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음…….”
미아리의 현 명칭인 ‘미아동’. 그곳에서 그놈이 있는 곳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거렁뱅이 같은 행색을 하고 있길래, 좀 허름한 곳을 찾아보라 했더니, 헛방이었다.
“아, 혹시 미아리 텍사스 쪽 아닐까요?”
남 비서가 갑자기 번뜩 생각이 난 듯 눈을 빛냈다.
“어? 그건 또 뭐야.”
“그… 좀 옛날얘긴데, 미아리에 업소 여성들이 많이 들어와 살면서 형성된 사창가가 있었다고 들었거든요. 느낌이 거기 같은 느낌도 있는데…….”
“거긴 어딘데?”
“어… 그게…….”
녀석도 위치는 몰랐다. 하여, 전화로 물어물어 도착한 곳. 그곳은 미아동이 아니었다. 길음역 근처의 한 후미진 골목. 그냥 입구만 봐도 놈이 있을 것같이 생겼다.
“야, 근데…….”
입구에 떡하니 붙은 주의사항에 수현이를 돌아봤다.
“미성년자 출입 금지라는데?”
“괜찮아요.”
해맑다. 이런 밤의 외출은 처음이라고 들뜨더니, 길을 헤매도 해맑은 얼굴을 유지했다. 그리고 지금도.
“흠…….”
고민하고 있는데 남 비서가 거들었다.
“지금은 아마 영업을 안 한다고 들었습니다. 여기 뭐 재개발한다고 얘기가 돌더니, 사람들이 싹 빠진 지 좀 됐다고 하더라구요.”
“흠… 좋아. 가자.”
어쩔 수 없이 고민 끝에 골목으로 입장했다. 남 비서 말대로 영업은 중지된 듯 골목은 조용했다. 그리고 음산했다. 그냥 척 느끼기에도 강한 음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다.
병과 불운이 많은 땅이다.
“여기 뭐, 재개발을 한다고?”
“예.”
“주택이 들어서나?”
“어…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땅을 보는 눈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 기운을 몸으로 느끼는 건 곧잘 하는 편이다. 그리고 얕은 지식도 가지고 있고. 음기가 강한 지역은 주거지역으로 적합하지 않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다.”
그때 멀찍이서 앉아서 이쪽을 쳐다보는 한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곳은 지붕이 있는 데다, 불빛도 없어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저쪽에 물어보면 되겠군.”
그 앞에 다가갈 때까지도 그 기척은 그대로 자리를 지키며,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남 비서가 물어보기 위해 움직이려 했으나 내가 막았다. 그리고 내가 다가갔다.
“지팡이는 어디 있지?”
“댁이 신시우인가?”
“그래.”
“흠…….”
마치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 깊은 콧숨.
“따라오쇼.”
그를 따라 골목 깊숙이 들어갔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며 보이지 않는 어떤 결계를 통과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자 인기척이 꽤 많아졌다. 슥 뒤를 돌아보자 남 비서와 수현은 으슥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바짝 긴장한 채 뒤따르고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
멀찍이 떨어진 처마 밑 어둠 속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목소리의 주인이 달빛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잘 왔다. 꼬마 숙녀도 같이 왔구만.”
“안녕하세요.”
수현이는 말도 한번 안 섞어 본 낯선 녀석에게, 잘도 머리를 숙였다.
“보아하니 패거리가 있는 듯한데. 너도 기에테 패거리를 보유하고 있나?”
“패거리라니… 너무 불량해 보이는군. 기사단이다.”
“오… 그래?”
내 눈썹이 올라갔다.
“뭐, 누추하지만, 저기 앉겠나? 불편하면 서 있어도 좋고.”
보이지도 않아서 누추한지도 모르겠다. 하여, 그냥 서 있었다.
“손님을 접대할 만한 곳은 아니군.”
“우린 컨셉이 노숙인이니까 말이야. 그래도…….”
녀석은 어디서 가져왔는지, 고급스러워 보이는 병을 들고 왔다.
“끝내주는 술은 가지고 있지.”
“오~”
슥 옆을 돌아봤다. 수현이 먼저 눈에 들어왔으나, 건너뛰고 남 비서에게 시선을 던졌다.
“남 비서. 한잔해.”
“아… 저 운전해야 해서 괜찮습니다.”
남 비서는 손사래를 쳤다. 다시 시선을 옮겨 수현을 보니 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도 마실 수 있거든요? 요즘 애들 다 마시는데. 담배도 다 피고.”
“그걸 보고 비행청소년이라고 하지.”
“한 잔 정돈 괜찮잖아요.”
