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신시우가 프리메이슨 쓸어버리러 떠났다고?”
“네.”
신시우가 연구를 위해 머물고 있는 거창 차원 관문. 왕후를 데리고 그곳에 도착한 단켄은 신시우가 떠났다는 말에 맥이 빠져 버렸다.
“좀 더 기다려 봐. 내가 찾아줄 테니까.”
왕후의 얼굴에 근심이 어리자, 단켄이 그를 위로했다.
“수고들 하고.”
바로 발걸음을 돌린 단켄은, 라마단이 있는 일본으로 향했다.
“뭐?”
라마단은 왕후를 보고 놀란 눈을 껌뻑거렸다.
“이 녀석의 저주를 풀어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프리메이슨에 소속된 비공식 귀환자의 저주를 풀어 준다고? 제정신인가?”
“억지로 억류되듯 계약되어 있던 녀석이야. 풀어 줘서 우리 전력으로 돌리면 좋잖아?”
“흠…….”
워낙 프리메이슨의 간교한 계략을 잘 알고 있던 라마단은, 단켄이 덥석 녀석을 믿는 것이 영 못마땅했다.
“신시우의 앞에 가면 다 밝혀지겠지만, 지금 신시우가 좀 바빠서 말이야. 먼저 시커먼 마법사 녀석이 오면 진실을 가려 보자고. 곧, 올 거거든.”
얼마나 기다렸을까. 시커먼 마법사라는 말에 걸맞게, 검은 사제복 비슷한 복장을 한 키 큰 남자가 나타났다.
“뭐?”
단켄의 얘기를 듣고는 요한도 놀라움을 표했다.
“일단 진실을 가려 보자고. 진실과 거짓을 가려 내는 것은 마법의 힘을 빌리는 게 제일 정확하지. 너 그 정돈 할 수 있잖아?”
요한은 도발하는 듯한 라마단의 말을 무시하고, 싸늘한 눈으로 왕후를 바라봤다.
“이 앞에 서라.”
왕후는 잔뜩 긴장한 눈으로 요한의 앞에 섰고, 요한은 주먹만 한 크기의 작고 검은 오브 하나를 소환해 냈다. 오브에 마법을 걸어 저장된 마법 하나를 꺼낸 요한은,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마법은 완성되었고, 왕후의 머리 위에 천사의 고리 같은, 원형의 띠가 생겼는데, 그 띠를 얇은 식물이 칭칭 감고 있는 형상이었다.
“진실의 왕관이라는 마법이다. 거짓을 말하면 저 식물의 뿌리가 네 머리를 뚫고 들어가 뇌수를 빨아먹을 것이다. 필시 죽게 되겠지. 네가 반항을 한다면 이곳에 있는 우리들이 널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니, 부디 현명한 생각을 하길 바란다.”
“마법도 꼭 지같이 생긴 걸 처만들었군.”
라마단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라마단을 무시한 채 요한은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는 강제적으로 프리메이슨이라는 조직과 계약을 맺고 있던 것이 확실한가?”
“확실하다.”
왕후가 대답한 순간. 주변의 공기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혹여나 그가 거짓을 말해 뇌수가 빨리는 끔찍한 광경이 펼쳐질 경우를 예상해서였다.
“음… 반응이 없는 걸 보니 진실이 맞나 보군.”
“내가 단켄에게 한 말 중 거짓은 없었다.”
또 한 번 주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거짓일까 봐. 그러나 이번에도 그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식물은, 왕후의 뇌수를 빨아먹기 위해 내려오지 않았다.
‘여전히 끔찍한 놈이야. 사실 우린 저놈부터 제거를 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라마단은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예기치 않게 서로 손을 잡게 되었지만, 제거하는 걸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로 그는 요한을 혐오했다.
그가 요한을 혐오하게 된 계기는, 오래전 요한이 사악한 마신을 숭배하는 미치광이라는 것을 알고 난 뒤였다.
5천 년 전. 대전쟁 당시, 요한과 라마단은 같은 세력에 있었다. 첫 만남부터 요한에게서 좋은 느낌을 받지 못했던 라마단은, 그의 뒤를 캤고, 결국 그가 마신을 숭배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곤 그때부터 그를 경멸하게 됐다.
요한이 최종적으로 목표로 하는 것은 ‘파괴신’인 마신의 강림. 그러니까 요한은, 세계가 파괴되는 것을 눈으로 봐야만 하는 미치광이라는 얘기였다. 이 얼마나 혐오스러운 사상인가? 라마단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 반프리메이슨 연합만 끝나 봐라…….’
