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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고라는 놈에 대해서는 좀 아나?]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탓에 육성 대화가 불가능하니, 전음(傳音)을 통해 대화를 걸어왔다. 하여 나도 정신 접촉을 통해 나의 뜻을 전달했다.
[어, 용으로 변하는 놈이라며?]
[그래. 그 실력은 알고 있나?]
[넌 아냐?]
[정확히 측정된 것은 아니지만, 세계 다섯 귀환자 중 1, 2위를 다투는 막강한 녀석이다.]
놈의 실력 따위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차피 재롱 좀 보다가 죽이면 그만일 놈이라고 생각했으니, 기대 또한 되지 않았다. 과거 대제행(大帝行)에서 용족이 육황으로 있는 대륙에서, 최강의 용이 내 손에 꺾여나갔다. 그러니 기대가 되지 않을 수밖에.
[그래.]
너무 무미건조한 대답이었을까. 녀석이 한마디 덧붙였다.
[넌 긴장이라는 건 하고 있냐?]
[내가 왜.]
[하아… 모든 싸움은 예측할 수 없는 법이야. 특히나 이 귀환자라는 놈들은 죄다 불명확한 실력을 가지고 있어. 요한 놈 꺾었다고 자만하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
이놈, 생각 이상으로 굉장히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럴 일은 없을걸?]
이건 정말 단 1%의 오만함이나 허풍이 아닌 진실 그 자체였다. 놈이 신이 아닌 다음에야 그런 일이 벌어질 일은 없다.
[…넌 정말.]
단켄은 말을 잇지 못했다.
[너 칼은 가져왔냐?]
녀석의 몸에 검이 보이지 않아 물었다.
[아니.]
[뭐야, 그러면…….]
[용을 내가 잡는 것도 아니고. 나머지 놈들은 나뭇가지 하나만 꺾어 가지고 있어도 돼.]
그 정도 경지다 이거군.
[음… 그래. 거의 다 왔군.]
멀리 산 정상 부근에 우뚝 솟은 거대한 성이 보였다. 멀리서도 대충 용 모양을 알아볼 만큼 규모가 방대했다.
고귀재의 말로는, 거룡성이 있는 ‘린이’라는 도시가 그나마 한국과 가까운 곳 중 하나라더니, 그 말대로 해안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근데… 저 뿌연 건 뭐냐.]
멀리, 거대한 모래바람 같은 것이 접근하고 있었다. 그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나조차도 미간이 찌푸려졌다.
[황사다.]
[황사?]
들어봤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 중국 사막에서 몰려오는 모래바람이야. 몸에 안 좋은 것들은 다 머금고 있지.]
[음… 저 정도 규모면 한국에도 가겠는데?]
[맞아. 한국에 다 뿌리고 가지. 매해 봄마다 재난이라고 하더군.]
저것도 어떻게 조치를 취해야겠군.
[하강한다.]
어느새 가까워진 거룡성에, 속도를 늦추고 내려갔다.
* * *
중국 총방위성 중앙종합상황실에 붉은 빛이 깜빡였다.
“두 개의 미확인 물체가 한국 방향에서 빠른 속도로 영공을 침범해 들어왔습니다.”
“크기는?”
“그게… 사람 정도 크기만 합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형상 확인이 가능합니다.”
“뭐야 대체.”
상황실장은 인상을 찌푸렸다. 전투기도 아니고, 사람 정도 크기만 하다니. 각성자들이라면 비행이 아닌 공간이동을 할 것이기에 도무지 접근하는 것들이 뭐하는 것들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그의 눈이 번뜩 뜨였다.
“진입 방향은 린이시 방향입니다.”
도시 린이. 인구 천만이 넘은 대도시이며, 산둥성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도시로 각광받는 도시였지만, 각성자 시대 도래 후 린이시가 더욱 각광받은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귀환자 ‘반고’가 그곳에 터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설마…….’
실장의 머릿속에 한 가지 불행한 느낌이 스쳐 지나갔다. 바로 이틀 전 있었던 충격적인 사건. 한국 귀환자 신시우의 일본 천황 격파 사건. 그것 또한 이른 아침에 비행으로 급습했다고 들었었기에, 바로 연상이 됐다.
“영상 자료 띄우겠습니다.”
영상 자료가 전면의 큰 스크린 화면에 뜨자 실장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백발의 남자와 금발의 남자가 빠른 속도로 린이시로 진입하고 있었다.
