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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청 건물 한가운데에 커다란 공간이 생겨났다.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은 강렬한 금빛 광채를 내뿜는 존재. 그 존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묘한 힘이 건물을 모두 갉아 내며, 그를 중심으로 커다란 공간을 만들어 냈다.
황기옥 또한 바닥이 사라져, 기력을 사용해 허공을 딛고 서 있어야 했다.
‘대체 이놈은 무엇이지? 이 위화감은 대체…….’
황기옥은, 눈앞에 있는 존재에게서 느껴지는 위화감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살짝 떨었다. 그것은 단순히 자신보다 강한 존재를 마주했을 때 오는 그런 종류의 떨림이 아니었다. ‘종(種)’의 차이에서 오는 근본적인 격의 차이를 몸이 느낀 것이었다.
“네놈의 계획이 뭔진 모른다만, 지금 나와 대적하려는 것인가?”
기옥의 말에 거인은 명확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너무 하등한 나머지 주제 파악을 못하는…….”
콰아-!
순간적으로 일어난 금빛 기류가 기습적인 기옥의 발검술을 막아 냈고, 금빛 거인의 뒤로 기다랗게 금이 그어졌다.
“이런. 상관없는 사상자가 발생했군.”
황기옥은 단숨에 끝낼 생각으로 모든 기력을 끌어올렸다. 그에 그의 전신에서 강렬한 기운이 폭사됐다. 두 눈에서는 푸른 불이 붙은 듯 푸른빛이 일렁였다.
“…….”
금빛 거인은 그에 아무런 대응 없이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움직이려는 그 순간. 빛과 같은 속도로 하늘에서 금빛 창이 건물을 뚫고, 기옥에게 짓쳐 들었다.
그 찰나의 순간. 기적적인 움직임으로 그 창을 비껴 낸 기옥은, 그대로 안광을 흘리며 재빠르게 거인과의 거리를 좁혔다.
귀신같은 보법으로 거체에 접근한 기옥은 그대로 발검술을 펼쳤고, 금빛 거인은 금빛을 띠는 마나를 이용해 그 검을 막아 냈다.
마나 그 자체가 의지를 품고 기옥과 뒤엉켜 싸움을 벌였다. 순간적으로 가한 수십 번의 찌르기 공격을 금빛 마나가 모조리 막아 냈다.
‘흠…….’
황기옥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의 검로를 모조리 막아서는 금빛 마나를 어떻게 파훼할 것인지 생각했다.
“더해 보겠느냐?”
“당연하지. 내가 포기할 성싶으냐?”
황기옥은 본능적으로 그 존재가 인류 전체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걸 느꼈다. 어차피 언젠가 맞붙을 거라면, 지금 이 순간 결판을 짓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오늘은 정말이지…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날이구나.’
기옥은 기세를 가다듬었다. 그러곤 자세를 잡았다. 그에게로 빨려 들어가는 오러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그의 검신 위로 나온 푸른 오러가 빛을 내기 시작했다.
공간이 떨려올 정도로 강력한 오러의 응집. 그것은 물아일체의 경지에 오른 자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오러의 응집이었다.
‘이 일 검으로 승부는 난다.’
기옥은 초응집 상태의 오러가 씌워진 검을 치켜들고, 넘쳐나는 오러를 전신에 두른 채 그대로 허공을 박차고 앞으로 쏘아졌다.
* * *
“방위청이 무너져? 대체 그게 무슨 소린가?”
고귀재는 충격적인 보고에 눈을 부릅떴다. 일본과 중국을 굴복시키고 이제야 한시름 놓고 살 수 있나 했더니 또 일이 터졌다.
“그게… 자세한 것은 아직 파악하는 중입니다만, 두 존재의 싸움 때문에 방위청 건물이 무너진 것 같다고 들었습니다. 그 둘의 신원은 아직 파악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하아…….”
고귀재는 이마를 짚었다.
“파악되는 대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일단, 기에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게.”
‘또 신시우에게 빚을 질 순 없지. 그가 내게 많은 카드를 쥐어 주었으니, 그것으로 어떻게든 해 봐야겠어.’
“예. 그렇지 않아도, 기에테 멀든이 이끄는 ‘바라쿠다’ 쪽에 도움을 요청해 놓은 상태입니다.”
“잘했네.”
그렇게 비서실장이 나가고 난 뒤 고귀재는 오랜만에 서랍에 넣어 놓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뭐랄까. 왠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가시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 * *
오싹.
멀든은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소름을 느끼며 눈을 부릅떴다. 파괴된 방위청 건물이 있던 자리. 공중에서 붙는 두 존재의 격한 싸움에 도저히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들이 내뿜는 존재감과 살기는 멀든과 그녀의 조직원들의 다리를 굳게 만들었다.
