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32화 (3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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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씨……!”

‘너무 이르잖아 이건……!’

이마에 핏줄이 솟은 협회장이 도끼를 꺼내 들고, 협회 각성자들과 함께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수도권뿐만이 아니라, 대도시급은 모두 침공당한 심각한 상황이었다. 적의 숫자는 아직 집계 불가능.

“오늘 이 미친 종자들에게 한국의 각성자가 얼마나 강한지 보여 주자.”

협회 건물 로비를 쩌렁쩌렁 울리는 함성 소리와 함께 수십의 각성자들이 뛰쳐나갔고, 협회 부지 곳곳에 모인 각성자들과 함께 주변으로 흩어졌다.

“이야… 벌레같이 기어 나오는구나.”

“저기가 각성자 협회라고?”

“어.”

“슬슬 움직…….”

오싹.

그들은 순간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한 줄기 소름을 느끼고 그대로 굳었다. 그것은 분명 온몸의 근육을 굳게 만들 만한 진한 살기였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서 기척 없이 모습을 드러낸 은발의 여자.

“안녕?”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던 그들은 손짓과 웃는 얼굴에 인사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가 내뿜는 진득한 살기와 어울리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여덟 명의 중국 각성자들은 순식간에 머리를 잃고 허물어져 버렸다.

“후우- 다음.”

그 말을 남기고 은발의 여자. 기에테 소이메르는 자리를 박차고 사라졌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폭발음과 함께 건물이 붕괴했다. 시민들은 제대로 대피할 시간도 없이 전투에 휘말려 사상자가 엄청나게 불어났다. 그에 반해 임시정부가 점거하고 있는 국회에서는, 임시정부 인사들이 중국의 오마(五魔)들을 맞고 있었다.

하나같이 독특한 스타일에, 살기등등한 눈빛을 한 오마들의 앞에 임시정부의 국무총리와 장관들이 머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옆에 통역사가 바로 통역했고, 오마 중 대장격인 ‘왕시아오’가 오만한 눈으로 머리를 숙이는 총리를 내려다봤다.

“그래. 청와대는?”

“아직 건재합니다.”

“‘리웅’. 청와대는 네가 가라. 나는 방위청으로 갈 테니까.”

그때 ‘리샤오원’이 물었다.

“관조자는?”

단군 얘기였다.

“주시자들이 연합해서 잡기로 했다.”

“음… 알았어.”

“오늘 신시우는 반고의 손에 죽을 것이고, 한국은 무력화될 것이다. 흩어져.”

* * *

“뭔 일이야?”

“중국 놈들이 쳐들어왔다는데?”

“그래? 하~ 암. 아오, 귀찮아. 가자. 대장 명령이니까. 좀만 놀다 오자고.”

“뭐, 몸풀기 정도는 되겠지.”

“나는요?”

어려 보이는 남자아이가 물었다.

“아, 참. 넌 여기 남아 있어라. 쌈에 잘못 끼었다간 죽을지도 모르니까.”

“넹.”

그렇게 미아리텍사스에 주둔하고 있는 발할라 기사단도 움직였다.

“아니, 오자마자 이게 뭔 일이래유?”

“그러게 말이다.”

“저기 저 설치고 있는 놈들이 중국 놈들이라 이거지.”

“한국이 밀리려나.”

“상대가 되겠습니까? 수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압도적으로 발려 버리죠.”

“그럼 도와줘야지. 어차피 귀환자에게 손 내밀러 온 거니까.”

한국에 상륙한 숨은 기에테들도 전쟁에 휘말렸다. 그리고 신시우의 저택에도 손님이 찾아왔다.

“대체 뭘로 만들어서 이렇게 안 부서지는 거야?”

‘엄청난 결계군. 내 오러 구체를 맞고도 끄떡도 없다니.’

중국 주시자들의 대장인 ‘반달’은 신시우가 쳐 놓은 결계에 공격을 가하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결계 바깥으로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남의 집을 두들기면 쓰나.”

모습을 드러낸 이는 단군이었다.

“오랜만이오, 영감.”

“허허… 이것 참.”

단군의 무거운 눈꺼풀이 올려지며 눈빛이 빛났다.

“당신이 제일 걸림돌이라 내가 직접 왔소.”

