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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61화 (61/100)

61. 죽음을 먹고 사는 것들

주먹이 당겨짐과 동시에 마나가 주먹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뻗어 나가며 놈의 얼굴을 강타했다. 큰 소리와 함께 날아간 놈은 건물 몇 채를 부수고 지나갔다.

“손맛이 좋네.”

순간 녀석이 지나간 자리로 공기가 빨려들어 가더니, 녀석이 빛살처럼 쏘아져 나왔다. 그러나 내 눈에 훤히 보이는 속도이기에, 놈의 공격은 역으로 놈의 머리를 땅에 처박는데 일조했다.

놈은 단말마 비명도 지르지 못할 속도로 땅에 깊이 처박혔다. 그리고 다시 튀어 올랐다. 그렇게 몇 번이나 내게 처맞고 처박히기를 반복하던 놈은, 현저히 그 힘이 줄어들어 있었다.

이렇게 약해진다는 것은.

힘을 소모할수록 약해지는 타입 같았다. 발출되는 힘의 세기는 물론이고, 신체 능력까지 전부 떨어졌다. 이제 놈의 약점을 알았다.

“하나만 묻자. 이 대륙으로 쳐들어온 건 네놈 하난가?”

“너. 정말 쎄구나. 그러나 너도 콩 님은 이기지 못해.”

“콩?”

“나는 그분 세력의 극히 일부. 그분의 세력이 이 대륙에 상륙했고, 모조리 집어삼켰다. 그리고 더 거대한 힘을 얻었지. ”

“그래? 근데 왜 넌 거대한 힘을 못 얻었지?”

녀석은 또 키득거리며 웃었다.

“자만하지 마라. 모든 놈들이 자만하다가 끝이 났거든.”

“그래. 충고 고맙다. 어때. 더 처맞고 얘기할까. 아니면, 얘기를 좀 할까?”

“지금도 하고 있잖아. 멍청한 녀석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머리통이 날아갔다.

“다른 애한테 물어볼게.”

그런데 이놈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난 거지?

내 뒤에 으르렁거리고 있는 네발 달린 검은 괴수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곳에 오자마자 납작하게 눌러 죽인 것들이 다시 일어서 있었다.

크기는 좀 작아진 것 같은데… 뿜는 죽음의 기운도 한층 약해졌고…….

그에 머릿속에 한 가지 익숙한 패턴이 그려졌다. 죽음을 먹고 힘을 얻은 놈들은, 재생될 때마다 힘이 작아진다는 패턴.

먹거나 흡수해서 힘을 키우는 존재들의 흔한 힘 소모 패턴이었다.

그럼 이놈도…….

시선을 돌려 다시 그 쪼그만 놈에게로 향했다.

꾸물꾸물.

머리를 잃은 모가지에서 시커먼, 액체도 고체도 아닌 것 같은 것이 자라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금 새 머리의 형태를 갖췄다.

역시나 몸의 크기가 좀 더 작아졌고, 기분 나쁜 죽음의 기운도 약해졌다.

“실험을 좀 해 볼까.”

그때부터 주위의 놈들을 모조리 죽이기 시작했다. 재생되어 살아나면 또 죽이고, 또 죽였다. 그렇게 5회쯤 반복하니, 네발 달린 놈들은 더 이상 살아나지 못하고, 거죽도 남지 않고 검은 연기가 되어 흩어져버렸다.

그리고 그 작은 고슴도치 같은 놈은 11회차 죽음을 맞고 나서야 소멸했다. 큰 힘을 비축한 놈이 더 많이 재생한다.

전장같이 수도 없이 죽어 나가는 곳이라면, 이놈들의 화력이 대단하겠군.

대충 놈들의 특성을 알았으니, 한 놈 잡아서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마침, 무리를 이끌고 도시를 빠져나가려는 놈이 마나필드에 걸렸다.

* * *

공간이동 마법을 이용해 놈들 앞을 막아선 나는, 수많은 검은 괴수들과 녀석들을 이끄는 인간형의 검은 괴수와 마주할 수 있었다.

이놈은 팔이 길군.

인간형에 키는 나보다 좀 더 큰 정도. 어깨가 떡 벌어졌고, 팔이 채찍으로 휘두를 수 있을 것같이 길게 생겼다.

이전에 이놈들의 대장인 꼬마 고슴도치 녀석이랑은 달랐다. 확실히 느껴지는 힘도 훨씬 약했다.

“뭐, 하나만 물어보…….”

