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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은 연락이 안 되고, 단켄은 10시간째 전투중이라…….’
일본 히로시마 현에 있는 백광마정을 회수한 라마단은, 동북아시아 곳곳으로 뻗어 나간 백광마정 확보 팀들의 전투 소식을 접하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냐하면, 단군은 중력 능력의 상위 호환 능력자이자 자연 계열 최상위 능력인 암력의 사용자이고, 단켄은 신겁합일의 경지에 오른 고강한 무공을 지닌 자. 그런 자들이 하나는 연락 두절에, 하나는 10시간 동안 전투를 하고 있다는 것은, 프리메이슨의 주력이 움직였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왜 주력이 움직였을까.’
그에 반에 라마단 자신이 맡은 히로시마 현의 백광마정은 지키고 있는 이들이 둘 밖에 없었다. 그것도 기에테들도 아니고, 추종자들 둘이었다.
‘우리의 정보가 샌 것인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그는, 자신들의 정보가 샜다는 것에 무게가 실렸다.
‘내부자들의 소행이군.’
“나머지는?”
“조지 팀, 칸 팀, 벽한진 팀, ‘갱스’ 팀은 완수했다는 보고가 들어왔고, 나머지는 아직입니다.”
그래도 더 이상 연락 두절인 팀이 없다는 것에 라마단은 한시름 내려놓았다.
“‘수안’ 쪽에 연락해서, 단군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고, 단켄 쪽 지원 나가 보라고 해.”
“네.”
라마단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반프리메이슨 연합은, 총 18팀을 꾸려 백광마정 확보를 위해 동북아시아 곳곳으로 퍼져 나갔는데, 3일간 성공한 팀은 라마단이 이끄는 팀을 포함하여 네 팀뿐이었다.
그는 나름 기습이라고 생각하고 펼친 작전이었는데, 결국 프리메이슨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 느낌을 받았다.
[샤링. 우리 쪽에도 내부자가 있는지 조사해 봐.]
샤링은 고개를 끄덕였고, 몰래 내부자 조사를 시작했다.
“후우…….”
장장 10시간째 결판을 내지 못하고 있는 왕후와 단켄. 둘은 벌써 20분 가까이 쉬고 있었다. 워낙에 전력으로 몰아치며 싸운 까닭에 둘은 이제 무기를 쥐고 휘두를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네 조직에선 네가 제일 강한가?”
왕후가 혀를 내두르며 물었다.
“아닐걸. 우리 연합에는 강한 놈들이 많아.”
단켄의 대답에 왕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오랜만에 1대1 진검승부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주변을 보아하니. 내가 진 것 같군.”
한참 전부터 이미 단켄이 데려온 기에테들이 왕후의 부하들을 다 정리해 놓은 상태였다.
“나도 너와 같이 훌륭한 봉술사와 붙을 수 있어 좋았다. 백광마정은 가져가도록 하지.”
터덜터덜 지나가는 단켄을 왕후가 세웠다.
“마무리를 해야지.”
“넌 이런 곳에서 죽긴 아까운 놈이다.”
“나는 어차피 프리메이슨에 묶여 있는 목숨. 날 살려 두면 나중에 너희에게 해가 될 뿐이야.”
단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그를 바라봤다.
“혹시, 옆구리에 촛불이 새겨졌나?”
“그래. 지독한 저주다. 풀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단켄이 피식 웃었다.
“있다면?”
“뭐?”
이상한 사람을 보는 듯 휘둥그레진 왕후의 눈을 단켄이 바라봤다.
“프리메이슨이 그 추종자들과 조직원들에게 걸어 놓은 저주. 핵심 정보들을 발설하지 못하게 하며, 마법으로도 그것을 엿보지 못하게 막아 놓은 것. 네 것도 같은 것이겠지?”
“맞아.”
“우리가 여기를 어떻게 찾았을까? 프리메이슨 간부에게서 정보를 빼냈기에 가능했지.”
왕후는 여전히 심각한 얼굴로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우리 쪽에 저주를 풀 수 있는 능력자가 한 명 있다. 부탁하면 네 것도 풀어 줄지도?”
왕후의 눈빛이 흔들렸다.
“대신에 조건이 있어.”