“호기심이 과하면 화를 부르는 법이란다.”
수현은 삐쭉 나온 입으로 수긍했다.
“알았어요.”
그가 건넨 술잔은 내가 받아 마셨다. 굳이 마법으로 술에 대한 검사를 하지 않는 이유는, 고등 마법사라면 다들 가지고 있는 영구 해독 마법이 내 몸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내게 걸린 마법은 웬만한 맹독은 눈 녹듯 흩어 버릴 수 있는 수준이라 독은 무섭지 않았다. 저주가 무섭지.
“맛은 좋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까?”
“네가 찾아온 용건은, 중국과의 전쟁 때문인가?”
“아니, 영구히 우리를 도왔으면 한다.”
“영구라… 이거 뭐, 노예 계약이라도 하러 온 건가?”
“뭐, 비슷하지?”
“크큭… 재밌는 녀석이야.”
녀석은 병째로 술을 들이켜고는, 어울리지 않게 아주 안정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우리가 얻는 건?”
“뭐든지.”
“자신감 한번 끝내줘서 좋군. 그 전에 먼저 네가 알아야 할 것이 있어. 프리메이슨이 뭘 하려 하는지. 그리고 전도자들이 전해주고 간 흑백의 경전에는 뭐가 쓰여 있는지. 전 세계에 기에테들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이 세계에서 싸우려면, 혹은 살아가려면 꼭 알아야만 하는 것들이다.”
녀석은 다시금 처마 밑 어둠 속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더니 얘기를 시작했다.
“여기.”
누군가가 간이 의자를 가져왔고, 우리 셋은 앉아서 이야기를 들었다.
“과거 인류는 너무나 풍족한 삶을 누렸어. 마법을 기반으로 문명은 끝없이 발전해 나갔지. 차원 관문 너머로 다른 종족들을 지배하며, 차원의 지배자로서 군림했다. 그러나 그런 평화도 영원하진 않았어.”
녀석은 5천 년 전의 인류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인류는 찬란했고, 타 차원까지 영역을 넓힌, 굉장한 영역을 구축한 종족이었다. 그러나 사소한 혐오와 증오에서 시작된 싸움은 결국 세력 간 충돌로 이어졌고, 그것이 대전쟁의 발단이 되었다고 했다.
서로 간의 증오와 혐오로 시작된 전쟁은 서로의 세력들을 멸망시킬 때까지 이어졌고, 문명이 제구실을 할 수 없을 만큼 파괴되었을 때. 그 문제의 전도자가 나타났고, 압도적인 힘을 세상에 선보이며 전쟁을 종식시켰다고 했다.
“그들은 경전을 주며, 근처에 있던 79명의 사람들에게 경전을 읽을 수 있는 해석 능력을 줬다. 그 후 그놈들은 우리들이 아직 ‘힘’을 사용하기에 부적절한 격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 인류에게 모든 종류의 ‘힘’들을 잊어버리게 하는 주술을 걸었다. 그리고 동시에 차원도 봉인했지. 봉인했는데 본인들은 어떻게 빠져나갔는지는 의문이다만, 아무튼 모든 차원 관문이 닫혔고, 다시는 열 수 없었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부터라 했다. 전도자들이 전파한 백익교. 그 기반이 되는 흑백의 경전. 그것을 해석하면서부터 문제가 일어났다고 했다.
그것은 어떤 존재의 일대기를 적어 놓은, 서사시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그 끝에는 그 존재를 부활시키는 방법이 적혀져 있었다고 했다.
“그 방법은 바로. 수많은 영혼들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거야. 정확한 숫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두루뭉술하게는 적혀 있었지. 바다를 채울 만큼의 수많은 영혼들.”
“어떤 병신이 만든 부활 방법이야?”
실로 어이없는 대목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일부 미친놈들은 그다음 대목에서 이성을 잃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나 잠자코 녀석을 쳐다봤다.
“그 존재를 부활시키는 이들은, 굉장한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내용이야. 그 내용이 뭐냐면, 그 존재가 가진 끝없는 지식 중 일부를 공유하며, ‘권능’을 하사받을 수 있고, 그 존재의 사도가 된다면 특별한 권능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고 쓰여 있지.”
사기다.
그 말을 들은 첫인상이었다. 뭔가 함정의 냄새가 솔솔 풍기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마음속 저 깊은 구석에선 호기심이라는 놈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고개를 내밀었다. 그 끝없는 지식에 대한 궁금증이 솟아났다.
“너도 호기심이 이는 모양이군.”
“독심술도 쓰나?”
