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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경직된 얼굴의 루마니아 처자와 미소를 짓고 있지만 뭔가 딱딱함이 있는 얼굴의 남 비서와 주 비서. 아직도 꿀이 흐르는 멀든과 고든. 그리고 귀여운 척이 늘어가는 중학교 3학년 수현이.
작은 순두부집을 가득 채운 인원들의 조합이 썩 이상했다.
“자, 소개하지. 이쪽은 5년 후 미래에서 온 ‘레이나’라고 하는 루마니아 친구다. 일단 우리와 함께 이곳에 며칠 머무르기로 했으니까 잘 지냈으면 좋겠어.”
처음 보는 멀든과 고든, 주 비서가 아주 적극적인 얼굴로 대답했다.
“그리고 이쪽이 내 비서 중 한 명인 주은서라고 하고, 이쪽은 5천 살이나 먹은 기에테 멀든. 그리고 오늘 막 관뚜껑 열고 나온 고든. 다들 인사하고. 앞으로 자주 볼 사이니까. 잘 지내도록 해.”
이상한 기류가 조금 풀어지는 듯했으나 그래도 레이나는 경계심 어린 얼굴을 유지했고, 남 비서 또한 경계의 눈빛을 머금고 있었다.
너무 날이 서 있군.
수현이는 레이나와 친해지려고 하는 눈빛을 보냈으나, 레이나가 받아주지 않았다.
“순두부찌개라는 건데요. 핵심 재료로 콩으로 만든 순두부랑 바지락이 들어가서 시원하고 맛있습니다.”
남 비서가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열심히 레이나에게 순두부찌개에 대해서 설명했다.
“둘이 잘 어울리네.”
“예?”
남 비서와 레이나 둘 다 화들짝 놀라서 나를 쳐다봤다.
죽이기라도 할 기세군.
“아, 그냥 그렇다고.”
장난기 머금은 미소를 지어 보이곤 식사에 몰두했다. 역시 이 집은 뭔가 다르다. 처음 먹었을 때부터 기억 속 순두부찌개의 느낌과는 달랐는데, 차돌박이 순두부찌개를 먹으니 정말 고개를 가로 저을 정도로 독특하고 맛있었다.
멀든과 고든도 고개를 끄덕이며 맛있어 했고, 멀든은 예전에 한국에 왔을 때 한번 먹어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오천 년을 헛살진 않았나 보다.
식사를 끝낸 우리들은 두 갈래로 찢어졌다. 멀든과 고든은 그 부하들과 함께 어디를 다녀오겠다며 떠났고, 숙소로 돌아갈 줄 알았던 레이나는 나를 따라왔다.
“시우 님.”
남 비서가 불렀다.
“왜.”
“방위청에서 훈련 징집하면 저희 비서들 셋 다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내 허락 없이 내 비서를 누가 데려간단 말인가? 당연한 것을 물어보는 남 비서의 말에서 목적성이 느껴져 속으로 웃었다.
이래서 내가 남 비서를 귀여워한단 말이지.
순수한 맛이 있었다.
“가고 싶어?”
“아닙니다.”
“어차피 못 가. 내 비서를 누가 데려가? 그렇지 않냐, 수현아.”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저럴 때 보면 또 귀여워요.
“내 비서들은 따로 특훈을 할 거야.”
사실 비서들 전투력 증강은 잊고 있었다.
“영감이나 단켄을 불러다가 너희들 특성에 맞게 붙여 줄 거니까. 기대하고 있어도 좋다.”
“오……!”
남 비서는 감탄사를 흘렸고, 주 비서도 입을 벌렸다. 급조된 계획이지만, 다들 만족하지 않을 수가 없는 계획.
“감사합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감사는. 아, 네가 비서 세 명 프로필 모두다 뽑아놔. 너희 능력 세부적인 것까지 모두 다.”
“넵.”
“수현이는 마력 움직이는데 집중하고. 나도 이제 좀 집 라니까.”
“예압.”
주 비서에게는 따로 레이나와 1대1 마크를 하라고 주문을 넣어 놨다. 그리고 나름 조용한 시간이 흘러갔다.
* * *
“마이콜이 붙잡힌 것 같다고?”
