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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큰 길드들은 왜 안 움직이는 겁니까?”
제2야당 ‘반대당’의 당대표 ‘박상민’ 4선 의원이 잔뜩 짜증난 목소리로 물었다.
“어제 귀환자가 소집했다더니. 그 영악한 놈한테 약점이라도 잡혔나 보죠.”
제1야당 구라당의 2선 의원 ‘박철웅’의 대답에 장내가 어수선해졌다. 백여 명의 의원들이 모여 있는 국회는 분위기가 굉장히 좋지 못했다. 왜냐하면 언론 선동의 힘으로 야심 차게 임시정부 출범을 선언하긴 했으나, 그들을 뒷받침해 줄 길드들을 모으는 데에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게 좀 신중하게 생각하고 움직이자고 몇 번이나 말했잖습니까! 에잉, 쯧.”
여당의 원내대표 5선의원 ‘김신’이 괜한 화풀이를 해 댔다.
“아니, 그럼 드러누워서라도 반대를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예?”
“옆에 끼워 주는 것도 고마운 줄을 알아야지. 옛정 생각해서 끼워 줬구만.”
제1야당 의원들이 김신 원내대표에 불만을 드러내며 투덜거렸고, 그에 발끈한 여당의 당원들이 들고 일어서며 국회는 완전 개판이 되었다. 그런 그들을 멈춘 것은 국회의장의 의사봉 소리였다.
“다들 진정하십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릴 지지해 주고 보호해 줄 길드들이 없다면 빠르게 중국 전력을 끌어오는 수밖에 없습니다. 싸울 필요가 없다는 말이에요.”
“보호는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편에 서 줄 길드도 없는데, 신시우가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게다가 우리가 힘이 아무것도 없다면, 중국이 이 나라를 먹었을 때 우린 사람 취급도 못 받아요.”
“맞습니다. 중국의 힘을 빌려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후도 생각을 해야지요.”
국회의장의 말에 다들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그때. 사기당의 4선의원 ‘장석훈’ 의원이 책상을 탕탕 치며 말했다.
“이보세요. 다들 뭔가 잘못 생각들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 나라에서 신시우를 몰아내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뭐,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십니까? 중국의 힘을 빌려온다는 것 그 자체로 이미 우리는 주권을 상실하는 것인데, 사람 취급이고 뭐고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어차피 사람 취급 못 받을 게 뻔한데 고민을 하고 있다니…….”
틀린 것이 없는 그의 발언에 이곳저곳에서 헛기침과 한숨 소리가 나왔다.
“목적의식을 흐리는 그런 알량한 마음으로는, 정말 모든 것을 빼앗길 겁니다. 그런 생각들이라면 이 임시정부라는 거 일찌감치 해산합시다.”
이어지는 그의 말에 여기저기서 뭐라 중얼거렸으나, 마이크에 대고 반박하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그 커다란 회의장은 조용해져 버렸다.
“장석훈 의원이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어차피 중국이 원하는 것들을 다 내주고, 우리는 국가 지배권을 신시우에게서 다시 뺏어오는 것이 목적이지 않습니까? 그것에 집중합시다.”
“3일 내로 중국을 들입시다.”
의장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구라당의 3선의원 ‘이미래’ 의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3일은 좀… 너무 빠르지 않습니까?”
“신시우에게 생각할 시간을 줘선 안 됩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죠. 만에 하나라도 일본 전력이 우리나라 국토에 산개되기 전에 먼저 움직이는 게 좋습니다.”
이미래 의원의 예리한 지적에 이곳저곳에서 그 의견에 동참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결국 임시정부 제1회 국회는 중국 전력을 3일 내에 한반도에 상륙시키는 계획을 실행하기로 결정하며 막을 내렸다.
* * *
한국에 귀환자가 나타난 지 11일째인 4월 22일. 대한민국의 모든 길드 마스터에게 방위청에서 한 가지 공문이 내려왔다. 그것은 앞으로 정부에서 국가 단위로 실행할 몇 가지 계획과 경고 메시지였는데, 대충 이렇다.
첫 번째. 대한민국의 모든 각성자들은 방위청에서 국력 증강을 위해 마련한 통합 훈련 시스템에 참여해야만 한다.
두 번째. 대한민국의 모든 길드들은 ‘세력’과 ‘라인’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 긴밀한 연계를 통해 추후에 일어날 전쟁과 전투에 대비해야 한다.
