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똑똑똑.
문을 열고 들어가자, 조금 전 불길 속에서 구해 온 조그만 여자아이가 침대 위에 앉아서는, 공허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까보다 더 작아 보이는 느낌이군.
중학교 3학년이라고 들었는데, 중학교 3학년치고는 좀 작은 느낌이었다.
“좀 괜찮냐?”
나의 능청스러운 물음에, 아이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직설적으로 되물어 왔다.
“귀환자신가요?”
“어.”
“절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아무런 감정이 없는 듯한 표정과 목소리에 ‘그녀’와 내 과거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널 내 제자로 삼을 생각이다.”
“…….”
내 말에 아이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앞으로 여기서 지내면 돼.”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우두커니 섰던 발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어 나갔다.
“넌 아주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네 능력은 너무나 강력해서, 통제를 하지 못하면 재앙 그 자체야. 그렇기에 반드시 통제하는 법을 배워야만 하지…….”
“무슨 말…….”
“네게 주어진 재능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라는 소리다.”
공허했던 아이의 눈빛이 조금 흔들리기 시작했다.
“네게 주어진 운명은 가볍지 않아. 상상을 초월하는 책임감이 뒤따를 거다. 당장 오늘만 하더라도, 너는 네가 있던 동네 전부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는지 알 수 없어.”
아이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젠 그 공허함이 아예 보이지 않게 되었다.
“거짓말.”
“사실이다.”
자신이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는 죄책감은 아직 없을 것이다. 눈으로 본 것도 아니니까. 그저, 자신이 들은 것이 사실일까 봐 두려운 것이겠지.
“난…….”
아이의 감정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억울함과 슬픔, 분노, 외로움. 여태껏 쌓아 왔던 수많은 감정이 북받쳐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이미 벌어진 일들은 돌이킬 수 없어. 앞으로 그러지 않으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네 스승을 자처하는 것이고.”
“대체 왜… 요?”
짙은 감정이 가득 찬 눈으로 날 쳐다봤다.
“과거. 너와 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과 만난 적이 있어. 외로움과 고통,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었지. 난 그 사람을 보며 결심했어. 만약에 내가 그 사람과 같은 운명을 타고난 이를 보게 된다면, 절대 그렇게 되지 않도록 도와주겠다고.”
펑펑.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이미 화염 속에서 아이의 감정을 온몸으로 겪었기에, 어떤 심정으로 눈물을 쏟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도록 내버려 뒀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진정되어 가자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신시우다. 넌?”
“정… 수현이요…….”
훌쩍거리며 얘기하는 아이의 얼굴은 처음보다 조금 나아져 있었다.
“이제부턴 내가 네 보호자다. 아무도 널 괴롭히지 못할 거야. 필요한 게 있으면 얘기하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나나 비서한테 얘기해.”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를 뒤로하고 돌아서서 나갔다.
“쉬어라.”
방에서 나간 나는, 1층으로 내려가 남 비서를 불렀다.
“남 비서.”
“옙.”
“좀 큰 집으로 옮겨야겠다. 건물 규모는 지금보다 더 큰 마당이나 커다란 공간이 있는 곳으로.”
“아… 넵.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사람 하나 더 뽑아야겠어. 저 녀석 전담할 사람이 필요해.”
“넵. 그런데…….”
놈의 눈빛이 저 여자애는 뭐냐고 말하고 있었다. 옆의 김 비서도 진짜 나의 의도를 알고 싶어 하는 눈빛을 살짝 보냈다.
“너희도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저 친구는 마력 각성자다. 그리고 지금 저쪽 동네를 다 태워 버린, 무시무시한 재능을 가진 친구지.”
“아… 지금 혜화동 화재를 낸 것이…….”
“그래. 물이나 보통의 방법으로는 끌 수 없는, 자 의지를 가진 불길.”
“아…….”
“저 애가 힘을 통제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아마… 이번 화재는 귀엽다고 느껴질 만한 재앙이 닥칠 거야.”
“아… 그래서 가르치시려고 데려오셨군요.”
“어. 뭐, 비슷해.”
“앞으로 같이 지내게 될 테니까.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
“넵.”
* * *
[영등포역 1번 출구 남쪽 길로 다섯 번째 골목. 마지막 타깃 발견.]
“추적 시작.”
네 명의 각성자들이 무전을 주고받으며,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중국에서 파견된 ‘추살대(追殺隊)’. 배신자들이나 도망자들을 찾아 생포 혹은 제거하는 임무를 맡은 이들로, 대부분이 2~3급 각성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에 반해 지금 타깃으로 된 원정대장 리우민타오는 3급 중간쯤 되는 실력을 가진 각성자로, 그들의 표적이 된 이상 도망치는 것이 불가능했다.
