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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21화 (2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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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왜 갔다 왔어요?]

마나 수련에 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어김없이 수현이 정신을 연결해 왔다.

[어. 깼냐?]

[아~ 까 깼죠. 사부 갈 때부터.]

[그래?]

[아니, 자고 싶은데, 마나 흐름이 이상해져서 잘 수가 있어야죠. 큰 흐름은 아니라도, 저는 민감하니까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단하구나.]

[그런 영혼 없는 칭찬은 됐어요. 일본에는 왜 갔다 온 거예요? 얼마 시간이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천황을 죽이고 왔지.]

[네?]

[일본은 이제 한국의 식민지야.]

[농담이 너무…….]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일본에서 발표할 거야. 우리나라도 아마 발표하겠지만.]

[…….]

[진짜야.]

할 말을 잃어버린 건지 내 말이 거짓이라 느낀 건지 이후로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마나 수련을 한창 하고 있으니, 다시금 말을 걸었다.

[오늘도 수업할 거죠?]

[어. 그런데 오전에는 내가 일이 있으니까 오후부터 하자.]

[네.]

아침 식사 후 일찍 집을 나섰다. 오전에 할 일은 솎아 내기. 배신자를 색출하고, 권력 집단에 내 존재를 각인시키는 일을 할 것이다. 하여 서둘러 길드로 출근했다.

“앗, 오셨습니까.”

딴짓을 하고 있다가 화들짝 놀란 로비의 직원이 내게 깍듯하게 인사했다.

“부마스터들은 출근했나?”

“아, 네. 위에 사무실에 있습니다.”

“방지산 내려오라 그래.”

“넵.”

잠시 후 방지산이 로비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길쭉한 얼굴에 살짝 처진 눈매. 거기다가 입술선이 없는 두툼한 입술. 두 번째 봐도 믿지 말아야 할 얼굴이었다.

“오늘 배신자를 색출할 생각이다. 따라와.”

“예……?”

놈은 뜬금없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귀가 안 들리나?”

“아, 아닙니다만. 너무 뜬금없어서…….”

“뜬금이 없어?”

“아… 그게…….”

“세상에서 제일 몸에 안 좋은 게 뭔 줄 아냐?”

“…….”

쩍.

그대로 놈의 주둥이에 주먹을 꽂았다.

“배신이다. 이 새끼야.”

그렇게 녀석은 몇 분 정도 내게 맞았다.

“자, 이제 얘기해 봐.”

내 눈썹이 치켜 올라가자, 떡이 된 놈이 움찔했다.

“최… 최송합니다. 제가… 실성해서 그만…….”

무릎을 꿇은 놈은, 눈을 굴리며 나의 원시적인 폭력에서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듯했다.

“대가리 굴리지 말고 똑바로 얘기해.”

“이… 예. 예……. 제가… 어제 일본에 귀환자님이 하신 계획을 모두 발설했습니다.”

“그래. 무슨 마음으로 그랬지?”

“그게… 일본이 이 길드를… 구해 주길 바랬습니다.”

“내가 길드를 죽이겠다고 했나?”

“아… 아닙니다.”

“나를 좀 없애 줬으면 했잖아. 맞지?”

녀석은 퉁퉁 부은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맞아. 안 맞아. 또 구라 치면 죽는다.”

“히… 히이… 마… 맞습니다.”

이런 병신 같은 새끼가 부마스터로 있다니. 힘을 사용해 반항을 하거나 따지기라도 했다면 기개라도 높이 사 줄 참이었는데, 방지산은 정말 쓰레기 그 자체였다.

“좋아. 그거 딱 기억해 두고 있어라.”

“예……?”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나다. 기자들 싸그리 다 모아. 이 나라 모든 국민들이 다 볼 수 있도록 준비해라. 중요한 얘기니까. 어. 너도 오든지 아니면 보든지 해. 어, 그래. 광해 길드 대강당으로 모이면 돼. 어.”

놈은 잔뜩 움츠러들어서는 눈을 굴려 내 눈치를 살폈다.

“기자들 앞에 가서,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다 떠벌려라. 방금 한 말들 하나도 빠짐없이 얘기해야 돼. 무슨 말인지 알지?”

방지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너. 이리 나와.”

로비에 모여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 중 하나를 불렀다.

“…아, 예.”

잔뜩 긴장한 채 달려온 놈에게 방지산을 맡겼다.

“이놈 데리고, 대강당으로 올라가라. 거기 니들. 몇 명 더 나와서 같이 데려가. 내가 갈 때까지 지키고 있어. 도망이라도 갔다가는 껍데기를 다 벗겨 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라. 방지산.”

