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중국 산시성의 어느 산속 깊숙한 곳. 단군과 여러 기에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군의 부하들은 신시우의 부탁으로 한국에 남았고, 단군은 단켄의 부하들을 이끌고 중국에 있는 백광마정을 찾기 위해 중국에 발을 들였다.
마이콜에게서 얻어낸 백광마정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들고 숲을 찾아 헤맨 결과. 단군 일행들은 어느 동굴 입구를 찾을 수 있었는데, 그곳에는 누군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허~ 이. 너무 늦은 거 아냐? 여기로 향하고 있다고 보고 받은 지가 언젠데,”
짧은 은발의 남자가 높이 솟은 바위 위에 앉아 단군 일행을 내려다봤다. 헐렁하게 걸친 남방 사이로 진한 문신들이 보이는 그 남자는 바로, 프리메이슨의 계시자 중 하나인 ‘바레모도’. 과거 인류 최강의 검사 중 한 명으로, 세 손가락에 꼽히는 실력자였다.
“허허허. 자네가 있을 줄은 몰랐군.”
단군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마이콜에게서 빼낸 정보들은 각 기에테 조직의 수장들밖에 몰랐으며, 나누어진 팀별 목적지는 각 팀장과 팀원들만이 알고 있었다.
‘당했군.’
그는 암력을 끌어올려 감각을 넓혀 보았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한 명이 빈다는 사실을. 분명 이곳에 오기 직전에 인원수 체크를 했었던 그였다. 그렇다는 것은, 이곳에 도착함과 동시에 혼란을 틈타 빠져나간 것이었다.
그런 단군을 보던 바레모도는 피식 웃었다.
“그래. 이곳으로 온 이유가 무엇일까나?”
단군의 눈꺼풀 사이로 눈빛이 빛났다.
“여기에 하얀 돌덩이가 있다고 해서 와 봤네. 혹시 본 적이 있는가?”
“그럼, 그럼. 저 동굴 안에 있던데?”
“그럼 좀 비켜 주겠나?”
“그건 싫은데?”
“허허. 그렇다면 뭐… 자네들은 물러서 있게.”
“어허~ 이.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편해. 어차피 다들 살아서 못 가니까. 그냥 단군 영감의 능력이나 구경하고 있도록 해. 나도 그 유명한 암력을 상대하는 건 또 처음이라 설레거든.”
바레모도의 입가에 징그러운 미소가 그려졌고, 순간 주변 숲에서 십수 개의 칼날들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이기어검을 저렇게나 많이 다룬다니. 정말 저것들을 따로따로 다 다룰 수 있는 것인가…….’
단군의 낯빛이 조금 어두워졌다. 어차피 바레모도를 본 순간 그는 살아서 가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도 익히 들어와서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직접 그가 싸우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그랬기에 그는 지금 신선한 충격을 받고 있었다.
“자, 이제 슬슬 놀아 보실까.”
두 개의 검이 순식간에 단군의 지척에 다다랐다.
‘엄청난 속도……!’
그의 눈꺼풀이 들어 올려지며, 순식간에 그는 암력을 전개해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호오… 역시.”
단군이 사라지고 잠시 후 숲속 새 소리마저 잦아들며, 아주 잠깐 고요가 내려앉은 그 순간. 바레모도가 걸터앉은 바위 주변에 있는 그림자들에서 검은 송곳 같은 것이 순식간에 뻗어 나와 그의 전신을 강타했다.
“호오…… 이런 공격이군.”
그러나 그가 두른 오러를 뚫어 내지 못했다. 오히려 그가 오러를 이용해 밀어내자, 그 파동에 부서져 흩날려갔다.
“그놈의 암력 정말 궁금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좀 진하게 알아보면 되겠다. 어이, 너희들. 어디 멀리 떨어져 있어라. 괜히 바람에 스쳤다가 두 동강 나서 뒈져 버리지 말고. 내 물어볼 것도 있으니까 말이야.”
바레모도는 즐거운 얼굴을 하고는, 멀찍이 떨어져 있는 단군 일행들에게 얘기했다. 그러고는 가만히 단군을 기다렸다.
그러자 숲의 그림자들이 서서히 그 세를 불리며 점점 주변을 잠식해 나아갔다.
“호오… 좋아. 좋아,”
그리고 이윽고, 일대가 새카만 그림자에 둘러싸여졌고, 넘실거리는 검은 아지랑이가 위로 뻗어 올라가며 대기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빛마저도 빨아들여 일대를 아주 어둠 속에 잠기게 만들었다.
