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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12화 (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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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이 죽었다는 말이지?”

추살대장의 경쾌한 목소리에,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은 두 추살대원들이 벌벌 떨었다.

“좋아~ 좋아~ 아~ 주 좋아. 귀환자도 아니고 방위청장이라…….”

대장의 얼굴에 광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니들은 추살대의 얼굴에 똥칠을 했으니,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라.”

“사, 살려 주십시오. 대장……!”

“뭐?”

순간, 대장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그러곤 눈으로 좇기도 힘든 참격이, 입을 열었던 대원의 어깨를 훑고 지나갔다.

“크아아압……!”

어깨부터 떨어져 나간 팔에,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를 가까스로 참은 대원은 고통에 머리를 땅에 박았다.

“죽여 달라고 애원하고 싶으냐?”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

“흐, 압… 아닙니다.”

“이 둘을 ‘악마굴’에 처넣어라.”

“아……! 대, 대장님! 대자앙님!”

둘은 순식간에 끌려서 사라졌고, 재빠르게 걸레를 들고 나타난 잡부들이 추살대원이 흘린 피와 팔을 치웠다.

‘쓰레기들이 감히 대국(大國)의 전력에 손실을 입혀?’

추살대장 ‘가오윈샹’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거룡성(巨龍城)에 입성할 것이니, 연락을 넣어라.”

“예.”

* * *

거룡성(巨龍城). 거대한 용의 형상을 한 성으로, 스스로를 대국(大國)이라 칭하는 중국을 지배하는 ‘반고’가 기거하는 곳이다.

“암내가 진동을 하는구나. 어서 이리 다가오거라.”

높은 층고를 가진 거대한 방 안에, 커다란 목소리가 울리며 압도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그에 멀찍이 떨어져서 벌벌 떨고 있던 한 여인이 조금씩 앞으로 움직였다.

“지금 나의 화를 돋우는 것이냐? 당장에 찢어 먹어 버릴…….”

거인족을 방불케 하는 거구의 사내가 잔뜩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나던 그때. 인터폰이 울렸다.

“무엇이냐?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네놈을 찢어 버릴 것이야.”

으르렁대는 것 같은 음성에는 살기가 진득하게 묻어 있었다. 그럼에도 인터폰 너머에서는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추살대장 가오윈샹이 긴히 드릴 말이 있다고 합니다.”

“흠-! 들어오라 해라.”

짐승 같은 콧김을 뿜은 거구의 사내의 눈매가 좁아졌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커다란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여흥을 즐기시는 중에 이렇게 무례를 범하여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기에 내 흥을 깨트리는 것인지. 들어나 보자.”

거구에서 뿜어져 나온 살기가 커다란 방 안을 가득 채웠고, 옆으로 물러나 있던 여인은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걸어 들어온 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부복하더니 말했다.

“한국을 짓밟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뭐?”

“오늘 추살대 두 명이 한국의 각성자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이것은 대국에 대한 명백한 적의이며, 도전이라고 사료됩니다.”

“그건 확실히 그래. 그러나 거사 준비는 아직 덜되었다.”

“맞습니다. 아직 한 달은 더 준비해야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건을 그냥 지나치면 분명히 일본과 러시아를 포함한 세계가 비웃을 겁니다.”

“한 달 뒤에 있을 거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네 선에서 알아서 잘 처리해.”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백발 놈은 건드리지 마라. 그놈은 거사 당일에 내가 처리할 거니까.”

“명심하겠습니다.”

* * *

대한민국 3대 길드 중 하나인 ‘광해’ 길드에 초비상이 걸렸다. 왜냐하면 광해의 수장 조방인의 아들이 실종됐기 때문이다.

각성자의 방화로 추정되는 대규모 화재가 일어난 혜화동. 그 근처 CCTV에서 조성진의 이동 흔적은 찾았지만, 그 흔적은 다른 흔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아무래도… 화염 속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부릅뜬 조방인의 눈에 터질 듯 핏발이 솟았다.

