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방지산의 부모라는 작자들은 둘이서 번갈아 가며 쌍욕을 퍼부었다. 그리고 계속 내게 오라고 소리 질렀다. 하여, 친히 그들의 앞으로 행차했다.
“방지산의 부모라고?”
“이… 이 쓰레기 같은 놈!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죽일 수가 있냐! 이놈 새끼야!”
눈알과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부들부들 떠는 것이, 당장에 나를 찢어발기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듯했다. 하여 나는 그들을 붙잡고 있는 경찰들에게 놓아주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득달같이 달려와 내 멱살을 잡았다.
“이, 이 미치광이 같은 새끼! 이 죽일 새끼!”
짝.
두 노인네의 따귀를 찰지게 갈겼다. 서로 반대쪽을 맞은 두 노인네는 부딪히며, 꼴사납게 땅바닥에 넘어졌다.
“뭘 하려나 했더니. 고작 멱살을 쥐려고 그렇게 악다구니를 쓴 건가? 어디 칼이라도 구해서 찔러 보지 그래. 그래도 욕지거리라도 하는 걸 보니, 그 병신보단 낫군. 그 병신 새끼는…….”
“어디 네까짓……!”
싸늘한 눈으로 둘을 내려다보며 한 걸음 내딛자, 그들은 움찔하며 입을 닫아 버렸다.
“너희들이 애지중지하는 그놈이, 이 땅을 잿더미로 만들고, 수십만 수백만을 사지로 내몰 뻔했다. 그런 새끼는 갈기갈기 찢어서 짐승들을 줘도 모자랄 놈이야. 너희들도 책임감이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여기서 악다구니 쓰지 말고 국민들 앞에 가서 사죄나 해라.”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섰다.
부모란, 자식이 바른길로 가도록 만들진 못해도 나라를 팔아먹는 쓰레기 같은 짓은 하지 않도록 인도해야 한다. 저들에게도 방지산이 불타 죽은 책임이 있다. 저들이 제대로 가정교육을 하지 않아 그렇게 된 것이니까. 나는 그런 것들을 경멸한다.
“타.”
지쳐 멍해진 그 둘을 뒤로하고,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얼굴의 영감과 함께 차에 올랐다.
* * *
“야, 청와대 발표한다.”
“오… 드디어 하는구만.”
“근데 일본 그거 조작 아니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 어떻게 그 일본이 한국 밑으로 들어온다는 개소리를 할 수가 있지?”
“조작은 무슨, 그게 조작이면 일본이 가만히 있겠냐?”
음식점, 학교, 거리의 광고 전광판, 대리점의 TV와 심지어는 회사에서도 업무를 중지하고 청와대 입장 발표 생중계를 틀었다. 그 정도로 어제 있었던 일본의 발표는 충격적이었고, 한국의 입장 표명은 세기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드디어 대통령이 직접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일본 정부도 총리가 직접 얘기했고, 한국 또한 최고 통수권자가 앞에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역사상 유례없는 중대 사안을 다루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믿기 힘들지만, 어제 일본이 한국의 강한 무력 앞에 항복하여 한국의 속국이 되었음을 세상 앞에 선포했습니다. 그것의 발단은 어제 새벽 일어난 싸움이었습니다.]
그렇게 대통령 고귀재는 어제 일어난 사건들을 언급하며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5천만에 육박하는 전 국민들이 숨을 죽이고 그의 연설에 집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일본과의 관계를 최종 정의하고, 귀환자 신시우를 ‘국가 영웅’으로 치켜세우면서, 기나긴 연설의 마침표를 찍었다.
“와… 미친. 실화였네.”
“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머릿속에서 겉도는 이 사실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 귀환자 나온다는데?”
그 화제의 신시우가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보는 노인과 함께.
“포스 개지린다.”
“와… 벌써 후광이 다르네.”
혈혈단신으로 일본을 굴복시킨 그의 등장에, 한국 전체가 열광했다. 사람을 태워 죽인 그의 이미지는 이미 대통령이 언급한 국가 영웅이라는 껍데기에 가려진 뒤였다.
그러나 그를 옹호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저, 저 미친놈 나왔네.”
“나라를 말아 처먹을 새끼. 전 국민을 담보로 싸움을 벌여?”
제1야당 구라당의 당대표 ‘김철규’가 노성을 터트렸다. 그 자리에 있던 당원들은 모두 분개하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중국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강력한 믿음이 있었다.