‘대체 뭐가 싸우고 있는 거야.’
가슴속을 뒤흔드는, 난생처음 느껴 보는 어마어마한 존재감에 멀든은 오금이 저려 왔다. 난생처음 보는 격의 싸움. 과거 대전쟁 때에도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이들을 많이 봐 왔던 그녀였지만, 이 정도의 느낌을 받아 본 적은 없었다.
“저기 꼈다간… 뼈도 못 추리겠습니다.”
‘뼈가 아니고, 뼛가루도 못 찾을걸.’
순식간에 십수 개의 충격파가 일대를 휩쓸었는데, 바라쿠다 조직원들에게는 하나하나가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을 입을 정도로 강력한 일격들이었다.
“골렘은 연락 왔어? 금방 온다던 놈이 왜 이렇게 안 와?”
“아… 참. 말한다는 걸 까먹었네요. 아침에 연락 왔어요. 출발한다고.”
“이건… 도저히 우리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냐. 둘 다 뭐하는 놈들인지도 모르겠고…….”
멀든이 말하는 순간 승부가 났다. 금빛 거인의 공격이 그에 맞서던 남자의 오른 어깨를 분쇄하고 지나갔고, 남자는 추락했다. 그리고 그 거인의 시선이 그들에게 향했다.
“……!”
금빛 존재의 시선을 받은 그 순간. 멀든은 가슴이 답답해지며 숨을 쉬는 것이 힘들어짐을 느꼈다. 그만큼 존재의 격이 다르다는 얘기였다. 다행스럽게도 그 존재는 금방 시선을 거두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멀든은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후우…….”
“저 금빛 거인은 대체 뭘까요…….”
“모르겠어.”
“우호적인 느낌은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전 추락한 사람에게 가 볼게요!”
강대한 존재의 시선을 받고 잠시 멈춰 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 * *
번쩍.
거창 차원 관문 앞. 금빛 광채가 불꽃처럼 휘날리더니, 금빛을 내뿜는 날개 달린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존재의 등장에 근처에 있던 차원 관문 관리자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고, 사막, 소이메르, 제라드가 고개를 홱 돌렸다.
“저건 또 뭐야…….”
항상 웃는 상이던 소이메르가 처음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위화감 때문이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강렬하고 마음을 뒤흔드는 무언가가 그 존재에게서 뻗어 나오고 있었다.
“예삿놈이 아니다. 다들 마음 단단히 먹어.”
가장 고참인 제라드의 말을 사막이 막아섰다.
“아뇨. 제라드 님이 수현이를 데리고…….”
그들은 순간 하늘 어딘가에서 번쩍하는 것을 느낀 것 같기도 했다. 너무나 찰나의 순간인데다, 그 금빛 거인에게서 어떠한 움직임이나 기운 방출 같은 것을 인지하지 못했기에 그들은 반응할 수 없었다.
“오… 그사이에 반응을 할 줄이야. 아, 무의식이 작용한 건가?”
거인은 수현을 바라보며 흥미롭다는 듯 얘기했다. 그리고 셋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그 번쩍했던 것이 분명 공격이었을 거라는 건 모두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뒤쪽에 있는 것이 정수현과 김 비서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
셋의 동공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먼저 발이 떨어진 건 소이메르였다. 김 비서는 충격파에 멀찍이 날아갔고, 수현은 오른쪽 가슴부터 어깨, 팔까지 모두 사라져 있었다.
정통으로 맞았다면 몸통이 날아갔겠지만, 거인의 말처럼 무의식이 개입한 것인지 빗겨 맞았다. 그럼에도 살아날 수 없는 치명상. 수현의 휘둥그레진 눈동자가 뻣뻣하게 움직여 소이메르를 겨우 쳐다봤다. 그러곤 그 상태로 멈췄다.
“정수현!”
뒤늦게 소이메르가 외쳐 봤지만 풀려 버린 동공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주변에 치유하려고 모여들던 마나조차 그 힘을 잃어 가고 있었다.
빗겨 맞은 데다, 충격파까지 무언가가 막아 준 듯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부에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을 것이었다.
소이메르는 일어서서 거인을 노려봤지만 도저히 공격의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존재의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정도.
“너희의 무력함을 깨달아라.”
그 금빛 거인은 그 말을 끝으로 증발하듯 사라졌다.
움직이지 못한 것은 소이메르뿐만이 아니었다. 사막, 제라드 둘도 몸이 굳은 채였다. 사막이 뒤늦게 움직여 김 비서에게로 갔고, 제라드는 근처의 관리자들의 상태를 체크했다. 그리고 신시우에겐 소이메르가 연락했다.