세 번째. 국내 각성자 전력을 해외로 빼돌리는 파렴치한 짓을 금한다. 해외로 빼돌리다 적발되는 순간, 그 자리에서 즉결처분에 처해진다.
네 번째. 해외 침략 세력과 결탁하여 기밀을 빼돌리거나 해외 세력이 대한민국에 상륙하는 데에 공헌을 하는 이들은 적으로 간주되어 파멸을 면치 못할 것.
다섯 번째. 여론 선동에 동참하여 국민의 정체성을 흔드는 언행을 하는 이들 또한 엄벌에 처해진다.
등의 내용이 핵심이었고, 끝에는 한국 각성자들의 자존감을 올려 줄 격려와 신시우의 포부가 담긴 글로 마무리되었다.
거기다가 그와 거의 동시에 내려온, 세력 상위 길드의 지시사항도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어, 중소 길드들은 압박감을 느껴야 했다. 따르지 않으면 즉결처분이 되거나 추방될 위기였으니까.
“야, 이거 뭐… 우리야 일본 라인이라 그냥 광해 따라가면 되지만, 중국이나 러시아 쪽은 어떻게 될라나.”
“뭐라고 쓰여 있습니까, 형님.”
“읽어 봐 봐.”
공문서와 스마트 폰을 받아든 남자는 공문서부터 쭉쭉 읽어 내려갔다. 그러곤 스마트 폰으로 시선을 옮겨 가며 얘기했다.
“각 잡고 우리나라 길드들을 휘어잡겠다. 이 말이네요.”
“그렇지.”
스마트 폰으로 온 지시사항들도 싹 읽은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뭔가 앞으로 빡빡할 것 같은데요.”
“참. 아까 ‘이한별’ 의원이 연락 와서 임시정부에 힘 좀 실어 달라고 하던데, 걔네 어떻게 하냐. X 된 거 아니냐.”
‘해협’ 길드 마스터는 그렇게 말하며 키득거렸다. 이한별 의원이 도움을 요청할 때만 해도, 공문과 상위 길드 지시사항이 없었지만, 나라가 돌아가는 분위기가 도와줄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그는 그 부탁을 승낙하지 않았었다.
‘승낙 안 하길 잘했지.’
이렇게 강력한 의지를 담은 공문에다가 상위 길드에서도 압박을 하는데, 뭘 믿고 그쪽으로 간단 말인가? 일본도 망한 마당에, 중국이라고 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귀환자가 국회도 한번 휘저어 놨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휘저어지고도 모여 가지고 임시정부 따위를 출범하다니. 다들 시대의 흐름을 너무 파악 못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네요.”
“등신들이지, 뭐. 걔네들이 뭘 알겠냐. 이제 관건은 중국이나 러시아가 과연 신시우라는 존재를 감당해 낼 수 있느냐. 그게 관건이겠구만.”
“불안불안합니다. 중국도 솔직히 말해서 전력이 막강하지 않습니까? 각성자 양성한다던데, 안 그래도 각성자 전력이 많은데 거기서 더 양성해 버리면 대체 얼마나 많은 각성자들을 보유하게 될지.”
“뭐, 이렇게 일본까지 굴복시키고 전 세계에다가 선전포고를 했으면 그럴만한 대책이 있지 않겠냐? 우리 같은 잔챙이들은 그냥 이리 휘몰아치면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휘몰아치면 저리 휩쓸리는 거지, 뭘.”
마스터는 쿨한 얼굴로 씨익 웃어 보였다.
“흠. 그래도 살아나갈 구멍은 만들어 두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귀환자가 어떤 놈인지 못 봤냐? 잘못 발 걸치면 뒤져. 그냥 X나 가만히 있으면 돼.”
“흐음…….”
많은 길드가 이런 분위기였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인 양 앞으로의 일들이 걱정되지만, 불가항력적인 압력에 그저 흘러가는 대로 맡기는 분위기. 그러나 조금 다른 곳도 있었다.
“예. 예. 그럼요. 알겠습니다. 확실합니다. 예.”
진지한 분위기의 ‘베라’ 길드 마스터를 본 길드원 하나가 물었다.
“누구예요?”
“아, 장석훈 의원.”
“왜요?”
“이번에 임시정부 출범했잖아. 우리 길드가 거기 힘을 실어 주기로 했다.”
“예? 그… 좀 전에 공문에서…….”