몇 번의 문답이 오고 가고 나서야 진실 공방은 끝이 났다.
“이 남자의 말은 모두 다 사실이야. 믿고 데리고 있어도 돼.”
그런 말을 하는 요한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아직도 경계를 하고 있었다.
“신시우만 오면 되겠군.”
단켄이 라마단을 보며 말했다.
“아직 조사 중이라, 시간이 좀 걸린다는군.”
“흠…….”
“그동안 잠시 전력을 추스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자고.”
* * *
“으흠! 그만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신시우의 행차에 친히 접대인으로 나온 중국의 외교부장 ‘왕샤오둥’이 심기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나이도 있는 데다가, 개인적으로 그는 신시우를 아주 싫어했기에 이 상황이 좋을 리가 없었다.
“아뇨. 금방 오실 겁니다.”
그 ‘금방’이 벌써 2시간을 넘어서고 있었으니까. 화가 날 만했다.
“으흠……! 젊은이가 거 고집은……. 이 늙은이는 건강이 안 좋아 이만 들어가 보렵니다. 의전관 자네가 잘 모시게.”
그렇게 돌아가려는 그때. 불기둥이 솟았던 곳 근처에 강렬한 빛이 내리꽂혔다. 그와 함께 퍼져 나가는 파동에 모두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오래 기다렸지?”
“아닙니다.”
신시우였다.
“누굽니까?”
모여 있던 이들의 시선이 신시우 다음으로 향한 곳은, 그 뒤 허공에 X자로 매달려 있는 남자였다.
“영감이랑 싸웠던 놈.”
가까이 다가오자 김 비서를 비롯한 모두의 미간이 움찔했다. 왜냐하면, 허공에 매달린 남자의 관절마다 한기가 풀풀 날리는 얼음송곳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 오셨습니까.”
외교부장 왕샤오둥이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신시우를 맞는 척했다. 신시우는 그런 그를 진득하게 쳐다보며 얘기했다.
“우린 바로 일본으로 간다. 너희들은 알아서들 들어가.”
“아… 에… 켁켁……!”
요즘 들어 더욱 기력이 떨어진 왕샤오둥은, 귀환자 신시우의 아주 일상적인 기세도 받아 내지 못하고 호흡곤란을 일으켰다. 신시우는 그런 그에게서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돌리며 남 비서와 함께 걸어갔다.
‘저런 괴물 새끼…….’
왕샤오둥은 풀린 다리에 부축을 받으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무리와 멀찍이 떨어진 신시우는 뭐라 중얼거리기 시작했고, 강렬한 빛이 그들을 감싸더니 금세 사라졌다.
* * *
일본 히로시마의 어느 산자락. 반 프리메이슨 연합이 임시로 구축한 아지트에 강렬한 빛과 함께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바레모도!”
허공에 사지가 봉해져 모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있는 남자. 라마단은 그를 바로 알아봤다. 독보적인 검법과 호흡법을 창시한 ‘알렌’의 제자만이 가지는 표식을 상반신 전체에 새기고 있었으니까.
“저놈이… 단군과 싸운 거요?”
“어.”
“그는 죽었소?”
“아직 몰라. 단군이 이놈을 맨틀까지 처박았긴 했는데, 그 뒤로는 어떻게 됐는지 알 수가 없어.”
“맨틀… 까지 말입니까?”
라마단도 놀랐지만, 요한의 동공도 커졌고, 단켄을 포함한 말을 들은 모두들 놀랐다.
“그래. 이놈의 기억 속에서 확인했어.”
“허…….”
모두들 의외라는 얼굴과 눈들을 하고 있었다. 그중 단켄이 놀라는 것을 멈추고 신시우에게 용건을 얘기했다.
“한 번만 더 풀어 주라. 저주.”
“뭐?”
신시우의 표정에 금이 갔다.
“저기 저 녀석인데…….”
단켄은 뒤쪽에 있는 왕후를 가리키며 얘기했다.
“나랑 실력이 대등한 비공식 귀환자야. 계시자들한테 패하고 강제로 계약을 맺고 있었는데, 저주를 풀고 계약까지 파괴시켜 주면 우리 편으로 돌아서서 싸울 수 있어.”
“너, 마법 계약이 뭔지는 알고 하는 얘기냐?”
“아니, 그런 건 잘 모르지만, 너라면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렵나?”
미안한 얼굴로 얘기하는 단켄에 신시우는 진지한 얼굴로 얘기했다.
“저주는 방도가 있지만, 마법 계약은 계약자가 해제하지 않으면 푸는 건 불가능해. 만일 힘으로 마법 계약의 결속을 강제로 끊게 되면 저놈은 죽어. 결속의 반발력에 내가 타격 입는 건 당연하고.”
