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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녀석한테 부탁을 해야 되나.’
단켄은 프리메이슨이 입을 막기 위해 걸어 둔 저주가 굉장히 거슬렸다. 현재로서는 저주를 풀 수 있는 것이 신시우뿐이기에 그들이 기댈만한 곳은 그뿐이었다.
‘매번 빚을 지는 느낌이야.’
단켄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 요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가야겠군.”
“후우… 이럴 줄 알았으면, 프리메이슨에 좀 더 있다가 나올 걸 그랬어. 정보를 싹 가지고 말이야.”
라마단이 아쉬움을 토로했다. 27년 전. 힘을 얻은 지 1주일 만에 요한과 라마단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프리메이슨을 떠났다.
수천 번 떠나려고 마음을 먹었던 그들이었으나, 모든 힘을 잃어버린 그들이 프리메이슨의 감시망을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던 그들은 쉽사리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묶여 있던 그들에게 과거의 힘을 되찾는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고, 그대로 떠난 것이다.
“동감한다.”
사이가 좋지 못한 라마단과 요한이었으나, 이번만큼은 서로 공감대가 맞았다. 요한 또한 다시 신시우 앞에 서는 것이 싫었으니까.
“둘 다 신시우랑 첫만남이 좋지 못했군?”
라마단은 고개를 끄덕였고, 요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껄끄러우면 내가 갔다 오고.”
너무나 다시 마주하기 싫었던 요한은, 그의 말에 반사적으로 눈을 빛냈으나, 라마단이 퇴짜를 놓았다.
“그건 안 되지. 이 중요한 놈을 데리고 혼자 다녀오겠다니.”
불신. 아직까지 신뢰가 쌓이지 못한 탓이었다.
“좋아. 어쩔 수 없이 다시 가자고.”
그렇게 마이콜이라는 남자를 데리고 다시금 신시우 앞에 선 그들은, 신시우의 투덜거림을 들어야 했다.
“아니, 뭐, 내가 저주 풀어 주는 기계냐? 뭔, 하루도 안 지났는데 다시 기어오고 지랄이야.”
한창 집중하고 있는데 방해한 까닭이었다.
“이번 한 번만 해 주면 돼. 이놈이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 거다.”
“아니면?”
신시우의 눈빛에 화가 들어찼다.
“야. 그래도 종신계약 한 사람한테 너무하는 거 아니냐?”
라마단과 요한은 굳은 얼굴로 일관했고, 비교적 편하게 대할 수 있었던 단켄만이 그의 말에 맞섰다.
“후우… 그래. 좋아. 종신 계약한 몸들이니 이번은 너그러이 넘어가도록 하지.”
신시우는 독기 서린 눈을 하고 있는 마이콜을 한 번 노려보더니, 손가락을 까딱했다. 그러자 허공에 붕 뜬 마이콜이 그의 앞으로 이동했고, 그대로 신시우의 손이 그의 뺨을 강타했다.
“넌 뭔데 눈을 그렇게 부라리냐.”
한 대 맞고 다시 독기 서린 시선으로 신시우를 본 마이콜은, 싸늘한 신시우의 눈빛과 마주하고는, 침을 꿀꺽 삼키며 얼어붙었다.
그 독기 가득한 마이콜조차 신시우의 싸늘한 눈빛을 소화시키지 못했다.
“눈 똑바로 떠. 싸가지 없이 뜨지 말고.”
그것을 보는 라마단과 요한은, 역시 그와 엮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 그럼 시작을 해 보실까.”
신시우는 마법을 이용해 마이콜의 상의를 찢어 버렸고, 피멍이 든 그의 옆구리에 촛불 문신 3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얜 뭐냐. 관조자냐 주시자냐.”
“관조자입니다.”
요한이 대답했다. 그에 신시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에게서 강력한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순식간에 대기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언제 봐도 경이롭군.’