* * *
뭐라고 해야 할까. 너무 놀라고 어이가 없어서 화도 나지 않는 상태라고 해야 할까? 수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드는 생각은 아무것도 없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고 하는 게 맞았다.
그리고 뒤늦게 내 자신을 자책했다. 너무 안일했다고. 편하게 움직이기 위해 남 비서만 데리고 다닌 것이었는데, 그래도 단군 밑에 있던 그 세 사람이면 어느 정도 커버는 될 거라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었다.
시발.
기분이 X 같았다. 단켄을 왜 더 빨리 보내지 못했을까? 단켄이라도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어서 든 생각은 그 금빛 거인의 정체. 대체 그놈은 뭐하는 놈이기에 전신에 금빛을 칠하고, 거대화까지 해서 돌아다니는 것일까. 혹시 이계종일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수현이만 콕 집어서 공격했다. 그리고 방위청은 왜 공격한 것일까? 방위청이 무너진 잔해 위에서 발견된 황기옥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도 금빛 거인의 소행이라 들었다.
그렇다면 놈은 황기옥과 수현이를 노린 것인데, 내 약점을 잡고 싶은 것이었을까? 분명 내게 뭔가 메시지를 주려고 한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떤 놈인지도…….
잠깐. 날개……?
분명 날개 달린 금빛 거인이라 했다. 그에 한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일단, 한국에 좀 다녀와야겠다.”
소식을 들은 라마단, 요한, 조지 그리고 아직 출발하지 않은 단켄까지. 모두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다녀와.”
단켄의 묵직한 인사를 뒤로하고, 공간이동 마법을 이용해 거창 차원 관문으로 이동했다.
“면목이 없습니다.”
내 부탁을 받고 수현의 곁을 지키던 사막과 소이메르가 고개를 숙였다.
“됐어. 다 내 실책이다. 제라드는?”
“김 비서를 치료하고 있습니다.”
“부상이 심한가?”
“네. 바로 옆에서 충격파를 그대로 맞아 치명상을 입은 듯합니다. 온몸이 피투성이라 정확한 부상 정도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
뜨거운 콧김이 뿜어졌다.
“수현이는 어딨지?”
“이쪽으로…….”
내가 수현이에게 다가가자 김 비서를 치료하고 있던 제라드가 왔다.
“죄송합니다.”
“마법이나 풀어.”
보이지 않게 가려진 마법 장막이 벗겨지고, 끔찍한 수현의 사체가 나타났다. 오른쪽 상반신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수현의 사체를 보는 순간 뭔가 심장을 콱 조여 오는 느낌을 받았다. 이어서 온갖 감정들이 마음속을 헤집어놓았다.
이제 좀 친해지나 싶었는데…….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나와 닮은 아픔을 가진 아이를 구제해 주려고, 내 첫사랑이었던 그녀와 닮은 영혼을 구제해 주려고 노력했던 것들이 모조리 물거품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그리던, 내 다짐과 꿈이 산산조각 났다.
자괴감이 가슴을 옥죄어 왔다. 내 자신을 탓했다.
모든 건 내가 자초한 일. 이 결과는 내가 한 일들에서 비롯된 결과다. 혼란한 마음을 빠르게 정리했다. 그리고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에 정리했다.
“어, 주 비서. 레이나 쪽은 어때. 어, 그래. 레이나 데리고 거창 관문으로 와. 어.”
레이나에게 들을 것이 있었다.
“남 비서. 수현이 장례식 진행할 거야. 괜찮은 곳으로 알아봐.”
“예.”
“최대한 부산스럽게 진행해.”
“예?”
“길드나 기에테들같이 날 아는 이들 쪽에 흘리라는 얘기야. 빈소에 사람들 좀 올 수 있게.”
“아… 예. 알겠습니다.”
외로울 영혼을 달래 주기 위해, 가능한 많은 인파 속에서 장례를 치러 주기로 했다.
미안하다. 약속을 지켜 주지 못해서.
수현의 모습을 다시 한번 눈에 담고는 돌아섰다. 그리고 다시금 추리를 시작했다.
날개가 달린 황금빛 거인.
단켄이 의문을 품었던 부분. 차원을 봉인시키고 본인들은 어떻게 빠져나갔는지 모르겠다고 했던 부분. 바레모도에게 걸린 강력한 암시. 그리고 날개가 달린 거인 형상. 그것들을 조합해 추론해 보면 한 가지 단어가 나온다.
전도자.
놈들은 전도자일 확률이 높았다. 놈을 어떻게 찾는다.
“참, 방위청장은 살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