“어떤……?”
어느새 왕후는 단켄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마, 종신 계약을 요구할 거야. 뭐, 평생 한국을 위해 한 몸 바치라던지 이런 거.”
“한국……?”
“나도 종신 계약을 한 몸이거든. 필요할 때 언제든 도와주기로.”
왕후의 심각한 인상이 아주 조금이지만 더 심각해졌다.
“흠…….”
“선택은 네 몫이야. 종신 계약이라도 프리메이슨 같은 쓰레기들보단 나을 거다.”
단켄의 여유롭고 평화로운 표정에서 왕후는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꼈다. 그리고 그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기이한 힘에 이끌려 고향인 중국 티벳으로 돌아온 왕후는, 돌아오자마자 본능적으로 몸을 숨기고 상황을 살폈다. 백 년이 넘는 세월을 이계에서 늙지 않고 보낸 그는, 세상이 많이 달라졌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은둔하며 세상을 알아가던 어느 날. 그의 앞에 진한 문신으로 상반신을 뒤덮은 은발의 남자와 검은 드레스가 인상적인 여자가 찾아왔고, 왕후는 그들에게 쓰러져 강제적인 마법 계약을 맺게 된다.
그리고 옆구리에 지독한 살심이 담긴 저주가 새겨졌고, 그는 어디 가서 말도 할 수 없는, 그들의 노예가 되어 버리게 된다. 정신 계열 마법으로 통제되는 그는 자결조차 할 수 없었고, 프리메이슨 간부들의 감시 아래에서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허무한 삶을 이어 나가다가 첫 임무로 이번 임무를 맡게 되었고, 단켄이라는 남자와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겐 저주만이 아니다. 그것보다 더 지독한 마법들이 내게 걸려 있어.”
“그것도 그 친구에게 말하면 다 풀어 줄 거야.”
마법의 내용이 무엇인지 들어보지도 않고 얘기하는 단켄에 왕후는 크게 실망하며 화가 났다.
“지금 날 조롱하는 건가?”
“그럴 리가. 내 눈으로 본 것들이 있어서 하는 소리야. 뭐라고 해야 할까. 이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당연한 거고…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왕후는 어정쩡한 표정으로 눈만 깜빡였다.
“아무튼, 난 널 그 더러운 손아귀에서 구해 내고 싶은 것뿐이고, 넌 결정만 하면 돼. 밑져야 본전 아니겠어?”
“흠…….”
그 지독한 저주 같은 것들도 풀어 낸다고 하니, 솔깃하긴 했다.
“알았다.”
“그래. 잘 생각했다. 이것 확보한 뒤에, 함께 한국으로 가자고.”
* * *
‘본능적인 건가? 아니면 계산된 건가?’
대한민국 대통령 고귀재는, 귀환자 신시우의 매 행보에 충격을 받아왔지만, 보면 볼수록 정치를 잘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이번 중국과 일본 응징이 그중 하이라이트였다. 고귀재는 그동안 아무리 언론을 이용하여 인식을 바꾸려 해도, 귀환자의 갑작스러운 중국 기습으로 인한 전쟁에 대한 부분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런 그 인식이, 이번 한국인들을 무참히 살해한 일부 중국인, 일본인들을 잔혹하게 징벌함으로써 완전 뒤집어졌다. 욕하던 이들도 귀환자의 통쾌한 복수에 열광했고, 귀환자의 정의에 모두가 환호했다.
덕분에 전쟁의 피해자들의 분노는 더 깊어졌을지 모르겠지만, 귀환자 신시우는 여론을 뒤집는데 성공했다고 봐도 됐다. 이제는 더 이상 신시우에 대한 반대 여론이 힘을 받을 수 없는 상태였으니까.
그리고 그가 행한 응징으로 인해 일시적인지 모르겠지만 중국 시위대는 와해되었고, 일본 시위대는 전진을 멈췄다.
“대통령님.”
“무슨 일인가?”
“동북아 곳곳에서 강력한 힘의 충돌들이 있었다는 보고입니다.”
“힘의 충돌?”
‘곳곳에서 힘의 충돌이라니.’
