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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60화 (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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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울음소리와 괴성들이 도시로 흘러들어오고, 이따금씩 도시 전체를 울리는 충격에 모두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그때. 온 세상이 얼어붙는 것 같은 소리가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쩌저저저적……!

높은 상공. 하늘을 가려 버릴 만큼 많은 얼음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형상은 뾰족한 송곳 같은 모양새. 그런 것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백발의 남자가 떠 있었다.

반타리스 그 자신은 물론, 그 자리에 있는, 아니 도시에 있는 모두가 입을 떡 벌리고, 경외감에 마지않아 쳐다봤다. 마치 천벌을 내리는 신이 강림한 듯한 느낌을 받는 이들도 있었다.

이윽고 얼음 송곳들이 빠르게 쏘아지기 시작했고, 송곳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 소리가 산중을 가득 채웠다. 온 세상이 부서지는 소리와 같은 것이 지속되었다. 얼음은 계속해서 만들어졌고, 계속해서 쏟아부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쏟아붓던 얼음은 어느샌가 그쳤고, 자욱하게 피어올랐던 먼지가 가라앉으며 그 풍경이 드러났다.

성벽 위에 있는 이들은, 그 광경에 눈을 부릅뜬 채 넋이 나가 버렸다. 검은 괴수들을 찾아볼 수도 없이, 거대한 얼음 창들이 땅에 빼곡히 박혀 있었다. 높이 떠 있을 때는 송곳인 줄 알았던 것들이 가까이서 보니 거대한 창들이었다.

얼음 창들에서는 하얀 김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점점 땅을 얼려 가고 있었다. 점점 다가오는 한기에 병사들이 두려움을 느끼던 그 순간. 얼음은 모조리 부서져 공중으로 흩어졌다.

흩어지는 얼음 조각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마치 환상을 보는 듯한 모습에 성벽 위의 병사들은 넋이 나가 버렸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자 백발의 남자가 광장으로 내려왔다. 조용해진 도시에 반타리스는 괴수들이 완전히 처리되었음을 느꼈다. 그리고 눈을 껌뻑이며 백발의 남자를 쳐다봤다.

“놈들이 후퇴했소. 아마 당분간은 침범하지 못할 거요. 전의를 상실한 듯하니까.”

들어는 본 적이 있었다. 온 세상을 얼음으로 뒤덮는 강력한 마법을 구사하는 자들. 혹은 자연의 힘을 이용하여 그런 광역 기술을 사용하는 자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구전되어져 온 것이고, 이곳 사람들에겐 전설 정도로 여겨졌었다.

실제로 도시 바깥에서도 대규모 전쟁이나 일정 규모 이상의 괴수 토벌전이 아니라면 볼 수도 없는 것들이었다.

반타리스는 그것을 직접 목격했다. 전설 같은 그 엄청난 기술을. 그 존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형용할 수 없는 강력한 존재감에 온몸의 세포들이 전율하는 느낌을 느꼈다.

“자, 그럼 어디 가서 이야기나 마저 들어봅시다.”

백발의 남자는 시장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고, 반타리스는 여전히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병사들을 시켜 성곽보수와 도시 점검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움직이려는 그때. 누군가가 쪼르르 달려왔다.

“파수장님. 마법사님이 함께 얘기하고 싶으시답니다.”

“뭐?”

반타리스는, 주책맞게도 자신을 부른다는 소리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자신이 주책맞다는 것을 알았는지 표정을 한번 가다듬고는, 얘기했다.

“알겠네. 가지.”

반타리스는 병사들에게 지시만 해놓고는 따라나섰다. 시청은 그리 멀지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청에 있는 응접실에서 시작했다.

“이곳의 상황에 대해 듣고 싶다고 하셨지만, 저희들이 드릴 수 있는 정보는 크게 없습니다. 그저, 제국의 상황이 많이 좋지 않다는 것 정도뿐입니다. ”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옆에 앉은 반타리스를 쳐다봤다.

“혹시, 카노라 벨라라고 아시오?”

그 이름을 꺼내자 반타리스의 눈이 놀라며, 표정을 굳혔다.

사이가 좋지 않은 건가?

반응으로 보아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좋은 관계는 아닌 것 같았다.

“아킬라 대륙으로 갔다더니, 꽤 유명해졌나 봅니다. 대마법사님과 같은 분도 알고 있는 것을 보면.”

“호오. 알고 있나 보군. 그는 꽤 요직에서 일하고 있소.”