“예. 바알길드 마스터도 연락을 피하는 것이 당한 것 같습니다.”
짙은 눈썹. 얇고 긴 선으로 이루어진 브릴란스의 얼굴은, 한국에서의 두 임무가 실패했다는 보고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배신자들 소행인가.”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건 그렇고. 네가 보기에 신시우는 어느 정도의 존재이지?”
브릴란스는 카이라그의 얼굴에서 두려움을 읽었다.
“제 좁은 견해로 말씀드리자면, 제가 느끼기엔 최소한 브릴란스 님과 동급으로 보였습니다.”
“최소한이라… 내 위의 경지일 수도 있다는 말인가?”
“예. 제가 보기엔 그랬습니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차분한 얼굴로 잠시 생각하던 브릴란스는 명령을 내렸다.
“일단 정보원들 급파해서 마이콜과 바알 길드 마스터가 어떻게 되었는지 조사하고, 보고하도록.”
“예.”
“그리고 지금 시간부로 프리메이슨 각 지부에 경계령 1단계를 발령한다. 모두 비상전투태세에 돌입하고, 모든 전력을 활성화시킨다. 귀환자들에게도 예외 없이 전달해라.”
“예.”
“배신자들의 처단은 마이콜과 바알 길드 마스터의 진상조사 후에 결정할 것이니, 준비만 해 놓고 있으면 돼.”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줄줄이 명령을 하달한 브릴란스는 그대로 방을 나섰고, 명령을 받은 카이라그 또한 그의 뒤를 따라 방을 나섰다.
* * *
‘신시우 쇼크. 이대로 괜찮은가?’
‘역사상 전례 없는 동아시아 대제국이 된 한국.’
‘중국으로부터 북한 땅을 돌려받다.’
‘한국의 속국을 인정하지 못하는 중국, 일본 국민들. 거리로 나서다.’
‘기에테라는 고대인들의 도움으로 복구, 구조 작업 수월.’
셀 수 없는 기자들이 쉴 새 없이 기사를 써 댔고, 사람들은 그 기사들을 쉴 새 없이 퍼 날랐다. 전례 없는 규모의 기사들이 온 인터넷을 빽빽이 수놓았고, 네티즌들은 귀환자를 옹호하는 자와 비판하는 자로 나뉘어 실시간으로 싸워 댔다.
귀환자 신시우의 돌발 행동과 잔인한 행보를 비판하는 이들이 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섰고, 언론과 정부의 지원사격에 힘입은 귀환자 옹호파는, 그들을 조롱하고 비난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쟁이 나니, 중국 일본 러시아의 등쌀에 못 살겠니, 이런저런 이유들로 이민을 가야 한다고 이민 운동까지 벌이던 국민들은, 완전히 바뀐 세상에 적응하여 또 다른 주제를 가지고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그렇게 나라 전체가 시끄러웠지만, 다들 알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한국은 외세로부터 위협받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리고 한국인에게 ‘자국(自國)’이라는 것이 굳건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신시우가 동아시아를 휘저었던 ‘신시우 쇼크’ 후 5일째. 여전히 한국은 2개의 파벌로 나뉘어 시끄러웠고, 중국과 일본에서도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계속했다. 그리고 일본과 중국에서 한인 혐오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열다섯 명이 잔혹하게 살해되었다라… 이거 며칠 사이에 총 몇 명이지?”
“중국에서만 29명째입니다.”
“구두 경고만 처하고 있으니까. 계속하는가 본데…….”
순간 내 말이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는 것에 화가 솟구쳤지만, 오늘 아침 드디어 차원 관문의 밑그림을 완성했기에, 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총 291개의 마법술식이 복잡하게 연계된 밑그림. 이해하는 데에 굉장히 오래 걸렸고, 그것들을 다 거대한 차원마법의 기틀을 닦은 것이다.
이제 쌓아올리기만 하면 된다.
물론 말이 쌓아올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굉장히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다행인 점은 관문 마법에 대해 깊이 이해를 했다는 점. 오래 걸리지만 어려울 것은 없었다.
그리고 좋은 소식은 또 있다. 무려 수현이가 마력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콰아아아-!
