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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집만으로도 모든 종족을 압도하는 종족 드래곤. 거기다 강대한 마력까지 지닌 그들은, 상위 마족들만 없었다면 아마 마계 72대륙을 지배하는 것은 드래곤이었을 거라는 얘기도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피지컬을 자랑하는 종족이다.
공평하지 않은 신은 강력한 신체와 힘을 두루 갖춘 그들에게 지능까지 부여했다. 그들의 높은 지능을 기반으로 펼치는 마법은 마치 조각가의 그것처럼 섬세하다.
그런 그들의 마법적 능력은 건축술과 만나 환상적인 마법 건축술을 만들어냈다. 그 환상적인 마법 건축술이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저 거대한 건축물들이다.
“어마어마하군요.”
“가까이서 보니 규모가 정말…….”
드래곤들이 크기를 줄이지 않고도 드나들 수 있게 지어진 건물들은 그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물론, 건물에 살기 싫어하는 드래곤들은 산속 동굴을 만들어 사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건축물을 사랑하는 드래곤들은 자신의 둥지처럼 건물을 만드는데, 모양도 독특하고, 굉장히 화려하게 짓는다.
그런 건축물들은 견고하기도 그지없어서, 웬만한 공격에는 끄떡하지 않는다. 그것이 지금 눈앞에 있는 상황이었다.
인간형 검은 괴수와 커다란 네발 형 괴수가 쏘아 낸 검은 광선이 건물을 때렸으나 건물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놈들은 화가 난 드래곤의 발톱에 갈기갈기 찢겼다.
“우리가 난입할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요.”
알리의 말처럼 이 도시는 스스로 놈들을 막아 내고 있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펼친 마나 필드에 걸리는 죽음의 기운이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미 많이 소멸한 듯 보였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지금 하늘을 날고 있는 저 검은 용 같은 것을 타고 있는 놈이 콩급도 안 되는 것 같다는 것.
저놈이 보스라면 다행인데, 진짜 보스가 따로 있다면…….
또 얼마나 거슬리는 권능을 가지고 있을지 걱정이 됐다. 콩이 가지고 있던 것도 꽤 성가신 능력이었으니까.
“일단 인사를 해야지.”
도시를 뒤덮은 마나 필드에 걸린 모든 드래곤들에 정신을 연결했다.
[버마의 드래곤들이여. 우리는 칼란 대륙에서 넘어온 지원군들이다. 그대들이 원하면 참전하겠다.]
수많은 존재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만큼 드래곤 하나하나의 존재감은 굉장했다. 그 많은 시선 중 가장 강력한 시선이 느껴지는 곳에서 답이 왔다.
[우린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다. 그만큼 약하지도 않고.]
드래곤 특유의 오만할 정도의 자신감. 그리고 그들의 드높은 자존심. 그것들이 모두 내포된 대답이었다.
[마계 전체가 위기에 빠져 있다. 거기에 버마 대륙도 예외는 없어.]
내가 마계를 들먹이자 멀리 보이지도 않는 곳에 있던 놈이 도시의 초입에 있는 커다란 건물 위로 날아왔다.
건물 위에 앉아 붉은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그 드래곤은, 드래곤치고 작은 몸집에 색은 온통 검었다.
[마계 전체라고 했는가?]
작은 것치고 이곳 무리의 수장인 듯했다. 기세도 꽤나 잘 벼려져 있고.
[그래.]
[넌 누구지? 육황인가?]
다들 질문이 하나같군.
[더 위.]
[위? 그 위에 무엇이 있지?]
[칠대제.]
[뭐? 칠대제? 네가 그 그라가레의 칠대제란 말인가?]
마계에서 강자 중의 강자를 뽑아 놓은 집단 칠대제. 강자를 칭송하기 위해 대제라는 단어를 갖다 붙였지만, 사실은 대제 같은 것보다는 그저 천공섬에 사는 마계 최강자들이다.
일반인은커녕 대륙에서 가장 강한 육황조차 평생 칠대제를 볼 일이 없다. 천공섬 그라가레에 발을 들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마계가 워낙 넓은 탓에 다른 대륙도 못 가 보는 판국에 천공섬에 올라가 볼 수 있겠는가? 게다가 가고 싶다고 해도 허가가 나질 않아서 못 간다.
그렇기에 칠대제들은 초차원계에 존재하는 마신들과 비슷한 취급을 당한다.
[그래.]
잠시 녀석이 동요하는 것이 느껴졌다.
[신기하군.]
저게 칠대제에 대한 제대로 된 감상이다. 그저 신기한 존재. 그들에게 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드래곤들은 마계의 율법 따위를 무시하는 존재들이니까.
[칠대제까지 움직일 정도로 마계가 위험에 처했단 말이지.]
[그래.]
[좋아. 참전을 허락한다. 다만, 드래곤을 우습게 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물론.]
