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캄캄한 어둠이 깔린 밤. 마을 주변을 두르며,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검은 괴수들을 모조리 소탕했다. 그리고 졸졸 따라오는 소년을 데리고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쯤에 자리를 잡았다.
마법으로 불을 피우고, 나무와 식물들을 이용해 잠자리를 만들었다.
“거기 누워 자면 돼.”
녀석은 눈치를 보다가 마지못해 누웠다.
“아직 누우라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녀석은 벌떡 일어났다.
“밥 먹어야지.”
식량을 구하기 위해 마나 필드를 펼쳤다. 근방 지리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으니 식용할 수 있는 짐승이나 괴수가 있다면 잡아 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일대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감지되는 것은 나무 속에 숨은 새들이나 아주 작은 짐승들. 나는 마나 필드를 더 넓혀 갔다. 그러자 군데군데 바위틈이나 동굴, 땅굴 등에 숨어있는 짐승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저렇게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들을 먹기가 찝찝해진 나는, 마나 필드를 거두었다.
“오늘 저녁은 그냥 굶어야겠다.”
녀석은 그저 시선을 떨어뜨릴 뿐이었다.
“이름이 뭐야?”
“켈람이요. 와하루 켈람.”
“난 신시우라고 한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시우 님.”
녀석은 일어서서 허리를 접었다. 마치 상위 계층에게 대하듯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 일찍 자라. 내일 동트기 전에 움직일 거니까.”
“네.”
결계를 친 뒤, 내 잠자리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곤 마나수련을 시작했다. 한번 숨을 쉴 때 일대의 마나를 다 빨아들이듯이 깊게 숨을 쉬었고, 내뱉을 때는 온 세상을 내가 뱉는 마나로 다 채울 듯 뱉어냈다.
그렇게 밤새 마나 수련이 이어졌고, 결계는 조용했다.
* * *
동이 트기 전. 하늘이 조금 밝아올 무렵, 움직이기 시작했다. 켈람도 눈을 비비며 따라나섰고, 원활한 이동을 위해 비행 마법으로 켈람과 나는 하늘로 솟았다.
“우와…….”
하늘로 솟자 처음에는 무서워하던 켈람은, 금세 적응하고는 주위 풍경을 눈에 담느라 바빴다. 나야 심심할 때마다 보던 풍경이지만, 이 녀석은 그렇지 않으니까.
높은 상공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집들이 모인 마을들은 모두 파괴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멀리, 평원 쪽에 보이는 대도시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떠오르는 태양이 비춰 가는 대도시의 모습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 뒤쪽의 험난한 산지를 살폈다. 멀리 큰 봉우리 밑쪽, 작은 분지 같은 곳에 도시급으로 보이는 곳이 보였다.
저기로 가야겠군.
그곳은 높이가 좀 있는 성벽이 둘러쳐져 있었는데, 도시 안에 연기도 없고, 성벽도 아직 멀쩡해 보였다.
마나 필드를 뻗어 봤다. 높은 숫자의 고리가 공명하고, 마나 필드는 계속해서 넓게 퍼져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일대의 모든 산을 집어삼켰을 때 마침내 검은 괴수들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몰려드는군.
산중의 도시로 놈들이 사방팔방에서 모여들고 있었다. 긴박한 순간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해 그 도시로 이동했다.
“누, 누구시오?”
내가 이동한 곳은 도시의 광장.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으로 깜짝 놀란 남자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런 그를 무시한 채 주위를 둘러봤다. 이곳저곳에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돌아다니는 것으로 보아, 이들도 그것들이 몰려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너희들을 빨리빨리 움직여! 시간이 없다!”
병사들에게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던 한 남자가 걸어왔다. 청색 피부를 가진 마족이었는데, 뿔이 기이하게 휘어져 있는 것이 꽤 양 같은 모양이었다.
“지원 온다는 얘기는 없었는데… 누구십니까?”
말하는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던 나는, 꼭 과거의 내 부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지?”
그는 내가 초면에 반말을 해서인지, 눈을 껌뻑거리다가 나를 아래위로 훑었다.
“으흠……! 카노라 반타리스라고 합니다. 이곳의 파수장이죠.”