어제 일어난 일본 사건은 일본의 허세가 세상에 드러난 것이며, 그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들의 지론이었다. 그 정도로 그들은 중국의 힘을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입장으로서는 그래야만 했다.
그렇게 시끌벅적한 가운데, 귀환자의 연설이 시작됐다.
[오늘 이 자리에 내가 선 이유는 아주 중대한 발표를 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두가 알아야 하는 중요한 사실이다.]
비장한 귀환자의 목소리에, 대한민국의 모든 신경이 그의 말에 집중됐다.
[그에 앞서. 이 자리에서 공표한다. 나 신시우가 대한민국을 비호할 것이며, 이 땅을 침범하거나 한국인을 공격하는 이들은 반드시 처절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처절한 대가가 궁금하다면 얼마든지 이 땅을 침범하고, 한국인을 공격해라. 그 대가가 얼마나 잔혹한지 뼛속 깊이 깨닫게 해 줄 테니까.]
신시우의 발언이 한국에 사는, 혹은 다른 나라에 체류 중인 한국인들의 가슴에 불씨를 던졌다.
[크흠. 오늘 내가 할 얘기는 세계의 역사 속에 숨어 있던 이들에 대한 것이다. 모종의 이유로 불로(不老)하며, 5천 년이라는 긴 세월을 버티며 살아온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오늘 공개하려 한다.]
그의 발언에 또 한 번 나라 전체가 술렁였다.
[이들의 숫자는 집계되지 않아 얼마나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이들 중 좋지 않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부류가 존재하며, 그것은 이 나라의 존립에 심히 위협이 된다고 판단된다. 자세한 것은 직접 오천 년의 세월을 살아온 존재가 설명할 것이다.]
귀환자는 자리에서 비켜났고, 그 자리에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올라섰다. 그리고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을 사실들이 그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 *
“이야… 이거, 완전 돌직구를 날리네.”
호주에 정착한 관조자 ‘그라멀린’이 스마트 폰으로 한국 정부의 입장 발표 생중계를 보며 얘기하자, 옆에 있던 다른 관조자 ‘샤링’도 그와 함께 스마트폰을 보며 얘기했다.
“맘에 드는데?”
“결혼해.”
샤링은 그라멀린의 말을 무시하며 물었다.
“진짜 요한이 진 건가?”
이들 또한 다른 기에테들과 마찬가지로 요한이 졌다고 믿지 않고 있었다. 이들도 요한이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본 정부가 한 방송은 진짜야. 진짜 진 건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일본이 한국에 머리를 숙인 건 맞아.”
그 옆에서 자신의 스마트 폰으로 보던 또 다른 관조자 ‘벽한진’이 그들의 얘기에 끼어들었다.
“하아- 정말이지 저 녀석이 오고 나서 너무 가슴 뛰는 일만 생긴단 말이야.”
샤링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결혼해.”
“시끄러.”
“왜. 평소에 결혼할 상대 찾는다고 시끄러웠잖아.”
“야. 그게 벌써 백 년도 더 전이거든? 네가 그 드립 치는 거 지금 백 년째야 새꺄. 지겹지도 않냐.”
그에 그라멀린은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해 보였다.
“그런가~?”
그때 사무실 문을 열고 긴 적발의 남자가 들어왔다.
“요~ 대장님 왔네.”
“뭐, 한국 입장 발표 한다며?”
“예아. 지금 우리 얘기 하고 있슴다.”
“뭐?”
적발 남자의 눈썹이 들썩였다.
“어디 줘 봐.”
그는 그라멀린에게서 스마트 폰을 받아 들었다.
“단군 영감이네.”
그리고 마무리되는 이야기들을 보던 그는 피식 웃었다.
“이 자식 이거.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앞에 내용이 뭔진 모르지만, 일단 프리메이슨을 저격한 거네?”
“맞슴.”
“어차피 한국 전쟁이 일어나면 다들 알았을 건데, 미리 잘 까발렸죠, 뭐.”
벽한진의 말에 붉은 머리의 계시자 ‘라마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잘 까발렸지… 음?”
이후 노인이 내려가고 단상 위로 올라오는 귀환자의 모습에 라마단의 눈길이 다시금 스마트 폰으로 향했다.
“왜요?”
“귀환자 나왔다.”
“아…….”
“아까도 나와서 한국 건드리는 새끼들 다 죽여 버린다고 경고했어요.”
“호오…….”