참 어렵게 얻은 참전 허락이었다. 저 녀석이 저렇게 놀고 있을 정도면 사실 참전 따위 안 해도 되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 빠르게 정리하고, 중요한 논의를 해야 한다.
“드래곤들이 참전을 허락했다. 최대한 드래곤들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검은 괴수들을 소멸시켜. 녀석들의 심기를 건드리진 말고. 괜히 싸우지 말고. 그리고 모든 전투가 끝나면, 저기 저 탑 밑으로 모이자.”
“예.”
“너희 엘프들은 어떻게 할래? 이 전투가 끝나면 알아서 돌아가도 되고.”
“일단 모이도록 하죠.”
“좋아. 흩어져.”
내 명령을 받은 이들은 모두 흩어졌다. 흩어지는 이들을 지켜본 나는, 마법을 이용해 앞에 있는 커다란 건물 위, 검은 드래곤 근처로 이동했다.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얘기해.]
[대륙 간 통신 중개소가 어디 있지?]
[그건 왜 묻지?]
역시나 귀찮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드래곤들도 다른 놈들은 다르지만, 대부분이 의심이 많고 호기심이 많아 궁금한 게 너무 많다. 쓸데없는 것을 지들도 알면서도 알고 싶어 한다.
[아킬라 대륙과 통신을 해야만 한다. 그곳이 내 고향이야.]
[그렇군. 대륙 간 통신 중개소라면…….]
녀석은 기억 저편에 숨겨진 것을 끄집어 내듯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잠깐. 중개소라면 다른 대륙에서 더 먼 대륙으로 통신을 이어 주는 곳이 아닌가? 그렇다면 다른 대륙에서 중개소를 거쳐서 연락이 닿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굳이 버마에 와서 중개소를 찾는 거지?]
[중개소가 연락을 받지 않으니까.]
[뭐?]
녀석의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내가 알기로 대륙 간 통신 중개소는, 대륙의 서쪽에 있는 ‘발류머드’라는 드래곤 무리가 관리하고 있다. 발류머드는 대륙에서도 규모가 크고, 강한 종들이 모여 있는 무리다. 대륙의 중대사를 논할 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무리지.]
[그래서 그들이 당했을 리 없다. 뭐 이런 논리인가?]
녀석이 침묵을 지켰다.
[내 말이 같잖게 들리나 보지? 마계 전체가 위기에 빠져 있는 상황이라고 분명 얘기했을 텐데.]
또 녀석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입을 열었다.
[나도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다. 발류머드가 당했다면, 그 주변에 있는 무리들도 무사하지 못했을 테니. 대륙 서부로 가는 길은 우리들이 안내하지.]
[좋아.]
그렇게 버마 대륙의 길잡이를 얻은 나는,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 밑으로 향했다.
역시. 저놈이 우두머리가 아니었어.
머리 위에서 추락하고 있는 기다란 용 같은 것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우두머리는 발류머드라는 드래곤 무리를 해치운 놈일 거라고. 그리고 그놈이 콩보다 훨씬 강할 거라고.
쾅-!
도시 전체를 울리는 강력한 충돌음이 내 정신을 환기시켰다.
마기……?
멀지 않은 곳에서 스레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마기가 마력과 충돌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스레인 녀석이 드래곤과 마찰을 일으킨 모양이었다.
역시나 현장에 도착해 보니 스레인이 중간 정도 몸집의 드래곤과 대치 중이었다. 둘이서 노려보고 있는 것이, 정신 연결을 통해 말을 주고받는 것 같았다.
드래곤은 이곳저곳에 단단한 뿔이 자라난 데다가 투박하게 생긴 것이 척 보기에도 성질이 한가락 하게 생겼다.
겉모습으로만 보기에는 스레인을 단번에 찢어발길 것 같은 그림이지만, 힘으로 따지면 스레인이 꽤나 위에 있다.
“싸움은 그만둬라.”
“예. 싸움까지 가진 않을 겁니다.”
“서쪽으로 움직일 거야 준비해.”
“알겠습니다.”
녀석은 한참이나 드래곤과 마주 보고 나서야 몸을 돌렸고, 우리는 출발 준비를 했다.
* * *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다는 엘프들은 생각보다 이 대륙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허나, 먼 거리를 이동하는 여정에 참여하려고 하진 않았다.
엘프들은 산맥 안쪽으로 돌아갔고, 드래곤들은 무리의 수장인 검은 드래곤 ‘퓨리스’를 포함하여 총 열 마리의 드래곤들이 동행을 자처했다.
나는 공간이동 마법을 이용해 움직일 줄 알았지만, 비행으로 가야 했다. 그곳에 가 본 드래곤이 없었기도 하고, 드래곤들은 굳이 도시 간에 마법을 써서 이동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먼 거리를 왜 굳이 마법을 쓰지 않고 가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이 그냥 그들의 등에 올라타서 가야 했다.
