들의 것이었다.
“빠르게 가자.”
내가 아킬라 대륙의 패권을 쥐고 있던 제국의 황제였고, 육황을 지냈지만, 아킬라 대륙의 모든 지리를 샅샅이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곳이 정확히 어느 위치인지 잘 알지 못했다.
아킬라 대륙은 대륙 중에서도 꽤 큰 편인데다가, 그 큰 만큼 여러 세력이 있고, 국가도 너무 많아 제국을 벗어나면 모르는 곳이 천지였다. 사실 제국도 워낙 넓기 때문에 모르는 곳이 많다.
내가 대륙 간 공간 이동으로 온 곳은 대충 이름만 아는 그런 곳이었다. 그렇기에 이곳이 어디인지 빠르게 위치를 파악해 볼 필요가 있었다.
공간 이동 마법으로 도시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생존자를 최대한 확보해야 하니까. 신경 쓰도록 해.”
그 말을 남기고 나는 바로 블링크 마법을 이용해 도시로 이동해 들어갔고, 나머지도 빠르게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