“찾아.”

“예?”

“불 지른 놈을 찾아라. 그리고 성진와 같이 있던 녀석들도 모조리 추적해서 소재 파악해.”

“예. 금방 찾아오겠습니다.”

“확실하게 찾아와라.”

아들의 상태가 점점 죽음으로 귀결되자 조방인의 어금니가 꽉 깨물려졌다.

쾅-!

일격에 책상이 박살이 나며, 불이 붙어 주변으로 흩어졌다. 대리석 바닥에 떨어진 책상의 조각들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재가 되어 흩날렸다.

“으아-!”

조방인은 소리를 지르며, 삭이지 못한 분을 풀어 냈다.

‘어떤 놈인지 반드시 찾아내 단죄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앗아간 놈을 찾아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이리라 다짐했다.

* * *

두 비서와 나와 수현 이렇게 넷이 모인 점심 식사는, 나의 일방적인 이야기로 진행됐다. 마계에서 내가 듣고 겪었던, 마나의 선택을 받은 자들에 대한 이야기와 내가 다짐을 하게 된 계기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두 비서는 가식이 섞인 상태로 내 이야기에 심취하고 있었고, 수현이는 조용히 식사를 하며 내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고개를 들었는데, 그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네 능력을 자각했구나.”

그녀의 눈빛에 희미한 마력이 돌고 있었다.

“네. 아저씨 말이 진실이라는 걸 느꼈어요.”

그 말에 내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적응이 빠르네.”

“아저씨의 진심도 느꼈어요.”

어떻게 보면 공허함이 아직 남아 있는 듯한 눈으로 내게 말했다.

“그래서 아저씨 말을 일단 믿어 보기로 했어요.”

그렇게 성공적인 점심 식사가 끝났다. 오늘은 첫날이니 수업은 내일부터 하기로 했다. 그리고 김 비서를 따로 불러냈다.

“수현이 보호자로 내 이름 올려놓고, 사는 곳은 나랑 같은 곳으로 해놔. 학교는 일단 휴학 처리해 놓고.”

“네.”

수현이에 대한 신상 명세서를 본 나는, 그 아이가 아무런 보호자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가 수현이의 연고가 되어 주기로 했다.

“수고해.”

“넵.”

담배 한 대를 태우며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바로 마당 잔디밭에 나아가 양반다리로 앉아 깊게 심호흡했다.

“후읍- 하아-”

간만에 제대로 마나 수련을 하기 위함이다. 마나 수련은 마나와의 친화력을 높이고, 심신을 안정되게 하며, 신체기능을 향상시킨다.

마법사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 조금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마나 수련을 하면 마력이 높아지고, 마력 고리가 늘어나는 줄 아는데, 마나 수련은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련이다. 호흡을 통해 마나를 들이마셨다가 뱉는 신체 기능 향상과 정신수양에 가까운 것이 바로 마나 수련.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마나 수련은 바로 ‘마력 단련’이다. 마력이란 마나를 움직이는 ‘힘’으로, 기를 움직이는 힘인 ‘기력’과 비슷한 맥락이라 보면 된다.

‘힘’은 언제나 단련을 통해 그 크기를 불려간다. 무조건 많이 쓰고, 한계치까지 몰아붙이는 단련을 지속적으로 해야만 한다. 그래야 마력이 커지고, 심장의 마력 고리도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마계에서의 수십 년간 거의 습관적으로 마력 단련을 해 왔다. 틈만 나면 하는 것이 마력 단련이고, 마나 수련이었다. 그 결과, 나의 심장에 열두 개의 마력 고리를 가질 수 있었고, 칠대제의 자격을 얻고 난 뒤에는, 고리 열세 개의 벽 앞에 설 수 있었다.

그러나 열세 개의 벽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열두 개의 고리 때와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정말 불가능한, 내 재능의 한계 같은 느낌이었다.

“흐읍- 후우-”

잡념을 날려버리고, 제대로 마나 수련에 돌입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눈을 떴을 땐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진득하게도 보고 있구나.”