쾅 하는 소리가 내 귓전을 때렸다. 놈의 팔이 순식간에 휘둘러져 내 머리 쪽을 향했는데, 반사적으로 펼쳐진 부분 마나 실드가 놈의 공격을 막았다.

“X새끼가 사람 말하는데…….”

순간 열이 오른 나는, 마나 조작으로 놈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순식간에 머리통이 날아간 놈은 죽은 척 푹 꼬꾸라졌다가 천천히 꾸물꾸물 목에서 검은 것이 솟아나와 머리의 형태를 만들어 갔다.

“사람이 말을 할 때는 말이야. 잘 들어야 하는 거야.”

조금 더 작아진 놈의 사지를 마나 족쇄를 만들어 허공에 봉했다. 순식간에 대자로 허공에 봉해진 놈은, 발악을 해 보려고 꼼지락거렸으나 마나 족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 너의 머릿속을 한번 보도록 하자.”

그 뒤에 있는 괴수들을 힐끗 쳐다보자 놈들은 그저 적의를 상실하고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놈에게 다가간 나는, 마법을 이용하여 놈의 머릿속에 접근했다.

“……!”

눈이 번쩍 떠졌다. 그리고 침이 꿀꺽 넘어갔다. 놈의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어떤 존재의 연결된 정신 줄기였다.

그 줄기 너머로 엿본 그 존재의 존재감은 눈앞을 아찔하게 만들 정도의 강대한 존재감을 내게 보여 줬다. 그리고 그 존재의 시선을 받자마자 나는 고리 13개를 완전히 공명시켜야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버텨 낼 재간이 없었기 때문.

“헉… 헉…….”

시발. 이게 뭐야.

기억과 생각을 읽는 마법을 해제한 나는, 숨을 몰아쉬며 식은땀을 닦았다.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존재의 강렬한 시선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 존재는 시선으로 말하고 있었다. 네놈을 보았다고. 네놈과 만날 것이라고. 기대하라고. 순간이었지만, 숨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압박감과 두려움을 느꼈다. 그 강렬한 시선에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난생처음 느껴 보는…….

아니지.

지구에서 이런 공포를 느껴 본 적이 있었다. 한창 학교폭력에 시달릴 때. 초반에는 하루하루가 죽고 싶을 만큼의 치욕과 공포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진들과 지금 이 엄청나게 격 높은 존재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눈앞에 대자로 사지를 벌리고 있는 팔긴 괴수를 한번 쳐다봤다. 왠지 녀석에게서 그 존재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악신 바르…….

마나 조작으로 뒤에서 가만히 나를 주시하고 있던 네발 달린 괴수 하나를 앞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놈에게 기억을 읽는 마법을 사용했다.

다행인 것은, 네발 괴수의 정신 속에선 그 존재를 느낄 수 없었다. 다만, 이놈에게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놈을 잡아와서 해 봐도 똑같았다.

“하아…….”

한숨만 나오는 결과였다.

일단 돌아봐야겠어.

지금의 상태로 그 존재와 대적했다가는 아마 처참한 결과를 낳을 것이 자명했다. 일단은 카란 대륙을 돌면서 검은 놈들을 소멸시켜 그 세력과 힘을 약화시켜야 했다.

그리고 세력을 모아 놈과 맞설 준비를 해야 돼.

시선을 뻗어, 모여 있는 검은 괴수들을 쳐다봤다. 상당히 많은 양이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모두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명령을 받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있어 줘서 좋았다. 우선은 이것들부터 없애야 했으니까.

* * *

수십만에 육박하는 숫자. 팔 긴 괴수 녀석이 데리고 나가려 했던 놈들은 무리의 일부에 불과했다. 도시 곳곳에 분포하고 있는 괴수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것들을 모두 소멸시키는 데에 꽤 시간이 걸렸다. 몇 번이나 재생해 살아났으니까. 그렇다고 조방인에게 썼던 것처럼 공간째로 소멸시키는 마법을 쓰자니, 여러모로 무리가 있다.

공간 소멸 마법은 공간 그 자체에도 무리가 가고, 복잡한 마법술식 덕에 집중력과 마력을 너무 과도하게 소모한다.

특히 이런 시답잖은 것들에게 쓸 만한 마법은 아니다. 하여, 단순하게 눌러 죽이다 보니,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도시의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마저 꺼져 갈 즈음 나는 도시를 떠났다. 해는 기울고 있었고, 불어오는 바람에 들판의 풀들이 춤을 췄다.

