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16화 (1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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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 년을 살아온 과거의 망령들이 세상을 조작하는 조직 프리메이슨.

그야말로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사실이었다. 진실과 거짓을 간파하는 마법 ‘트루 디텍션(Truth detection)’에 걸리지 않았으니까.

그런 그들의 만행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놈들의 취미도 악마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악랄했다.

“프리메이슨의 숙청 덕에 주술이 풀릴 때쯤 기에테들의 숫자는 300명이 채 안 되었네. 그리고 그들은 힘을 되찾자마자 분열했지.”

프리메이슨의 주축이자 실질적인 지배자인 다섯 계시자 중 둘이 빠져나가면서 기에테들이 대거 이탈했다고 했다. 결국 프리메이슨에 남은 이들은 40이 채 되지 않았다고.

그러나 여전히 계시자 셋을 포함해 40에 가까운 기에테들이 모여 있는 프리메이슨은, 세계 최강의 무력 집단이었다.

그들은 세상에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각성자’들을 골라내어 육성하며, 또다시 세계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을 준비를 했고, 그 준비가 결실을 맺어 5년 전부터 전 유럽이 전쟁터로 변했다고 했다.

“그들이 실질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나머지 기에테들 또한 숨어 살기 때문이라네. 아마 기에테들이 전쟁에 참전하고 세력을 일으켜 그들에 맞선다면 그들 또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테지. 그걸 알고 다들 숨어 있는 게야. 프리메이슨이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에 말일세.”

이제야 이 노인네가 왜 내 곁을 맴돌았는지 대충 감이 왔다.

“그래서. 결론은?”

“내가 이렇게 자네에게 찾아온 이유는, 자네와 손을 잡기 위함일세.”

“언제는 이 땅에서 손을 떼라더니?”

“현재 세계에는 열 명 남짓한 귀환자들이 있다고 알고 있네. 다섯은 공식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며 귀환한 이들이고, 나머지 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왔거나 큰 파장을 일으키지 않고 어딘가로 숨어들어서 세상이 모르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지.”

계속하라고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 귀환자들은 모두 기에테들과 연계가 되어 있네. 어떤 기에테들은 귀환자에게 붙었고, 어떤 기에테들은 귀환자를 무릎 꿇렸지. 또 어떤 이들은 그 커다란 그림자 뒤에 숨은 이들도 있네. 아직 세상이 기에테에 대해 모르고 있지만, 아마 곧 벌어질 전쟁에 모두가 알게 되겠지. 그 시발점이 바로 이곳. 한국이 될걸세.”

“그래서?”

“러시아는 현재 유럽과 중동 쪽에 신경을 써야 해서 이곳까지 신경을 쓰기는 힘든 상황이네. 그래서 중국과 일본이 이 땅에서 붙을걸세. 한반도는 잿더미가 되겠지.”

“그건 그런데 말이야. 왜 네가 이 나라에 대해서 그렇게 신경을 쓰고 있는 거지? 넌 아무런 상관이 없을 텐데? 일본인지 호준지 가서 계시자인가 뭔가한테 붙지 그래?”

녀석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허허. 나는 이곳을 버릴 수가 없네.”

노인네의 말에 눈썹이 올라갔다.

“내가 일군 나라니까 말일세.”

“네가… 이 한국을 일궈 냈다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국이라기보다는 고조선이라고 해야겠지.”

저 생각하는 듯한 표정. 맘에 들지 않는다.

“하……! 그래? 뭐, 네가 단군이라도 되나 보지?”

“오… 그래도 역사 공부는 했구먼. 맞네. 내가 바로 단군일세.”

“…뭐?”

그 말에는 나뿐만이 아니라 이곳 모두의 얼굴에서 얼이 빠져 버렸다. 그리고 반응이 없는 트루 딕텍션 마법에, 나는 황급히 마법이 해제된 것이 아닌가 살폈다. 그러나 마법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아니… 이런 시발. 어디까지 믿어야 되는 거야 대체.”

기분 나쁜 노인네가 오더니 묘하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뿌려 댔다. 그러더니 이제는 지가 단군이라는 이런 미친 소리를 해 대는데, 그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까? 뭔가 홀린 것 같아 화도 났다.