“요직이요? 그놈이?”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 모양이오?”

그는 헛기침을 했다.

“꼴통 중에 그런 꼴통 있으면 세상에 나와 보라지요. 도시를 나갈 때도 생이별하듯 나갔으니, 원. 부모 속만 불태워 놓고 나갔습니다. 살면서 사고란 사고는 혼자서 다치고 다니고…….”

“그랬군.”

‘카노라 벨라’. 녀석은 내가 다섯 왕국을 합쳐 제국을 건국한 뒤, 기존에 존재하던 제국과의 전쟁이 벌어졌을 때 참모로 기용했던 전략가였다.

처음부터 참모로 들어오진 않았고, 참모의 부관이었다가 운명적으로 내 눈에 띄게 되었다. 그는 수시로 사고를 치고 다니는 별난 놈이었지만, 그의 현명한 눈과 판단력은 진짜였다.

녀석을 내 직속 참모로 들이고 난 뒤 내가 일으킨 제국군의 생존률과 격퇴율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기존에 대륙의 패권을 잡고 있던 제국에 비해 수적 열세에 시달리던 우리 군이 전략과 전술만으로 그 수의 차이를 가볍게 극복해 냈다.

말은 쉽지만, 전략 전술이라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분야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녀석이 별난 것 정도는 귀엽게 봐줄 만했다.

아킬라 대륙의 패권을 두고 싸운 싸움에서 승리한 나는, 이후 녀석을 제1군 사령관에 임명했다. 제1군이라 함은, 전시에 전군 총사령관이나 마찬가지였다. 내 바로 밑에 실권자라 이 말이었다.

그런 유능한 인재는 잘 다독여서 쓰일 만한 곳에 쓰는 것이 좋다. 라는 게 내 철학이었다. 그래서 별났지만, 녀석을 기용해 높은 자리를 준 것이고.

그런 그 녀석의 고향에 이렇게 방문해 말썽꾸러기였다는 것을 듣게 되니, 왠지 웃음이 나오려 했다. 나도 녀석이 사고뭉치인 것을 알고 있다. 라고 말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참았다. 일단은 내 신분을 밝히지 않고 지나가고 싶었으니까.

이런 산골에서 내가 누구다. 라고 해 봤자 알아 줄 사람도 없고.

“정말 구제불능이었구려. ”

“말도 마십시오. 걔가 출세하면, 세상이 뒤집어질 것이다. 라고 온 동네 사람들이 입을 모았으니까요.”

맞는 말이긴 했다. 녀석의 출세와 동시에 대륙의 패권을 쥐고 있던 제국이 몰락하고, 나를 중심으로 하는 새 제국이 패권을 잡았으니까.

세상이 뒤집어졌지. 그 황제가 육황에 오르고, 대제행을 완벽하게 마치기까지 했으니.

이쯤이면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었다고 생각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들을 것은 없을 것 같으니, 난 이만 가 보겠소.”

그때 반타리스가 내 발목을 잡았다.

“그 녀석과 친했습니까?”

“음. 그냥 지나가다 얼굴 몇 번 본 사이요.”

“녀석은 어떻게, 행복하던가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얼굴은 행복해 보였소.”

그에 반타리스가 코를 슥슥 문지르며,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못난 놈 소식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반타리스는 깊이 인사했다.

“그저 아는 것을 말해 줬을 뿐이오. 이만…….”

“살펴 가십시오. 놈들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닌 듯합니다.”

시장이 범상치 않은 눈을 빛내며 걱정했다.

“충고 고맙소.”

그렇게 나는 마족 아이를 도시에 맡겨 두고, 홀로 도시를 떠났다.

* * *

“한 놈이 마법으로 다 쓸어버렸다고?”

파괴된 도시. 죽음으로 가득한 그곳을 점거하고 있는 이들은 바로, 악신 바르의 수족 중 하나인 ‘콩’의 세력.

그중 지금 도시를 직접 장악하고 있는 것은 콩의 부하인 ‘반테’였다. 콩은 이곳의 육황과 싸우고 있었고, 그의 수하들이 온 대륙으로 뻗어나가 곳곳을 장악하는 중이었다.

“아~ 안 그래도 따분하던 차였는데, 잘됐다. 그래서 걘 지금 어딨는데?”

그의 앞에 있는 팔다리가 길쭉한, 인간형의 키다리 괴수가 대답했다.

“저기 저 산 너머 산중에 있는 도시에 있습니다.”

