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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17화 (17/100)

17

후르르릅.

국밥집에서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하던 서부방위청 소속 각성자 ‘이상민’은 갑작스러운 호출 문자에 숟가락을 내려놨다.

“뭐야……?”

그러고는 천장을 쳐다봤다.

‘GPS상으로는 이 건물 옥상인데…….’

호출 문자는 바로 에너지감지센터에서 온 마법 에너지 반응에 의한 출동 명령이었다. 그런데 그 에너지 반응은 그와 겹쳐 있었다.

그는 일단 부리나케 계단을 탔다. 그리고 올라간 곳에서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다섯 명의 각성자를 볼 수 있었다.

“이봐. 좋은 말로 할 때 스탑.”

상민은 우선 녀석들을 붙잡아 두기로 했다. 자신으로서 감당이 안 될 거라는 걸 직감했기에, 방위청 각성자들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

순식간에 한 놈이 움직이나 싶더니, 어깨가 화끈거리며 뭔가 떨어져 나갔다.

“끄아아악……!”

순식간에 그는 왼쪽 팔을 잃어버렸다. 그는 피가 뿜어져 나오는 어깨를 부여잡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크… 흛…….”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고통을 가까스로 참으며 신음을 흘리고 있는데, 익숙하지 않은 언어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간만에 손맛이 좋네.”

그것은 분명 중국어였다.

‘중국 새끼들이 대체 왜…….’

상민은 고통에 몸을 벌벌 떨면서도,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대체 왜 이놈들이 여기서 이렇게 대놓고 깽판을 치는 건지.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답이 나왔다.

“추살대…….”

바로 어제 점심 무렵. 방위청장에게 중국의 추살대 둘이 제거됐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나갔었다.

‘이… 씨발놈들…….’

그는 어금니에 힘을 줬다. 분명 어제 그 사건은 먼저 추살대 쪽에서 한국 측 각성자를 죽였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오른손으로, 귀에 꽂힌 무선 이어폰을 만져 방위청 상황실과 연결시켰다.

“방위청… 방위청 응답하라.”

[방위청 통제실이다. 상황이 어떤가.]

“중국 추살…….”

슥. 무언가 빠르게 상민의 목을 긋고 지나갔고, 이내 목이 떨어지면서 몸이 허물어졌다. 그리고 그의 귀에서는 통제실의 외침이 계속됐다.

[이상민 대원. 이상민 대원? 상황이 어떤가? 이상민 대…….]

“중얼중얼거리기는.”

칼을 휘둘러 묻은 피를 한번 뿌리고는, 기다란 칼을 칼집에 넣은 중국 추살대원이 느긋하게 걸어서 추살대장의 옆으로 갔다.

“뭐하는 놈이냐? 방위청 놈이냐?”

“예. 뭐 그런 것 같습니다. 뭐라고 보고하려는 것 같아서 그냥 죽였어요.”

추살대장은 다른 대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청장 놈 위치는?”

“곧, 여기 지나갑니다.”

“놈의 목만 따고 돌아간다.”

그 순간 옥상에 방위청 각성자들이 대거 나타났고, 건너편 옥상에서도 기척들이 느껴졌다.

“신원을 밝혀라.”

중앙 방위청 소속 제1 진압대장 ‘강병철’이 일정 거리를 둔 채 외쳤다. 높은 마법 에너지가 감지되었기에 중앙 방위청의 제1, 제2 진압대와 제1, 제2 구조대 모두 출동한 상황. 인근에 진압대만 사십여 명이 포위하고 있었고, 사십여 명의 구조대가 인근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

거기다가 3등급 각성자인 이상민이 당한 것 같다는 소식에, 곧, 2급 각성자를 바라보는 부청장을 포함한 제3 진압대가 추가 파견되고 있었다.

[강화 마법 전개 완료.]

[저격수 배치 완료.]

[대장님 포위망 완벽하게 갖춰졌습니다.]

[본 건물 대피 70% 완료. 주변 건물들은 아직 10% 안팎입니다.]

제1 진압대장의 귀에 속속들이 보고가 들어왔다.

“공격 준비하고 대기.”

대장은 추살대인 것 같다는 얘기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상민 대원의 주검도 보았으니 긴장감이 더했다.

“우린 볼일만 보고 갈 테니까. 부산 떨지 말고 귀가해라.”

느긋한 표정의 여자가 중국어로 얘기했고, 대장 옆에 서 있던 남자가 통역을 해 줬다.

“귀가라…….”

“간만에 손맛을 좀 더…….”

“흥흥~”

그때 옥상에 콧노래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순간 섬뜩함을 느낀 진압대원들이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웬 동양인 남자와 머리가 은발인 서양인 여자가 자신들에게 접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웃고 있는데 저 살기는 대체…….’