단켄은 여전히 그것을 보면서 감탄을 마지않았고, 그것은 신시우를 썩 좋아하지 않는 요한과 라마단도 마찬가지였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마나들이 그의 손바닥 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바알 길드장 때와는 다른, 더 커다란 구체가 만들어졌고, 성력으로의 변환이 시작됐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이상하게 흔드는 백색빛의 성력. 그 커다란 성력이 순식간에 마이콜을 뒤덮었다. 그리고 일대에 기이한 바람소리 같은 것이 주변을 휩쓸고 다니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소리가 잦아듦과 동시에 성력이 흩어졌고 마이콜의 모습이 드러났다.
“자, 이제 말할 수 있겠지.”
“고맙다.”
단켄이 두 손을 모아, 고국 고유의 인사를 해 신시우에게 감사를 표했다.
“알았으면 다음부터는 이렇게 귀찮게 하지 마라. 적어도 좀 띄엄띄엄 오던지.”
그의 말에 단켄이 피식 웃었다.
“유념하지.”
라마단과 요한도 그를 향해 묵례를 했고, 나머지 인원들과 함께 다시 공간이동해 갔고, 한차례 한숨을 쉬던 신시우는 옆에서 구경하던 남 비서와 수현에게 말했다.
“흥이 다 깨졌네.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 * *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여야겠는걸?”
라마단 일행은, 요한의 정신 계열 마법 덕에 마이콜이 입을 열지 않아도 그의 기억을 뒤져 웬만한 정보들은 다 얻어낼 수 있었다.
현재 프리메이슨이 회수한 가득 찬 백광마정의 개수는 대략 100여 개. 세계 곳곳에서 영혼을 끌어 모으고 있는 백광마정의 개수는 2~300여 개 이상으로 추정. 정확한 개수는 알아낼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현재 그들이 모으고 있는 영혼의 양보다, 앞으로 비교도 되지 않는 양의 영혼을 빠르게 모을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백광마정 하나당 모을 수 있는 영혼의 최대량은 대략 1만 개. 지금은 그들이 수집하고 있는 것이 수백만 정도밖에 안 되지만, 현재 생산하고 있는 백광마정의 양이 어마어마해서, 앞으로 그들이 수집할 영혼들의 양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고 했다.
“아무래도 조직 수장들을 모두 집합시켜야겠어. 다들 모을 수 있는 기에테 우두머리들은 모두 모아서 내일 밤에 다시 모이기로 하지. 장소는 정해서 내일 알려주도록 할 테니까.”
라마단의 의견에 모두 동의했고, 마이콜이라는 관조자는 단켄이, 백광마정은 요한이 맡았다. 그리고 그들은 세 무리로 나뉘어져 흩어졌다.
* * *
인천공항에 내린 레이나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이곳저곳 벽면과 천정을 복구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비행기 타기 전, 회사에서 들은 한중 전쟁에 대해 찾아봐서 한국이 굉장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레이나였지만, 직접 파괴된 곳들을 눈으로 보니 마치 5년 후의 파괴된 도심이 떠올랐다.
허나 그녀는 이내 생각을 털어내고 곧장 지하철 승강장으로 향했다.
16시간이나 되는 인천공항까지의 긴 여정 동안, 그녀는 수도 없는 고민에 고민을 반복했다. 무시무시한 귀환자라는 존재를 무턱대고 만나러 가는 게 잘 하는 짓인지. 너무 성급하게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닌지.
그러나 고민의 끝은 항상 처음과 같았다. 이것이 자신의 숙명이라는 생각. 그 강력한 번개를 맞고, 몸이 속까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과 함께 과거로 돌아온 자신과 자신이 겪었던 미래에는 없는 한국의 귀환자. 레이나는 그것을 운명이라 생각했다.
공항철도 승강장으로 내려가자 일부 파괴된 역은 이용할 수 없다고 하는 안내 방송이 영어로 흘러나왔는데, 그 끝에 레이나의 목적지인 서울역이 건재하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녀는 목적지인 서울역이 건재하다는 것에 감사했고, 영어를 배워두길 잘 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공항철도에 몸을 싣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중간에 붕괴되어 있는 역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아무런 조명이 없어 어두웠지만, 눈을 부릅뜨고 보니, 엉망이 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역에 내려 지상으로 나간 그녀는, 복구중인 건물들과 시설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 혼잡한 타지의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낀 그녀는, 고개를 흔들어 마음을 다잡았다.