이전에 대제행 때 버마 대륙에 오면서 이곳에 대해 여러 가지 들은 것이 있었는데, 이곳 버마 대륙은 다른 대륙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사회 시스템. 대륙을 지배하는 드래곤이 무리 단위의 사회구성을 하고 있기 때문에, 타 대륙과는 사회 시스템이 완전히 달랐다.
당연히 도시나 마을 같은 개념 자체도 달랐고, 그 때문에 도시 간 이동 시스템도 달랐다.
이곳 버마 대륙에는 도시 간 이동시스템이라는 것이 없다.
아무리 먼 거리라도 마법을 이용해서 이동하고 싶으면 이동하고, 비행해서 이동하고 싶으면 비행해서 이동한다.
지정된 장소에서 타인의 힘으로 먼 거리를 이동하게 되는 마법 이동소라는 것 자체가 없다.
그렇기에 평생 가 보지 않은 곳으로 이동할 때엔 급하더라도 이런 미련한 이동 방식밖에는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야… 살다 살다 드래곤의 등에 올라타 보기는 처음이군.”
로아이스가 감탄에 마지않았다. 그런 그에 알리가 한술 더 떴다.
“정말 신비한 생물이군요. 꼭 한번 연구를 해 보고 싶은데…….”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라고 했지?]
나와 다른 드래곤의 등에 타고 있어 육성으로 닿지 않는 녀석에게 경고했다.
[아… 죄송합니다. 듣고 계셨군요.]
멀리 씨익 웃는 녀석의 밉지 않은 얼굴이 보였다. 마치 여자같이 여리여리하게 생겼지만, 예리한 눈빛을 소유한 남자. 알리. 이상하게 밉상의 얼굴은 아니었다.
시선을 거두어 다시 앞을 봤다. 굉장히 빠른 속도임에도 지나가는 풍경이 빠르지 않았다. 고도가 꽤나 높다는 얘기다. 이렇게 고도를 높이 난다는 것은, 이놈들이 보통 드래곤은 아니라는 증거다.
지나가다 주워들은 것이지만, 고고도 비행은 일반 드래곤들은 하기 힘든 것이라 한다. 드래곤의 심장이 안 좋아진다나? 아무튼 지나가다 들은 얘기지만, 고고도 비행을 하는 드래곤들은 강한 드래곤들이나 비행에 특화된 드래곤들이라고.
보통은 굳이 고고도 비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녀석들이 굳이 이렇게 고고도 비행을 하는 이유가 뭘까? 자신들의 능력을 자랑하기 위해?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냥 길을 잘 찾기 위함인가?
왜 굳이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와서 힘을 들이는지 궁금했지만, 딱히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것이 답답할 뿐.
* * *
발류머드. 버마 대륙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러 드래곤 무리 중 하나로, ‘서쪽 바위산의 지배자’라 불리는 그들의 위상은 꽤나 드높다.
그런 그들의 도시와 활동 구역이 초토화되었다는 소식은, 버마 대륙에 살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충격을 받을 만한 소식이자 믿기 힘든 소식이었다.
그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한 것은 대륙 중앙에 가깝게 자리를 잡고 있는 드래곤 무리 ‘레이피드’. 무리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드래곤이 전한 소식이었지만, 그들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타 대륙에서 침공을 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뜬금이 없었고, 발류머드 무리에 속한 드래곤이 이 정도로 혼비백산할 만큼의 힘을 가진 대륙이 존재한다는 것도 믿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활동 영역 전부가 초토화되었다니. 그들의 활동 영역 안에 있는 무리만 해도 스무 무리가 넘었다.
그들이 다 당했다니. 당연히 믿기 힘든 얘기였다. 그러나 그 소식을 접한 지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그들은 직접 눈으로 그 괴이한 존재들을 볼 수 있었다.
[저게… 대체…….]
온 세상이 까맣게 물든다고 해야 할까? 공중은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고, 지상 또한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시야를 가득 채우며 밀려오고 있었다.
[저… 저것들이오. 어서……! 어서 대피를!]
레이피드 무리의 장로들과 수장은 그 광경을 보고 넋이 나가 버렸고, 지천을 메우며 몰려오고 있는 것들이 뿜어내는 불길한 기운이 그들의 발을 묶었다.
그런 그들의 묶인 발을 푼 것은 한 장로의 외침이었다.
[어서들 움직이게! 이러고 있다가 다 죽을 셈인가!]
그제야 부랴부랴 움직이며 무리를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갑자기 튀어나온 이질적인 웃음소리가 다시금 그들의 발을 묶었다.
“크크크큭… 어딜 도망가, 이 벌레들아.”
그들에게 소식을 알려 주었던 그 드래곤이었다.
[니들은 이미 끝났어.]
발류머드 무리에서 도망쳐 왔다는 드래곤의 눈이 기이하게 휘어지며, 소름 돋는 목소리가 드래곤들의 머릿속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