고귀재의 머릿속은 또다시 걱정으로 뒤덮였다. 기에테들 간의 전쟁이 드디어 시작이 된 건지, 아니면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인지. 오만가지 걱정들이 머릿속을 휘저어 놓았다.
“그중 중국 산시성에는 지각층을 넘어 맨틀을 건드려서 불기둥이 솟구치고 있다고 합니다.”
“허…….”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지각 층이 두껍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그것을 뚫고 멘틀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이가 없군.”
“저도 그렇습니다.”
“누가 그런 건지는 아직 모르고?”
“예.”
“흠…….”
“참. 좀 전에 귀환자 비서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이제 관문 너머 탐사를 시작해도 된다고 하더군요.”
“알겠네. 그 부분은 따로 회의를 한번 하는 것이 좋겠군.”
비서실장이 나가고 난 뒤 고귀재는 신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왜?”
저녁식사 후 잠시 담배 한 대를 태우며 쉬고 있는데 고귀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혹시 한국 주변 국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으신지 궁금하여 연락 드렸습니다.]
“아, 어디서 싸움났어?”
[예. 중국과 일본, 몽골, 러시아, 대만에서 각기 힘의 충돌이 있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일전에 프리메이슨에 대해 들었었지?”
[예.]
“아마 그놈들이랑 한국에 모였던 기에테들이랑 싸움이 났을 거야. 말도 없이 은밀하게 붙었다면, 그만큼 정보 노출이 되면 안 되기 때문이겠지. 크게 신경 쓸 거 없어.”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고귀재와의 통화가 끝이 났고, 궁금해진 나는 라마단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나다.”
[무슨 일이오?]
“너네 프리메이슨이랑 붙었다면서.”
[소식 참 빠르군. 사실 백광마정이 있는 장소들을 기습하려 은밀하게 움직였소. 마이콜이라는 관조자에게서 빼낸 정보를 보니, 그렇게 여유를 부려선 안 될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일부 지역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는 소식을 접했소. 단켄도 고전했고, 단군은 연락이 끊겼소. 조금 전에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연락이 두절된 곳이 더 늘어났소. 아무래도 정보가 샜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겠지.]
“단군과 연락이 끊겼다고?”
영감탱이가 어디 가서 그렇게 쉽게 처발릴 영감탱이가 아닌데…….
[그렇소. 그가 연락이 끊긴 곳에 지금 불기둥이 솟고 있다고 하더군. 자세한 것은 조사해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마도 당한 게 아닌가 싶소.]
당했다라…….
왠지 저 밑바닥에서부터 화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계시자들이 움직인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소.]
문득 3일 전 보았던 영감이 떠올랐다. 헬쑥한 얼굴로 찾아와서는, 내게 고맙다는 뜬금없는 소리를 하고 갔었다. 그와 대화는 거의 하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과 눈빛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너무나 오래된 수심과 죄책감 가득한 눈빛. 그리고 삶을 포기한 자의 얼굴. 그의 깊은 눈빛 어딘가에서는 왠지 모를 분노도 느껴졌다. 처음 마주했을 땐 거의 없었던 것들이 그날은 그의 온 얼굴을 덮고 있었다.
죽을 자리 찾아가는 얼굴이었나.
[듣고 있소?]
“아, 어. 그래. 일단, 알았다.”
나도 모르게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이스크림을 쭉쭉 빨아먹으며 묻는 수현의 순수한 얼굴에, 단군에게서 느꼈던 것들이 싹 날아갔다.
“아, 기에테들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봤어.”
“지고 있대요?”
“기습했는데 기습이 안 통했다나.”
단군 영감 때문에 느꼈던 우울한 감정들을 전달하기 싫어졌다.
“아…….”
“마력 키워야지.”
“네. 좀만 쉬다가요.”
“그래. 그래.”
수현이 저 녀석. 눈치를 보니 내 심정을 눈치챈 것 같은데, 오늘은 왠지 따지고 들지 않았다.
“김 비서도 쉬고 있어.”
둘이 지나가고 나자 감정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만에 하나 정말 영감이 놈들의 손에 당했다면, 내가 나설 명분이 주어진다. 사실 내가 나서서 쓸어버리고 싶기도 하고.
영감탱이, 그동안 정이 들었나…….
나름 냉정하다고 생각했던 내 마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