내 으름장에 또다시 히익거리는 놈은, 이내 연행되어 갔다.

조방인 새끼가 없었으면 해체될 조직이군.

2인자라는 새끼가 저 모양이니 불 보듯 뻔했다.

그때 멀찍이 있던 한 놈이 몇몇 무리를 이끌고 내 앞에 섰다.

“부마스터 김도환,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놈이 고개를 숙이자 수십 명이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이쪽은 귀환자님을 마스터로서 인정한 길드 간부들입니다.”

인정이라.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아, 그래. 마침, 오늘 너희들에게 아주 좋은 공부가 될 행사가 있다. 30분 내로 본 건물 대강당으로 올라와라.”

“예.”

그들과 헤어진 나는, 다시 건물 밖으로 나왔다.

“남 비서.”

“예.”

“1시간 뒤 국회의원 놈들도 모두 국회에 집합하라고 해.”

“예.”

“빠지는 놈은 의원직 박탈에 국외추방 시킨다고 단단히 일러둬라.”

“옙.”

오늘은 내 밑그림의 마지막 순서가 될 것이다. 쓸데없는 것들을 정리하고, 뚜렷한 밑그림을 완성시키는 단계.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떻게 할 것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두의 머릿속에 강력히 각인될 것이다.

* * *

“이야… 하루도 안 건너고 바로 또 기자회견이라니. 대단하시구만.”

“귀환자님이 아주 신이 나셨네.”

“풉!”

뭐가 웃긴지 옆에 있던 기자가 마시던 물을 뿜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이렇게 계속 보다가 정들겠어.”

“그 사나운 조방인을 죽였다기에 쫄았는데, 생각보다 페이스가 좋아서 그런지 친근하게 느껴지던데.”

“아이고~ 박 기자 또 허세 나온다.”

“허세는 무슨. 레알이여.”

광해길드 로비는, 기자들이 저마다 귀환자에 대해 한소리씩 늘어놓느라 시끌시끌했다.

“자! 자! 기자님들. 이제 이동해 주세요.”

귀환자가 만만하다느니, 기자회견 한번 해 보니까 재미들렸다는 둥 예전의 그 무시무시한 귀환자의 이미지는 어느새 없어졌고, 실없고, 웃기고, 친근한 귀환자가 그들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러나 대강당에 도착한 기자들의 분위기는 점점 싸늘해져 갔다. 왜냐하면, 피 떡이 된 남자 하나가 단상 위에서 시선을 내린 채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에는 귀환자를 비롯하여, 그 비서와 부마스터 등이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올 기자가 없자 시작된 기자회견은, 상당히 심각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피 떡이 된 남자는 다름 아닌 광해 길드 2인자 중 하나인 방지산. 그가 떡이 된 이유는 새롭게 마스터로 취임한 귀환자 신시우를 배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왜, 어떻게 일본에 신시우의 계획을 흘렸는지 얘기했고, 이어서 귀환자 신시우가 단상 위에 올라섰다.

“내가 어떤 경위로 이놈의 배신을 알아냈는지 궁금할 것이다. 지금부터 내가 어떻게 이놈이 배신한 것을 알아냈는지 보여 주겠다. 남 비서. 연결해.”

귀환자 신시우의 지시에, 대강당의 스피커가 스마트폰과 연결되어 통화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통화음은 끊겼고, 일본어를 구사하는 남자 목소리가 나왔다.

“얘기해 줘라. 네가 누군지. 오늘 새벽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본이 어떻게 됐는지. 앞으로 한국과 어떤 관계를 이어 나갈 것인지. 그리고… 네가 누구한테 나의 계획을 들었는지 얘기하면 돼. 아, 네가 누군지 얘기하려면… 그것들도 다 얘기해야 하나?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전화 너머의 존재는 굉장히 고분고분한 목소리로 대답했고, 드디어 통역이 시작됐다. 통역이 진행됨에 따라 기자들은 입을 떡떡 벌렸다. 그러나 그것은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대강당의 인원 모두 그리고 이 생방송을 지켜보고 있는 이들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주는 얘기였다.

“말도… 안 돼.”

신시우 귀환 11일차 오전. 한국이 초강대국 일본을 삼켜 버렸다는 이 충격적인 소식은, 순식간에 인터넷에 도배됐다.

* * *

긴 역사 얘기 안 해서 참 다행이군.

기에테고 뭐고 얘기를 꺼냈다면 굉장히 이야기가 길어졌을 터였다. 물론, 그것도 세간을 뒤흔들 얘기긴 하지만 나에겐 지루한 얘기다.