“당장 거룡성에 연락 넣고! 오마(五魔)께 연락해라. 신시우가 거룡성을 급습하러 왔다고……!”
중앙종합상황실에서 퍼진 급습 정보는, 정부와 주요 기관 및 주요 길드들에 퍼져 나갔고, 그 소식은 순식간에 중국 전역으로 퍼져 나가며 중국에 초비상이 걸렸다. 그리고 주시자 열넷은, 미리 준비라도 하고 있었던 듯 금세 아지트에 모였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반고의 그림자 뒤에 숨어 있던, 열네 명의 주시자 중 하나인 ‘다이온’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반고 녀석. 우리 얘기를 귓등으로 듣더니, 식겁을 하겠구만.”
“걔가 식겁할 놈이냐. 식겁은 그놈이 하겠지. 이제 본 실력이 드러나겠구만. 천황과 요한을 정말로 꺾었는지, 아니면 혓바닥으로 꺾었는지 말이야.”
신시우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한 주시자급 기에테 ‘할라바스’가 오만한 눈빛을 빛내며 얘기했다.
“그런데 그놈이랑 같이 오는 놈은 대체 뭐하는 놈이냐? 얼굴 아는 사람?”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한데… 너무 흐릿하단 말이지.”
“됐고. 빨리 찢어지자. 어제 정했던 대로 일곱은 거룡성으로 이동해. 우리는 한국으로 갈 테니까.”
그렇게 기에테들이 찢어졌고, 중국은 미리 해 두었던 침공 준비를 서둘렀다.
* * *
거룡성의 상층부. 뻥 뚫린 천정으로 내려오는 햇빛이 4미터에 육박하는 거구의 사내를 비췄다. 그는 바로 중국을 지배하는 귀환자 ‘반고’, 본명은 ‘위룽광’.
이계에 던져지자마자 잔혹한 실험 대상으로 선정되어 강제로 용의 심장을 이식받은 불쌍한 존재. 그러나 운이 좋게도 그는, 시체로 강을 이룬 그 끔찍한 실험이 성공하여 살아남았고, 그는 용으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그가 얻은 심장은 용 중에서도 강하기로 손에 꼽는 고룡(古龍) ‘팔치스타’의 심장이었고, 그는 그 용의 힘을 그대로 이어받게 된다. 아니,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 용에다가 자신의 재능까지 얹어 더욱 강한 존재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 맞다.
그런 그는 강한 힘을 얻은 대신 여러 부작용도 함께 얻었는데, 몸이 비대해지고 거대해지는 것이 그 첫 번째 부작용이고, 두 번째는 용의 특성을 받아 탐욕이 많아졌다는 것.
그런 그는 힘을 얻자마자 압도적인 힘으로 그 나라를 멸망시켰다. 하나도 남김없이 모든 생명체를 쓸어버렸고, 더 나아가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대륙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지만, 대륙에 그를 저지할 수 있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비참한 실험체에서 대륙 최강의 존재로 거듭난 위룽광. 그의 분노와 탐욕이 점점 대륙을 멸망으로 몰고 가던 어느 날. 위룽광은,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갑작스럽게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 고향으로 돌아가 버리게 된다.
강제로 귀환해 버린 그는 고향인 중국의 왕을 자처했고, 그래도 마음속 한구석에 남은 고향이라는 것 때문에 중국을 파괴하지는 않았다. 대신 중국 밖에 있는 것들을 탐냈고, 진출하려던 그때 난생처음 만나는 강자가 그의 눈앞에 나타난다.
이기어검을 사용하는 아득한 경지의 검사. 그 존재는 위룽광에게 강자를 찾아왔다며 다짜고짜 공격을 가했고, 난생처음으로 변신한 그의 몸에 커다란 상처가 나게 된다. 그렇게 고향이 상상 이상으로 위험한 존재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위룽광은, 폭주기관차 같은 그 성정에 자제력과 조심성이라는 것이 생겼다.
‘오늘따라 욱신거리는군.’
가끔씩 상처가 욱신거릴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그에게 조심성과 자제력이 생기곤 했다. 그런 그가 가슴에 난 상처를 매만지며 묘한 기분으로 햇빛을 쬐고 있는데, 부리나케 누군가가 복도를 질주해 그에게 접근해 왔다.
“반고 님! 급보입니다.”
“뭐냐.”
“한국의 귀환자 신시우로 추정되는 인물 외 1명이 이곳 거룡성을 향해 빠르게 접근 중에 있습니다.”