“헉… 헉…….”
빠르게 골목을 지나 대로변으로 나온 시점. 그는 완전히 포위되었음을 자각했다. 그리고 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드드드득……!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이 박살 나며, 대지가 솟아올라 끝을 날카롭게 벼려 냈다.
“ㅅ… 시발! 덤벼 이 개새끼들아……!”
“타깃 포위 완료. 저ㄱ…….”
쾅 소리와 함께, 건물 위에서 말하던 중국 추살대 하나가 나가떨어졌다.
“뭐냐. 너희들은.”
근처에 있던 추살대원 하나가 그 건물 옥상으로 재빠르게 넘어왔다. 그에 추살대를 공격한 한국 방위청 각성자들이 입을 열었다.
“대한민국 방위청 소속 각성자입니다. 추살 과정에서 민간인 피해 없이 진행해 달라고 부탁드렸었습니다만, 조금 전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보고 개입한 겁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와 싸우겠다고?”
중국 추살대원은 굉장히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민간인 피해 발생 시 저지하라는 상부의 지시입니다.”
슥-
말을 끝마친 한국인 각성자의 목이 허공을 날았다.
“공격을 받을 시 그에 상응하는 대응을 하라. 그게 우리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다.”
순식간에 일대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일곱의 한국 각성자들은 흩어지며 재빠르게 전투 진형을 갖췄고, 그에 반해 중국 추살대원들은 그 자리에서 공격 준비를 하는 것이 끝이었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얘기였다.
“아~ 이거이거… 말하고 있는데 공격하는 놈이 제일 싫은데.”
처음에 공격을 받고 나가떨어졌던 놈이 일어나며 궁시렁거렸는데, 그가 말을 마친 그 순간. 그의 목에 한줄기 선이 그어지며, 이내 머리가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너희들은 지금 한국의 각성자를 살해했다. 전멸해도 할 말이 없겠지.”
어느새 방위청장이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재빠른 참격이 그를 갈랐으나 이미 그 자리에 청장은 존재하지 않았고, 이어진 속박 마법이 그의 팔방(八方)을 막았다.
“공격.”
순식간에 여덟 방향이 봉해진 그는,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에 그대로 절명했다.
‘저놈들… 연계가 너무 빠르다……!’
분위기를 파악한 나머지 추살대원 둘은 일단 후퇴를 선택했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중국 원정대장은 연행해.”
“예!”
지시를 내리자마자 방위청장은 자리를 떴고, 현장 복원 팀이 투입되며 상황은 종료되었다.
* * *
“중국 추살대를 죽였다고?”
“예.”
“청장이?”
“예. 그렇게 들었습니다.”
보고받은 협회장 박창식은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꿍꿍이냐, 장진운.’
‘장진운’. 나이는 올해로 스물아홉에, 국방과 치안을 모두 아우르는 거대 기관인 방위청의 장을 맡고 있는 천재적인 그는, 카이스트 재학 중일 때부터 이름을 날렸던 브레인이었다.
거기다 각성 후 2년 만에 아카데미 졸업과 동시에 각성자 등급 2등급에 오른 세계에 내놓을 만한 천재였다.
그런 압도적인 스펙을 가지고, 타국으로 팔려 나가는 대신 국내 방위청장직에 오른 그를, 협회장은 대견하게 생각했다.
협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각성자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부터 지켜봤지만, 진운은 어디 하나 흠잡을 곳이 없는 인물이었다.
청장에 오르고 나서도, 깊은 생각에 조심성 있는 판단으로 언제나 분란을 만들지 않아 왔던 그였다. 그러나 갑자기 중국의 추살대를 제거해 버리는 과감한 판단을 내렸다. 그것도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것은 뭔가 그의 심경에 변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귀환자를 믿는 것이냐. 아니면 독단적인 판단이냐.’
자신보다도 더 깊은 생각을 가진 진운의 속을 들여다보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 * *
“다시 얘기해 봐.”
“그… 혜화동에 일어난 대형 화재로 인해… 서울과학고 학생들이 실종되었는데, 그 안에 조성진 학생이… 포함된 것 같답니다.”
“같답니다?”
순식간에 방 안에 온도가 급격하게 치솟기 시작했다.
“헉… 마… 마스터! 진정하십시오……! 죄송합니다……!”
광해 길드 마스터 조방인의 주변에 일렁이던 아지랑이가 점차 사라졌다.
“지금 당장 내 앞에 성진이를 데려와라.”