마나 수련 내내 시선을 느끼고 있었지만, 가만히 놔뒀다. 그런데 수련 시간 내내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일어서서 뒤를 돌아보니, 2층 발코니에 수현이가 한층 더 좋아진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게 무슨 수련이에요?]

순간 머릿속을 파고든 음성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는데, 벌써 상대 정신에 연결이 가능하다고?

수현이를 보고 있으니, 마나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 왜 그렇게 숨어 살아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정말 무서운 재능이다.

[마나 수련이다. 몸과 정신을 치유하고, 최고의 상태로 끌어올리며, 더 나아가서는 몸과 정신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수련이지.]

[아… 그렇군요. 마나가 계속 아저씨 주변을 맴돌고 들락거려서 계속 보고 있었어요. 흐름이 신기해서… 주변에 마나가 저 높은 하늘에 있는 마나까지 모두 다 아저씨의 호흡이랑 연결되어 있더라구요.]

내 마나 장악력은 이미 초월적인 경지를 넘어선 지 꽤 됐다. 그렇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

아저씨라고?

“으흠.”

[이제는 스승님, 사부님, 선생님. 이런 호칭들을 써야 하지 않겠냐?]

그에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뇨.]

너무 단답이라 뭐라 할 말을 잃었다.

뭐지?

[저는 아저씨라 부르는 게 편해요.]

순간. 이 녀석이 나를 너무 편하게 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나를 편하게 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나 또한 편하게 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의 스승, 할배가 살해당한 이후. 줄 곧, 복수와 도전, 쟁취의 삶을 살아왔다.

그렇기에 수직적인 위계를 벗어날 틈이 없었다. 사람을 의심하여 가까이 하지 않기에, 제자 또한 만들지 않았고, 혼인 또한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관계가 나에겐 낯설게 느껴졌다.

[그럼 사부로 합의 보자.]

한참이나 말이 없어졌다. 마당에서 2층 발코니를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뭐… 그래요. 사부.]

수현이는 그 말을 끝으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내 입가에는 나도 모르게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 그때 저택의 입구 계단 쪽에서 나와 수현이의 무언의 접촉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던 남 비서가 걸어왔다.

“왜?”

“아, 일단 그 앞마당만 500평짜리 집을 찾았습니다. 또 하나는 이천오백 평짜리 땅을 가진 집인데, 안산에 있는 각성자 트레이닝 센터를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거기 폐쇄하고 다른 곳에 더 큰 트레이닝 센터를 짓기로 계획이 되어 있어서요. 그래서 그 폐쇄한 트레이닝 센터를 없애지 말고, 좀 다듬어서 시우 님이 쓰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여기 사진입니다.”

영상으로 보기엔 앞마당만 500평을 가진 집은 내가 원하던 것보다 좀 모자라 보였다. 그에 반해 안산 각성자 트레이닝 센터는 천 평이라는 커다란 평수에 꽤 만족스럽게 생겼다.

“트레이닝 센터를 옮기는 쪽으로 가는 게 좋겠다.”

“넵. 그럼 그 가운데 돔만 빼서 이쁘게 다듬어서 옮기겠습니다. 한… 기간은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작업 공정이 좀 많을 것 같아서요.”

“그래. 그래. 확실하게만 해.”

“넵. 그리고 여기… 새로운 비서 리스트입니다. 이 중에서 한번 보시고 골라 주시면 됩니다. 요렇게 누르시면 영상도 나옵니다.”

태블릿 PC라는 것을 집어 들고, 손가락을 이용해 여러 명의 프로필을 검토했다. 영상들도 빠짐없이 봤다. 그리고 한 사람을 골랐다.

“주은서. 이 친구로 해.”

“넵.”

그렇게 마무리하려는 찰나 김 비서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시우 님, 전화… 받아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뭔데?”

김 비서의 얼굴이 썩 좋지 못했다.

“그… 광해 길드의 마스터인데, 수현 양 관련해서 드릴 얘기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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