반달. 오천 년 전 단군과 같은 왕국 출신으로, 지금은 비록 서로 반목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지만, 대전쟁 시절만 하더라도 함께 싸우던 전우였다.

“옛날의 내가 아니오. 힘을 되찾고 경지를 한 단계 뛰어넘었으니까.”

“호오… 신검합일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 말인가?”

“맞소.”

그는 과거 전쟁 시절 계급이 낮았던 탓에 프리메이슨 창설 때 주시자의 자리에 있게 된, 경지에 비해 낮은 위치에 서 있던 인물이었다. 마치 일곱 고리를 가졌지만 주시자에 있던 제라드처럼 말이다.

“음… 경지를 뛰어넘은 것은 축하하네만, 자네와 손을 섞게 된 것은 유감이네.”

“긴장하시오.”

반달이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영롱한 빛을 내뿜는 검이 심상치 않은 기운을 사방으로 흘렸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있던 여섯 주시자들도 기력을 끌어올리며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럼 나도 최선을 다해 자네들을 막겠네.”

단군이 힘을 끌어올리자 주변의 그림자들이 그 영역을 넓히며, 일대에 어둠이 피어올랐다.

‘역시나 저 암력(暗力)은 성가시군.’

반달과 여러 주시자들은 지붕 위로 올라가거나 허공으로 날았다.

암력. 그것은 자연의 선택을 받은 이들 중에서도 보기 드문 힘 중 하나인데, 그림자나 검은색을 가진 것들은 모두 그의 힘의 원천이 되며, 인력까지 자유자재로 다루는 탓에 굉장히 까다롭고 강한 능력으로 꼽히는 힘이다.

“모두 조심해라. 어둠의 근처에 있다가는 그대로 빨려 들어가 버리니까. 자신 없으면 빠져.”

반달은 처음부터 전력으로 갈 생각에 기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그의 주변에 오러 구체가 몇 개 생겨났다. 그것은 마이스터의 경지에 이른 존재만이 할 수 있는 최상급 기술 중 하나였다.

오러 구체들은 빠르게 지면으로 쏘아졌고, 엄청난 폭발과 함께 어둠을 걷어내며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 * *

일대가 쑥대밭이 된 데에 반해 결계의 안쪽은 조용했다. 결계가 큰 소음마저 걸러 내는 탓에 바깥의 상황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괜찮을까요……?”

수현이 걱정스레 말하자, 뒤에서 묵묵히 서 있던 제라드가 답했다.

“걱정하지 마라. 영감님은 강하니까.”

“저 검은 것들은 뭐죠?”

이번엔 주 비서가 질문했다.

“단군 영감님의 능력인데, 암력이라는 거야. 자연 계열 능력 중 하나지. 어둠 속…….”

“어! 더 어두워져요……!”

햇빛이 희미해지며 온 세상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영감님의 시간이군.”

“와…….”

쨍쨍하게 내리쬐던 태양이, 넘실거리는 어둠에 희미해져 버렸다. 어둠이 사방팔방 내려앉으며, 주변이 암흑으로 변했다.

‘감각으로 싸우는 건가?’

남 비서도 머릿속으로 대체 이런 능력과 맞붙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혼자 상상하며, 눈을 부릅뜨고 어둠 속을 쳐다봤다.

* * *

[어둠에서 벗어나라!]

반달은 전음으로 주시자들에게 명령을 하달하곤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는 단군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워낙에 희귀한 힘이기에 과거 그에게 여러 가지 물어봤었다.

그가 펼치는 어둠은 오감을 흐리게 만들고, 상대의 심리를 이용한 환상까지 보여 준다. 빛을 빼앗아 시각을 빼앗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나머지 감각들까지 빼앗아 아예 무력화시킨다.

그렇기에 그의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자살 행위와 같다. 어둠 속에서 단군은 그야말로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창조신 같은 존재니까. 어디서든 나타나고 어디서든 사라질 수 있다. 그는 어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존재를 지웠다 나타나는 것이 가능한 존재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라면 무적일 것 같은 그의 능력도, 모든 이에게 동일한 효과를 가져다주진 않는다. 일정 경지를 넘어선 기력 사용자들은 감각을 빼앗는 그의 능력을 파훼할 수 있다.

