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어디 가요?”
여당, 사기당의 2선 의원이 나가는 의원을 붙잡았다.
“여기 있다가는 무사하지 못할 것 같네.”
국회에서 귀환자의 기자회견을 보고 있던 국회의원들은, 도저히 못 있겠다며 이탈했다.
“명색이 귀환자라는 작자가 어디서 사기나 치고 말이야.”
그들 또한 귀환자가 일본을 굴복시켰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홀로 쳐들어가 모두를 굴복시켰다는 얘기는 그만큼 터무니가 없는 얘기였다.
“아니, 이 사람들이…….”
“이봐요. 뭐, 우리가 국회의원이지, 귀환자 부합니까? 처있으라고 가만히 앉아 있게? 당신도 불타 죽고 싶어요?”
“흠…….”
총 300석의 국회의원 중 절반 이상이 이탈했다. 그리고 귀환자가 의사당에 입성했을 때쯤엔 채 100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야~ 우리나라 국회는 공석이 많네?”
훤칠한 외모에, 큰 키. 짧게 자른 백발. 생각보다 위압감이 없는 남자. 그것이 자리에 남은 국회의원들의 눈으로 본 귀환자의 인상착의였다.
“지금 이 시간부로 이 자리에 없는 국회의원들은 모두 금배지를 박탈한다.”
회의장 단상 위에 올라가자마자 자신이 했던 말부터 지키는 귀환자에 장내 긴장감이 감돌았다.
“내가 오늘 국회의원들을 다 모이라고 한 이유는, 앞으로 이 나라는 독자 노선을 탈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듣자 하니, 국회도 해외 세력에 맞춰 3파전이 일어나고 있다고 들었는데, 오늘부로 타 국가에 줄을 대는 행위는 금지한다.”
파격적인 선언이었다. 만일 해외 세력들이 서로 경쟁하듯 한국을 집어삼키려 하지 않았다면, 한국은 지금쯤 한 나라에 귀속되어 있을 것이 뻔했다. 한국이 이렇게 멀쩡한 것은 그나마 여러 거대한 국가들이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기 때문에 멀쩡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 사실을 절실하게 몸으로 겪고 있던 국회의원들은, 아무리 절대강자라지만 귀환자의 발언을 그저 듣고만 있을 순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조금 전 사람을 산 채로 태워 죽이고 온 귀환자의 의견에 토를 단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런 답답한 분위기 속. 한 젊은 초선의원이 손을 들었다.
“할 말이 있습니다.”
“어. 해 봐.”
“당신이 강한 것은 익히 보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기자회견에서 하셨던 발언에 대해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회견에서 일본의 신임 천황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요한이라는 인물은 일본의 강자 중에 없는 이름입니다.”
거기까지 들은 귀환자는 코웃음 쳤다.
“그러니까 믿을 수가 없다? 어. 그럴 거라 생각했어. 그렇게 불신을 가지고 표출하는 이들이 있어 줘야 자유민주주의답지. 안 그런가?”
주위를 한번 슥 둘러보며 귀환자는 말을 이어 갔다.
“기다려라. 늦어도 내일 중으로 일본이 공식적으로 발표를 할 것이니까. 내일까지 기다리는 것도 못하겠다면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라. 이 자리에서 선언하지만, 나는 나에게 불신을 가진다고 보복하지 않는다. 단, 조용히 불신을 품고 내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닌 내 뒤통수를 후리는 놈은 오늘 그놈처럼 된다. 무슨 말인지 다들 알아먹었겠지? 기회를 주마. 불신을 가지는 놈들은 지금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가라. 다시 한번 맹세하지만, 내게 불신을 가진다고 해서 건드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회의장은 고요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귀환자의 입이 열렸다.
“좋아. 여기 있는 놈들은 모두 국회의원이라는 직위를 박탈하지 않겠다. 국회의 수장은 누구지?”
“접니다.”
국회의장이 귀환자의 뒤쪽 의장석에서 일어섰다.
“이 자리에 있는 인원들 체크하고, 나머지는 모두 자격을 박탈해라. 네가 책임지고 관리해.”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의장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대답했다.
“예.”
