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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47화 (4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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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비서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거창 차원 관문 너머의 세상은 아직 미지의 세계 그 자체였다. 일본이 개척한 곳은 고작 80㎢ 정도에, 정찰만 끝낸 것이 대략 120㎢ 정도. 공중에서 스캔한 범위는 300㎢이라 했다. 그럼에도 끝이 안 보였다는 것은 광활한 대륙이라는 소리.

실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신비의 세계가 아닐 수 없었다.

찰랑거리는 금속음 같은 기이한 소리와 함께, 내 몸이 차원 관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것은, 그야말로 대자연이 만들어 낸 절경 그 자체였다.

“와우…….”

저절로 감탄사가 나올 만한 풍경. 가파르게 깎아지른 기암괴석들과 무성한 나무들이 절경을 만들어 냈다.

“우와…….”

뒤이어 걸어 들어온 수현과 김 비서도 감탄사를 내뱉었다.

“진짜 절경이네요.”

초록색 숲에 회색빛의 기암괴석들. 지구와 별다를 것 없는 것 같지만, 주는 느낌이 좀 달랐다. 가까이 보이는 나무들의 생김새도 달랐고, 멀리 높이 솟은 산의 질감의 느낌이 달랐다.

밑을 내려다보자 철제 계단이 한 스무 계단 정도는 있었는데, 거창 차원 관문보다는 땅에서 좀 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같은 관문이라도, 이 세계와 저 세계에 대지 레벨 차이가 나는구나. 지구에 열린 관문은 땅에 붙었는데, 그 너머는 공중이나 물속일 경우도 존재하겠군.

“여기서 길을 따라 쭉 가시면 일본이 만들어 놓은 베이스캠프가 나옵니다.”

“일단, 가기 전에 관문 좀 살펴보고.”

관문은 거창 관문과 마찬가지로 16각형의 길쭉한 모양에, 금속과 석재가 어우러져 황색을 띠고 있었다.

뒤를 돌아 마법 술식 해석 마법을 시전했다. 이전과 같이 방대한 세상을 가득 채울 만큼 복잡하고 많은 마법술식들이 쫙 펼쳐졌다.

마치 터널이 만들어진 듯 원통형을 그리며 펼쳐진 마법술식들을 내 시선이 빠르게 훑었다. 볼 때마다 장엄한 느낌을 주는 이 기괴할 정도로 복잡한 마법술식들은 거창의 것과 거의 동일해 보였다.

흠…….

“가자. 베이스캠프라는 곳까지 갔다가 오면 아마 저녁 먹을 시간 되지 싶다.”

그런데 수현의 상태가 조금 이상해 보였다. 내 말에 대답은 했지만, 계속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뭔가를 보고 있는 듯했다. 그에 나도 가만히 서서 대기를 유심히 살폈다.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유심히 느껴보고 있는데, 뭔가 이상한 흐름을 찾을 수 있었다. 정말 유심히 살펴야 느낄 수 있는 흐름. 마치 자연스럽게 흐르는 듯 보이는 마나의 흐름이었지만, 그 흐름 속에서 밀도가 조금 비정상적인 부분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웬만한 마법사들이라도 절대 느낄 수 없는, 아주 거대한 흐름 속에 숨은 변곡점이었다.

이 녀석은 대체 이걸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사부 느껴져요?”

“어.”

나는 바로 마력을 끌어올려 12개의 마력 고리를 공명시켰다. 일대의 마나들이 내 마력에 반응했으나, 나는 그 마나들을 휘어잡지 않고, 그대로 거대한 흐름 속에 놓아두었다.

그런 상태로 하늘을 살폈다. 그러자 아까보다 더 선명한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뭔가 거대한 게 근처에 있는 것 같아요.”

수현의 말이 맞다. 이것은 마나에 영향을 주는 아주 강력한 무언가가 근처에 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이 정도 거대한 흐름이라면… 최소 고룡급 이상.

슥 얼굴을 돌려 김 비서를 보자 그녀는 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얼굴이었지만, 나름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나올 만큼.

“김 비서. 잘 보고 있어. 재밌는 거 보여 줄 테니까.”

“아… 넵.”

“수현아, 이건 이 거대한 산 전체가 보여 주는 흐름이다.”

그때 거대한 마나의 흐름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마 이 땅속에 뭔가가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을 것 같군.”

내 공명에 반응한 것인지, 잠을 자는 듯 고요하던 마나의 흐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호기심이 인 나는, 완전히 그 존재를 깨워 보기로 했다.

먼저 어느 정도 거대한 놈인지 알아봐야지.