카노라라고……? 그냥 닮은 사람이 아니라 같은 가문이었던 건가?
벨라 녀석이 칼란 출신이라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흠. 이곳에 지원 나온 렌스라고 하네.”
“오… 그렇군요. 혼자 오셨습니까?”
첫 이미지가 좋지 않게 박힌 것치고, 나름 반기는 얼굴을 해 줬다.
“오는 길에 저 밑에 마을에서 이 녀석을 구해 왔네.”
“아이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칸톡’. 이 아이 데려다가 좀 먹이고 씻겨.”
“넵.”
“밑쪽에는 상황이 심각하더군. 평원에 있는 도시도 당한 것 같고…….”
반타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아무리 이곳이 도시이긴 하지만, 보시다시피 여긴 산골이라, 바깥소식을 그렇게 훤히 접할 수가 없습니다. 마법 통신도 매일 하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음울하고도 기괴한 울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전해져 왔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가 급하게 달려왔다.
“대장님! 전 성벽 준비 마쳤습니다.”
“그래. 곧 가마. 지원 오신 분과 잠시 대화 중이었다.”
“예……? 그, 제국에선 지원이 어렵다고…….”
“그랬었지. 그래서 그걸 물어보려던 참이었어. 어디서 지원을 오신 겁니까?”
의구심이 가득한 반타리스의 질문에, 미리 준비해 둔 답변을 꺼내들었다.
“제국이 수도까지 밀렸다고 하더군. 나는 아킬라 대륙에서 왔네. 지금 칼란 대륙은 타 대륙들에 도움을 요청해 둔 상태야. 곳곳에서 영웅들과 병력을 파견할걸세.”
내 대답에 반타리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넘어갔군.
“아니… 이런, 귀한 분을 제가 못 알아봤군요.”
이렇게 나오니 조금 미안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이 도시에 결계를 치겠네.”
“아… 역시 마법사셨군요. 어쩐지 남다른 복색을 하고 계셔서…….”
이 녀석, 이거 너무 신이 난 것 같은데…….
“다들 잠시 삼 보 물러나 있게.”
내게서 모두들 멀어지자, 한 손으로 간단하게 인을 맺었다. 금세 마법이 완성되어, 내 주변에 강력한 전류가 맴돌기 시작했다.
주변에 원형을 그리며 흐르는 전류는 내 조작에 따라 공중으로 떠올랐고, 어느 정도 높이 올라가자 빠르게 그 크기를 늘리며 퍼져 나갔다.
그리고 도시의 경계에서 멈춘 번개의 띠는, 강력한 번개가 흐르는 막대들로 변해 땅에 박혔다.
순식간에 도시 전체를 감싸는 거대한 번개 철창이 생긴 것 같은 그림이었다.
물론, 내가 있는 곳에선 보이지 않지만.
“성벽 바깥쪽에 결계를 쳤네. 이제 이쪽으로 들어오진 못할 것이야. 적어도 우리가 이야기할 동안은 말일세.”
이곳저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고, 웅성거림이 그 크기를 불려 갔다.
“‘잔크’. 가서 성벽 밖 상황을 보고와.”
“옙.”
“정말 엄청난 분이 와 주셨군요. 이렇게 돕기 위해 먼 길을 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보아하니 이곳은 이제 처음으로 전투를 치르는 모양이군?”
“예. 워낙 높은 고지에 있다 보니, 이제야 놈들이 쳐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그때 푸른빛의 머리칼을 가진 여자를 필두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인파를 헤치고 왔다.
살짝 구릿빛의 피부색과 푸른 빛깔의 머리칼이 대비되는 것이 특징인 ‘비르티즈’라는 종족. 분위기로 보건데, 도시의 우두머리급으로 보이는 사람이 그런 소수 종족인 것이 좀 의외였다.
“지원 와 주신 분이시라고 들었습니다.”
특히 마족이 판을 치고, 차별이 심하다고 소문난 이 칼란 대륙에서라서 더욱이.
“그렇소만.”
“청광의 도시 ‘고메론’의 시장. ‘바테 멀렌스’라 합니다. 위기에 빠진 대륙을 돕기 위해 먼 길을 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어려울 땐 함께 도와야 하지 않겠소?”