생글생글 눈웃음을 지으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여자에게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뻗쳐 나왔다. 그에 누구도 섣불리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는 그때. 여자가 입을 열었다.

“저 잔바리들 말처럼 님들은 그냥 귀가하세요~”

명확한 한국말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살기와 위압감에, 방위청 소속 각성자들은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길을 텄다.

“어디서 구린내가 난다 했더니… 여기 구린내 나는 애들이 다섯이나 모여 있었네~”

여자는 계속 떠들어 댔고, 남자는 묵묵히 그냥 걸어갈 뿐이었다.

만사가 귀찮은 얼굴인 남자가 손을 슥 들자, 다섯 추살대의 발밑이 꺼지며,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아… 실수. 힘 조절을 못 했네.”

“야아!”

웃는 얼굴로 남자를 보며 화를 내는 그녀의 뒤에서 추살대 하나가 순식간에 나타났다. 그리고 눈으로 좇기 힘든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기’가 선명한 형상을 갖춘, ‘오러’가 돋아난 칼날로 휘두른 강력한 일격. 그 자리의 모두 다 그대로 여자의 목이 날아가는 것을 상상했다.

“어머어머. 여자한테 그렇게 무시무시한 칼을 휘두르면 되겠어?”

그러나 우습게도 추살대의 칼은 그녀의 손가락 두 마디에 막혀 버렸다.

“무슨……!”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추살대의 머리통이 터져 나갔다.

“놀러 간다.”

그 말을 남기고 사라진 여자는, 본래 추살대들이 서 있던 커다란 구멍 위에서 나타났고, 이내 허공을 박차며 아래로 쏘아져 내려갔다.

“이런이런… 지하까지 내려가 버렸나.”

남자는 여전히 귀찮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 암.”

* * *

“크…….”

추살대장의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이런 개새…….”

그는 본능적으로 위쪽에서 빠르게 내려오는 힘을 느끼고, 칼을 뽑아 위로 쳐올렸다. 그러자 두 힘이 맞부딪히며, 자욱했던 먼지가 순식간에 걷혀 나갔다. 그리고 폭음이 일대를 뒤덮었다.

“커……!”

“이야… 막아 냈네?”

추살대장은 싱긋 웃는 여자를 보며 이상해진 감각의 팔을 느꼈다. 그러곤 팔을 다시는 쓸 수 없게 되었음을 느꼈다.

“크읏……!”

“그러게 피했어야지… 야, 나는 다 그냥 넘어가는데, 우리 애들 건드리는 건 못 넘어간다? ”

한국어를 못하는 추살대장은, 여자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긴장감 속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 너 한국말 못 알아듣지 참. 그래그래. 그럼 어차피 대화도 못 하는 거. 그냥 빨리 끝내자?”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추살대장과 함께 떨어졌던 세 추살대원이 일제히 그녀를 공격했다. 기습과 같은 일격필살이었다. 허나 여자는 아무런 동작도 취하지 않았고, 그 강력한 일격을 맨몸으로 받았다.

“끝났니?”

여전히 웃는 얼굴의 그녀의 몸에는 희미한 붉은빛이 감돌았다. 전신에 오러를 씌워 그 공격을 막은 것이었다. 일순간 그녀의 주먹이 세 방향으로 뻗어 나갔고, 세 추살대원들은 그 자리에서 가슴이 꿰뚫리며 숨졌다.

“자, 너도 이제…….”

본능적으로 대적할 수 없다고 판단한 추살대장이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닥을 박찼고, 은발의 여자는 말을 하다 말고 반사적으로 뛰어올랐다. 그대로 그의 머리통을 잡아 다시 바닥으로 처박아 뭉개 버렸다.

“후~ 개새끼가 꼴사납게 도망을 가고 지랄이야.”

은발의 여자는 얼굴과 다르게 험악한 말을 내뱉고는 바닥을 박차고 솟아올랐다. 그러곤 옥상 위로 사뿐히 착지했다.

“야아… 너 때문에 먼지 얼마나 많이 먹은 줄 알아?”

여자의 등장에 옥상에 있던 수십의 각성자들은 얼빠진 얼굴이 되었다. 그들은 과연 추살대가 맞는가? 맞다면, 이 한 여자에게 몰살을 당한 것인가? 방위청 각성자들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아~ 미안. 미안.”

“저…….”

제1 진압대장이 두 남녀에게 조심스레 접근했다.

“응?”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각성자가 고개를 숙이자 남자는 손사래를 쳤다.