그걸 보자 자연스레 그녀가 떠올랐다. 아킬라 대륙의 거대한 산맥들. 그 깊숙한 곳에서 살아가는 옛 연인 ‘마를레나’. 수현이와 같은, 마나의 선택을 받은 불쌍한 존재.

무사히 기다리고 있어. 내가 데리러 갈 테니까.

칠대제의 자격을 갖춘 내가 돌아왔다. 무사히만 있다면, 그녀를 다시 세상 밖에서 살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었다.

물론, 이 세계를 침공한 것들을 걷어 낼 수 있어야 하겠지만.

잡생각들을 집어넣었다. 그러곤 마나필드를 펼쳐 좌표를 지정하고는, 공간이동 마법을 시작했다. 그런 방식으로 넓은 범위를 감지해 가며, 검은 괴수들이 보이면 그곳으로 이동해 소멸시켰고, 마을이나 도시가 있으면 그곳으로 가서 생존자를 확인했다.

살아남은 자들을 찾아야 했기에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그 까닭에 해가 떨어지고 나서도 움직였다.

밤에는 놈들이 더욱 활개 치고 다녔다. 덕에 내 손에 소멸당하는 놈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놈들의 숫자는 수백만이 훨씬 넘는 듯했다. 그 정도의 병력은 제아무리 큰 제국이라 할지라도 동원할 수 없는 병력이었다. 이 많은 숫자가 습격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전투 병력이 수백만이 넘는다니…….

개중에는 그들이 가진 ‘힘’을 발출하여 사용하는, 이전에 청광의 도시에서 내 결계를 부수려 했던 놈들과 같은 놈들도 많이 섞여 있었다.

밤이 지나고 동이 텄다. 광활한 평야를 지나 숲을 헤치고, 산을 넘었다. 그리고 만난 구릉지의 중앙에서 하나의 거대한 도시를 만났다.

그곳도 마찬가지로 도시 전체가 파괴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전 도시와 다른 것이 있다면…….

생존자들이 있었다.

두근두근.

표정만 봐도 그 심장 고동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얼굴. 조그만 여자아이가 눈을 부릅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가만히 그 아이와 나의 대치는 이어졌다. 가만 보니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다른 표정을 하지 못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혈통은 좋아 보이는데…….

피부는 백색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허름한 무너져 가는 집 안에 숨어 있었던 걸까? 저런 피부색이면 이 도시를 다스리는 자의 자제여야 할 텐데 말이다.

나는 칼란어로 얘기했다.

“혼자니?”

여자아이는 그 경악과 공포에 물든 얼굴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아무래도, 내가 검은색 괴수는 아니니까 나와서 쳐다본 모양이었다.

“여기 살아?”

경계하는 눈빛을 섞어 가며 또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런데 살 리가 없는데.

“부모님은?”

그 물음에는 조금 울먹거리는 듯한 표정이 얼굴에 섞였다. 그렇게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서, 날 쳐다봤다.

아무래도 저 도시 중앙에 있는 녀석이 부모 같은데…….

도시 초입에서 펼친 마나필드에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가 감지됐는데, 도시의 북쪽, 복잡한 구조물들이 즐비한 곳에 있었다.

뭔가 싸우는 것도 아니고, 폭주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잔뜩 성나 있었고, 강력한 마기를 계속해서 뿜어내고 있었다. 꽤나 강해 보이는 것이, 상위 계층의 마족인 듯했다.

“일단 아저씨랑 가자. 여긴 무서운 괴물이 나온단다.”

마치 굳은 듯 가만히 문기둥을 잡고 서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두 손을 잡았다. 그러곤 아이의 경계심을 약화시키기 위해 마력 감응을 시도했다.

마력 감응이 잘 맞으면 조금이라도 내게 경계심을 풀 수도 있으니까.

너의 부모가 도시 중앙에 있는 녀석이 맞아야 할 텐데…….

백색 피부를 가진 아이. 그 부모는 분명 도시를 다스리거나 이 지역 전부를 통치하는 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왜냐하면 백색의 피부를 가진 자들은, 전 마족을 통틀어서 최상위 계층에 속하는 이들이니까.

일전에 내 손에 끝장난 베라크리토가 바로 그 계층이다.

이 녀석의 부모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 마력에 잘 감응한 녀석은, 경계심을 아주 조금 풀고는 나를 따라나섰다.

“잘 따라와.”

충격을 받아 말문이 막힌 건지, 아니면 원래 저렇게 대답하는 건지 예닐곱 살 되어 보이는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잰걸음으로 쫓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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