가끔 이렇게 주변의 마나를 휘둘러 민폐를 끼치는 게 좀 문제라면 문제다.
[마나 컨트롤해야지.]
[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돌아서서는 김 비서와 텅 빈 주차장을 걸었다.
“예. 더 심각해지기 전에 강력하게 경고를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용가리는 소식이 없나? 중국 정부는?”
“정부는 아까 말씀드린 것 이상의 행동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고 님이 화가 나서 다 죽여 버리겠다며 불같은 분노를 표출하긴 했으나, 행동으로 이어지진 못한 듯합니다.”
“잘했네. 행동은 내가 해야지. 중국과 일본에 연락해서, 한국인 해친 놈들 다 잡아 놓으라고 해.”
“네.”
이번에도 본보기의 약이 필요할 듯싶었다. 그리고 주차장 경계석에 앉아서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던 루마니아 처자를 불렀다.
“레이나.”
“네?”
“어떻게 결정은 했나?”
“어떤……?”
“가족들 다 데리고 올 거냐는 거.”
“아… 그건…….”
“아마 앞으로 전 세계에서 치안이 제일 좋은 곳이 이곳이 될 거야. 선택은 자유다. 결정 되면 알아서 얘기해.”
“네.”
레이나도 5일간 있으면서 나와 제자, 비서들을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고, 이틀 전 찾아왔던 단군 영감과 그 부하들과도 만났다. 그리고 혼자서 뭘 열심히 찾아보기도 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차츰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조금 의심하는 눈빛이 없어졌달까?
“주 비서는 여기서 잘 지키고 있고.”
“네.”
이틀 전 단군 영감이 왔을 때 특훈을 부탁해 둔 뒤로 주 비서의 얼굴이 폈다. 기력을 사용하는 남 비서는 소이메르를 붙여 줬고, 마력 각성자인 김 비서는 제라드를, 화염 능력을 사용하는 주 비서는 사막을 붙여 줬다.
단군은 많은 기에테들과 함께 백광마정을 찾기 위해 중국으로 갔고, 내 비서들과 1대1 선생으로 붙은 세 기에테들은 남아서 하루에 몇 시간씩 고정적으로 교육을 실시한다.
“어디 가요?”
어느새 뛰어온 수현이 두 눈을 부릅떴다.
“아. 본보기를 보여 주려고.”
그때 내 벨소리가 울렸다.
“어. 왜.”
멀든이었다.
“지금 온다고? 지금 난 볼일이 있어서 중국으로 갈 거야. 금방 올 거니까 기다려도 되고, 아님 중국으로 따라와도 되고. 어. 그래. 알았다.”
“멀든 언니?”
언제 언니가 된 진 모르겠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수현이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좀만 기다려요. 준비 좀 하고요.”
“뭔 준비?”
“중국 간다면서요?”
“그렇지?”
“그럼 옷을 갈아입어야죠.”
“그냥 그거 입고 가도 될 것 같은데?”
“아니에요. 갈아입어야 돼요.”
입을 꾹 다물었다가 열었다.
“어. 그래. 하고 와-”
수현은 씨익 웃고는 김 비서한테도 기다려 달라고 얘기하더니, 마나를 일으켜 마나를 타고 숙소를 향해 날아갔다.
“참. 밝고 성격이 좋은 분이에요.”
“좋기는 개뿔. 쟤가 얼마나 영악한지 네가 몰라서 그래.”
김 비서는 가만히 웃어 보였다.
“그나저나. 수업은 어때. 잘 맞는 것 같아?”
“예. 너무 잘 가르쳐 주세요.”
“제라든가 하는 녀석 완전 꽉 막혀 보이던데.”
“아뇨~ 전혀요. 너무 섬세하고, 센스 있으세요.”
“반한 건 아니지?”
김 비서는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전혀요!”
피식 웃었다.
“와. 너 진짜 빠르다.”
그사이에 벌써 옷을 갈아입고 온 수현이었다.
옷을 그냥 찢어 버린 건가. 어떻게 저렇게 빨리 갈아입지?
“제가 좀…….”
“뭐, 무튼. 출발하자.”
그렇게 인천공항을 향해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