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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35화 (3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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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나온 수현은 폐허가 된 바깥을 바라봤다. 자신의 보호자를 자처한 신시우의 귀환에 웃었지만, 현실은 웃을 수가 없는 현실이 펼쳐져 있었다.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 수없이 나올 이재민들. 죽은 이에 슬퍼할 유가족들. 앞으로 한국은 슬픔으로 가득 찰 일만 남았다는 사실에 수현은 우울해졌다. 그리고 왠지 모를 죄책감마저 들었다.

신시우와 관련된 사람으로서, 그와 관련된 이들의 보호아래 생존의 걱정 없이 그 전쟁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그녀의 양심을 건드렸다.

수현이 비서들에게 전해들은 바로는, 재산 피해액이 1천조 이상에 사상자 수십만 이상 추정이라 했다. 물론, 아직 집계가 되지 않은 시점에 그저 전체적인 그림만 보고 추정한 것이지만, 그만큼 피해가 막심하다는 얘기였다.

우울감에 젖은 수현의 뒤에 푸른 머리에 금테 안경을 쓴 남자가 다가왔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네 사부가 아니었다면 이 땅에서 일본과 중국의 각성자들이 뒤엉켜 싸웠을 것이고, 그럼 지금은 비교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죽어 나갔을 거야. 이정도면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인간이라면 다들 알 거다.”

제라드의 말에 수현이 웃어 보였다.

“독심술 쓰세요?”

“아니. 마나가 네 감정을 전해줬달까?”

“아…….”

“넌 마법 없이 마나를 다룬다고 하던데… 무슨 능력인지 물어봐도 되겠니?”

제라드가 자연스럽게 수연의 능력 쪽으로 말을 돌렸다.

“아… 우리 사부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제가 마나의 선택을 받은 존재래요. 그래서 마나친화력이 월등하게 높다나…….”

“음…….”

제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내부 관조도 못하지만요.”

가볍게 말하는 수현과 다르게, 그 얘기를 들은 제라드는 동공이 확장됐다. 가장 기본이 되는 내부 관조조차 못하면서 마법없이 마나를 다루는 것은 마법사로서 자존심이 상함과 동시에 굉장히 놀라운 얘기였다.

“놀랍구나.”

사실 제라드는 5천 년 전의 지구상에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였기에, 모두가 그냥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전설의 존재가 눈앞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내게도 능력을 보여 줄 수 있겠니?”

“아… 네. 물론이죠.”

수현은 맑게 웃어 보였고, 제라드 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때 단군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제라드. 일단 이 동네부터 수습하도록 하세나.”

“예.”

제라드는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 그리고 고위급 복구 마법을 이용하여 동네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부서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복구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으나, 굉장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마법이라 제라드도 진땀을 흘려야 했다.

그것을 수현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폐허가 되어 버린 동네가 점차 복구되어 가는 신기한 광경을.

“정말 대단한 마법이에요.”

어느새 곁에 비서들이 와서 함께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남 비서가 태블릿 PC를 들고 와 뉴스에서 생중계하고 있는, 시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귀한 광경을 보여 줬다.

“와…….”

무서진 빌딩의 잔해들이 바닥에서 끌어올려지며 제자리를 찾아 이전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신성해 보이기까지 한, 마법의 위대함을 새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근데 저 사람들은 대체 누구예요? 우리나라에 저런 마법이 가능한 사람이…….”

김 비서의 물음에 남 비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글쎄. 일단 우리나라 각성자는 아닌 것 같긴 한데…….”

그때 조심스럽게 주 비서가 나섰다.

“기에테라는 사람들 아닐까?”

“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에테들은 여기 다 있을 텐데요?”

남 비서가 다시 의문을 던졌다.

“아… 그러네?”

그때 단군이 기척도 없이 그들의 뒤에서 불쑥 나타났다.

“저런 고위급…….”

“놀래라!”

놀란 김 비서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허허… 미안하네. 이, 습관이 되어서 말이야.”

‘왠지 시우 님한테 또 혼나실 것 같은 느낌인데.’

남 비서는 혼자 걱정스러운 생각을 하며 이어지는 단군의 말을 들었다.

“으흠. 저런 고위급 마법을 사용하는 이들은 현재 지구상에선 귀환자나 기에테들밖에 없네. 아마, 신시우에게 뭔가 볼일이 있어서 이 땅을 밟은 것이겠지.”

“아…….”

“좋은 사람들일까요?”

“글쎄. 일단 한국을 도와주는 걸로 봐서는, 우호적인 감정으로 왔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

* * *

중국 본토에서 벌어진 신시우와 반고의 대결에서 반고가 패배했다며, 중국은 항복 의사를 청와대로 보내왔다. 청와대는, 중국 각성자들이 모두 철수하고 나서야 데프콘1 발령을 해제했고, 전국적으로 피해 파악과 복구에 돌입했다.

