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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파리 새끼들이 많이 꼬이네.
조금 전. 관문 밑에서 만난 한국 놈은, 높은 확률로 내게 접근하려던 놈이다. 90여 년을 살아온 나의 촉이었다.
“저거 뭐하는 놈인지 아는 사람?”
“음…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두 비서 모두 모른다고 대답했는데, 차원 관문 관리자로서, 내 뒤를 따랐던 두 놈 중 한 놈이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 제가 아는 게 맞다면 아마 각성자 브로커일 겁니다.”
“각성자 브로커?”
“예. 그… 국내 각성자들을 구워삶아서 해외 큰 길드나 타 국가로 넘기는 놈들입니다.”
“오호…….”
그런 쓰레기일 줄 알았다.
“예전에 브로커로 이름을 좀 날렸던 놈입니다.”
“근데 넌 왜 그놈한테 놈, 놈 하냐?”
“예? 아… 그… 하는 짓이 나쁜 놈이니까요.”
피식 웃었다.
“좋아. 그래도 데리고 다닌 보람이 있네.”
두 비서를 슥 훑자 둘 다 내 시선을 피했다.
“여기 알아서 정리해라.”
“ㅈ, 저!”
돌아서려는데 놈의 말이 나를 붙잡았다.
“뭐.”
“아… 그, 지금 중국 탐사대가 곧 나올 시간인…….”
마치 금속으로 된 물결이 찰랑거리는 듯한 이질적인 소리와 함께, 일대를 울리는 파동이 녀석의 말을 잘라 냈다.
“나올 시간인데 뭐?”
“저… 중국 놈들, 한국 사람들을 완전 사람 취급도 안 합니다. 특히 각성자들은 더 심하거든요. 아무래도…….”
“아~ 내가 여기 개판으로 만들어 놨으니까. 내가 책임져라?”
내 말에 녀석은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입을 쩌억 벌렸다.
“아… 아닙니다. 아니, 무슨 그런…….”
“알았어.”
사실 내가 이곳을 이렇게 쑥대밭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이 세계에서 귀환자가 가지는 의미로 볼 때 내가 귀환자라는 것을 밝히면 이렇게 막아설 놈도 없었을 것이고, 편하게 내가 할 일들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굳이 이렇게 쑥대밭을 만든 이유는, 바로 어제 대통령 녀석의 그 얼굴과 목소리가 맘에 걸렸기 때문이다.
마나는 스스로 선과 악을 구분하며,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줄 안다고 한다. 그런 마나의 느낌을 그대로 받을 수 있는 선택받은 이들은, 한 세기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극소수뿐이고, 아쉽게도 나는 그런 선택받은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선택받은 존재가 아니라도 간접적으로나마 마나의 그런 특성들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마나 수련.
오랜 마나 수련을 통해 마나가 가지는 그런 특성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게 되는데, 그걸 우리는 ‘마나 친화력’이 올라간다고 표현한다.
마나를 접한 지 벌써 60여 년. 나의 기형적일 정도로 특출 난 재능을 기반으로 한 마나 수련은, 마나 친화력을 비약적으로 높여 줬다.
그렇기에 나는 어느 정도 선과 악, 진실과 거짓에 대한 느낌을 마나를 통해 받을 수 있는 편이다. 그 느낌으로 고귀재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에게서 선함과 진심이 담긴 간절함을 느꼈다. 권력자에게서는 잘 받을 수 없는 특이한 느낌.
그것이 당시엔 내 마음을 돌려놓을 정도가 되진 않았지만, 밤새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켜 결국 아침이 되었을 땐 조금 돌아설 정도가 되었다.
어떤 놈들은 박장대소를 할 얘기지만, 사실 나는 그런 선한 간절함에 취약한 편이다. 아무튼 지금의 나는 도와주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
“따라와.”
나는 다시 걸음을 돌려 차원 관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엇……!”