“마법사란 놈들이 다 그렇지 뭘.”
마법사를 너무 잘 알고 있군.
“아무튼, 그 마지막 대목에 끌린 놈들은, 그 자리에서 해석 능력을 받은 ‘해석자’들을 모아 회의를 진행했어. 말이 회의지, 겁박에 가까웠다. 아무런 능력이 없는 인간들은 오직 ‘쪽수’와 ‘장비’로 승부를 해야 하는데, 문제는 그 마지막 대목에 끌린 놈들이 꽤나 많은데다가, 장비도 그들의 세력이 우세했다는 것이야.”
“근데 그 바다를 채울 만큼의 영혼은 어떻게 마련할 생각이지?”
“물론 불가능한 얘기지. 그래서 그들은 그걸 위해 ‘불로불사’를 연구할 생각을 했다.”
실로 미친 자들이 아닐 수 없었다.
“문명의 근간을 잃어버린 그 시점에?”
“그래. 미친놈들이지. 대체 뭐가 그들의 이성을 앗아갔는지는 몰라. 단순히 그 마지막 대목에 매료가 된 건지, 경전에 무슨 힘이 있는 건지 모르지.”
확실히 이상한 점이 많다. 그 부활 조건을 채우려면 억겁의 세월을 보내야 할 터인데, 과연 그들은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늙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돼. 그 깨달음의 이후로 큰 변화가 일어나지.”
불로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해석자들끼리 의견 충돌이 일어나, 여럿이 이탈했다고 했다.
“그들과 반목했던 이탈자들은 모두 실종되었다. 부활시키기로 결정한 놈들은 이탈자들이 제 발로 땅을 떠났다고 했지만, 나는 놈들의 손에 죽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놈들은 이후에도 수없이 많이 죽이거든.”
이후는 단군 영감에게 들었던 내용과 겹치는 내용들이 많았다. 백익교에 대한 것들을 역사 속에서 지우기 시작하고, 나라를 일궈 내고, 전 세계 기에테들을 규합하는 한편, 또 한 번의 솎아 내기 끝에 프리메이슨이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그 결과 남은 해석자들은 총 5명. 그 많던 해석자들은 중간에 그들과 반목해서 죽었거나 초반에 기에테들을 찾는 과정에서 잠적해 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너같이 잠적한 녀석들이 많은가?”
“아니, 그건 나도 몰라.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아직도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다.”
“흠…….”
“해석자라고 강한 놈들만 있는 건 아니야. 힘을 되찾았다고 해서 자신의 위치를 드러냈다가는 아마 쥐도 새도 모르게 척살당할 거다. 그들은 경전의 진실을 알고 있는 놈들을 싫어하거든. 요한 놈도 조심해야 할 거야.”
그러니까. 계시록이라는 가짜 경전을 만들어서 세계 역사를 조종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이유는, 많은 영혼을 쌓기 위해서인데…….
“예전에는 지들이 힘이 없어서 전쟁을 일으켜 영혼들을 쌓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힘을 되찾은 마당에 왜 아직 숨어 있는 거지?”
“나도 그게 의문이다. 도대체 왜 숨어 있는지는 나도 몰라.”
“쯧.”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진 느낌이었다.
“아무튼 정리하자면, 놈들은 흑백경전에 나온 존재를 부활시킬 생각이다. 앞으로 무슨 짓거리를 할지 몰라.”
얘기를 듣다 문득 다른 부분에서 의문이 떠올랐다.
“근데 말이야. 너희들 노화가 중지됐다고 했잖아. 그건 힘을 되찾고 나서도 그대로냐?”
“음… 27년 동안 지켜보니 아마도 그런 거 같다.”
“대체 그럼… 뭐, 니들은 무슨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늙지 않는 것이지?”
“나도 그게 의문이야.”
“흠-”
들은 것은 많은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는 느낌.
기분이 묘하게 나쁘군.
“이쪽에 전운이 감도는 것도 놈들의 농간인가?”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긴 한데, 확신은 없다. 여긴 강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까 말이야. 힘을 가진 놈들끼리는 충돌하기 마련이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었다.
“그래서. 네가 원하는 건 뭐냐?”
“프리메이슨의 멸망.”
귀찮은데 그냥 지금 가서 다 죽여 버릴까.
불쑥 솟은 생각에 진지하게 멈칫했다. 정말 가서 다 죽여 버릴까 하고.
나중에 놈들이 모습을 드러내면, 그때 조지자.
그렇게 생각을 갈무리했다.
“뭐, 놈들을 쓸어버릴 계획 같은 건 구상한 게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