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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슬곱슬한 긴 흑갈색 머리. 수려한 얼굴. 나이는 조금 들어 보이지만 좋은 피부를 가진, 큰 편에 속하는 키와 덩치를 가진 남자. 저 놈이 바로 악의 원흉, 암시의 중심 브릴란스.
바레모도라는 놈의 기억을 뒤져본 나는, 이런 미친놈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그 폭력적이고 상위종들의 온갖 잔인한 악행들이 이뤄지는 마계에서도 그런 짓은 손가락질 받을 만한 짓에 속한다.
인육을 처먹는 것도 역겨운데, 그것도 소년기의 아이들을 먹는 미친놈이라니. 구역질이 날 만큼 혐오스러웠다.
이런 폐기물 같은 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단군을 죽인 것도 화가 났지만, 바레모도의 기억에서 본 이놈의 악취미들에 더 화가 났다. 이건 그 어떤 고통을 당해도 그 죗값을 치르지 못할 만큼 폐기물 같은 존재였다.
일단 좀 처맞고 시작하자.
마나로 강화, 가속된 내 주먹이 놈의 안면을 강타했다. 멀찍이 날아간 놈이 두 손으로 피를 질질 흘리는 얼굴을 감쌌다.
“크… 윽…….”
겨우 일어선 놈에게 내 발길질이 날아들었고, 이후 무차별적인 폭행이 자행됐다. 그리고 피떡이 되어 이목구비도 못 알아볼 정도가 된 놈을, 마나 조작으로 일으켜 세웠다.
넌 언제쯤 나올 거냐. 날개 달린 거인아.
이런 쓰레기보다 놈이 더 기다려졌다. 감히 내 제자를 죽이고, 황기옥까지 죽이려 했던 놈. 그놈의 등장을 갈망했다.
그렇게 갈망하며, 나는 놈에게 마지막 고통을 선사했다. 속박 마법을 이용하여 놈의 몸을 곧게 선 채로 굳혔다. 그러곤 ‘고통의 굴레’라 이름 붙여진, 악독한 환상 마법을 걸었다.
환상 속에서 무한히 고통을 느끼는 마법인데, 육체에 큰 무리를 주지 않는 선에서 정신 붕괴만 일으키는 고통의 환상 마법이다.
계속 칼에 찔리고, 베이고, 꿰뚫리고, 태워지는 등. 온갖 고통 속에서 발버둥 치다가 정신이 붕괴하고, 또다시 든 정신으로 그 고통을 겪고 또 붕괴한다. 그렇게 무한히 정신이 붕괴되다가 육체가 그 생명을 다할 때 즈음에서야 벗어날 수 있는. 아주 징그러운 마법이다.
“흠…….”
깊게 심호흡을 하며 이 역겨움에서 비롯된 분노를 가라앉혔다. 내 분노는 이런 쓰레기에게 분출하기에는 아까운 분노니까.
그 순간, 누군가가 접근하고 있는 것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자 멀리 홀로 걸어오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거인은 아닌 것 같고.
그런 내 생각은 녀석의 익숙한 얼굴을 보며 완전히 달라졌다.
“청… 장?”
눈이 부릅떠졌다. 사라졌던 방위청장, 그놈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건…….
“네가 그 금색 거인이구나.”
어금니가 꽉 물렸다. 그러면서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청장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디서부터 둔갑하고 있었던 걸까? 일본과 싸웠을 때? 내 집에 모였을 때? 그것도 아니면 처음부터?
뭐, 아무래도 좋다. 이놈은 오늘 내 손에 처절하게 죽을 테니까.
구궁……!
내가 어금니를 깨물자 시야가 흔들릴 정도의 큰 진동이 대지를 강타했다. 평소와는 좀 다른, 분노를 가득 실은 마력이 조금 과하게 혈맥을 질주했다. 마력 고리도 평소와 다르게 더욱 강력한 공명을 보여 줬다.
나는 바로 골든 스피어를 소환했다. 황기옥을 그 모양으로 만든 놈의 실력을 높게 샀기 때문이다.
높은 상공에 커다란 금색 오브가 나타났고, 오브의 힘을 이용해 내 마력을 증폭시키기 시작했다.
구구구구.
증폭되는 나의 힘에 마나의 떨림이 느껴졌다. 그로 인해 대지와 대기가 요동치기 시작했고, 강력한 진동이 일대를 강타했다. 마치 내 분노를 보여 주는 듯 먼지가 뿌옇게 세상을 덮었다.
이어지는 강력한 마나 폭풍에 먼지는 걷혔고, 강철 같은 마나 폭풍에 땅이 푹푹 파이며, 주변은 모조리 파괴되었다. 순식간에 넓혀진 마나 폭풍은 청장 놈을 집어삼켰고, 놈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그리고 그 속에서 본체가 드러났다.
