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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55화 (5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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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청장의 소식은 아직 들을 수 없었다. 건물에 깔렸는지, 그 금빛 거인에게 소멸을 당한 건지, 도망친 건지 확인된 바가 없다 했다.

주 비서와 함께 온 레이나에게 금빛 날개를 가진 거인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허나 그녀에게서도 유의미한 대답을 들을 순 없었다. 이곳저곳에서 전투가 많이 일어났다는 것 정도는 알지만, 자세한 것은 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

세상을 멸망시킬 존재가 등장하기 몇 년 전부터는 그녀도 피난 행렬에 동참해야 해서 소식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고.

해서, 결국 직접 찾아서 알아봐야지 알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이제 내게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에테들도, 국가적인 것들도 모두 다.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적들에게 내 사람을 앗아간 대가를 치르게 해 주는 것과 마계로 갈 관문을 여는 것. 두 가지뿐이다.

3일. 직접 수현의 장례를 치렀다. 장례식장에는 조문객이 끊이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이 기에테와 각성자들이었지만, 언론에도 알려지고 많은 국민들이 추모의 물결을 일으켰다.

물론 욕도 많이 먹었다. 내가 벌인 일로 인해 죽음을 맞은 이들과 내 행보를 싫어하는 이들이 욕을 해 댔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외로운 걸 가장 힘들어했던 기억을 내가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 온 국민들이 시끌시끌한 가운데 보내준다면 그것도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마지막 날. 화장까지 마치고, 용인에 있는 추모공원에 봉안함을 안치했다.

김 비서는 마법 집중 치료로 회복이 된 상태였다. 흉터가 이곳저곳 크게 있었지만, 정밀한 마법 수술로 제거할 것이라 했다.

남 비서, 주 비서를 모두 내버려 두고, 홀로 히로시마의 어느 산골에 있는 반 프리메이슨 연합의 아지트로 이동했다.

그동안 그곳은 굉장히 많은 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과거 유능한 마법건축학자였던 기에테들이 마법을 기반으로 한 시설들을 건설했고, 그것들은 모두 지하에 만들어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게 만들었다. 마법이기에 가능한 단기간 작업.

“오늘부터 프리메이슨의 사냥을 시작할 거야. 백광마정이니 이런 것들은 다 집어치우고, 놈들을 몰살 시킨다. 그리고… 전도자로 추정되는 황금 거인들을 찾아낼 거야.”

프리메이슨과의 첫 접전에서 살아남은 기에테들이 모두 집결했다. 멀든이 이끄는 바라쿠다와 제라드, 사막, 소이메르 셋은 한국에 남겨 뒀다. 사라진 방위청장을 대신해 부청장을 중심으로 다시금 각성자 육성 프로그램을 짜기로 했으니까.

청장 놈은 정말 죽은 건가? 라는 의문이 계속해서 들었지만, 답은 찾을 수 없었다.

황기옥은 목숨은 건졌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에테들의 집중 마법 치료를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 방위청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황기옥이 청장을 만나러 올라가고 나서 일이 벌어졌다고 했으니, 그가 깨어나야 뭔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말해서 녀석의 머릿속을 뒤져보고 싶었지만,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녀석에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정 방법이 없어지면 그렇게라도 해야겠지만.

일단은 프리메이슨부터 조진다.

내 예상대로 거인 놈들이 전도자들이 맞다면, 아마 내가 설치고 다니면 스스로 나타날 것이다.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분명 내가 프리메이슨과 척을 지고 움직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놈들의 본거지인 영국으로 갈 거야. 수장은 내가 잡을 테니 너희들은 나머지들을 처리해라. 그리고 금빛 거인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거나 직접 보게 되면 바로 연락해. 달려갈 테니까.”

“알겠소.”

“조심해.”

그렇게 나는 홀로 공항으로 향했다.

* * *

런던은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날씨도 썩 좋지 않았고, 코끝을 스치는 공기의 느낌이 기분 나빴다. 마치 죽어 버린 도시에 온 느낌이랄까.

“영국에는 어쩐 일로 방문을 하셨습니까? 목적지를 말씀해 주시면 성심껏 모시겠습니다.”

