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이른 아침 신시우의 저택. 귀환자와 그 제자가 일어나기 전, 세 비서가 먼저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저택을 정비했다. 그 와중 저택 앞길에 근무 중이던 경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 네. 알겠습니다.”
아침을 준비 중인 주 비서와 김 비서를 두고, 남 비서가 집 밖으로 향했다. 집에 결계가 쳐져 있기 때문에, 뭔가 용무가 있으면 경찰들이 전화를 걸어 집에 알리고, 비서들이 나가 보는 식으로 외부의 용무를 해결한다.
“그, 귀환자님 앞으로 편지가 한 통 왔습니다.”
“아… 혹시, 편지를 전해 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어… 그냥 우체부였어요.”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편지를 받아 든 남 비서는 저택으로 들어가며 편지를 살폈는데, 일반 편지 봉투가 아니었다. 외관도 꽃 그림으로 예쁘게 되어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아무나 열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왔다. 그 느낌은 그저 ‘촉’이 아닌 편지가 주는 느낌이었다.
‘마법 처리가 된 편지다.’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왔지만, 귀환자를 생각하면 또 그 걱정이 달아났다. 이 세상에서 그 존재에게 해를 입힐 만한 인물은 없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 일어나셨어요?”
“응. 어디 갔다 오냐.”
“아, 밖에 귀환자님 앞으로 편지가 한 통 와서 받아왔습니다.”
“그래? 줘 봐.”
귀환자는 거실 소파에 가서 앉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편지를 받아 들자마자 눈매가 살짝 좁아졌다가 돌아왔다. 그 편지가 보통의 편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 듯했다.
“마법 처리가 되어 있군.”
“아, 그렇습니까.”
옆에 선 남비서는, 마법 처리가 되어 있는 것 같다고 먼저 말하고 싶었으나, 말할 타이밍을 놓쳤기에 그냥 모른 척했다.
귀환자는 편지를 허공에 띄우더니, 어떤 마법을 시전하여 편지에 있는 마법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마치 마법으로 편지를 읽듯이 한참을 그러고 있던 그는, 마법을 풀고 편지 봉투를 뜯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궁금하냐?”
옆에 서서 유심히 보고 있는 남 비서의 마음을 읽은 귀환자가 물었다.
“아, 예.”
‘너무 뚫어져라 쳐다봤나?’
“어떤 조직의 동맹 요청 편지다.”
“오… 어느 나랍니까?”
“기에테야.”
“아…….”
기에테. 귀환자가 어제 온 세상에 까발린 고대의 각성자들이었다. 남 비서는 며칠간 그의 근처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있어 대충 이해는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에게 기에테들이란 미지의 존재들이었다.
“수현이는 아직 안 일어났어?”
“아, 네. 아직 안 내려왔습니다.”
대답을 하며 남 비서는 생각했다. 만일 자신이 그의 제자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 그 또한 각성자이기에 강해지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강해져서 인정받고, 권력과 부를 움켜쥐고 자신도, 부모님도, 어깨에 힘 빡 주고 다니는 것. 누구나 하는 그런 환상쯤은 그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상상했다. 이 강함의 끝이 보이지 않는 존재의 제자가 된다면 어땠을까 하는.
“깨워. 밥 먹어야지.”
“옙.”
남 비서는 수현의 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며 피식 웃었다. 처음엔 마치 죽으러 온 듯 잔뜩 긴장했던 자신이 이제는 제자가 되면 어땠을까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웃겼다.
똑똑똑.
“일어났어요?”
“네~ 금방 내려갈게요.”
남 비서는 수현의 목소리를 듣고서 몸을 돌렸다. 그러면서 그는 처음 귀환자의 비서로 지원했던 때를 떠올렸다.
그 누구도 쉽게 지원할 수 없던 부분이었지만, 귀환자의 비서가 되면 기존 연봉의 4배에 특별 수당까지 주며, 대우가 4급 공무원으로 올라간다는 얘기에 바로 지원했던 그였다.
그는 돈이 궁했다. 병으로 병원에 누우신 어머니 때문에 병원비가 굉장히 많이 나갔고, 아버지 또한 아파서 치료 비용이 더블로 나가는 중이었다.