그걸 알고 그는 어둠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는 신검합일의 경지에 이른 마이스터니까.

그는 오러를 몸에 둘러치며 사방팔방으로 오러를 뻗쳐 감각을 넓혔다. 오러가 닿는 곳까지는 그의 감각이 살아난다. 즉, 어둠 속에서 기습당할 일이 없다는 얘기다. 그 상태로 그는 오러를 더욱 넓게 뻗치기 시작했다.

몸에서 떨어지면 금방 흩어져 버리는 오러지만, 마이스터의 경지에 이른 자들은 멀리 떨어뜨려서도 자유자재로 운용이 가능하다.

그는 단군을 찾았다. 마치 실처럼 뻗어 나가는 수없는 오러의 줄기들 속에서 그의 기척을 찾았다. 그러나 한참을 뒤져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차……!’

그는 미처 나머지 여섯 주시자를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의 실력을 보여 주는 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그것까지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오러의 감각을 유지한 채 빠르게 이동했다.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그는, 결국 어둠 밖으로 뛰쳐나오기에 이르렀다.

‘맙소사…….’

허공을 딛고 높이 올라서니 밑의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단군이 펼친 어둠은 상상 이상으로 방대했다. 멀리 산 밑에서부터 시작해서 동네를 다 뒤덮는 데서 그치지 않고 끝없이 펼쳐져서는, 일대를 완전히 뒤덮고 있었다. 거기다 아지랑이처럼 솟아올라 흐느적거리는 어둠의 줄기들은 마치 들어오라 손짓을 하는 듯 소름 끼쳤다.

‘마치… 심연으로 연결되는 구멍 같군…….’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암력은, 마치 심연으로 연결된 듯 시커멓게 보였다. 그리고… 반달은 주시자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너무 오래되어서였을까. 자신이 단군의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했다고 생각했다. 한 단계 오른 자신의 경지에 너무 집중하여, 나머지 주시자들을 챙기지 못했다.

“어디 있는 거냐……!”

“여기일세.”

그는 눈을 돌리기보다 몸을 먼저 움직였다. 가공할 속도로 허공을 박차고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자신의 있던 자리 바로 뒤에 단군이 서 있었다.

“잔챙이들은 정리했네.”

반달은 눈을 감고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후…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생각했군.”

그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마음을 다스렸다. 단군과의 전투에 흥분하여, 신검합일의 경지답지 않게 마음이 흐트러져 경솔함을 보였다고 자책했다. 그러곤 발산하고 있던 오러를 갈무리하고, 차분하고도 농도 높은 오러를 검에 빚어 냈다.

“좋소. 단둘이 남았으니. 제대로 시작해 봅시다.”

그에 단군은 뒷짐을 풀더니 손을 폈다. 그러자 저 밑, 바닥에 깔린 어둠이 창처럼 솟아오르더니, 그의 손아귀에 칠흑 같은 검을 한 자루 쥐어 줬다.

“인력(引力)검…….”

“간만에 옛날 생각이 나는구나.”

단군은 검법에도 능한 자였다. 암력과 함께하는 그의 검법은, 능히 마스터도 농락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팟.

반달은 가벼운 바람만을 남긴 채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동시에 네 갈래의 오러 줄기가 쏘아져 나가 뱀처럼 휘어지며 단군에게 짓쳐 들었다.

* * *

.

“야! 쟤네들은 어디 소속이야?”

“창신동에 지원 나온다고 했던 길드는 바알 길드밖에 없었으니까 아마 바알일 겁니다.”

“아니… 왜 저렇게 다 처부수는 거야! 시민들 대피도 다 안 끝난 마당에! 큭……!”

와락 짜증을 내던 협회 쪽 각성자가 원거리 저격을 맞고 쓰러졌다.

“이사님!”

어떻게 보면 그냥 적과 싸우며 자연스럽게 주변 건물이 부서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사실 바알 길드원들이 과하게 대응하면서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게 맞았다.

“헉, 헉, 헉… 하아…….”

‘이거, 이거… 쉬운 일이 아니네.’

각성자 등급 2급을 눈앞에 둔 바알 길드 마스터 ‘지국’은, 최대한 많은 인명 피해를 위해 동분서주하며, 중국 각성자와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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