일본에서 온 천황 요한과 그 동료들도 한국 도시의 복구를 도왔으며, 자신들을 기에테라고만 소개한 미지의 무리들 또한 한국 곳곳에서 복구 작업과 구조 작업을 도왔다.

한국에 전개된 중국 각성자 수는 대략 15만가량으로 파악되었으며, 70% 이상이 사망했고, 주요 각성자와 기에테 또한 대부분 사망했다.

그에는 갑자기 나타난 기에테들 무리의 활약이 컸는데, 압도적인 무력으로 중국의 각성자들을 무력화시켰으며, 국민들의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데에 굉장한 기여를 했다.

“협회장님.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보고되었습니다.”

협회 간부 함중훈이 특이사항을 들고 협회장 앞에 섰다.

“뭔가?”

“음, 오해일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만, 바알 길드가 전쟁 과정에서, 피난이 제대로 되지 않은 시가지를 과도하게 파괴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에 협회장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바알 길드?”

“네.”

“그… 뭐냐. 지국인가 하는 놈이 마스터로 있는 길드 아니야?”

“맞습니다.”

“그놈이 그랬다는 거야. 아니면 그 길드원들이 그랬다는 거야.”

“그게… 마스터부터 길드원들까지 모두가 그런 움직임을 보였다고 했습니다.”

협회장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고의적으로 뭔가 피해를 키우려 한 게 사실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흠…….”

협회장이 침음을 흘렸다.

“귀환자는? 반고는 좀 강한 놈이었을 텐데 괜찮나?”

“아… 그 비서들에게서 전해 듣기로는, ‘귀여웠다’고…….”

“흐, 흐하하하! ”

반고가 강하다는 것은 온 세상이 아는 사실이었다. 여러 귀환자들 중에서 그래도 힘을 꽤나 보여 준 귀환자였으니까. 그런 그를 귀엽다고 하니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대단한 남자다.”

“맞습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일본과 중국을 무릎 꿇릴 줄은 상상도 못했어.”

일본은 아무런 피해도 없이 꺾었고, 중국과의 전쟁은 짧은 시간 엄청난 피해를 입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무난하다고 할 만한 수준이다.

“기습하는 귀환자의 전략이 빛을 봤습니다. 한국 전력으로 이 정도 피해만 보고 중국을 무릎 꿇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죠.”

육성 중인 전력까지 포함하여, 한국에서 예측한 중국의 각성자 전력은 200만 이상이었다. 기습당하면서 급하게 상륙시킨 15만 규모의 선봉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물론, 반고가 너무 빨리 패배한 탓에 본대는 상륙도 못했지만.

함중훈은 그동안 궁금했던 귀환자의 힘을 대충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신이다.’

함중훈은 그의 힘을 그렇게 표현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힘을 가진 이들을 ‘각성자’라 부른다. 그 초월적인 존재들 보다 월등히 위에 있는 존재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는 신 외에는 달리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그는 협회장이 그렇게 충격을 받은 것도 이해했다. 상대가 신의 힘을 가진 자라면 그럴만하다고. 그리고 그런 힘을 가진 이가 한국 편에 선 것에 다행스러움을 느꼈다.

“그래. 맞아. 뭐, 아무튼, 확실한 거라면 징계위원회를 소집해야 하니까. 아까 말한 그거 관련해서 좀 더 알아봐. 확실하면 증거자료, 증인들 확보해 놓고.”

“예.”

* * *

“흐읍- 하아-”

깊게 호흡을 한 나는, 피로가 싹 가신 눈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저물어 가는 태양에 불그스름하게 물든, 여전히 변함없는 마당이 눈에 들어왔다. 구석에는, 무엇 때문인지 이제 허우적거리기를 멈춘 나의 연구 재료가 둥둥 떠 있었다. 그리고…….

“일어나셨습니까.”

남 비서가 나의 감상을 깼다.

“어. 특이사항은?”

“꽤 많습니다.”

“그래? 뭐, 시답잖은 것들이나 당연한 것들은 빼고 얘기해 봐.”

“어… 예. 그, 중국 각성자들이 쳐들어왔을 때 처음 보는 기에테 집단이 나타나서 한국을 도왔었습니다. 저희 쪽에 접촉하기로는 일단 2개 집단으로 파악되는데, 모두 시우 님을 만나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단켄처럼 모종의 이유로 나와 접촉하려는 놈이 더 있을 것으로 예상은 했다.