“이야… 감각을 차단시키는구나.”
바레모도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 힘을 이해하는 데에 즐거움을 얻고 있었다. 그의 발목을 어떻게든 묶 고 일행을 탈출시킬 계획을 짜고 있는 단군과는 달랐다.
“이대로 북쪽으로 달리게. 전력을 다해서.”
단군은, 함께 온 일곱 명의 기에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잡고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그리고 돌아서는 그때. 무언가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의 뺨을 긁고 지나갔다.
눈이 휘둥그레진 단군이 뒤를 돌아보자, 어둠 속에서 그 자신의 동료들이 검에 관통되어 쓰러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전음이 전해져 왔다.
[흥을 깨는 행동은 하지 마라. 단군.]
“대체… 어떻게…….”
[내가 널 못 죽여서 그냥 두고 있는 게 아니라고. 알겠어? 좀 더 나를 즐겁게 해 주라 이 말이야. 네 암력이 어느 정도 경지에 있는지, 얼마나 강력한 힘인지. 어서 내게 보여 주라고.]
끝으로 키득거리는 바레모도는 허공에 둥둥 뜬 검들을 이용해 단군을 쫓았다. 단군은 모습을 감추었고, 그가 펼친 검은 암력은 점점 옅어져 결국 모두 흩어져 사라졌다.
“뭐, 도망이라도 갈 생각은 아니겠지?”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주변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중력이 그를 땅속으로 끌고 들어갈 듯이 잡아당겼다. 점차 땅이 내려앉기 시작했고, 일대가 무너질 듯할 무렵. 바레모도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 그가 나타난 곳은 단군의 옆. 실로 눈치를 챌 수 없을 만큼의 속보였다.
“확실히 강력한 중력이었어.”
푹. 바레모도의 손이 단군의 어깨를 꿰뚫었다.
“커헉……!”
“확실히 암력은 성가신 능력이다. 뭐, 여기서 더 발전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네 실력은 내게 닿지 않아. 아무튼, 잘 봤다. 더 보여 줄 게 남았으면 더 해 볼래?”
단군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내 곧, 따라가 너희들에게 죗값을 받으마.’
마치 주마등처럼 그의 눈앞에 자식들의 모습이 펼쳐졌다. 오천 년 전. 당시 3왕자 세력의 계략에 빠진 자식들을 구해 주진 못할망정, 제 손으로 자식들을 잡아 처넣어야 했던 그 절망스러웠던 때가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허허허허… 뭐, 더 없냐? 당연히 있지.”
입에 핏줄기를 머금은 단군의 얼굴에 여유가 번지자, 바레모도의 낯빛이 변했다.
“재미없으면, 재미없을 줄 알아.”
“재미있을걸세.”
구구구구…….
일대를 강력한 진동이 강타했고, 단군의 눈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빛조차도 가두는 강력한 중력으로… 널 영원의 어둠 속에 가두겠다.”
일대에 상상을 초월하는 중력이 가해지며, 원형의 대지가 순식간에 깊숙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정원형의 중력 영역은, 마치 블랙홀인 양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변했다.
단군의 신형이 점차 검게 물들었고, 중력은 점점 더 세기를 불려 나가 바레모도를 데리고 지각 층을 뚫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중력. 자신의 한계치를 넘은 힘을 사용한 까닭에, 전신이 시커멓게 변해 버린 단군은, 눈앞에 자신의 손으로 죽인 손자와 자식들이 아른거리는 것을 보며 마지막 힘을 다했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신형은 허물어져 검은 입자가 되어 흩날려 갔고, 일대를 짓누르던 어마어마한 중력은 순식간에 옅어져 사라져 갔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고층 빌딩도 들어갈 만큼 넓고 검은 구멍에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튀어나왔다.
“후우… 시발. 뒤질 뻔했잖아.”
그는 땀으로 범벅이 된 이마를 한 번 닦아 내며, 욕지거리를 뱉었다. 그와 동시에 그 뒤에서 불기둥이 치솟았다. 너무 깊이 들어간 나머지, 지각 밑 멘틀에 영향을 주어 그 어마어마한 열기가 지각을 뚫고 솟구치기 시작한 탓이었다.
‘장소를 옮기는 게 좋겠군.’
그는 백광마정을 꺼내 들고는 불기둥이 치솟는 그 구역을 벗어났다.