한껏 긴장한 얼굴의 영국 남자가 굽신거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이 새끼, 이거 눈에선 긴장한 기색이 아예 없는데?

몸짓과 표정은 긴장하고, 두려운 시늉을 했으나 정작 눈빛에 두려움이 없었다. 하여 나는 그 자리에서 놈의 옷 옆구리 부분을 찢었다. 그러자 여지없이 드러난 촛불 문신.

“내 목적지는 프리메이슨의 총본산이다.”

놀란 눈으로 날 한번 쳐다본 놈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모시겠습니다.”

이렇게 마중을 나온 걸 보니, 준비를 꽤나 많이 한 모양인데… 얼마나 재밌는 걸 준비해 놨을지 궁금하군.

* * *

싱가포르의 어느 대저택. 넓은 1층 현관으로 방위청장의 얼굴을 한 남자가 들어섰다. 그리고 그 앞으로 성난 얼굴의 동양 여자가 한 명 내려왔다.

“미쳤어?”

방위청장의 얼굴을 한 존재는 그저 그 말을 묵묵히 들으며 걸어 들어갔다.

“거기서 네 모습을 보이면 어떻게 해, 이 미친놈아.”

여자는 최대한 자제하려는 듯 참으며 얘기했다.

“어쩔 수 없어. 브릴란스는 신시우를 감당할 수 없다. 어차피 그놈은 우리 손으로 죽여야 해.”

“놈들이 냄새 맡고 들이닥치면 모든 게 끝이야.”

“알아.”

“잘 아는 놈이 그런 짓을 해?”

“신시우를 가만히 놔두면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된다. 그분을 부활시켜야 놈들도 상대할 수 있어.”

“하아… 이런 시발. 돌겠네.”

여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신시우를 죽여야 돼.”

“그건 지나가는 개도 알아. 그렇게 잘 아는 놈이 굳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신시우를 안 죽이고 쓸데없는 놈들을 죽여? 그건 왜 그랬지?”

여자의 추궁에 남자는 같은 어투로 대답했다.

“그놈도 꽤나 성가신 놈이다. 제거하지 않으면, 신시우와 합동공격을 벌일 수도 있어. 게다가…….”

“너. 계속 이런 하등한 종 사이에 숨어 있다 보니 자긍심도 잊어버린 거냐? 합동 공격이 무서워서 본 모습을 보여 냄새를 흘려? 우리가 왜 이렇게 숨어 있는지 몰라?”

“넌 아직 아무것도 몰라. 신시우 그놈은…….”

“닥쳐. 종족의 긍지도 버린 쓰레기 같은 놈.”

구구구구…….

둘의 기세가 맞붙어 건물과 일대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여자가 먼저 기세를 거두고 돌아서 나가 버렸다.

“후…….”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군. 신시우는 그냥 대충 상대할 만한 놈이 아니다.’

청장의 얼굴을 한 존재는 심호흡을 한번 하더니 2층으로 올라갔다.

* * *

런던에서 멀지 않은, 런던의 북서쪽에 위치한 도시 ‘밀턴 케인즈’. 도시 외곽의 어느 농장에선, 여러 마법사들이 마법진에 마력을 주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총 87여 개의 마법들이 조합된, 브릴란스가 직접 설계한 복합 마법진. 속박 마법부터 시작해서 상대의 기력과 마력이 지나다니는 혈맥을 막아 힘을 쓰지 못하게 하는 마법, 상대를 공간째로 소멸시키는 마무리 마법까지.

크고 작은 마법들이 한데 어우러져 완벽한 함정 마법이 되었다. 마법진을 위장까지 완벽하게 한 뒤 브릴란스가 홀로 남아 신시우를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농장 입구로 차량이 한 대 들어왔고, 차량에서 신시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특별한 느낌은 없다.’

브릴란스는 멀리 떨어진 신시우를 가늠해 봤다. 그는 신시우에게서 느껴지는 특별한 격의 차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느끼지 못한 나머지 자신과 비슷한 수준으로 착각했다.