나는 계단에서 내려와, 마나 감각망을 펼쳤다. 땅속으로, 멀리 더 멀리. 계속해서 뻗어 나갔다. 12개의 고리를 공명시킨 나의 마나 감각망은, 그 범위를 헤아리기 힘들었다.

그렇게 뻗어 나가던 나는, 뭔가 아주 거대한 윤곽을 찾을 수 있었다.

뭐야 이건…….

그 순간 강렬한 진동이 일대를 강타했다. 손을 휘둘러 아직 계단 위에 있던 수현과 김 비서를 먼저 허공에 띄웠다. 그러자마자 발밑 땅이 갈라졌고,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서자 내 앞에 있는 땅이 솟아올랐다.

“대체 이건 무슨 생물이냐…….”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김 비서와 수현이는 경악스러운 눈으로 눈앞에 변형되는 지형을 지켜보고 있었다.

엄청난 진동과 함께 솟아오른 대지 밑으로, 땅은 아닌 것 같은 거대한 장벽이 솟아올랐다. 이건 거대한 수준이 아니라…….

산 전체가 움직이잖아.

경계선이 내 앞에 있어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이놈과 차원 관문이 충돌하며 일대가 난장판이 되었을 것이다.

그건 참 다행이군.

머리 위로 떨어지는 흙과 돌덩이들이 반지 힌스타인이 펼친 실드와 부딪혀 튕겨 나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영혼까지 뒤흔들릴 만한, 저음의 포효가 일대를 뒤흔들었다.

“어우…….”

엄청난 존재감이 내 전신에 각인 되었다.

이 정도면…….

김 비서는 정신을 잃었고, 수현은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놈의 포효는 내가 여태껏 경험해 본 포효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강력한 포효였다. 아직 졸도하지 않는 수현이 신기할 정도.

놈의 위협적인 포효에 나도 답례를 하기 위해 마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내 마력에 반응한 마나들이 내 의지에 따라 거대한 기류를 만들었다. 놈이 만든 기류보다도 더 거대한 기류를 만들기 시작했다.

얼마나 마나를 다룰 수 있나 어디 한번 실험이나 해 보자.

마계에선 웬만하면 고리 11개 이상은 사용하지 않아 왔다. 하여, 고리 12개로 어느 정도 양의 마나를 다룰 수 있는지 확인해 본 적이 없었다.

최대한의 마력을 사용해 마나 장악력을 넓혀 나갔다. 넓게, 더 넓게, 그 존재를 넘어서 더 넓은 곳으로 뻗어 나간 나의 영향력은, 주변의 거대한 산 십수 개와 평원을 포괄할 만큼 넓혀 갔다.

오…….

수많은 생명체들과 대자연이 느껴졌다. 이 정도 규모의 영향력 확장은 처음이라 심장이 콩닥거렸다.

그 거대한 마나를 일제히 움직여 보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흐름이 만들어졌고, 그것은 내 앞에 있는 이 거대한 존재가 만들어 낸 흐름은 귀엽게 보일 만한 규모였다. 내 흐름을 느낀 이 거대한 존재에게서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느껴졌다.

“그래야지.”

마계에서도 내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놈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 이놈이 아무리 대단한들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맞다.

녀석의 감정이 전해지고 난 뒤 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장벽 같은 녀석의 몸의 일부가 더 솟구치기 시작했고, 그에 나는 김 비서와 수현이를 데리고 높은 상공으로 솟아올랐다.

“우와-!”

수현이는 굉장한 높이에 올랐음에도, 내 컨트롤에 몸을 맡긴 채 밑을 쳐다보며 놀라기 바빴다. 그리고 나는 정신을 일깨우는 마법을 이용하여 졸도한 김 비서를 깨웠다.

“꺄악-!”

김 비서는 깨자마자 엄청난 높이에 눈을 질끈 감고 소리를 꽥 질렀다. 그에 수현이 키득키득 웃었고, 나는 재빨리 대지 마법을 이용하여 그녀의 발밑에 딛고 설 수 있는 넓은 땅덩이를 만들어 줬다. 거기다가 가장자리를 올려서 튼튼한 난간벽도 만들어 줬다.

대지속성 마법을 이용해서 이렇게 열심히 만드는 건 또 처음이네.

“자, 이제 내려다 봐도 돼.”

“언니! 언니! 밑에 봐요 밑에! 저 거북이……!”

수현이는 그 거대한 존재를 한순간이라도 놓칠세라 김 비서를 목놓아 불러 댔다. 그에 겨우 눈을 뜬 김 비서가 모기만 한 목소리로 내게 죄송하다고 얘기하고는, 수현이에게 이끌려 벽에 몸을 기대고 고개를 내밀었는데, 보자마자 다시 후진해서 웅크리고 앉아 눈을 질끈 감았다.

