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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15화 (1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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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스터는 총 두 명으로, 각기 다른 파벌인 듯 분위기가 달랐다. 한 놈은 너무나 담담한 얼굴에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고, 한 놈은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만 뭔가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눈에 담지 않고 얘기했다.

“청장, 협회장, 두 부 마스터는 모두 1시간 뒤 우리 집으로 모이도록. 중요한 할 얘기가 있다. 일정이 있다거나 그런 소리는 하지 말고. 대통령도 부를 거니까 모두 참석하도록 해.”

다행히 뻗대는 놈 없이 모두 수긍했고, 각자 흩어졌다. 그리고 정확히 1시간 뒤 대통령, 방위청장, 각성자 협회장과 두 부마스터가 모두 우리 집으로 모였다.

“대통령은 조금 전 내 연설을 들었나?”

“예. 들었습니다.”

“좋아. 그럼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도록 하지. 나는 앞으로 이 쓰러진 나라를 일으켜 세울 참이다.”

자리에 앉은 모두의 동공이 커졌다.

“그에 따라 모두들 협조해 줬으면 한다.”

잠시 생각을 하더니, 가장 먼저 대통령 고귀재의 입이 열렸다.

“먼저 귀환자님께서 이런 크나큰 결단을 내려주신 데에 정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다만, 귀환자님께서 어떤 경위로 그런 결단을 내리셨는지 알려 주신다면, 저희가 결정을 내리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길잡이가 될 듯싶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동기부여가 필요하겠지.

“지금 이 위층에는 어제 혜화동에 거대한 화염 재해를 불러일으킨 아이가 있다. 광해 길드에도 함께 갔었던 수현이라는 아이지. 내 연설을 들었다면 알겠지만, 그 아이는 고강도 학교폭력에 시달렸던 아이다. 그런 그 아이에게 이 나라에서 살고 싶냐고 물었더니, 확실히 살고 싶은 건 한국이라고 하더군. 보호자도 없이 홀로 사회에 내던져진 아이가 그래도 이 나라에 살고 싶어 하는데, 그 아이의 보호자로서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일순간 장내에 침묵이 깔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위청장의 입이 먼저 열렸다.

“귀환자님께서는 오신지 고작 9일밖에 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무슨 연유로 수현이라는 아이의 보호자를 자처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뭔가 청문회 분위기가 났지만, 나의 계획에 동참시킬 이들의 의구심을 풀어 줄 의무가 내게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수현이라는 아이는 마나의 선택을 받은 자다. 의지만으로 마나를 다루는 실로 놀라운 재능이지. 내가 있던 세계에서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이라고 했어. 내가 이 아이의 보호자가 된 이유는, 이 빛나는 재능이 버러지들에 의해 묻혀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리고 과거 나의 다짐을 지키기 위해서다.”

진실 그대로를 얘기해 줬다. 그러나 다짐에 대한 자세한 것은 얘기하지 않았다. 굳이 그것까지 말해 줄 필요는 없으니까.

“과거의 다짐이라면…….”

“너무 자세한 건 바라지 마.”

그에 방위청장은 깔끔하게 물러났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제 요구에 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위청장 이놈은, 어떨 때 보면 로봇의 탈을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너무 재미없는 놈이야.

“귀환자님의 계획에 적극 동참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협회장이 자신의 답을 얘기했고, 이어서 눈치 보던 두 부 마스터들이 잽싸게 따라붙었다. 그리고 대통령과 청장이 긍정적인 답을 내놨다.

“자, 그럼 다 동의했으니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지금 이 자리는 아마도 미래의 한국을 논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그런 중요한 자리에 아무리 대한민국 3대 무력 집단이라지만, 이 부마스터들이 이렇게 참석하게 한 이유는, 바로 광해 길드가 나의 계획의 밑바탕이 될 집단이기 때문이다.”

녀석들은 내 시선을 받아내지 못하고 그저 시선을 돌리기 바빴다.

“광해 길드와 내가 엮인 것은 우연의 연속이지만, 나는 이 나라를 일으키는 데 길드를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다시 말해, 이 나라의 중심이 광해 길드가 될 것이라는 소리다.”

그제야 맘에 드는지 둘의 낯빛이 조금 나아졌고, 나와 눈을 맞추기도 했다. 그에 피식 웃은 나는 말을 이어 갔다.

“국력이 주변국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조만간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말들도 많다고 들었다. 사실인가?”

협회장이 빨랐다.

“예. 맞습니다. 일본과 러시아, 중국 녀석들은 틈만 보이면 한국으로 전력들을 투입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뭔가를 준비하는 움직임이 수도 없이 포착되었습니다. 아마 조만간 큰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때를 전쟁의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땅이 적들의 전쟁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기간이 대충 얼마나 남았다고 보고 있지?”