자신보다 강자라고 생각하고 짠 방어 마법진이었기에, 그는 자신감을 가졌다. 그리고 그를 마중 나가는 척 몇 걸음 옮겼을 때였다. 갑자기 신시우에게서 거대한 마력이 느껴지더니 일대 마나가 신시우의 영향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생각보다 강력한 마나 장악력에, 그에 맞대응하고자 마력을 끌어올려 봤지만, 그의 힘은 신시우에게 돌아선 마나를 끌어오지 못했다. 그리고 마나가 금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마나 장악력이라는 것은 대상의 마력에 비례하는 것으로, 강한 마력을 가진 이가 강한 마나 장악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것은 불변의 법칙.

마법이란 마나를 변화시키는 법칙을 말하는 것인데, 다룰 마나가 없다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마나 장악력은 마법사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통의 마법사들은, 상대의 마나 장악력으로 인해 자신이 다룰 마나가 없어지는 걸 걱정할 필요가 없다. 뛰어난 마법사라 할지라도 주변의 다른 마법사들이 마나를 다룰 수도 없을 만큼 강력한 마나 장악력을 행사하지는 못하니까.

그러나 마력 고리 8개 이상의 마법사들은 그 규모와 강도가 상식 범위를 벗어난다. 그들이 마나 장악력을 펼치게 되면 인근에 있는 보통의 마법사들은 마나를 한 톨도 다룰 수 없게 된다.

지금 동공에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 브릴란스가 딱 그 짝이었다. 너무나 압도적인 차이로 인해, 마나를 한 톨도 끌어올 수가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그가 마법을 쓸 수 없음을 물론이고, 준비한 방어 마법진이 무용지물이 된다는 얘기였다.

‘마법’이라는 것은 본디 마나가 존재할 때 가능한 이야기. 마법진이 발동되어 봤자, 다룰 마나가 없으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된다.

마치 지금 브릴란스가 마나를 한 톨도 붙잡을 수 없는 것처럼.

“뭘 그렇게 얼빠져 있어?”

기이하게 머릿속에 박혀 드는 신시우의 목소리에, 동공에 지진이 일어난 브릴란스가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과거, 인류 최강의 마법사라 칭송받던 그는 자신이 이렇게나 무력해질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지 않았다. 싸우다 패배를 하는 것도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이런 식의 무력함은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대체 이 상식을 벗어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로서는 암담했다. 계속해서 마력을 끌어올려 보았지만, 그에 반응하는 마나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그를 마법사로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뭔가 착각을 하고 있었나 본데, 마법사인 이상 네가 내 앞에서 마나를 움직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그게 너와 나의 격의 차이다.”

말을 하는 신시우의 눈에선 금빛이 일렁였고, 대기 중의 마나들은 금빛으로 반짝거렸다. 그걸 보는 브릴란스의 뇌리에 한 가지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전도자…….’

브릴란스의 기억 속 전도자들이 특성이 떠올랐다. 그들이 압도적인 힘을 보여 주며, 싸움이 한창이던 전쟁터를 멈추게 만들었을 때 그들의 전신은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힘을 사용하지 않으니 다시금 흰 날개와 백색 복장으로 돌아왔지만, 힘을 사용할 땐 금빛으로 변했었다. 브릴란스의 눈엔 그것이 지금 신시우와 겹쳐 보였다.

‘어쩌면 이놈이 더 괴물 같을 수…….’

순간, 신시우의 몸에 푸른빛이 휘감기며 잔상으로 변했다. 그 잔상은 순식간에 그의 코앞으로 다가왔고, 강력한 것이 그의 얼굴을 강타했다.

“대가는 톡톡히 치를 거다. 각오해.”

신시우의 목소리가 마치 지옥의 형벌집행관 같은 목소리처럼 그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브릴란스는, 어딘가 망가진 것 같은 얼굴을 두 손으로 부여잡으며, 피를 한 움큼 쏟아내며 겨우 일어섰다.

쿨럭쿨럭.

‘이, 이건 아니야……!’

이렇게 일방적으로, 원시적인 폭력에 노출되긴 처음이라 브릴란스는 경기를 일으켰다. 그러나 이어지는 폭력에 그는 별수 없이 그 폭력을 감내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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