“왜 그래?”

“고소공포증이 좀 있어서요…….”

“아~”

“와… 이걸 못 보다니. 제가 대신… 아, 맞다! 촬영!”

수현이는 스마트 폰으로 이 진귀한 광경을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마법으로 김 비서의 정신을 만져 줄까 생각도 했지만, 그냥 그만뒀다.

발밑에서 움직이는 거대한 산의 형상은, 거북이 형상이었다. 산을 등에 인 거북이라니. 산 고래는 봤지만, 산 거북이는 듣도 보도 못했다.

장관은 장관이군.

그 거대한 거북이가 움직이는 것은 정말이지 놀라운 장관이었다.

“일본 놈들은 이런 놈이 밑에 있는 건 알고 있던 건가?”

“글쎄요. 아마도 보고서에 없는 것을 보면 모르고 있지 않았을까요?”

“와…….”

수현이는 지축을 울리며 이동하는 산 거북이를 보며, 그저 감탄사만 계속 내뱉었다. 그렇게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놈을 내려다보다 문득 녀석을 길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차차 욕구를 눌렀다. 저 녀석은 이 세계에 존재해야 하는 영물이니까.

동물 보호해야지.

나는 마계에서도 탐나는 많은 영물들을 보아왔지만, 길들이거나 한 것은 없었다. 자연 속에서 마땅히 살아가야 할 녀석들을 내 힘으로 옭아매어 자유를 빼앗는 것을 죄악이라 생각했으니까.

역시 나는 착하다.

“베이스캠프인가 뭔가는 그냥 저놈의 등에 실려서 가 버렸네?”

어느덧 지축을 울리며 움직이는 녀석은 자신이 있던 자리를 완전히 벗어났고, 그 자리는 깊게 파여 있었는데, 면적이 어마어마하게 넓음에도 바닥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게요…….”

김 비서는 궁금하긴 궁금한지, 고개를 돌려 난간 벽 너머를 힐끗 쳐다봤다.

“저걸 보니까 귀수산이라는 한국 요괴가 떠오르네요.”

“그게 뭐야?”

“저것처럼 네발로 다니는 거북이 형태인데, 섬이나 산을 등에 이고 다니는 거대한 요괴예요.”

“오…….”

김 비서의 설명에 수현이와 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나저나… 이거 지형이 이렇게 돼서 유감이군.”

내가 저 커다란 놈을 깨운 탓에, 일대가 쑥대밭이 되어 죄책감이 들었다.

“사부가 좀 손봐 주면 되잖아요.”

“당연히 그래야지.”

나름 바쁘게 간다고 간 것 같은데, 녀석의 이동속도는 무척 느렸다. 하여 한참의 시간이 더 흘러, 녀석이 좀 멀리 가고 난 후에야 지형을 다듬을 수 있었다.

다듬는 김에 녀석이 지나가 쑥대밭이 된 곳도 함께 다듬기로 했다. 마력 고리 열두 개의 힘을 받은 마나들은, 내 의지에 따라 휑한 대지의 수복을 시작했다. 마치 대자연을 창조하는 듯, 파괴된 대지가 제 모습을 찾아갔고, 식물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후우…….”

그 넓은 지역을 다 복구하고 나니 숨이 찰 정도로 힘에 부쳤다.

“와… 대박……. 사부 진짜 신이에요?”

“정말로요.”

수현과 김 비서가 앉아 있는 발판의 높이를 좀 내렸더니, 고소공포증이 있는 김 비서도 발판 바깥을 쉽게 내다봤다.

둘의 얼굴은 놀라움과 황홀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정말 황홀한 광경을 본 듯한 얼굴들. 마법의 시전자인 나조차도, 대지가 수복되고 생명이 자라나는 그 모습에 취할 지경이니.

힘은 들었지만, 뿌듯했다.

“뭐, 그 비슷한 거야.”

내 말에 갸우뚱한 수현을 내버려 두고 코앞에 있는 관문 계단으로 향했다.

“가자. 이곳 탐험은 천천히 하도록 하고……. 일단 김 비서, 오늘 있었던 일들 관련 기관에 보고하고, 이제 여기 탐사 시작해도 좋다고 해. 수락산 쪽도 한번 가 봐야겠다.”

“네.”

관문 방문 첫날에 너무 큰 난리를 쳐 버렸군.

“아니, 그 비슷한 건 대체 뭐예요? 네?”

아직 황홀함이 가시지 않는지, 김 비서와 수현의 얼굴은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음… 뭐랄까. 신은 아니지만, 신에 근접한 존재?”

내 전공은 아니지만, 생명을 자라나게 하는 마법도 굉장히 보람 있는 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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