가장 먼저 차원 관문을 통해 나온 원정대장 ‘리우민타오’가 발판을 밟지 못하고 아래로 추락했다. 급하게 끌어모은 기력으로 추락 충격은 상쇄했지만, 그의 기분은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왜냐하면 본래 위에 올라와 있어야 할 발판이 지면으로 내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ㅆ…….”
그러나 뭔가를 말하기도 전에, 자신과 같이 발판이 있는 줄 알고 나왔다가 추락하는 대원들 때문에, 먼저 발판을 위로 올려야 했다.
“후우…….”
십수 명의 부상자가 생기고 나서야 발판이 정상적인 높이로 올라갔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원정대 총무가 와락 인상을 구기며 대장에게 물었다.
“보다시피 습격을 받은 것 같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길에는, 본래 이곳 입구를 지키고 관리해야 할 인원들이 피떡이 되어 널브러져 있었다.
“어떤 미친놈이……!”
원정대 돌격팀장이 이를 으득 깨물었다. 그러던 그때, 내려가는 길목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숫자는 다섯. 정장을 차려입은 두 남녀와 세미 정장을 입은 백발의 남자. 그리고 이곳 차원 관문의 현지 관리자 둘.
“이런 쓸모없는 새끼들.”
그들의 모습에 돌격팀장의 눈이 뒤집어졌다. 그는 원래도 현지 관리자들에게 자주 화풀이를 해 대는 악덕이었지만, 이번에는 그저 몇 대 치는 정도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이 사태의 책임을 물어 반 죽여 놓을 생각이었다.
성큼성큼.
성질이 급한 돌격팀장은, 단번에 머리통을 뽑아 낼 것 같은 무시무시한 기세를 풍기며 걸어 내려갔다. 순식간에 그들의 코앞까지 도달한 그의 억센 손이, 현지 관리자를 향해 빠르게 뻗어 나갔다. 그러나 당황스럽게도, 그의 손은 관리자에게 닿지 못하고 허공을 날았다.
“손버릇이 지랄 같네.”
순식간에 오른팔을 잃어버린 돌격대장은,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마주한 싸늘한 눈빛에 그의 심장은 얼어붙어 버렸다.
“커……! 헙!”
왼손으로 심장을 움켜쥔 그는, 피를 흩뿌리는 오른팔을 휘저으며 그대로 중심을 잃고 무릎을 꿇었다. 그러곤 느꼈다.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것과 마주한 무력함을.
“이 새끼들은 그냥 심심하면 손을 뻗네. 힘 좀 쓰니까 뭐 좀 된 거 같냐?”
백발의 남자. 그의 손이 돌격대장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그러곤 그대로 질질 끌고 갔다.
“야, 손 가만히 못 있어?”
질질 끌려가며 오른팔을 허우적대던 돌격대장은, 왼팔로 오른팔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절단된 팔에서 오는 고통에도, 머리카락에 몸의 무게가 실리는 고통에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싸늘한 눈빛을 받은 그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느낌과 함께 입도 막혀 버렸기 때문이다. 뭐라 말할 수 없는, 포식자를 초월한 그 이상의 무언가와 마주한 기분. 그런 기분으로 그는 무력하게 질질 끌려갔다.
‘무슨 이런 위압감이……!’
원정대장 리우민타오는 다가오는 백발의 남자에게서 형언할 수 없는 압박감을 느끼며,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다. 마치 자신의 생명이,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이 곧 꺼질 것만 같은 느낌을 받으며, 무너져 내리려는 두 다리를 겨우 붙들었다.
처음에 돌격팀장의 팔이 잘렸을 때만 하더라도 공격 명령을 내리려 했었다. 그러나 이후 풍겨 온, 심장을 서늘하게 만드는 한기를 느끼면서부터 그는 사지가 굳어 갔고, 결국 백발의 남자가 돌격팀장의 머리채를 잡고 코앞에 도달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남자가 코앞에 도달하고 나자 어떤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을 울렸다.
“뭐만 하면 손부터 뻗는 개 같은 버릇은 각성하면서 달고 나오는 기술이냐?”
심히 불쾌한 표정을 한 백발의 남자에, 리우민타오는 머릿속으로 전해져 오는 기이한 대화법에 대해 의문을 품을 시간도 없었다.