흥미로운 먹잇감을 발견한 듯, 라마단의 붉은 눈동자가 빛났다. 스마트 폰 속에 귀환자 신시우는, 다시 한번 한국을 비호할 것을 공표했고, 마지막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나는 내 앞길을 방해하는 놈들을 싫어한다. 내가 하려는 것을 막는 이들과 내게 반하는 이들은 그에 걸맞은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내 편에 선다면 나의 비호를 받을 것이다.]
‘이건… 우리보고 들으라고 하는 소린가?’
라마단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리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와… 패기 보소. 패기 하나는 인정.”
샤링이 귀환자의 발언을 듣고는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라마단의 명령이 이어졌다.
“오늘 밤에 한번 모여야겠다. 싹 연락해 놔.”
“옙~”
* * *
한국의 입장 표명 이후 일본 천황의 기자회견이 이어졌다. 왜냐하면 일본에 난리가 났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일본 천황의 패배 소식과 함께 천황이 갈아치워졌고, 정부는 한국에 머리를 숙인 것을 넘어서 속국을 자처했다.
나 같아도 꼭지가 돌 만한 소리긴 하지.
그래서 일본에서는 지금 범국민적인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오늘 입 놀리느라 고생했으니까 점심 근사한 곳에서 사 줄게. 가자.”
단군 영감과 함께 식당으로 이동하면서, 앞 좌석 뒤에 달린 태블릿으로 천황의 기자회견을 봤다. 회견에는 천황뿐만이 아니라, 전 국민들이 아는 1급 각성자들이 여럿 참석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패배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일본 전부가 덤벼도 나 하나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못 박았다.
“오와…….”
수현도 일본 기자회견을 함께 보며, 연신 나를 보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스고이.”
“그건 뭔 말이야?”
“대단하다, 라는 일본 말이에요.”
키득거린 나는 계속 천황 녀석의 기자회견에 집중했다.
녀석은 패배와 나의 실력에 대해서 못 박으며, 한국과 동맹을 하는 것만이 불안정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라 떠들어 댔다.
당분간은 못 넘어오려나.
의뭉스러운 녀석이라 가까이 두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좀 필요할 것처럼 보였다.
“어, 오늘 오후에 또 기자회견 한다는데요?”
운전하던 남 비서가 갑자기 뚱딴지같은 소리를 해 댔다.
“일본이?”
“아뇨. 한국에 범국민 임시정부가 출범한다고 합니다.”
“그건 또 뭔 개소리냐.”
“그… 국회의원들이랑 오늘 해임된 부처장들이 뭉쳐서 국민들을 위한 신정부를 만든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허…….”
“그래서 지금 귀환자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여론몰이로 선동 중이에요.”
이 새끼들이 내가 이 나라를 지킨다고 선언하니까, 이 나라를 담보로 나를 조지려 드네.
“근데 지들이 새로운 정부를 만들면 뭘 어쩌겠다는 거냐?”
“흠… 글쎄요.”
남 비서가 대답하지 못하자 옆에 탄 주 비서가 대답했다.
“아마 중국에 원조를 요청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사를 읽어 보니 제1야당이 주축이 된 것 같은데, 그들은 중국이랑 손을 잡고 있거든요. 정황상 귀환자님과 반목해서 승부를 볼 것이 중국밖에 없기도 하고…….”
이 녀석. 아는 것도 많고, 분석 능력이 생각보다 좋은 느낌이었다.
“그래?”
“네. 그저 제 소견입니다.”
“그러면… 나와 반목해서 국민들을 선동해 가지고 중국을 이 나라에 들이겠다. 뭐, 이런 계획인가?”
“네. 제 추측이 맞다면 그럴 것 같습니다.”
피식 웃었다.
“재밌네.”
“심각한 거 아니에요? 지금은 우리 편이 별로 없잖아요.”
수현의 얘기도 맞는 말이다. 확실히 현재 내 편은 거의 없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 오늘부터 많아질 거니까.”
“오늘부터요?”
“그래. 내 장악력이 어느 정도인지 지켜봐라.”
오늘부터 전국 길드들에 내 뜻이 전달된다. 확신은 없지만 자신은 있었다. 일본의 천황 및 1급 각성자들이 입을 모아 패배를 인정했으니, 아마 무력이라는 것이 뭔지 아는 이들은 날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만일 신정부 편이 많아진다면 그만큼 중국의 힘이 거대하다는 증거가 될 거고. 그런 중국을 부수고 나면 그 효과가 더욱 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