“아~ 아냐, 아냐. 너희들 도와주려고 한 거 아니니까. 감사는 됐어.”

“그래도 저희로서는 정말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아… 그래, 뭐…….”

여전히 만사가 귀찮은 얼굴인 남자에게 각성자가 조심스레 물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소속과 존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실례야.”

옆에 있던 은발의 여자가 대화를 끊었다.

“아…….”

“실례라는데?”

남자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러곤 손을 흔들더니 이내 둘은 높이 솟아올랐고, 사라져 버렸다.

“하아…….”

둘이 사라지자 옥상에 있던 모두가 숨을 몰아쉬었다. 그만큼 그 존재와의 대화 자체가 주는 긴장감이 어마어마했다는 얘기였다.

“대체… 귀환자도 아니고…….”

“혹시… 타 차원 존재는 아닐까요?”

“뭐?”

부청장의 얼빠진 얼굴에 황당함이 어렸다.

“그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드론으로 인상착의를 확인한 바. 오늘 문제의 5인 각성자들은 중국 추살대 지휘 계층으로 추정했다. 그중에는 1급 각성자인 추살대장도 포함되어 있어, 한국의 전력으로 막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그들의 머릿속은 아주 뒤죽박죽이었다. 대체 저 존재가 어떤 이들인지, 왜 중국 추살대를 죽인 것인지.

* * *

순식간에 복원한 마당 옆 경계석에 수현이가 앉았고, 맞은편에 내가 섰다. 앞으로 바빠질 테니 조그만 시간이라도 허투루 보낼 수 없어 수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자…….”

허공에 커다란 종이를 펼쳤다. 이것은 마법 처리된 종이로, 마력을 이용해야 필기가 가능한 특수종이다. 이렇게 커다란 종이를 마법을 이용하여 허공에 펼쳐놓으면 훌륭한 칠판이 된다.

“오늘은 아쉬운 대로 오후만이라도 수업을 진행하자.”

사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은 처음이다. 간단하게 뭔가 기술을 알려 주는 것 정도는 해 봤어도, 이렇게 마치 선생과 제자처럼 수업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 이론적인 것이 하등 쓸데없어 보여도, 꼭 필요한 것이니까. 절대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된다.”

“네.”

생각보다 거부감 없이 수업이 진행됐다.

“네가 쉽게 느끼고 움직이는 이 마나라는 것은 굉장한 에너지를 담고 있는 아주 특별한 물질이다. 의지를 담은 마력을 어떤 형식으로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마나는 무한한 변화가 가능하지. 그러나 이것은 아주 위험한 물질이기도 해. 예를 들어서…….”

마나를 뭉쳐 작은 공만 한 크기로 압축하자, 눈이 부실 정도의 빛이 구체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렇게 마나를 압축하게 되면 마나가 불안정 상태로 변화하여 굉장한 폭발을 일으키지.”

나는 보란 듯이 그 구체를 하늘로 쏘아 올렸다. 그러자 높이 올라간 구체가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마법을 이용한 압축은 꽤 힘이 들지만, 너와 같이 마나와 소통을 하는 재능을 가진 이들은 마나 압축이 그리 힘들지 않아. 그렇기에 더 조심해야 한다. 마나는 압박을 받으면 그대로 불안정 상태로 들어가 폭발해 버리니까.”

“아…….”

“전에 말했듯, 네 감정에 노출되면 마나가 미쳐 날뛰기 때문에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강인한 정신이 필요해. 감정 컨트롤을 잘할 수 있어야 돼. 그렇지 않으면 혜화동 때처럼 참사가 날 거야.”

“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세 번째 쉬는 시간을 가졌을 무렵. 남 비서가 뭔가를 들고 내게 다가왔다.

“시우 님. 광해 길드에서 보낸 태블릿 PC입니다.”

“뭔데?”

“그… 광해 길드장으로서 알아야 할 것들을 정리해 둔 거라고 합니다.”

“아~ 내 방에 갖다 놔.”

“옙.”

그렇게 다시 수업을 시작하려던 찰나. 수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바뀌었다.

“사부.”

“…어?”

“떡볶이 먹고 싶어요.”

난 또 뭐라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괜히 쫄아 있었던 내가 한심해지는 순간이었다.

“좀 이따 수업 끝나고 배달…….”

“나가면 안 돼요?”

그 말과 함께 수현의 답답함이 내게 밀려들었다. 이 집에 온 지 오늘이 고작 이틀이었지만, 마나로 전해지는 답답함은 꽤나 심각했다.

“흠… 대신. 조건이 있어.”

수현은 나간다는 말에 한결 좋아진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수업 끝나고.”

“아…….”

수현의 탄식 소리와 함께 수업이 재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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