그렇게 보면, 다른 일들을 알아보면 되지 않겠냐는 말을 할 수도 있지만, 그의 스펙으로 구할 수 있는 다른 일자리도 그만큼 주는 곳은 없었다. 목돈이 생기는 원정대 참가는 당연히 꿈도 못 꾸고.
아무튼 그런 경위로 목숨을 걸고 지원했지만, 사실 지원하고도 굉장히 후회를 했었다. 미쳤다며, 미친 짓이라며 자신을 자책했었다. 왜냐하면 귀환자라는 존재는 세간에 알려진 것들만 들어도, 절대로 가까이 가서도 안 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귀환자 신시우를 겪어 보며 그는 깨달았다. 다른 귀환자의 이야기가 미화된 게 아니라면, 이 신시우라는 귀환자는 좀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그는 적에게는 잔혹하지만, 자신의 사람들을 챙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만의 정의관이 뚜렷했다.
“밥 안 먹어?”
“아, 하하. 잠시 딴생각을 좀…….”
의심의 눈초리가 날아와 남 비서에게 꽂혔다.
“뭐, 고민 있으면 얘기해.”
신시우의 말에 남 비서는 멋쩍게 웃었다.
“하하. 아닙니다.”
“돈 필요하냐?”
“아이. 아닙니다. 귀환자님 모시면서 충분히 많이 받고 있습니다.”
“오~ 그래? 얼마 받는데.”
“어… 기본 연봉이 1억 7천 받습니다.”
“오…….”
수현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생각해 보니까 사부는 월급 같은 거 받아요?”
갑자기 화살이 신시우에게 꽂혔고, 자리에 있던 모두의 관심사가 신시우에게 쏠렸다.
“아니, 이 땅의 모든 돈이 내 건데, 내가 돈이 필요하겠니?”
실로 오만한 소리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세상은 그게 당연한 세상이라는 것을. 왕이라는 자리에 앉지만 않았을 뿐. 이 나라는 그의 손아귀에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돈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터인데, 돈이 필요할 리가 없었다.
“하…….”
오만한 그의 말에 수현이 고개를 작게 흔들었고, 세 비서들은 씩 웃었다.
“왜. 재수 없냐?”
“네.”
어이없다는 듯 신시우가 웃었다. 이전 세계에서 황제보다 더 위의 자리에 있었다고 했으니 그럴 법했다. 중학교 3학년에게 재수없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을 테니까.
“밥 빨리 먹고 움직이자. 오늘은 바쁠 거다. 할 게 많아.”
신시우의 선포와 동시에 그들의 하루 일과가 시작됐다.
* * *
아침부터 오묘한 편지를 받고 나니 기분이 꺼림칙해졌다. 내게 협력할 것을 제안한 그 기에테 집단은, 자신들을 숨어 있는 존재들이라 얘기했다. 그러니까 발할라 기사단과 비슷한 이들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정체를 그들의 말만 믿고 단정 지을 순 없었다. 정말 숨은 자들인지, 아니면 숨은 자들로 포장한 프리메이슨인지 내가 알 수 없으니까.
그 마법 편지는 수신자가 마법을 통해 답을 줄 수 있는 구조였는데, 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들의 메시지만 읽고 치웠다. 필요하면 직접 찾아올 테니까. 그때 만나서 제대로 파악해도 늦지 않았다.
그것보다 오늘부터는 큰 규모의 선별 작업을 해야겠어.
어제는 광해 길드 간부들의 선별 작업을 했다면, 오늘부터는 국가 규모로 선별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임시정부라고 국회의원들도 분열을 시작했으니, 보다 쉽게 선별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네. 시우님. 무슨 일이십니까?]
“오늘부터 방위청 각성자들 선별해서 정리해. 내 뜻에 따를 놈과 따르지 않을 놈들로.”
[아, 네. 그렇지 않아도 오늘부터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 싹 정리되면 얘기해. 인원 수에 맞춰 링크를 만들어야 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내 계획에 동참하기로 한, 상위 다섯 길드에도 연락을 넣어 선별을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나는 발할라 기사단의 단켄을 불렀다.
“무슨 일이지?”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 남성다운 각진 얼굴을 가진 금발의 사내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가자.”
“어딜?”
녀석은 황당한 얼굴이었다.
“중국.”
“뭐?”
