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24화 (24/100)

24

대통령, 협회장, 방위청장, 단군 영감과 주시자 셋, 광해 부길드장 김도환. 그리고 대한민국 3대 길드 중 두 길드인 천록 길드와 ‘윤슬’ 길드장. 그리고 그다음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두 길드 ‘바알’과 ‘거북’ 길드장까지 나를 포함하여 총 열세 명이 한자리에 앉았다.

모두가 자리에 앉자 방위청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일본에 대한 얘기였다. 나는 손을 들어 보이는 걸로 대답했다. 이어서 다들 한마디씩 고생했느니, 감사하다느니, 대단하다느니 같은 인사치레를 했다.

“이번엔 운이 좋았다. 우연히 일본의 주 전력들이 천황성에 모여 있었기에 한 번에 정리가 가능했지. 그러나 힘의 차이와 패배를 수긍할 줄 아는 놈이 적이었기에 망정이지, 지저분한 놈이었다면 무슨 개짓거리를 했을지 몰라. 이번엔 그저 운이 좋아 이렇게 쉽게 넘어간 거다.”

내 말 속에서 다음은 없다는 얘기를 들어서일까? 표정들이 조금 어두워진 느낌이 있었다.

“뭐, 그건 조금 있다가 얘기하기로 하고. 앞으로 긴밀한 관계들이 될 테니, 서로 인사나 나누지. 거기는 나도 처음 보니까.”

영감이 끌고 온 기에테들에게 시선을 던지자 파란머리 녀석이 일어났다.

“먼저 제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마력 능력자인 파란 머리 녀석의 이름은 ‘제라드’. 심장에 일곱 개의 고리를 가진 강력한 힘을 가진 마법사였다.

그 옆에 있는 은발의 여자는 ‘소메이르’. 선명한 오러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마스터의 경지를 넘어선 격투가였다. 그 옆에 있는 남자는 자연계 힘을 다루는 ‘중력’ 능력자로, 이름은 ‘사막’이었다.

이후 단군과 길드장, 대통령 등 모두 각자 소개를 했다.

“너희 길드장들.”

내 말에 네 명이 동시에 내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기에테에 대해 아직 모르지?”

“예.”

셋은 예라고 대답했고.

“알고 있습니다.”

천록 길드장만이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오… 너도 영감 제잔가?”

“아뇨. 저는 푸른 머리 제라드 님의 제잡니다.”

“아…….”

영감의 옆에 앉은 푸른 머리를 쳐다보자 녀석은 시선을 돌려 내 눈길을 피했다.

“그렇군.”

세 길드장들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지만, 나름 예상을 한 듯한 얼굴을 하는 놈도 있었다. 고대인들에 대해 알지는 못했지만, 알게 모르게 대충 눈치를 채고 있는 놈도 있었다는 얘기다.

“아무튼, 너희 셋을 위해서라도 이 기에테라는 존재들에 대해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단군 영감에게 설명을 부탁했고, 긴 설명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일본의 요한과 그 밑에 있는 기에테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뤄졌다. 그리고 영감 자신이 단군이라고 하는 대목에서 이전의 모두와 같이 얼빠진 얼굴들이 되어야 했다.

“정리는 된 것 같으니 본론으로 넘어가지. 오늘 일본이 항복했고, 대한민국의 속국이 되었다. 한국 정부는 공식 입장 발표를 언제 할 생각이지?”

“오늘 이 회의를 마치고 입장 정리를 해서 내일 아침 발표할 생각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일본과 국가 협력체계를 만들어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일어날 전투에서 살아남지 못해.”

“예.”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홀짝 마시고는 분위기를 싹 바꿨다.

“앞서 얘기했듯, 이번 일본 건은 우연히 잘 풀린 것이다. 중국과의 전쟁은 이렇게 쉽게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높아. 내가 놈들의 우두머리를 잡는다 해도, 그 밑에 주시자 열넷과 수많은 각성자 전력들이 역으로 한국을 칠 수도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대가리를 잡는 것과 전투 인원의 전력 강화뿐이다. 나머지 전투는 너희들 각자가 해야 할 몫이야.”