터져 나오는 금빛 광채와 인간의 2배는 넘을 만큼 거대한 신체. 그리고 마족 놈들을 닮은 커다란 날개. 이어서 세상에 내가 왔다고 알리는 듯한 거대한 존재감까지. 눈으로 보나 피부로 느끼나 격이 다른 존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갑자기 강한 통증에 움츠러든 것은 그때였다. 심장에 강력한 통증이 강타했다. 이어서 익숙한 감각이 살아났다. 한 단계 경지가 올라갈 때 일어나는 현상. ‘초공명현상’이 일어났다.
마력 고리가 과부화되듯 공명하며, 사방으로 공명 파동을 뿌려 댔다. 심장의 통증은 지속됐고, 공명 파동은 점점 더 심해졌다.
여태 계속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았던 13개 고리의 벽이 어처구니없게도 허물어졌다. 매일같이 마력 단련과 마나 수련을 해 오며, 수많은 마법과 자연을 이해하며 느꼈다.
거대한 마나의 흐름을 제어하는 수련과 별의별 짓들을 다 해 봤지만, 13개 고리의 벽은 허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 순간에 이렇게 무너진다고? 고개가 가로저어질 일이었다.
그렇게 마력 고리 13개의 벽을 허물었고, 심장 통증도 잦아들며 고리가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고 있는데, 이상한 느낌을 주는 놈의 시선과 마주했다. 놈은 무엇 때문인지 잠시 걸음을 멈춰 나를 지긋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윽하지만 기이한 느낌을 주는 시선이, 아주 기분 나빴다.
[넌 오늘 내 손에 처절한 죽음을 맞게 될 거다.]
놈의 정신에 접촉해 내 뜻을 전했다. 머리와 가슴이 뜨겁게 불타오르고, 눈에 열기가 차올랐다. 감정이 격해진 까닭이었다.
[내 사람을 앗아간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을 거야.]
구구구구.
대지가 마치 카펫처럼 일렁거리더니, 일대에 셀 수 없이 많은 가시들이 솟아올랐다. 놈은 반사적으로 공중으로 피했으나,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대기를 얼려 놈의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작은 파공성을 내며 초소형 마나 구체가 총알보다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몇 개는 놈의 실드에 막혀 폭발했고, 몇 개는 놈을 관통했다.
마나 구체를 쏘아냄과 동시에 금빛 마나가 내 전신을 가속 및 강화했다. 그러곤 바로 땅을 박찼다. 마나 구체 공격 직후 들어가는 연계 공격.
놈에게 짓쳐 들며, 이전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강한 몸을 느꼈다. 이젠 정말 신이 와도 때려눕힐 수 있을 것 같은 고양감이 온몸을 가득 채웠다.
순식간에 놈의 품에 짓쳐 든 나는,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금빛 마나가 순식간에 모여들며 주먹이 아련한 금빛을 발했다.
일순간 반사적으로 전개된 놈의 금빛 마나 실드가 내 주먹 앞에 나타났지만, 이내 부스러져 흩날렸다. 그리고 그대로 내 주먹이 놈의 가슴팍에 직격했다.
* * *
빛의 신 ‘호란’을 모시는 대신관 ‘셸라이’. 그는 언제나 신실한 믿음으로서 기적을 행하며, 그의 강력한 힘은 믿음으로부터 나온다, 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종족 자체가 가지는 압도적인 재능이 기반이 된 탓이다.
셸라이의 종족인 ‘천자’라는 종족은 평균 신장이 4m에 육박하는 큰 신체를 가지고 등에는 커다란 한 쌍의 흰색 날개를 가지고 있는데, 태생부터 타 종족보다 높은 마력을 지니고 태어나며, 마나 친화력이 아주 높은 종족이다.
그들은 다른 종족들처럼 법칙에 얽매이지 않고, 마나의 축복을 받은 이들처럼 마나를 직접 조작할 수 있으며, 의지만으로 마나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게 기본적으로 사기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는 셸라이였지만,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빛의 신 호란의 가호.
믿음이 높아 대신관의 자리까지 올라간 셸라이는, 빛의 신을 모시는 신관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가호를 받았다. 그 가호 덕에 천자족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강해졌고, 수많은 기적들을 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느 날 갑작스레 침공한 악신에 의해 무너지게 된다.
그 이름은 악신 ‘바르’. 홀로 무량대수의 대군을 움직이는 절대 악신. 수많은 차원을 호령하며, 언제나 지배자의 위치에 있었던 강대한 종족 천자들은, 죽음을 먹으며 힘을 키우는 악신의 수족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방적인 천자들의 학살이었지만, 적들은 무량대수였고, 천자들이 죽으면 죽을수록 적들은 힘을 키우고, 숫자를 늘렸다.
경험해 보지 못한 강함에 천자들은 무너졌고, 신들까지 나섰지만 결국 악신에게 패하고 만다. 다행인 것은, 몇몇 신들은 소멸하지 않고 봉인되는 데에 그쳤다는 점.