“반고 잡아야지.”
녀석은 헛웃음을 지었다.
“아니, 이렇게 갑자기?”
“내가 일본 천황을 어떻게 쳤을까?”
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원래 이렇게 급조 모험을 하는 편인가?”
“급조라니. 급조라고 보여질 뿐. 나는 계획대로 움직여.”
일부러 ‘링크’라는 마법을 언급하고, 중국과의 전면전을 준비할 것처럼 얘기하며 여러 눈을 속이느라 애썼는데, 급조라니 섭섭하려 했다.
“왜 그저께 미리 말 안 했어.”
“이런 기습 계획은 보통 나 혼자나 최측근만 알고 있게 하는 편이라.”
내 말에 녀석이 피식 웃었다.
“너무 조심스럽군.”
“한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일인데 당연히 그래야지.”
“좋아. 둘이서 가나?”
“혼자서 주시자 열넷을 감당할 수 있다면. 뭐… 그래도 너 혼자 감당하게 두진…….”
“음~”
단켄은 눈을 감고는, 검지를 흔들어 보였다.
“지금 넌 날 너무 과소평가하는 거 아니냐? 주시자 열넷이라니. 스물이 미리 함정을 파놓고 기다려도 날 이길 순 없어.”
아주 든든한 말이었으나, 검증되지 않아 마음에 와닿진 않았다.
“아무튼 가자.”
“좋아.”
세 비서를 내 방으로 불렀다.
“나는 지금 중국으로 향할 거다.”
“네?”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으나 이내 적응했다.
“두 번째면 적응할 때도 됐잖아?”
“하…….”
“네.”
입가에 여러 가지 미소들이 그려졌다. 어이없어하는 얼굴도 있었고, 놀라는 얼굴도 있었다. 이해했다. 두 번째 겪으면, 이젠 좀 섭섭하기도 하겠지.
“그래도 그런 부분은 저희한테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도 한 식군데 섭섭합니다.”
남 비서가 예상대로 섭섭함을 드러냈다.
“너희들이 섭섭한 건 안다. 하지만 이번까지는 이런 식으로 진행해야 해. 이해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워낙에 내가 조심스러운 타입이기도 하지만, 꼼꼼하며 신뢰 관계를 확실히 따지는 스타일이라 지금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를 믿고 사실 그대로를 말한다는 게 불안했다.
“몸조심하세요.”
김 비서였다.
“너희들이나 몸조심하고 있어. 만일의 사태라는 게 있으니까.”
“다녀오세요.”
“금방 다녀오십쇼.”
주 비서와 남 비서가 이어서 인사했다. 그리고…….
[또 기습하러 가요?]
수현이 2층에서 정신으로 접촉해 왔다.
[그래. 이렇게 급습하지 않고서야 한국이 중국을 이길 수 있겠냐?]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해요. 그래도, 다음부터는 다 같이 터놓고 얘기했으면 좋겠어요. 제 보호자를 자처하셨으니 그 정돈 얘기해 줄 수 있잖아요?]
[그래. 알았다. 단군 영감이 이 집을 지킬 거야. 비서들이랑 잘 있어라. 금방 오마.]
[알았어요.]
“수현이는 여기 놓고 갈 거야. 단군 영감 부를 거니까. 같이 있어 줘.”
“네.”
단군 영감을 불렀다.
“잘 생각했네. 안 그래도 자네가 이리 움직일 거라 예상은 했지. 이렇게 급습하는 것 외에 한국이 중국을 이길 방법은 없으니 말일세.”
아는 척하는 것이 맘에 안 들었지만, 그래도 왜일까. 단군이라는 이름만으로 뭔가 안심이 되는 것이 있었다.
“잘 부탁할게.”
“허허허. 자네가 부탁한다는 얘기도 할 줄 아는 줄은 몰랐구먼.”
“간다.”
단군이 집으로 오는 동안, 고귀재에게 연락하여 반고가 기거하는 곳의 위치를 알아냈고, 단켄에게는 혹시 모르니 믿을 만한 이들에게 한국이 공격받을 시 움직여 달라고 부탁까지 해 놓았다.
그렇게 일본 때와는 다르게 단켄과 둘이 서울 상공으로 이동했고, 비행 마법과 가속 마법을 이용하여 중국을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