천록 길드는 내 이야기에 집중을 하고 있었으나, 역시 중국과 결탁한 윤슬 길드장은 집중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이봐, 윤슬.”

놈은 내 호명에 다른 곳에 두었던 시선을 얼른 내게로 옮겼다.

“아, 예.”

“너는 중국에 줄 대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그럴 생각인가?”

“아닙니다. 저도 나라가 힘이 없었기에 다른 나라에 줄을 대고 있었던 것뿐입니다.”

놈의 눈빛을 세심하게 살피자 극도의 긴장감이 녀석의 얼굴에 드러났다.

“그래야지. 딴생각을 할 거라면 아예 안 왔어야 맞지.”

그렇게 영악하고 비열하게 보이진 않았다. 허나 사람 속은 알 수 없는 법.

그런 걸로 보면 청장의 얼굴이 제일 의심스럽단 말이지.

의중을 읽기가 힘든 스타일. 사무적이고, 로봇 같다. 상상을 초월하는 꿍꿍이를 가지고 있어도 아무도 모를 얼굴.

“명심하겠습니다.”

“나를 화나게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차를 다시 한번 홀짝거린 나는, 말을 이어 갔다.

“대충 짐작했겠지만 앞으로 한국은 독자 노선을 탄다.”

네 길드장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세계 동향을 들어보니 앞으로 대전쟁의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을 정도로 불안정하더군. 그 혼란의 시대에서, 나는 한국을 불가침의 땅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 누구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고, 감히 침범할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곳으로.”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 한국에 있는 모든 길드들을 통합할 참이다.”

순간 눈빛들이 달라졌다.

“해외 세력들이 이렇게 깊숙이 침투한 국가를 휘어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이미 밖으로 나돌고 있는 정신들을 다시 끌어다가 놓는 건 쉽지 않지. 그럴 땐 강력한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오늘 배신의 대가를 치른 방지산이나 일본의 공식 발표 같은 공포와 희망이 공존하는 충격 말이야.”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전부터 쭉 이어져 왔다. 일본 대사를 굴복시키고 몬스터 풀에서 내 힘의 일부를 맛보여 줬다. 수락산 차원 관문을 빼앗았고 광해 길드장을 죽였다.

그리고 초강대국 일본을 무릎 꿇림과 동시에 배신자를 잔혹하게 처단하는 것을 보여 줬다. 그러면서 쌓여 온 내 이미지와 영향력은, 이 땅에 사는 이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이제는 큰 무리 없이 나라의 무력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제 무력 집단을 하나로 모을 시간이다. 광해 길드와 너희 네 길드를 중심으로 한국에 있는 각성자들을 규합할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을 지키기 위한 전력 증강에 돌입할 거야.”

기에테들의 얼굴들을 살피며 말을 이어 갔다.

“전력 증강을 위한 훈련 교관은 기에테들이 맡는다.”

단군 영감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위청은 전국의 각성자들을 통제하는 데에 힘을 쓰고.”

“예.”

“대통령은 국가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야”

“예.”

“지금 내가 하려는 전력 증강은, 중국과의 전투를 대비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과의 전투를 대비하기에는 이미 늦었어. 그 후를 대비하는 것이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길드들이 군기를 잘 잡아야 할 거야.”

“물론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등의 대답이 나왔다.

“그리고 협회장.”

말하는 내내 신경 쓰이던 것이 바로 협회장이었다. 왜냐하면, 내게 했던 개인적인 부탁 때문이다.

“너무 섭섭해하지 마라. 천황 외엔 건드리지 않았으니 분명 언젠가 마주할 일이 있을 거야.”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녀석은 담담하게 얘기했지만, 아쉬운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정리를 하면, 너희 길드장들이 가장 먼저 세력 내 중소 길드 및 각성자들에게 내 뜻을 전해라. 그리고 방위청에서는 전국 모든 각성자들에게 따로 내 뜻을 전달해. 그렇게 내 뜻이 다 전달되고 나면, 방위청과 협회에서 각성자들을 싹 통제해라. 그리고 기에테들과 머리를 맞대고, 각성자들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전력 증강을 꾀할 것인지 생각해. 정부는 그사이 일본과 협력 체계를 만들고, 국회와 기업들과 연계하여 국내 전력증강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될 거야.”