그중 운 좋게 셸라이가 모시는 빛의 신 호란도 있었다. 악신의 수족들과의 전쟁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셸라이는, 동료들을 모아 호란을 부활시킬 방법을 찾아다녔다.
비록 금지된 방법이지만 부활 방법을 찾아낸 셸라이는, 악신의 추격을 피해 동료들과 함께 타 차원으로 도주했다.
그들이 찾아낸 방법은 바로 수많은 영혼을 제물로 바쳐 어떤 존재를 살려 내는 사악한 마법. 호란은 격이 굉장히 높은 존재기에 그녀를 살려내는 데에 필요한 영혼들은 무수히 많이 필요했다.
그래서 원시적인 세계가 아닌 종의 숫자가 무수히 많은, 번영을 이룬 문명을 찾아야 했다. 혹은 타 차원에서도 영혼들이 몰려들 수 있는 어떤 영적인 물질이 있어서 영혼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라든지.
악신의 끈질긴 추격을 피해 차원을 떠돌다 조건을 충족하는 곳을 찾은 것이 바로 인류의 지구였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영혼으로는 그 높은 격을 가진 호란을 부활시킬 만한 양이 충족되지 못했다. 뒤에서는 악신의 추격이 붙고 있었고, 부활 마법을 바로 진행할 순 없고. 결국 셸라이가 택한 방법은 차원 봉쇄.
악신의 추격을 피해 차원을 봉쇄하고, 인류를 이용하여 호란을 부활시킬 만한 영혼을 모으는 것이 그가 선택한 방법이었다.
악신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차원을 봉인했던 셸라이는, 그것도 모자라 기력과 마력 따위의 힘의 냄새를 쫓는 악신의 수족들이 가지는 습성이 무서워, 차원 전체에 힘을 망각하는 마법까지 걸었다.
셸라이의 마음속에 악신에 대한 두려움이 그토록 진하게 각인되어 있던 탓이다. 그렇게 그는 수천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인류에 섞여, 빛의 신 호란의 부활을 위해 버텨왔다.
그가 얼추 모인 영혼의 양이 호란의 부활을 위해 충분하다고 생각하던 그때. 때마침 자신이 걸어놓았던 대마법이 깨졌고, 그 탓인지 한 차례 차원 폭풍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셸라이는 본격적으로 부활시킬 작전에 돌입하게 된다.
그 와중 차원 폭풍으로 인해 실종되었던 이들이 강해져서 돌아오는 기이한 현상들이 일어났고, 그들은 세상에 지배자가 될 만큼 강한 힘을 가졌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천자들의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고만고만해 보일 뿐. 그러나 그중에서도 특출나게 강한 자들이 나타났고, 천자들은 그들을 경계했다. 하지만 그들은 천자들의 계획에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고, 천자들은 그들을 더 이상 경계하지 않았다.
그러다 나타난 것이 신시우. 그의 행보와 발언들은 셸라이의 심기를 아주 거슬리게 만들었고, 그를 경계한 셸라이가 직접 움직이게 만들었다.
가까이에서 신시우를 본 셸라이는 그에 대한 경계심이 더욱 높아졌다. 신시우의 경지는 여타 다른 귀환자들이나 기에테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경지에 발을 들인 존재였고, 신시우가 방해가 되기 시작한다면 힘을 써서라도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다 결국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
“헉… 헉…….”
난생처음 주마등을 경험한 셸라이는 자신이 왜 바닥에 처박혀 있는지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그는 왜 자신이 이렇게 되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러다 문득 앞을 쳐다보니,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신시우가 보였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싹트기 시작했다.
가호가 희미해졌다고 이렇게 압도적인 실력 차이가 난 건가? 셸라이는 고개를 저었다. 신시우라는 존재는 분명 자신보다 더 윗 단계의 경지에 발을 들이고 있는 자. 설령 그가 신과 같은 격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믿을 만큼 그의 힘은 대단했다.
특히나 신시우는 이곳에서 자신과 만난 후에 그 격이 한 단계 상승하는 것을 느꼈고, 보아왔던 것보다 더 강해졌다.
활활 나는 듯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 마력은, 빛의 신 호란의 가호를 떠올리게 할 만큼 찬란했다. 중요한 점은 그의 육신이 이질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는 것.
‘신시우의 육신이 자기 자신의 격을 버티지 못하고 있다.’
셸라이의 경외와 경악이 뒤섞인 시선이 신시우를 향했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하등한 종족에서……. 그때 소름 돋는 신시우의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어딜 기절하고 그래?]
순간 그는 신시우의 모습을 놓치고 말았다. 그것은 한눈을 팔아서가 아니었다. 그가 보고 있는 와중에 그의 눈앞에서 그의 인지를 벗어난 움직임을 보여 준 것이었다.
“……!”
그는 어깨가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처맞을 시간도 모자라는데.]
셸라이의 어깨에서 피가 뿜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