“오늘부로 일본은 우리 식민국이 되었다. 머지않아 옆에서 까불고 있는 저 중국도 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그에 따라 너희들 권력을 쥐고 있는 놈들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니, 다들 허튼 생각하지 말고, 단단히 각오하고 있도록 해.”
이곳에 남은 대부분의 의원들은 귀환자의 말을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귀환자의 말에서 묻어나는 자신감에 마음이 혹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너. 네가 인원 체크해.”
귀환자가 중간쯤 앉은 젊은 초선의원을 가리켰다.
“아, 예.”
“남 비서. 저 인원 체크하는 것 가서 확인해.”
“네.”
귀환자는 비서를 보내놓고서는, 인원을 체크하려 일어나는 초선의원에게 얘기했다.
“인원 체크 똑바로 해.”
“예.”
그렇게 주섬주섬 일어나서 체크를 하는 와중 남 비서와 실랑이가 벌어졌다.
“의원님. 여기 자리 잘못…….”
“쉬…….”
초선의원은 인상을 와락 구기며 조심스레 손가락을 입에다가 갖다 댔다. 그러곤 그냥 지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안 됩니다.”
그러자 그는 눈을 부릅뜨고는, 눈을 부라리며 속삭이듯 얘기했다.
“의원님이 특별히 부탁하신 거야.”
“그래도…….”
“아이씨…….”
그때 회의장에 신시우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이씨 나와.”
초선의원은 사색이 되어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신시우가 단상 위에서 그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일로 나와. 남 비서 네가 직접 체크해라.”
초선의원은 남 비서에게 이빨을 으득 물어 보이고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누가 감히 내 비서에게 위협을 가하라고 했지?”
“아… 그…….”
“미친 건가?”
“아, 아닙니다.”
초선의원은 눈을 깔고 대답했다.
“왜. 네게 부탁한 그놈이 나보다 더 무서운가 보지?”
“아…….”
멀리서 한 얘기를 알고 있는 귀환자에 초선의원은 당황하여 말문이 막혀 버렸다.
“대가리 박아.”
“예?”
“대가리 박으라고. 잘 안 들리나?”
“아…… 그.”
붕-
우물쭈물하던 초선의원은 그대로 날아가 회의장 바닥에 나뒹굴었다.
“내 비서를 대할 때는 나와 같이 대해라.”
신시우의 말에 장내는 숙연해졌다. 그리고 겨우 몸을 추스르고 일어서는 초선의원에게 신시우는 다시 명령했다.
“너는 거기서 대가리 박고 있어.”
그는 더 험한 꼴을 당하기 싫은 것인지 이번에는 바로 머리를 박았다.
* * *
한참 만에 의석 체크를 모두 끝낸 남 비서에게서 받은 명단을 의장에게 건네고 의사당에서 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남 비서가 물어왔다.
“시우 님.”
“왜.”
“국회는 굳이 직접 가시지 않아도 되었는데, 가신 겁니까?”
“너는 아직 뭘 모르는구나. 뭐든지 직접 몸소 체험해 보는 것이 가장 강력한 효력을 발휘하는 거야. 아마 거기 있는 놈들은 오늘 이 일을 절대 잊지 못할 거다. 뭔가를 하려고 할 때 오늘의 일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겠지.”
“아…….”
남 비서의 대답을 듣자마자 요한에게 다시 연락했다.
“어. 내가 어제 한 가지 빼먹은 게 있어서 말이야.”
[무엇입니까?]
“유사시 일본 각성자들은 한국을 돕는다.”
[아… 예.]
“일본 공식 발표 후에 국가 협력 계획을 최우선으로 수립해야 할 거야. 반창곤지 뭔지 하는 놈은 내가 처리하겠지만, 나머지가 총공격을 해 올 때 너희들이 들어와서 한국을 도와야 한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대충 마무리되고, 시간이 나게 되면 내게 연락 넣고 한국으로 들어와라. 할 얘기가 있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녀석은 고분고분했다. 아마 이번 천황과의 전투에서 깨달은 것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협력을 할 것이라는 느낌은 왔다.
“귀환자님이 오시고 정말 매일같이 놀라운 일들만 일어나고 있어서, 아침마다 여기가 지구가 맞는지 의심을 합니다.”
“좋은 현상이다.”
내 말에 녀석은 허허 웃었다.