내 말에 멀렌스는 싱그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맞습니다.”
“근황을 좀…….”
강한 땅울림에 말이 멎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땅울림보다는 결계를 때리는 강력한 힘에 놀란 것이 맞았다.
멀리 있어도 결계 밖 상황을 눈으로 보듯 느낄 수 있고, 결계의 상태를 세세히 느낄 수 있다. 결계는 시전자와 연결되어 있으니까.
도시 바깥에 둘러쳐진 높다란 번개 막대에, 검은 괴수들이 계속 박아 대는 건 알고 있었다.
심하게 들이박은 놈은 그대로 소멸됐고, 그냥 닿기만 한 놈들은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그러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있는데, 강한 힘을 가진 놈들이 나타났고, 그 힘을 사용해 막대를 강타한 것이다. 그게 지금 이 도시를 강타한 진동의 원인이었다.
쿵… 쿵…….
사방팔방에서 진동이 이어졌고, 사람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땅거미처럼 내려앉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것들을 처치해야 대화할 시간이 주어지겠군.
“아무래도 먼저 놈들을 쓸어버린 후에 얘기를 나눠야 할 것 같소.”
말을 마친 나는 곧장 마력을 끌어올리며, 열 개의 마력 고리를 공명시키기 시작했다. 이어서 마나 조작을 통해 공중으로 솟구쳤다.
높은 상공으로 올라간 내 눈에 주변의 전경이 모두 들어왔다. 도시의 주변은 모두 경사 구간. 내가 쳐 놓은 번개 속성의 결계 바깥으로 우글거리는 시커먼 놈들이 보였다.
수만… 아니, 수십만인가.
감각망에 걸리는 것이 많았다. 그리고 그중에 드물게 힘을 보유한 놈이 불길한 검은 힘으로 결계를 강타하고 있었다.
X 같은 놈들이 대체 어디서 저렇게 많이 나타난 거야?
죽음을 먹고 힘과 숫자를 늘린다는 전도자들의 기억이 다시금 떠올라, 근심이 되어 마음을 어지럽혔으나, 이내 털어 내고 녀석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움직였다.
내 의지에 따라 넓은 지역의 마나들이 모조리 얼어붙기 시작했다. 대기가 얼어붙으며 수만 개의 얼음 창들이 만들어졌는데, 그 얼어붙는 소리가 놈들이 내는 기이한 소리를 압도했다. 잠시 놈들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고, 그때 얼음 창들이 지상으로 쏘아졌다.
포화가 쏟아지듯 흙과 나무가 부서져 튀어 올랐다. 한차례 쏟아붓고 나면, 또다시 만들어져 내리 꼽혔다. 그러길 수차례. 도시 밖의 산이 모두 얼음으로 뒤덮일 때쯤 그만뒀다.
도시 바깥에 살아 있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검은 것들도, 나무도, 짐승들도 모두 죽었다. 한기가 풀풀 날리는 얼음 창이 수도 없이 꽂혀 있을 뿐.
내 공격에 놈들이 물러가기 시작했다. 멀리 골짜기에서 올라오려던 놈들은 내 맹공격에 전의를 상실했는지 후퇴하고 있었다. 나는 놈들이 달리는 방향을 주시했다. 놈들이 움직이는 방향은 평원의 대도시가 있는 방향. 산맥을 빠져나가는 쪽이었다.
다시금 광장으로 내려온 나는, 경악으로 물든 사람들의 얼굴과 마주 할 수 있었다.
“놈들이 후퇴했소. 아마 당분간은 침범하지 못할 거요. 전의를 상실한 듯하니까.”
“정말…….”
시장 멀렌스는 환희와 감동이 섞인 얼굴로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 어마어마한 대마법사시군요.”
“이런 규모의 마법은 정말… 듣도 보도 못 했습니다.”
보진 못했어도 들어보긴 했을 텐데, 직접 보니 들은 것들이 빛바래지겠지.
“마나가… 흰 빛으로 반짝거렸어요.”
개중에 마나에 대해 좀 아는 이들은 난생처음 보는 마나에 집중했다.
“자, 그럼 어디 가서 이야기나 마저 들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