신시우의 말에 단켄의 표정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그럼 방법은… 그놈을 잡아서 풀게 만들어야 하는 건가?”
단켄의 진지한 얼굴을 바라보던 신시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니, 술자가 죽으면 계약은 자연스레 소멸돼.”
“…아니,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해 주면 좋았잖아.”
단켄을 놀려먹은 신시우는, 피식 웃더니 대답했다.
“지금부터 나는 브릴란스를 잡으러 갈 거야. 단켄 네가 수현이 옆에서 경호를 좀 서야겠다.”
“내가?”
“어. 네가 젤 믿음직스러워.”
단켄은 입을 앙 다물더니, 눈을 딱 감고 대답했다.
“알았어.”
“고맙다.”
“그런 소리는 다 정리하고 와서 해.”
신시우의 시선이 라마단과 요한. 그리고 조지를 훑었다.
“너희들. ‘암시’에 대한 건 알고 있었나?”
셋 다 눈만 껌뻑였다.
“이놈에게 강력한 암시가 걸려 있었다.”
“어떤…….”
“암시는 총 두 가지. 브릴란스의 의견을 거스르지 않을 암시와 흑백의 경전을 따를 암시.”
요한의 눈매가 좁아졌다가 돌아왔다.
“대체 누가 그런 암시를…….”
“이 정도 놈에게 이런 강력한 암시를 걸어 둘 놈이 누가 있을까.”
“저도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그때 라마단이 입을 열었다.
“브릴란스라면…….”
그에 요한이 라마단을 가소로운 듯 쳐다봤다.
“멍청한 녀석. 그놈은 바레모도에게 암시를 걸 만한 기백이 없다.”
“근데 이 미친놈이…….”
“판 깔아 줄까?”
신시우의 싸늘한 목소리에, 둘은 한숨을 푹푹 쉬며 달아오른 분노를 삭였다.
“나 또한 요한과 같은 생각이다. 이 정도 정신력을 가진 놈에게 이런 강한 암시를 걸려면, 월등히 더 높은 곳에 있어야만 가능해. 내가 파악한 브릴란스라는 녀석은 그 정도로 강한 존재는 아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건데, 너희들이 얘기했던 전도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전도자… 말입니까?”
“전도자들이 암시를 걸었다면, 현장에 함께 있던 우리도 함께 걸렸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신시우는 고개를 저었다.
“암시는 누구에게나 쉽게 걸리는 종류가 아냐. 한 곳에 믿음이 강한 존재들에겐 암시를 걸기가 힘들지. 너희 둘. 절실하게 믿는 신이나 그와 비슷한 것들이 있나?”
요한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있습니다.”
“넌?”
“어… 제가 당시 신앙이 있긴 있었습니다.”
“조지. 너는.”
“전 ‘태황교’의 신자입니다.”
신시우의 말대로 프리메이슨의 뜻에 반하는 이 셋은 모두 믿는 것이 있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나 추측이야. 확실한 건 없어.”
“흠…….”
“일단, 너희들이 알고 있는 프리메이슨에 대한 정보들이 필요하다. 이놈의 머리를 들춰서 얻은 게 좀 부족해서 말이야.”
* * *
“흠흠. 자네가 방위청장이라는 사내인가?”
“예. 처음 뵙겠습니다.”
말끔하게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황기옥이 손을 들어 그의 인사를 받았다.
“그런데… 이것들은 다 뭔가?”
보일 듯 말 듯 한 실 같은 것이, 마치 누에의 실처럼 가벼이 날아 그의 몸 이곳저곳에 걸렸다.
“하하. 방해가 될 것 같아서 먼저 보내드리려고 이리 준비했습니다.”
파지지지…….
청장의 얼굴 일부분이 부서지며, 그 안에 있는 강력한 금빛의 본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화륵……!
그 실들은 단단하게 굳어져 기옥의 움직임을 봉했으며, 순식간에 금빛 화염이 줄을 타고 전체로 번져 나갔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일어난 기옥의 강력한 오러가, 실들을 끊어냈다.
“뭐하는 놈이냐, 네놈은.”
“하등한 종족아…….”
청장의 목소리가 기이하게 변화를 일으키며 위화감을 조성했고, 그의 몸이 점점 그 형체를 잃어 가며 금빛의 광채를 내뿜는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청장의 모습을 탈피하고, 등에 커다란 날개를 가진, 온통 금빛을 내뿜는 거인이 등장했다.
“내 계획에 차질을 만들지 말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