“아, 아닙니다.”
그는 대답을 해 놓고도 말이 잘 전해졌는지 걱정했으나, 걱정이 무색하게 바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들은 이제 저기서 손 떼라.”
백발의 남자는 차원 관문을 향해 턱짓했다.
‘그건……!’
그의 말뜻을 인지한 순간. 중국 대륙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존재. ‘반고’가 떠올랐다. 중국 신화에 나오는 태초의 존재를 본떠 자신을 반고라고 칭한 그 포악한 존재는, 휘하에 ‘오마(五魔)’라 불리는 다섯 명의 악랄하고 무자비한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다.
자비가 없기로 소문이 자자한 그들의 앞에 가서 이 말을 전했다가는 무참하게 살해될 것이 뻔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안 된다고 할 수도 없었다.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존재도 오마들 못지않게 무자비한 존재라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백발 남자와 반고의 사이에서 죽음의 줄다리기를 하던 그는 결국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포기한 듯 순종적인 목소리. 자칫 잘못 심기를 건드리면 이 자리에서 팔다리 잃는 것은 예삿일이라는 생각에 소름이 리우민타오의 등허리를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극도의 긴장 속에서 상대의 눈치를 살폈다.
“다시는 이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라. 너희들을 포함한 너희 나라 인간들 전부. 이건 오늘부로 내 것이니까.”
“예.”
“알았으면 다 데리고 꺼져. 꾸역꾸역 더럽게 많이도 나오네.”
백발 남자의 시선이 사람을 가득 싣고 내려오는 승강기를 훑었다.
“금방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 순간. 모두의 스마트폰이 시끄러운 경보음을 울려 댔다.
* * *
“뭐야?”
거슬리는 경보음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 그게. 지금 몬스터풀 경보가 떴습니다.”
“오…….”
“어… 위치가… 상계1동… 이, 이 근첩니다.”
“그래?”
순간 느껴진 강력한 힘의 파동에 고개를 홱 돌렸다. 나무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멀리서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몬스터풀이면 그, 뭐냐. 몬스터들이 미친 듯이 뛰어나온다고 했던 거. 그거 아냐?”
“맞습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남 비서의 안색이 썩 좋지 않았다.
“에너지 규모가… 여태껏 겪어 보지 못한 규몹니다.”
“오~ 그래?”
뭔가 흥미진진해지는 느낌에 손가락을 튕겼다.
“야.”
“예.”
조금 전까지 대화하던 중국 놈을 불렀다.
“너희들 싹 다 튀어 가서 몬스터풀 막아.”
“예?”
“예?”
표정으로 물음표를 띄우는 놈에게 눈을 부릅뜨며 똑같이 말하자, 놈은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아…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한 놈도 빠지지 말고 가서 막는다. 알겠지? 나중에 검사해서 한 놈이라도 빠지면 니들은 싹 다 죽는 거야.”
장난으로 얘기한 것이지만, 놈의 귀에는 절대 장난으로 들리지 않을 것이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놈은 동료인지 부하인지 모를 놈들에게 재빨리 산에서 내려갈 것을 명령했다.
“자, 우리도 구경 가자.”
구경 중의 최고의 구경은 역시 싸움 구경. 나는 비서, 관리자들과 함께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을 내려갔다.
공터까지 내려가자, 멀찍이 지상에 가깝게 떠 있는 비스듬한 구멍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바로 괴물들이 뛰쳐나오는 구멍이로군.
크기가 꽤나 거대했다. 처음 보는 광경에 호기심이 인 나는, 비서들과 관리자들을 뒤로하고, 단거리 이동 마법, ‘블링크(Blink)’를 이용하여 빠르게 그 구멍을 향해 접근했다. 접근할수록 그 구멍에서 느껴지는 괴이한 힘의 파동이 나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
커다란 구멍과 그곳에서 나올 몬스터들이 잘 보이는 건물 옥상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마자 불규칙한 힘의 파동이 안정을 되찾았고, 이내 몬스터들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