길드원의 걱정에 마스터가 미간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깟 공문이 뭐? 지금은 줄을 잘 서야 되는 때야. 임시정부가 잡은 줄은 중국이다. 중국은 그 누구랑 붙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철옹성 같은 곳이야. 니들도 봤잖아. 반고라는 녀석이 얼마나 강한지. 귀환자 중에서 탑을 다투는 녀석이다.”
그러나 마스터가 아무리 힘을 줘도 길드원들의 어수선한 분위기는 잡히지 않았다.
“불안해할 것 없어. 오히려 지금이 기회야. 저 미친 귀환자 놈을 잡고, 우리 길드가 3대 길드급 그 이상으로 올라갈 기회라고.”
그렇게 다독였음에도, 워낙 귀환자 신시우가 보여 준 퍼포먼스가 충격적이었기에, 길드원들의 싱숭생숭한 마음을 잡을 순 없었다. 그저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바랄 뿐.
‘멍청한 놈들. 나중에 내게 감사하게 될 거다.’
불안해하는 길드원들과 다르게, 베라 길드 마스터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 * *
“아니, 이것도 모르는가?”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코스요리를 시켰는데, 아는 것 많은 단군 영감이 아주 나를 놀려먹느라 밥도 못 먹고 있다.
“어. 몰라.”
“여기저기 많이 데리고 다녀야겠구만. 아직 식견이 아기 수준이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놈의 영감탱이도 맘에 안 들었지만, 이 코스요리 또한 나오는 족족 내 맘에 들지 않았다. 돈이라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어서 웬만하면 가격을 물어보지 않는데, 가격도 물어봤다.
1인분에 20만 원이 넘는다고 들었는데, 나오는 것은 쥐꼬리만큼씩 나오니 짜증이 나려 했다. 한자리에 앉은 주 비서와 수현, 단군 세 사람은 만족스러워했는데, 나와 남 비서는 맘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한 점심 식사를 한 뒤, 영감과 헤어져 집으로 향했다.
“남 비서. 새집은 어떻게 돼 가지?”
“아, 이제 그 돔형 구조물 분리는 다 끝났구요. 이제 다듬고 옮기면 된다고 합니다.”
“그래. 빠른 것도 좋지만, 확실하게 해.”
“옙.”
“그리고 수현이는 오늘 마력 단련에 대해서 알려 줄게. 마나 수련은 내가 하는 거 봐서 알지?”
“네. 그 마나 호흡법 같은 건 심심할 때마다 하고 있어요.”
역시. 내 마나 수련을 보고 마나의 흐름을 봤다고 하니 쉽게 했겠지.
“좋아. 이제 틈틈이 마력 단련도 해야 돼. 이게 정말 중요한 거거든.”
“넹.”
그렇게 집에 도착한 나는 간단하게 씻은 뒤 수현이랑 마당으로 나왔다.
“마력 단련이란 말 그대로 마력을 단련하는 걸 뜻한다. 마력이란 마나를 움직이는 힘. 마력이 있어야 마나를 움직일 수가 있지. 네가 가진 마력은 굉장히 낮은 수준이야. 네가 많은 마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단지 마나친화력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서다. 보통 평범한 마법사들은 마력에 크기에 비례해서 마나를 움직이지.”
수현이는 딴생각을 하던 처음과 다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제법 진지하게 들었다.
“그렇지만 마나 친화력만으로는 한계가 많아. 예를 들자면, 마법의 위력이 약하다. 그리고 마력이 강해지면 더욱 많은 마나를 움직일 수 있게 되지. 마력을 단련하는 법은 다른 것 없다. 그냥 네 모든 마력을 사용해서 운기를 하면 돼. 운기란, 혈맥을 따라 마력을 움직이는 것을 말해.”
그렇게 마력 단련을 하는 방법을 알려 줬고, 실습 시간을 가졌다. 수현이는, 본능적인 마력 운용으로 마나를 다루는 데에는 익숙해져 있었기에, 마력을 자각하고, 마음대로 컨트롤 하는 것은 역시나 어려워했다.
마력을 혈맥을 따라 질주시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을 하기 위해선 우선 마력을 인지해야 하는데, 자신의 내부를 관조할 줄 알아야 그것이 가능하다.
즉, 자신의 내부를 관조해야만이 마력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고, 그래야만이 마력에 자신의 의지를 실을 수 있다. 하여 수현이는 내부를 관조하는 법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저녁 먹기 전까지 수현이와 내부를 관조하는 법을 가지고 씨름을 했고, 결국 아무 소득 없이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게 정상이지.
이상하게도 수현이가 못하는 것이 생기자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