“음? 그냥 거기 처박혀 있는 거야? 안 오고? ”

“예. 아직은 그렇습니다. 곧, 놈의 이동 경로에 대한 보고가 올 겁니다.”

“좋아. 좋아. 좋아. 이 허무한 놈들보다는 낫겠지.”

반테는 기다랗고 시뻘건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섬뜩한 눈빛을 빛냈다. 그의 감정에 동요한 주변의 검은 괴수들이 저마다의 울음소리를 내뿜으며, 도시 전체가 섬뜩한 분위기를 풍겼다.

* * *

‘바레미르’라 했던가.

대도시 바레미르. 시장과 시청으로 가는 길. 그 도시에 대해서 들었다. 대륙의 서쪽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자 제국 서부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라 했다.

부유하기에 강한 사병들이 많았고, 마법사들도 많이 상주해 있는 데다가 강력한 가문의 지배하에 있기에 대륙 서부에서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도시라 했다.

그런 도시가 초토화되어 연기나 폴폴 뿜어내고, 기이한 울음소리나 흘려대고 있었다. 그리고 도시 심부에선 강한 힘이 느껴졌다. 아마 검은 괴수들을 이끄는 무리의 대장인 듯했다.

저놈을 조져 봐야 답이 나오겠군.

마나 필드를 좌표로 공간이동 마법을 시전했다. 순식간에 바뀐 시야에 검은 괴수들이 득실거렸다.

“음…….”

아무래도 좌표를 너무 아무 데나 잡은 듯했다. 그냥 그놈 근처 아무 데나 한다고 했는데, 검은 괴수들 무리 한가운데에 들어와 버렸으니.

살기등등하구만.

바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고리 10개가 공명했고, 마나를 모아 놈들을 모조리 짓눌러 버렸다. 순식간에 납작해져 버린 일대의 괴수들에, 화가 난 대장 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미리 작동시켜 놓은 통역 마법이 놈의 말을 통역하기 시작했다.

“호오… 이놈 보게.”

내게서 꽤 떨어져 있었지만, 녀석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렸다. 기이한 음색과 아주 기분 나쁜 느낌이 함께 딸려왔다.

녀석은 한 10살 먹은 꼬마 같은 키를 가지고 있는 인간형이었는데, 머리부터 등 뒤로 기다란 가시인지 털인지가 촘촘하게 달려 있었다.

그 가시들은 이전에 봤던 네발 괴수 녀석의 가시와 같이 살아 있는 듯 움직였는데, 마치 인간형 고슴도치 같은 느낌이었다.

“너는 좀 덜 따분하려나?”

그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놈이 내 앞에 나타났다. 실로 놀라운 속보. 그러나 내 인지를 벗어나는 움직임은 아니었다. 잘 쳐줘야 라마단이나 단켄 정도 급이려나.

“어. 따분할 시간이 없지.”

마나로 강화와 가속한 내 손이 놈의 머리통을 잡고 그대로 땅바닥으로 하강했다. 바닥이 들어 올려질 정도의 강도. 보통이라면 머리통이 없어졌을 만큼 강하게 내리찍었지만, 왠지 놈이 죽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예상대로 킥킥대는 소리가 들려오며, 놈이 힘을 쓰기 시작했다. 불길한 검은 기운이 전신에서 폭발적으로 솟아나며 나를 밀쳐냈다. 실로 가공할 만한 기폭발이었다.

“그래. 그래. 이 느낌 아주 좋아.”

징그러운 시뻘건 혓바닥을 날름거리던 놈은, 벌떡 일어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고는 빠른 속도로 내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내게 공격이 가해졌는데, 하나하나가 소름 돋을 정도로 진한 살기를 품고 있었다.

보통 생명체에게서 느낄 수 없는 살기야.

살기도 살기지만, 저놈에게서 뿜어지는 검은 힘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주술에 쓰이는 사력(死力)과도 달랐고, 그렇다고 암력도 아니었다.

죽음을 먹고 나오는 힘인가?

전도자들의 기억 속에 있던 정보들이 떠올랐다. 죽음을 먹고 힘을 키우고, 숫자를 늘리는 것들. 그것이 바로 내 눈앞에 있는 이것들의 특성이었다.

뭐, 일단은 이 성가신 놈부터 조지면서 알아보자.

마나를 이용해 전신 강화와 가속을 시작했다. 그리고 놈이 내 앞을 지나가는 순간. 주먹이 뻗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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