이번에는 청장이 대답했다.

“일본 측 움직임은 예측하기 어려우나, 중국 측은 대규모 각성자 양성과 주요 각성자 전력들의 전진 배치 등. 저희가 파악한 것에 의하면 아마도 한반도 상륙이 임박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남은 시간은 길어야 2개월 안쪽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짧으면 당장 2주 안으로 뭔가를 벌일 수도 있고요.”

“얼마 안 남았다. 이 얘기군.”

“예.”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나라를 일으켜 세우려면 전쟁 억제력이 있을 정도의 무력이 필요하고, 이 나라가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아야 한다. 잃어버린 것들은 내가 두들겨 패서라도 되찾을 수 있다. 이번 수락산 차원 관문 때처럼 말이지. 그러나 전력 증강은 다른 문제다.”

전력 증강이 쉽게 이뤄질 리가 만무했다. 그것도 한두 달 안에 강해지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

“그러나 내게 방법이 있다. 만일 침략이 이뤄질 시 이 땅의 각성자들에게 그들을 저지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을 쥐어 줄 수 있다.”

“이 땅의 각성자라면…….”

“국내 전투 인원 전부에게 내가 힘을 실어 줄 수 있다는 말이지.”

이제야 궁금한 표정이 된 청장이 물었다.

“약물… 같은 것입니까?”

“약물은 너희들도 구할 수 있잖아?”

“아… 그게, 각성자들이 유의미한 파워 업을 하기 위한 약물은 귀해서 구하기가 힘듭니다.”

“그래?”

가만. 내가 너무 쉽게 봤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타국과 한국 간의 무력 차이를 나는 모른다. 조금 전 내 말은, 현재 이 세계가 워낙 미개한 수준이기에, 그저 내 실력에 자만하여 했던 말이었다.

흠…….

확실히 전력 차이를 좀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그때 누군가 뒤쪽 복도에서 저벅저벅 그 기척을 드러냈다.

“아니, 근데 이 노인네가 돌았나…….”

그 존재감을 감지하자마자 짜증이 와락 솟구쳤다. 왜냐하면, 그는 며칠 전 내 집을 무단으로 침입했던 노인네였으니까.

몰래 남의 집에 침범해서는 협박을 하더니 마당을 뒤집어 놓고 가질 않나. 확실히 호승심이 솟구칠 정도의 무력을 내 앞에서 보여 주긴 했으나, 확실히 짜증 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화가 날 정도로 무례했다.

아무런 기척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타났다 한다는 것. 마치 정말로 존재 자체를 세상에서 지워 버린 것처럼, 결계를 드나들 때도, 내게 접근할 때도, 스스로 기척을 드러내지 않으면 알아챌 수가 없었다.

아주 성가신 놈이야.

눈에 살기가 차올랐다.

* * *

각성자 협회장 박창식은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소름을 느끼며 부르르 떨었다. 순식간에 장내 공기가 차갑게 식으며, 그의 등판에 한기가 엄습해 왔다. 그것은 귀환자가 짜증스러운 말을 혼자 중얼거리고 나서부터였다.

‘대체…….’

그리고 뒤늦게 그는 응접실 밖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평소에 예민한 상태였다면 진즉 알아챘을 테지만, 귀환자의 기세에 눌려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응접실의 출입구에 구부정한 노인이 하나 나타났다.

“아… 닛…….”

협회장은 그 노인을 보자마자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묵직한 공기 탓에 입이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노인네라고 봐주지도 않을 거고. 네가 무슨 능력으로 그렇게 쥐새끼처럼 남의 영역을 드나드는지 모르겠는데, 내 분명히 경고했는데 다시 왔다는 것은 목숨을 걸었다는 거겠지?”

생각보다 차분한 귀환자의 말이었지만, 그 말에 담긴 무게는 상상을 초월했다. 벌써 대통령 고귀재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으니까.

“시우 님, 대통령을 잠시 밖으로 모셔도 되겠습니까?”

“어. 잠시 나가 있어라. 이 시발 노인네 때문에 중요한 타이밍 다 망치네.”

귀환자의 욕설에 협회장은 터질 것 같은 심장에 숨을 헉 하고 들이마셨다. 왜냐하면 지금 귀환자가 막 대하고 있는 그 노인은 바로 그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그 귀환자의 말에 노인은 허허 웃으며 입을 열었다.

“허허… 그리 화내지 말게나. 자네가 뭔가 큰일을 벌이려는 느낌이라 와 봤는데, 잘 왔구만. 나도 할 얘기가 있어서 왔네. 자네의 분노는, 얘기를 다 한 후에 내가 다 감당하겠네.”

귀환자는 피식 웃더니 갑자기 미친 듯이 웃어재꼈다.