“허허허허. 그렇게 놀라지 말게. 오천 년을 살았다는 것도 사실인데, 내가 단군인들 뭐, 놀랄 게 있나?”

자리에 앉은 이들 모두가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현재 이 땅은 잿더미가 될 위기에 있네. 어떻게 할 텐가?”

그 얼빠진 얼굴들을 노인이 다시금 현실로 돌려놨다. 그러나 노인네가 잘못 짚은 것이 있다.

“상황 파악을 잘못한 것 같은데, 제안은 내가 하는 거야. 선택은 네 몫이고.”

놈의 실눈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열심히 한다면 내가 그리는 그림에 넣어줄 수도 있고. 어떻게 할래?”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의 입이 열렸다.

“그렇게 하겠네.”

“어떻게 한다고?”

“열심히 하겠네.”

그는 담담했다. 별로 자존심 상해하는 것도 없었고, 무덤덤한 목소리였다.

“그래. 그건 그렇고…….”

순간 노인의 몸이 허공에 붕 떴다. 그리고 그 무겁게 내려앉았던 눈꺼풀이 위로 솟으며 눈동자가 드러났다.

“쥐새끼처럼 남의 집을 허락도 없이 들락거린 죗값은 치러야지?”

와장창. 강력한 마법의 힘으로 옭아맨 노인을 마당 쪽으로 날려 보냈다. 응접실 유리창을 뚫고 마당까지 날아간 노인은 그대로 마당에 내리꽂혔다.

강력한 힘은 마당을 뒤집어 놓으며 노인을 지하 깊숙이 처박았다. 아래에서 관이 터진 건지 박살이 난 마당에서 물이 치솟았다.

꿀꺽. 응접실에 앉아 있는 이들의 목에서 그런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진한 긴장감 속에서 내가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이제…….”

그 순간 뭔가가 박살 난 마당에서 솟아올랐고, 순식간에 응접실에서 노인네가 모습을 드러냈다.

“늙은이를 대하는 게 너무 거칠구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치고는 옷에 흙먼지 한 톨도 묻지 않았다.

“실없는 소리는 됐고…….”

응접실 창문에 복구 마법을 걸어 다시 깨지기 전으로 복원시키고는 말을 이었다.

“더 올 사람 없으면,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고.”

그림을 그려 보기 전에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일본, 중국과 한국의 전력 차이였다. 어느 정도로 얼마만큼 차이가 나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방위청장이 알려 준 숫자만으로는 그 차이를 명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등급이라는 것이 갭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어느 정도 레벨에 올라 있는지를 내가 모르기 때문이다.

“2급 각성자들은 너희들을 보면서 어느 정도 실력인지 알겠는데, 1급은 대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오는군.”

일본은 1급이 10명, 중국은 7명이라 했다. 거기다가 일본에는 계시자 하나와 관조자 둘에 주시자 일곱이 붙어 있고, 중국에는 주시자만 열넷이 붙어 있다고 했다. 그 주시자들과 관조자들도 실력들이 제각각이라, 현재 1급 각성자와 비슷한 레벨의 주시자도 존재한다고 했다.

“느껴 보시는 것이 제일 좋긴 한데…….”

청장이 고민을 하는 사이, 노인이 해답을 내놓았다.

“우리 주시자들을 데려와서 비교를 해 보는 게 좋겠군. 그 녀석들이 1급 각성자보다 강하긴 하지만,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닐세.”

“흠…….”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복잡한 전략보다는 급습, 일격필살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아직 전력 차이를 완전히 알지 못했지만, 기에테라는 변수가 등장하면서 그 격차가 더욱 커졌다는 것은 인지했다. 그 정도는 숫자 차이로 알 수 있으니까.

내가 마법을 걸어 준다고 해서 전면전을 해 볼 만한 수준은 아닐 거다.

역시 선공만이 답이었다. 선공으로 주력들을 모두 죽이고 주도권을 쥐는 것. 그것만이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만약에 수비를 선택했다가는 아마 참담한 현실과 맞닥뜨리게 될 확률이 아주 높았다. 내 힘으로 결국 이기더라도, 아마 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겠지.