전원 대답했고, 나는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내 할 얘기는 여기까지다. 더 할 얘기나 질문 있으면 해. 서로 의견 교환을 해도 좋고. 참, 서로 연락처는 교환하는 게 좋지 않을까?”

기에테들을 보면서 얘기했다.

“내 번호를 불러주겠네.”

노인이 번호를 불렀고, 뭔가 수줍은 번호 교환의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적당히 의견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시우 님께서 처음에 말씀하신 전력 강화는 그 뒤에 설명하신 전력 증강이랑 같은 말인가요?”

천록 길드장이 질문했다.

“아니, 처음 말한 전력 강화는 내가 전 병력에 강화 마법을 걸어 줄 수 있다는 얘기다. 경지를 뛰어넘을 만큼의 강화는 아니지만, 신체 능력이나 가속도를 높여 줄 수 있지.”

“전… 병력 말씀이십니까?”

그녀는 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다시 물었다.

“그래. 이 땅에 있는 모든 전투 인원을 말하는 거다.”

어제 오전에 한차례 내게 들었던 이들은 그저 잠자코 듣고 있었지만, 처음 듣는 네 길드장들은 입을 떡 벌렸다.

“링크라는 마법이 있어. 어떤 매개체를 통해 대상에게 마법을 걸 수 있는 마법인데, 그 매개체는 생명체가 될 수도, 무기물이 될 수도 있다. 아무튼 링크 마법을 건 물건을 지니고 있으면, 내가 강화 마법을 걸어 줄 수 있다. 이 말이야.”

“아…….”

“그래도… 한국 각성자 숫자가 10만이 넘는데…….”

머릿수 얘기를 하니, 대륙 북부 제국과의 전쟁이 떠올랐다.

“47만 6천까지는 해 봤다. 머릿수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녀석들은 또 입을 떡 벌렸다.

“아무튼, 그런 건 걱정하지 말고. 발 빠르게 움직여라. 각성자들 통제가 되어야 내가 걸어 주든 말든 할 거 아냐.”

“맞습니다.”

“그럼 더 할 말 없으면 이만 해산.”

그렇게 모두들 돌아가고 저택이 고요를 되찾자, 나는 수현의 방으로 올라갔다.

똑똑똑.

“네.”

수현의 허락이 떨어지고 문을 열자 꽃향기가 방에서 확 풍겨 나와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음……?”

방 안이 온통 꽃으로 수놓아져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한번 해 보고 싶어서요. 향기가 너무 진하죠?”

수현은 자기도 머리가 아프다는 듯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휘둘러 꽃들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넌 뭐, 나한테 안 배워도 되겠다. 라고 얘기하고 싶었으나, 자칫 제자를 오만하게 만들 수도 있는 말이기에 내뱉지 못했다. 그리고 용건을 꺼냈다.

“기사 아저씨 보러 가자.”

“네?”

“큰~ 검을 든 기사 아저씨 보러 가자고.”

“아… 이렇게 갑자기요?”

“응.”

수현이는 외출이 좋은지 웃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금방 내려갈게요.”

* * *

영국의 버밍엄대학교. 두 남녀가 동문을 지나 길을 따라 올라가며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는 데 여념이 없다.

“신시우, 어떻게 할까요?”

“글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요한을 무릎 꿇린 것을 보면…….”

“무릎을 꿇렸는지 누가 알지? 손을 잡았을 수도 있지 않은가?”

남자의 말에 여자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만일 무릎을 꿇린 거라면 지금은 내버려 둬야 한다. 허나, 손을 잡은 거라면 두 세력 중 한 세력은 없애야 해.”

“한번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좋아. 그리고 한중전은 꼭 전면전이 되어야 한다. 이번 일본처럼 되어선 안 돼.”

“예. 그리되도록 조정하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