“이… 시발.”

욕을 섞어 가며 킥킥대던 귀환자는 뒤를 보지도 않고 손짓했다.

“어, 그래. 들어나 보자. 지루한 얘기 늘어놓으면 알아서 해라.”

“걱정하지 말게. 다 듣고 나면 생각이 많이 달라질 게야.”

귀환자는 대통령을 다시 불러들였고, 강력한 살기와 힘 앞에서도 그가 졸도하지 않을 수 있게끔 마법을 걸어 줬다. 그리고…….

“네가 개소리를 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는 알아야지 않겠어?”

놈에게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마법을 걸었는데, 노인네는 자신에게 마법을 거는 내 모습을 아무 말 없이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흠… 얘기를 하자면, 오천 년쯤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네.”

* * *

노인네가 하기 시작한 얘기는, 솔직히 말하자면 터무니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소설을 쓰고 앉아 있다고 하기에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마법에 걸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거기다 중간에 중지시킬 만큼 지루하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굉장히 흥미로웠다. 호기심이 많은 나 같은 마법사들에게는 아주 맛있는 디저트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허황되어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가 말하길, 본래 인류는 마나와 기를 다뤘고, 그것들을 다루는 이들을 ‘기에테’라고 불렀다고 했다.

당시 세계는 마법을 기반으로 세워진 발전된 문명들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5,000년쯤 전 일어난 거대한 전쟁에 전 세계는 폐허로 변해 버렸다고 했다.

그렇게 멸망을 향해 달리고 있었던 인류의 앞에 차원을 넘어 어떤 존재들이 나타났는데, 인류는 그들을 ‘전도자’들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들은 마치 신과 같은 권능으로 인류의 전쟁에 막을 내리게 만들었네. 실로 무시무시한 힘이었지.”

노인네는 정말로 옛일을 생각하는 듯 감상에 젖어 있었다.

“그들은 인류에게 기력과 마력 같은 초자연적인 ‘힘’들이 위험하다고 판단했고, 망각의 술법을 걸었네.”

그러니까, 다들 힘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것을 인지도 못 하고, 사용하는 법도 모르는, 그런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도 대대손손 기한이 없는 망각이라 했다.

터무니도 없지.

그렇게 모든 힘들을 잊어버린 인류에게 그들은, ‘흑백의 경전’이라는 거대한 성전(聖典)을 주며, ‘백익교(白翼敎)’를 전파했다고 했다.

전도자들이 돌아간 후, 인류는 백익교와 ‘과학’이라는 것을 기반으로 문명을 재건해 나아갔고, 공백의 역사는 신화와 전설로 메꿨다고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기에테들은 깨달았네. 자신들이 늙지 않는다는 것을.”

수천에 달했던 기에테들은 자신들의 노화가 정지됐다는 것을 깨달았고, 더불어 신체의 기능들이 과거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챘다고 했다.

힘을 가졌을 때와 비슷한 신체기능이라면, 거의 불사로군.

“자네는 죽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나?”

뜬금없는 노인네의 물음에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글쎄.”

“기에테들의 우두머리들은 역사를 조작하기로 했네. 그것도 흑백의 경전을 마치 계시록인 양 앞세워서 말이지.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그들은 먼저 과거 백익교의 흔적을 지워야 했네.”

그들은 차근차근 지구상에서 백익교의 흔적을 지워 나갔고, 오랜 세월이 흘러 비로소 그들이 역사를 다시 만들 준비를 완료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가장 먼저 세계에 힘 있는 국가들의 정재계 인사들을 모아 비밀스러운 집단을 만들었는데, 이름하여 ‘프리메이슨’이라고 했다.

그건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느낌이군.

그 조직이 생긴 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쯤.

그들은 흑백의 경전을 가짜 계시록으로 둔갑시켜,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신의 사도와 같은 느낌으로 각국 인사들을 속였는데, 일부러 그 계시록에 있는 사건을 일으킴으로써 자신들의 영험함을 각인시켰다고 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그들은 전 세계의 역사를 주무르기 시작했고, 1,000년 동안 그들의 손아귀에서 세계역사의 흥망성쇠가 결정되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수천에 달하는 기에테들이 모두 같은 생각은 아니었고, 모두가 프리메이슨에 협조하지는 않았네. 그래서 프리메이슨은 그들을 제거하기로 했지.”

이후 수많은 기에테들이 죽어 나갔다고 했다. 소문을 듣고 고개를 숙이는 이들은 살았고, 뻗대는 이들은 모조리 죽어 나갔다고.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8년이 되었고, 이 세상에 걸려 있던 망각의 주술이 깨졌네. 그와 동시에 우리 기에테들은 과거의 힘을 되찾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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