“예……!”
보고하던 비서는 고개를 숙이고는 헐레벌떡 방을 나섰다.
“헉… 헉…….”
‘뒤질 뻔했네.’
조방인의 비서는, 머리에서 줄줄 흐르는 진땀을 닦으며 서둘러 사무실에서 빠르게 멀어져 갔다. 그리고 대체 이 사실을 어떻게 전해야 좋을지 고민하며, 혹시라도 어딘가에 살아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그의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예? 불길 속에서 죽은 것 같다고요? 아니, 같다고 하지 말고. 좀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으세요! 시체를 가져오던지! 명확한 증거를 가지고 오란 말입니다!”
자신의 목숨이 걸려 있기에, 그는 불같이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은 그는 걸쭉한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 * *
“음…….”
마당 앞에 펼쳐진, 수십 개의 금빛 금속 링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있는 금빛 링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잡고 있는 것은 바로 네 개의 반지가 끼워져 있는 반지걸이였다.
그것을 보려 하자, 저절로 금빛 링이 움직여 내 앞으로 빠르게 이동해 왔다.
“이게 좋겠군.”
다섯 개의 푸른 보석이 박힌 이 반지는, 상위 등급 방어 마법이 걸린 반지형 아티팩트. ‘아말타이트’다.
기본적으로 외부에서 들어오는 물리적인 충격을 방어할 수 있고, 핵심 능력은 바로 정신 공격 방어 능력이다. 마법은 물론, 다른 방식을 통한 정신 공격도 다 방어해 낸다.
“그리고…….”
내 앞으로 또 하나의 금빛 링이 이동해 왔다. 금빛 링이 잡고 있는 목걸이 거치대에는, 큰 보석은 없지만 금빛과 은빛이 공존하는 신비한 느낌의 목걸이가 있었다.
그것은 ‘헤캄’이라는 이름의 목걸인데, 착용자의 몸에 침투하는 웬만한 독성 물질들을 모두 중화시켜 주는 아주 뛰어난 성능의 목걸이다.
이 정도면 됐고.
어차피 웬만한 공격들은 마나가 알아서 막아 주고, 반격까지 해 버릴 테니,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방어가 힘든 정신 공격이나 자신도 모르게 섭취할 수 있는 독 공격 같은 것만 주의한다면 살아가는 데에 큰 지장은 없으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 신경을 쓰는 것이 실로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스승 외뿔 할배가 떠올라 웃음기가 천천히 사라졌다.
불쌍한 할배.
“쯧.”
급 떠오른 할배와의 추억에 흐트러진 감정을 대충 갈무리하곤 집 안으로 들어갔다.
똑똑똑.
“얼굴이 좀 낫네.”
처음에 보이던 공허함은 싹 가셨다.
“진짜… 제가 그 동네를 잿더미로 만들었나요?”
“어. 궁금하면 방위청에 물어봐도 돼.”
죄책감. 그 얼굴은 죄책감에서 비롯된 괴로움이었다. 그래도 이 아이는 아직 마음이 모질어지지 않은 듯했다. 내가 스무 살이 넘어서 다시금 괴롭힘을 당했을 땐, 온 세상을 증오했었다. 나를 낳았던 알 수 없는 부모까지 저주했다.
하긴. 아직 중학교 3학년이니…….
“자, 받아.”
목걸이와 반지를 건넸다. 그것들을 받은 수현은 내 얼굴을 쳐다봤다.
“반지는 방어 마법이 잔뜩 걸려 있고, 목걸이는 해독 마법이 잔뜩 걸려 있다. 앞으로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정돈 가지고 있어야 돼.”
선물을 받은 수현의 얼굴은 전혀 선물을 받은 사람 같지 않았다.
“제게 뭘 바라시는 거죠? 제게 있다던 그 재능을 가지고 싶으신 건가요? 아니면 제 몸을 가지고 싶으신 건가요?”
극도의 경계심이 수현에게서 표출됐다. 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네가 외롭고 공허한… 괴로움으로 가득 찬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란다.”
단어 하나하나에 오랜 나의 바람을 담았다. 그러나 그녀는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왜… 죠?”
“넌 특별한 운명을 타고났으니까.”
“운명……?”
“아까 말했듯, 너와 같은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 사람과 같은 이들이 더 생겨나지 않았으면 했어. 그래서 반드시, 그런 운명을 타고난 존재를 만나게 된다면 도와주리라 다짐했다.”
아직도 납득이 안 되는 건지, 수현은 시선을 내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 부분은 내 천천히 설명해 주마. 곧 점심시간이니까 준비해라. 부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