난생 처음 발을 디디는 한국이라는 낯선 나라에 무턱대고 왔기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생각했다. 그리곤 물어물어 방위청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 * *
흠… 오늘은 혼란스럽군.
귀환 14일차의 아침. 대기 중 마나의 흐름이 차분하지 않고, 혼란스러웠다. 주변에 마나가 반응할 마력이 없음에도 이런 흐름을 보여 주는 것은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뭔 일이 일어나려나…….
왠지 모를 불길한 느낌을 안고 텅 빈 주차장 가운데에 앉아 마나 수련을 시작했다. 높은 집중력으로 피로에 찌든 정신과 몸을 치유했다. 조금의 시간도 아까운 나였기에, 밤새 차원관문 마법 술식 해독에 몰두한 까닭이었다.
남 비서와 수현은 근처의 숙박 시설에서 묵기로 하여 보내 두었고, 만에 하나를 대비하여 마법 경보석을 둘에게 쥐어주었다.
둘의 정신과 연계된 경보석은 그들이 위협에 처했다고 판단할 경우 내게 신호를 주는, 생각보다 복잡한 마법이 걸린 아이템이다.
저기 걸어오는 것을 보니 밤새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다.
“하~ 암.”
“뭔 하품을 그렇게 늘어지게 해?”
“졸려요.”
“장차 게으른 마법사가 되겠구만.”
“저 생각보다 부지런해요.”
“그래. 생각보다는 부지런할지도 모르지.”
내가 한마디도 지지 않자, 수현은 희한한 표정을 해 가지고는 날 쳐다봤다.
“남 비서, 내일만 하면 휴가다.”
“예.”
“입이 찢어지는구만.”
남 비서와 나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뭔데?”
“현재 여론이 반으로 갈려서, 아직도 시우 님을 욕하고 비난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시우 님 때문에 가족과 친구들이 죽었다면서…….”
예상했던 일이었다. 이런 규모의 피해를 감수하면서 감행한 작전이니 당연히 비난을 예상했지.
“시우 님이 멸망할 뻔한 나라를 구해 준 것도 모르고, 자기 입장들만 내세워서 욕을 해 대니…….”
“예상했던 일이야.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차차 무뎌질 거고, 그때쯤 되면 한국은 세계 정상에 서 있을 거다. 그때쯤 되면 더 이상 이런 얘기들은 나오지 않겠지. 지금은 그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그들의 귀엔 들어가지 않아. 가족과 친구들이 죽었으니까.”
예상도 했고, 이해도 했다. 내가 황제였을 때도, 왕이었을 때도, 대제행을 하는 와중에도 그런 것들을 봐왔었기에, 그리고 나도 공감을 하는 부분이 있었기에 그들이 쏟아 내는 분노와 슬픔을 이해했다.
거기에 섞여 거짓선동을 하는 이들이 종종 있는데, 가끔 발견되면 완전히 갱생시켜서 사회로 돌려보내곤 했다.
“복구는 어때. 좀 되고 있냐.”
“네. 기에테분들의 도움으로 일의 진행이 굉장히 빠르다고 합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복구하고 정상화시켜서 각성자 군단 양성 시작해야지.”
“금방 될 겁니다.”
“근데 이 노인네는 아직도 잠수냐?”
“제가 한번 깊게 알아보겠습니다.”
“너무 질척대진 말고 그냥 안 알려 주면 대충 물러나.”
“넵.”
얘기 끝날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던 수현을 바라봤다.
“아침 먹고 수련해야지.”
“예~ 안 그래도 일어나서 관조 한번 하고 왔습니다용.”
기분 탓인가. 요새 귀여운 척하는 것 같은데 이 녀석.
“마력 움직이면 얘기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테니까.”
“네넴.”
* * *
심란함과 설렘이 공존하는 방위청장의 방에 부하직원이 급하게 찾아왔다.
“청장님. 루마니아에서 온 한 여자가 청장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이유는요?”
“그게… 신시우 님을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
모니터를 향해 있던 방위청장의 시선이 남자에게로 향했다.
“기에텐가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물어봐도 기에테가 뭔지도 모르더라구요.”
“모른다라…….”
이상함을 감지한 방위청장의 생각이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