* * *
중국의 북서쪽에 위치한 칭하이성. 칭하이호 근처에 위치한 고산지대. 그곳에 단켄과 그 부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는 금방 백광마정을 찾아낼 수 있었다.
“네가 단켄인가?”
백광마정을 지키고 있는 것은 기에테와 각성자들 수십 명. 기에테들이 고지대의 주요 포인트마다 자리를 잡고 있었고, 낮은 지대에 있는 백광마정 주변을 남은 기에테들과 각성자들, 그리고 애꾸눈의 귀환자 ‘왕후’가 지키고 있었다.
왕후의 말은 통역 마법을 통해 영어로 번역되어져 단켄 일행에게로 전달되었다.
“오… 날 기다리고 있었나?”
“기다린 지 오래다.”
단군과 마찬가지로 단켄 또한 이들의 정보력에 의구심을 품었다. 자신의 부하들 중 매수된 놈들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 그러나 그는 그런 문제로 그렇게 깊이 생각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일단 부딪히고 보는 것이 그의 타입.
“그게 네 무긴가?”
단켄은 애꾸눈의 남자가 가진, 굉장히 무겁고 단단해 보이는 누런색 봉을 가리켰다. 그러자 왕후는 봉을 들어 그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올렌칸즈’다. 네 머리통을 부술 봉이니까. 잘 기억해 둬.”
왕후는 금속 봉에 대해서 굉장히 자부심이 있는 듯 이름까지 언급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네 이름은?”
“왕후.”
왕후는 대답 직후 봉으로 단켄을 겨냥한 채 그대로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묵직한 봉이 허공을 빠르게 돌파하자, 공기가 터져 나가며 비명을 질러 댔다. 그리고 그것은 순식간에 뽑혀진 단켄의 검에 막혀 버렸다.
그의 기습적인 봉술을 가볍게 막아 낸 단켄이 물었다.
“넌 관조자인가?”
“귀환자다.”
대답한 왕후는 다시 봉을 회수해 빙빙 돌리더니, 강맹한 금빛 오러를 씌워 냈다. 마치 불에 타는 듯 넘실거리는 금색 봉이 순식간에 단켄의 시야를 뒤덮었다.
“다들 멀리 떨어져.”
주황빛 오러를 씌운 검으로 수없이 찔러 들어오는 봉을 흘려 내며, 주변에 있던 이들에게 더 멀리 떨어질 것을 명령했다.
단켄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지만 모두의 귓속에 명확히 들어갔고, 그의 뒤쪽에 있던 이들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움직임이 좋군.”
단켄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어정쩡한 길이의 검을 빠르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주황빛 오러로 검신을 늘려 왕후의 허점을 찔러 들어가기도 했으며, 검법을 펼치며 오러 구체를 만들어 폭발시키기도 하는 등 변화무쌍한 공격을 펼쳤다.
그러나 왕후라는 봉술사는 그의 변화무쌍한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 내며 점점 공수를 전환해 가고 있었다.
‘보통 놈이 아니다. 실전에 굉장히 능숙한 놈이야.’
단켄은 왕후라는 외눈의 봉술사에게서 굉장한 전투 감각과 높은 유연함을 봤다. 그런 생각을 한 찰나의 순간. 왕후의 봉 끄트머리에서 작은 오러 구체 여러 개가 순식간에 만들어졌고, 그것은 그가 봉을 휘두를 때마다 단켄에게 무시무시한 속도로 쏘아져 나가며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에 단켄은 쏘아져 오는 오러 구체와 휘둘러지는 봉을 둘 다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꽤 곤혹을 느꼈다.
“후우…….”
순식간에 둘의 수십 합이 끝나고, 아주 잠깐 숨을 돌릴 시간이 주어졌다. 그 수십 합의 싸움에서 왕후와 단켄은, 서로의 경지를 얼추 이해하고 인정했다.
“고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구나.”
“너야말로.”
왕후의 범상치 않은 봉술을 겪은 단켄은, 숨기지 말고 모든 것을 다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허공에 주황빛의 커다란 칼날을 다섯 개 만들어 냈다. 그걸 보는 왕후의 눈매가 좁아졌다.
‘오러 이기어검이라고……?’
“자, 두 번째 라운드. 시작해 보자고.”
다섯 개의 오러로 만들어진 검들이 파공성을 내며 빠르게 대기를 가르고 뻗어 나갔고, 각기 다른 검로를 그리며 왕후 오방을 점하고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