“한국에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거든요.”
“살다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종종 생기지.”
“맞습니다. 이런 좋은 일들이 생길 때도 있는 법이죠.”
룸미러 너머로 녀석의 미소가 만개한 얼굴이 보였다.
새끼. 웃으니까. 잘생겼구만.
* * *
귀환자의 충격적인 행보에 한국의 길드들은 연일 모여서 회의를 해야 했다. 처음에는 귀환자라는 변수가 생겨서 짜증이 났다면, 그의 행보와 무력을 보고서는 위기감을 느꼈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두려움과 걱정으로 가득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중소 길드들이야 줄을 서면 끝이라지만, 직접적으로 해외 세력과 결탁을 하고 있는 큰 길드들은 그 정도가 심했다.
그러나 이곳, 대한민국 3대 길드 중 하나인 ‘천록’ 길드는 오늘만은 분위기가 좀 달랐다.
후릅.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천록 길드 마스터 ‘소하연’은, 생각에 잠긴 채 간부들의 주절거림을 듣고 있었다.
“아니, 허풍도 정도껏 쳐야지. 일본이 무슨… 크킄…….”
“그러니까 말이야.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혼자 가서 그냥 죽였다고? 요한은 뭐냐, 무슨 시바 성경에 나오는 새끼냐.”
광해 길드 마스터가 교체된 전날과는 달리 분위기가 생각보다 유쾌했다. 귀환자의 기자회견 이후 천록 길드도 다른 길드들과 마찬가지로 직접 일본에 연락해 알아보았다. 허나, 일본에서는 그에 대해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고, 길드 간부들은 귀환자가 허세를 부린 거라 생각했다.
그때 간부 중 하나가 마스터에게 물었다.
“언니 생각은 어떠세요?”
마스터가 워낙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던 탓이었다.
“뭐, 두고 보면 알겠지.”
“언니는 촉이 빠르잖아요. 언니 의견도 듣고 싶은데…….”
“내 촉을 원한다면 나는 반반이야.”
물어본 간부는 재미없다는 듯 입을 삐쭉였다.
“러시아 쪽에서는 무슨 말이 없어요?”
다른 간부가 마스터를 향해 물었다.
“어. 아직까지 별다른 얘기는 없어.”
“후… 이거 원…….”
“워너원.”
“아… 개노잼. 레알 노잼. 핵노잼. X노잼”
그렇게 주절주절 떠들고 있는데, 비서실 인터폰이 울렸다.
“무슨 일이지? …뭐? …그래. 알았어.”
차분해져 있던 소하연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에 간부들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뭐예요?”
“오늘 밤 10시. 귀환자의 저택으로 길드장들을 소집한대.”
“아니, 시발 지가 뭔데 오라 가라여? 마스터. 거기 가면 안 돼요. 조방인 꼴 나.”
“맞아. 누님 거기 가면 안 돼. 그놈 뭔가 꿍꿍이가 이상해.”
“언니 잘 생각하세요. 진짜. 천록 길드 미래가 걸린 일이에요.”
반응들은 냉담했다. 당연했다. 그 집에 찾아갔던 3대 길드장 하나가 시체도 없이 소멸되어 버렸으니까.
“중요한 일이야. 만일 귀환자가 일본을 굴복시킨 것이 사실이라면, 오늘 나는 반드시 참석해야 해. 그게 아니고 단순 허풍이고, 이상한 꿍꿍이가 있다면 가선 안 되겠지.”
“아~ 씨. 왜 하필 오늘이야.”
“흠…….”
후릅.
소하연은 다시금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신시우는 어떤 인물일까. 그 요한이라는 존재는 과연 허상의 인물일까? 아니면 실존하는 인물일까.’
소하연의 눈이 벽에 걸린 전자시계를 훑었다.
‘8시간 남았군.’
“어… 지금! 지금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 관련하여, 일본의 공식 입장을 발표한다는데요?”
한 간부가 스마트폰을 들고 눈을 부릅뜬 채 흥분된 목소리로 떠들었다. 그에 모두들 그에게 모였다.
“뭐야… 진짜 귀환자가 홀로 가서 죽였다는 거야?”
모두들 긴장된 가운데, 비장한 얼굴의 일본 총리가 화면에 나타났고,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