“또 다른 것은, 일본 천황 요한이라는 사람도 와서 시우님을 뵙길 요청하고 있습니다.”

“오…….”

드디어 왔군.

“그들이 와서 도시 재건을 도운 덕에 시우 님의 좋지 않았던 평판들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좋지 않았던 것은 뭐지?”

“그… 전쟁이 시우 님 때문에 일어나서 피해가 막심했다고, 전쟁 직후에는 여론이 좋지 않게 형성되었었습니다.”

“음…….”

그럴 거라 생각했다. 허나, 금방 내 선택이 옳았음을 알게 될 것이라 생각했기에 문제가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더 있나?”

“단켄 님은 돌아갔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영감이랑 다른 사람들은?”

“시내 복구 작업 도와준다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대통령님이 시우 님 깨어나시면…….”

“아.”

손을 들어 남 비서의 말을 막았다.

“그런 귀찮은 거 말고. 일단 저녁이나 먹자. 배고프다. 점심도 못 먹었잖아?”

“아, 넵!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메뉴는?”

“어… 아직 안 정해졌는데, 뭐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십니까?”

“아무거나 맛있는 걸로.”

“넵.”

또 뭐, 프리메이슨에 관한 걸 부탁하려나?

한국을 도왔다는 기에테 두 집단이 궁금해졌다.

* * *

웅웅-

강력한 마법의 힘이 거대한 규모의 고층 건물을 재건하고 있는 현장. 그 앞에서 방위청 부청장이 붉은머리칼의 남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힘을 빌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부청장의 진심을 담은 인사에 붉은 머리 라마단은 손사래를 쳤다.

“에이~ 그렇게 인사할 것 없어. 난 그저 볼일을 보러 왔다가, 손이 부족한 것 같아서 도와주는 것뿐이라고.”

“호주에서 오셨다고 하셨죠?”

“어.”

“명함이나 연락처라도 하나 주시면, 한국에서 반드시 보답을…….”

라마단이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말하는 중에 미안한데, 보답은 신시우가 할 거야. 그쪽은 신경 안 써도 돼.”

“아… 예. 그럼… 저는 이만 다른 현장으로 이동해 보겠습니다.”

“그래. 잘 가고.”

라마단은 사람 좋은 웃음으로 그를 마중했다.

“흠… 샤링. 언제까지 복구할 거야? 빨리빨리 안 해?”

“최대한 빠르게 하고 있는 거거든요? 집중하게 좀 조용해 주시죠?”

씨익 웃는 라마단은 기척을 느끼곤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웃음기가 반쯤 사라진 얼굴로 물었다.

“너희들은 뭐냐?”

“노숙자 조직.”

라마단 일행에게 접근한 조직은 다름 아닌 단켄이 이끄는 발할라 기사단이었다.

“음…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라마단은 단켄의 얼굴을 요기조기 뜯어봤다. 그러나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적장의 얼굴도 모르다니. 이거 너무 섭섭한데?”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던 라마단은, 그의 말에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발할라냐?”

그에 단켄이 씨익 웃어 보였다.

“정답.”

“오… 그래. 네가 그 유명한 발할라의 마이스터구나?”

“정답.”

라마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뭐, 형이랑 한번 붙어 보고 싶어서 온 거냐?”

마치 동생을 대하듯 하는 라마단에 단켄은 아무런 자극도 받지 않고 말했다.

“이번엔 오답이군.”

“뭐야 그럼.”

“너도 신시우에게 볼일이 있어서 온 것 아닌가?”

“당연하지.”

“프리메이슨의 파멸을 위해?”

“뭐, 그것도 있고.”

마치 다른 것이 있는 듯 얘기하는 그였지만, 단켄은 개의치 않았다.

“그럴 줄 알고 왔다. 앞으로 자주 볼 사이인데, 얼굴 도장은 찍어야 하지 않겠어?”

“호오. 그래 뭐…….”

쾅!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속도의 발검에 뿌려진 오러를, 단켄이 맞받아치며 일대를 강력한 폭음이 뒤흔들었다.

“제법인데?”

제대로 막지 못했으면, 단켄뿐만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단켄의 부하들까지 모조리 죽을 뻔했음에도 그는 가벼운 말투였다. 마치 그 정도는 막아야 당연하다는 듯.

“‘흉포한 적사자’. 그 이름 그대로군.”

“이야… 그 별명은 진짜 오랜만이다, 야.”

“무튼, 다음엔 협력자로 만날 거니까. 마음 준비하고 있으라고.”

단켄은 그대로 뒤돌아서 무리를 이끌고 사라졌고, 라마단은 한바탕 웃어젖혔다.

“이것 참. 유쾌하지 않은 놈과 한배를 타게 생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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