“알았다. 가 봐.”
‘제 발로 무덤을 찾아온다니.’
그 생각과 동시에 그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 강한 힘은 아니지만, 멀리서 빠르게 접근하는 두 존재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호오… 한 놈은 꽤 강하군.’
기력을 품은 자의 힘이 날카롭게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반면 마력을 품은 존재는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니 약한 것 같기도 한데, 뭔가 그 뒤에 거대한 것이 있는 듯한 느낌이라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환영식을 해 줄까.’
드드드드…….
그의 몸이 변형을 시작했다. 이윽고 그 거대한 공동을 반이 넘게 채울 만큼 커다란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거룡성 자체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부리고 있던 용의 목 부분이 들어 올려지며, 성으로 접근하고 있는 대상을 향해 움직였다. 거대한 성치고 기민한 움직임으로 조준을 끝낸 거룡성은, 목표물을 향해 커다란 아가리를 쩍 하고 벌렸다.
조준이 끝나자, 위룽광은 커다란 공동의 전면 상단에 자리한 커다란 구멍을 향해 브레스를 뿜었다. 그리고 그 브레스는 거룡성의 목구멍을 통과하며 더욱 강화되어, 주둥이를 통과할 때쯤 그 위력은 배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대상을 향해 뿜어졌다.
* * *
하강을 하려는데 용 모양의 성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쭉 뻗은 용의 모가지 끝에 아가리가 쩍 하고 벌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곳에서 강력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온다. 가만히 있어.]
입을 달싹이며, 양손을 따로 놀려 인을 맺어, 상급 실드를 3중첩으로 둘러쳤다. 그러자마자 용의 아가리에서 뿜어진 강렬한 브레스가 순식간에 눈앞을 뒤덮었다.
“이야… 섬뜩한데.”
단켄의 긴장감이 피부로 느껴졌다.
“내려간다.”
한 번의 브레스 타임이 끝나고, 나는 재빠르게 상층부의 구멍을 찾았다. 그리고 빨려 들어가듯 그곳으로 빠르게 이동해 진입했다. 당연하게도 그곳에는 놈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 우…….”
“음…….”
단켄은 감탄했고, 나는 실망했다. 날개를 펴니 거대한 공동을 꽉 채울 만큼 거대했으나 딱 그만큼 거대했기에 조금 실망했다. 왜냐하면 그에게선 오래된 느낌을 받았는데, 오래된 것치고 덩치가 작았기 때문이었다.
[내 성에 온 것을 환영한다.]
머릿속에 놈의 음성이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놈의 강렬한 피어를 품은 포효가 성 전체를 뒤흔들었다.
[어때.]
단켄의 전음이었다.
[실망이야.]
[오… 자신감 아주 든든하군. 나는 좀 떨어져 있을 테니. 둘이 좋은 시간 가지라고.]
단켄은 순식간에 공동의 끄트머리로 가더니 이내 모습을 감췄고, 나 혼자 거대한 용의 앞에 서게 되었다.
왠지 좀 섭섭한데.
뭔가 둘이 왔는데 홀로 있으니 좀 섭섭한 느낌이 들었다.
[네놈이 그 유명한 신시우인가?]
[그렇다면?]
[따라와라.]
놈은 강렬한 화염 브레스를 내뿜어 공동 안을 화염으로 가득 채우며, 위에 뚫린 구멍으로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어차피 아무런 피해도 없을 걸 알면서 왜 굳이 브레스를 남발하는 거지. 뭐, 보스 등장 효과 같은 건가.
가끔 이렇게 알 수 없는 짓들을 하는 놈들이 있다.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놈을 따라 위쪽 구멍을 통해 바깥으로 나갔다. 그러곤 나가자마자 위쪽에서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구구구구…….
대기가 떨려오며, 커다란 것이 구름을 증발시키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운석 소환……? 아니, 이건 운석이라도 너무 큰데…….
사실 나는 피하면 그만이었다. 성만 부서지고, 이 땅만이 피해를 입을 뿐이었다. 아니지, 이 정도면 한국에도 피해가 간다. 그런데 한국에 피해를 입히자고 이딴 걸 소환했을 리는 없고…….
대체 왜 저런 큰 힘이 들어가는 마법을 꺼내들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공간이동으로 자리를 피했다.
내가 움직인 그 순간. 허공에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지며 운석이 마법진 속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그리고 곧바로 운석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내 머리 바로 위. 잘못하면 겹쳐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이었다.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