“아니… 그… 괜찮겠습니까?”

내 계획을 들은 모두의 반응은 비슷했다. 어이가 없는 것을 넘어, 미친놈을 보는 듯했다. 홀로 적진 중심부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까.

적의 규모도, 정확한 전력도 파악하지 않은 채 적의 아가리 안에 들어가는 것. 그 얼마나 오만하고, 미친 짓이란 말인가? 그러나 나는 자신이 있었다. 정말 ‘신’ 그 자체를 데려오지 않는 이상 나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 자신했다.

“어. 괜찮아. 너희들만 제대로 해 주면 돼.”

그래도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비 정도는 해야 했다.

“일본의 귀환자도 마찬가지지만, 계시자와 관조자들도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닐세.”

“뭐가 어찌 됐든 방법은 이것뿐이야. 그놈들이 역으로 공격해 올 경우 우린 놈들의 수뇌부뿐만 아니라 일본 전력 전체를 상대해야 한다. 그것도 전략적으로 침공해 오는 상대를 말이야. 그게 가능하겠어?”

그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그래도 홀로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하네. 주시자 하나를 데려가는 게 어떻겠나?”

“하나?”

“관조자와 비슷한 무력을 지녔네. 과거 직급이 낮았을 뿐. 무력은 내게 견줄 만하네.”

“그건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고… 내가 지금 바쁜 일이 있다, 손.”

모인 지 이미 1시간이 넘게 흐른 상태. 나름의 배려심으로 물어봤다.

“30분 뒤에 기관장들과 회의가 잡혀 있습니다.”

대통령 고귀재였다.

“그래? 그럼 내일 밤 10시에 다시 이곳으로 모이는 걸로. 이 회의에 대해서 발설했다가는 단단히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거야. 나는 그런 놈들을 반드시 찾아내서 잔인하게 응징하거든.”

진득한 살의를 풍기자, 모두들 숨을 헙, 하고 들이마셨다. 재수 없는 노인네만 빼고.

“자, 모두 일어서고. 그래도 더 할 말이 있는 사람은 남아서 하고 가고.”

협회장이 할 얘기가 있어 보이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여지를 뒀더니, 역시나 협회장만 남고 모두들 퇴장했다.

“할 얘기가 뭐지?”

우물쭈물하는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아까 전 단군 어르신 말입니다만, 저와 방위청장의 스승입니다.”

“아~”

별 감흥 없는 내 목소리에 녀석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아니, 그냥 대충 그럴 거 같았어. 조방인 같은 놈들이야 본능적인 힘이지만, 기력과 마력은 쌓아 온 게 없다면 스스로 개척해야 하지.”

“아…….”

“당연히 뭔가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까 노인네 말에서 기에테들이 각성자들을 키운다고 하더군.”

“그렇군요.”

녀석이 고개를 떨궜는데, 뭔가 똥 덜 싼 얼굴이 거슬렸다.

“뭐, 또 할 얘기가 있나?”

“일본에 가실 때 저를 꼭 데려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녀석은 진지하면서도 적극적인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왜지?”

“천황의 심복 중 한 놈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습니다.”

복수심. 빛바랜 분노가 녀석의 눈동자 너머에 있었다.

“봐서.”

녀석은 답 없이 그저 가만히 있었다.

“상황 봐서 데려간다고. 더 할 말은?”

“없습니다.”

사정은 깊어 보였으나 그건 둘째 문제였다.

“가 봐. 나는 마당 정리도 해야 하니까.”

마당 쪽을 보니, 아까 솟구치던 물줄기는 사라져 있었다. 두 비서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더니 막아 놨나 보다.

“예. 그럼.”

입을 꾹 다문 녀석은 허리를 한 번 꺾고는 나갔다. 홀로 남은 응접실. 복잡한 머릿속에서 한 가지 호기심이 불쑥 솟아올랐다.

프리메이슨이라…….

기력과 마력 없이 오천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버텨 낸 존재들. 그들이 본래 가진 힘들은 얼마나 강할지, 또 얼마나 악한 놈들일지.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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