“수고했다. 내가 따로 연락할 테니까. 대기해.”

그렇게 통화는 끊어졌고, 강당 내부는 여전히 고요했다.

“자, 이놈이 배신자라는 것은 새로 즉위한 일본 천황이 충분히 증명을 해 줬으니까. 이제 내가 어떤 방식으로 배신자를 처리하는지 보여 주겠다.”

또 옆에서 히익 소리가 났다. 놈은 경기를 일으키며, 부들부들 떨어 댔는데,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허공에다가 놈의 사지를 봉했다. 그리고 발화 마법으로 놈의 전신에 불을 붙였다.

끔찍한 비명 소리가 머리 아플 정도로 강당을 울려 댔다. 중간에 나가려는 기자들도 있었고, 구석에서 토하는 기자들도 나왔다. 그러나 강당 문은 길드 간부들이 떡 버티고 막고 있었기에, 그 누구도 강당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통에 몸부림치던 놈은 결국 숨이 끊어졌다. 잔인하지만, 이 본보기가 앞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혀, 가벼워지려는 입을 다시 무겁게 만들어 줄 것이다.

나는 마법으로 탁해진 실내 공기를 바꾸며 입을 열었다.

“나는 내 것을 귀하게 여긴다. 그러나 내 것이 나를 공격한다면, 나는 그것을 가차 없이 끊어 낸다. 정보를 누설하는 놈들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지만, 세상에 아무도 모르는 일은 없다. 너희들 주변에 떠다니는 마나가 다 알고 있으니까. 오늘 이 행사는, 모두에게 좋은 교훈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누구든 배신자는 끝까지 찾아내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니, 후회할 짓은 하지 않도록. 이상이다. 해산.”

그때 누군가 손을 들었다. 그리고 내가 가리키자 질문했다.

“일본이 정말 한국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 확실합니까?”

역시 다들 믿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 오늘내일 사이로 공식발표 하라고 했으니, 금방 할 거야. 그에 맞춰 우리 정부도 발표를 할 거고. 그때 보면 된다. 더 질문 있나?”

웬만해선 내게 질문을 하려고 하는 놈은 없었다. 아마 다들 내게서 굉장히 좋지 않은 감정들을 얻었을 것이다. 배신자든 뭐든, 사람을 산채로 태워 죽였으니까.

더 이상 질문이 없자, 나는 단상에서 내려와, 비서와 함께 길드 간부진들에 둘러싸여 강당을 나갔다.

“국회로 가자.”

* * *

“…….”

주시자이자 중국의 오마(五魔) 중 하나. ‘미미라’와 다른 두 주시자가 모여 신시우의 기자회견을 보고 있었다.

“일본이… 항복했다는데?”

“저 새끼가 일본 천황을 죽이고 왔다고?”

“허세가 심하네.”

그들 모두 일본의 천황이 얼마나 강한지 대충 알고 있었다. 귀환하자마자 접촉한 1급 각성자 셋과 2급 각성자 열둘을 그 자리에서 가볍게 죽였으니까.

거기다가 애틀랜타 차원 균열 때도 그 이계의 종족을 압도적으로 몰아붙이는 것을 보여 주며, 무력을 세상에 알린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의 무위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게다가 한국의 귀환자인 신시우는 마법사이고, 일본의 천황 ‘이시이 유타로우’는 기력을 사용하는 검사. 수준이 비슷한 이들끼리의 대결은, 마법사가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더불어 일본에는 계시자 요한과 더불어 관조자들과 주시자들이 있기에 그 혼자만으로 모두를 굴복시킨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근데 저거 요한 님 목소리가 맞는 것 같은데?”

“일본어 쓰니까 모르겠네.”

“목소리 비슷한 놈 하나 어디서 데려왔겠지. 쇼야 쇼. 정 궁금하면 일본에서 발표하는지 보면 알겠지.”

그렇게 해외에선 안 믿는 시선들이 많았다,

“그나저나 저 건방진 새끼들을 빨리 조지는 것이 낫겠다. 일본이 움직이기 전에 말이야.”

“추살대도 작살이 났겠다. 맘 편히 움직여도 되겠네.”

“프리메이슨 새끼들을 조심해야 돼.”

“우린 반고가 있잖아. 용가리로 변하면 프리메이슨도 감당하기 버거울걸.”

“크크… 그러니 우리가 붙어 있지.”

“아무튼 반고한테 얘기해 봐야겠다. 거사를 앞당기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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